붉게 빛나는 아리조나의 보석, 세도나를 가다
사막 안에 솟아오른 도시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화려한, 혹은 그래서 더 화려하게 느껴지는 라스베가스를 출발한 우리는 네바다주와 유타주를 거쳐, 아리조나주에 접어들었다. 좁다란 땅덩어리에 수많은 이들이 모여 사느라 좌를 봐도 우를 봐도 복작복작하기 그지없는 한국에 익숙한 우리 일행은 집 한 채 없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땅이며 선인장의 행렬을 바라보며 "이렇게 노는 땅이 많아도 되는 거냐. 신기하다."는 이야기를 연신 나누던 참이었다.
마치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선인장만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던 찰나, 우리 눈 앞에 붉은 기운이 용솟음치는 바위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이로 제법 번화한 동네가 나타났다. 세도나 Sedona였다.
자연에 녹아든 레드락 카운티, 세도나
세도나가 자리한 곳은 레드 락 카운티 Red Rock County라고도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세도나 어디에서도 고개만 들면 오묘한 붉은 기운 가득한 바위가 지천이기 때문이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 거짓말처럼 라스베가스가 솟아 있듯 해발 1,371 미터 붉은빛 바위 사이에 세도나가 자리하고 있다면 이해가 쉬울까.
세도나 도심에 위치한 상가 건물 대부분은 높이가 낮아서 도시를 둘러싼 환상적인 자연 경관으로 향하는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건물이 자연의 그것과 최대한 가까운 색상과 재질로 지어졌는데, 아마도 그것은 인간의 영역을 최대한 겸손하게 표현함으로써 이곳의 주인공은 자연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즐거움의 끝은 없다
세도나를 찾는 많은 이들은 이 도시가 기대 이상으로 다양한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는 사실에 감탄할 것이 분명하다. 그저 '아름다운 경치' 하나만 기대하고 이곳을 방문했던 우리 일행도 그랬으니까.
방문자들은 오크 크릭 캐년 Oak Creek Canyon을 방문하고 레드 락 트레일을 따라 산책을 즐긴다. 활동적인 사람이라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탐험에 나서도 좋겠고 '몸 편한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라면 지프차를 타고 레드락을 둘러보는 핑크 지프 투어Pink Jeep Tour를 이용해도 좋겠다.
처음 세도나에 도착해 도시를 둘러싼 바위를 봤을 때 한눈에 딱 봐도 빛깔이며 모양이 남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곳은 영적인 치유나 심신의 안정을 꾀하는 이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신비감을 주는 붉은빛 경치 덕분에 일상이 주는 고단함을 떨쳐 버리고 가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뿐만 아니다. 자연을 즐기러 와서 인간이 구축해 놓은 편리를 그리워하는 것도 우습지만 실제로 그러한 마음이 드는 것이 현실. 세도나 도심에는 각종 레스토랑이며 카페, 선물가게, 갤러리 등이 즐비해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 그리운 여행자를 위로한다.
레드락 카운티라는 이름에 걸맞게 세도나에서는 붉은빛 돌조각에 SEDONA라는 글씨를 새겨 팔기도 한다. 판매하는 모든 제품이 다 아리조나 현지에서 만들어졌다는 자부심이 강했던 어느 상점에게 한컷.
하늘을 향해 붉은빛으로 솟아오르다. 성 십자가 성당 Chapel of the Holy Cross
세도나 중심가에서 벗어난 우리 일행이 향한 곳은 오늘의 하이라이트, 성 십자가 성당 Chapel of the Holy Cross이다.
천주교 성당이지만 사실 이곳은 이 지역 출신의 한 인물의 의지에 힘입어 탄생한 공간이라고 한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자 목장주, 조각가였던 마게리타 브룬스윅 스타우드 Marguerite Brunswig Staude는 20세기 초 뉴욕에 지어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보고 영감을 받아 자신도 그와 같은 성당을 지으리라 결심한다.
원래는 미국의 전설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Frank Lloyd Wright의 도움을 받아 유럽에 건축을 하려고 했으나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인해 계획이 무산되고 결국 리차드 하인 Richard Hein, 어거스트 스트로츠 August K. Strotz의 작업을 통해 세도나 코코니노국유림 Coconino National Forest에 성당이 완성된다. 그게 1956년의 일.
반세기가 넘는 기간, 성 십자가 성당이 바라보고 있었을 경치다.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숨막히도록 아름다움 붉은빛을 내뿜는 바위가 성당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게다가 성당 자체도 이런 바위 중 하나 위에 지어져 더욱 성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주차를 하고 나선형 길을 돌아 성당 쪽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계단 입구에서부터 성당까지는 가까운 거리지만 어디부터 봐야 할지 결정하기 힘들 정도의 황홀경이 사방에 펼쳐져 있기에 처음으로 서울 나들이를 한 시골쥐처럼 이리 두리번 저리 두리번거리며 사진까지 찍다 보면 성당 입구에 다다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드디어 성 십자가 성당의 모습이 보인다.
세도나의 건축물 대부분이 그러하듯 주변 자연 경관에 누를 끼치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비상하듯 솟아 있다.
성당은 1층과 지하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천장이 높은 1층에는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지하 1층에는 성물 및 기념품 판매소가 자리한다.
성 십자가 성당에서는 그 유명한 벨 락 Bell Rock의 모습도 훤히 보인다(사진 가운데).
세도나 남쪽에 위치한 높이 1,499 미터의 이 거대한 바위는 마치 종 Bell처럼 생겼다 해서 벨 락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이곳에 지구와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가 있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이는 이 바위 밑에 매우 강력한 자기장이 형성되어 있어서 지구의 에너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주장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이곳은 벨 락의 영험함을 믿고 기를 받거나 명상을 통해 심신을 치유하고자 하는 이들로 늘 북적인다고 한다.
메마른 사막의 땅이라고만 생각했던 아리조나. 그곳엔 기대을 뛰어 넘고도 남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도시, 세도나가 있었다. 함께 여행을 한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번 미국 서부 여행은 세도나 하나 만으로도 만족할 만하다."고 하는데 나도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세도나를 방문하기 전까지는 붉은빛이 마음을 안정시키는 색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석양과 버무려져 더욱 더 오묘한 붉은색으로 빛나는 세도나를 뒤로 하고 나오는 길, 힐링이 필요한 요즘 같은 시대에 꼭 한 번 가볼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마음 속을 떠나지 않는다.
INFORMATION
세도나 여행팁
- 세도나 주변에는 여행자로 하여금 가다가 서다가를 여러 번 하게 할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드라이브 코스가 많기 때문에 자동차로 여행할 것을 추천한다.
- 홈페이지: http://www.visitsedona.com
성 십자가 성당 Chapel of the Holy Cross
- 주소: 780 Chapel Rd, Sedona, AZ 86336
- 홈페이지: http://www.chapeloftheholycross.com
- 입장료: 무료
- 성물판매소 운영 시간: 월-토 9 am – 5pm/ 일 10am – 5pm
세도나 핑크 지프 투어 Pink Jeep Tour
- 홈페이지: http://pinkjeeptours.com/sedona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