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Life-12월은,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
이화령 터널을 지나면서, 내 고향땅 문경으로 들어섰다.
그때가 오후 5시쯤의 일이었다.
누런 벌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30여 분 정도면, 이날 저녁으로 함께 하게 될 우리 중학교 동기동창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는 ‘금곡송어장’ 그 송년회 자리에 당도할 수 있었지만, 그 자리로 내처 달려갈 수 없었다.
도중에 동행해야 할 친구가 하나 있어서였다.
같은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문경읍의 외곽 마을인 마성 외어리에 사는 권강호 친구였다.
그 친구의 집을 찾아가던 중에 일부러 들어선 길이 있었다.
해발 1,017m의 백두대간 조령산을 발원으로 해서 문경읍을 끼고 흐르는 조령천 그 뚝방 길이었다.
그 뚝방에서 멀리 해발 1,107m의 백두대간 주흘산의 암봉 풍경을 바라보고 싶었고, 그 자락의 읍내 풍경을 내다보고 싶어서였다.
뚝방 중간쯤에서, 일부러 차를 세웠다.
그리고 내려서 해거름의 고향산천 풍경을 휘돌아봤다.
한 평생을 서울에서 터 잡아 살다가, 5년 전쯤에 홀연히 아내와 함께 고향땅으로 내려와서 손수 집을 지어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권강호 그 친구의 심정을 알만 했다.
친구의 그 심정을 떠올리다보니, 또 노래 한 곡이 따라 떠오르고 있었다.
중학교 그 학창시절에 참 많이도 듣고 불렀던 미국 민요 ‘Carry me back to old Virginny’라는 노래였다.
떠오른 김에, 내 또 그 노래를 불렀다.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라고 우리말로 번역된 노래였다.
이리 불렀다.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
오곡백과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달새 높이 떠 지저귀는 곳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
내 상전(上典) 위하여 땀 흘려가며
그 누른 곡식을 거둬들였네
나 어릴 때 놀던 내 고향보다
더 정다운 곳 세상에 없도다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
이 몸이 다 늙어 떠나기까지
그 호수 가에서 놀게 하여 주
거기서 내 몸을 마치리로다
마사와 미사는 어디로 갔나
찬란한 동산에 먼저 가셨나
자유와 기쁨이 충만한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