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메시아를 기다리는 이유, 역사의 변혁과 파스카
이사 29,17-24; 마태 9,27-31 / 대림 제1주간 금요일; 2022.12.2.; 이기우 신부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는 메시아가 오셔서 이룩하실 놀라운 변화에 대해 예언합니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던 레바논 숲이 과일나무가 듬성듬성 심겨진 과수원으로 변하고, 또 과수원은 울창한 숲으로 바뀌는 엄청난 변화가 메시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리라는 예언입니다.
하지만 일종의 비유인 이 예언의 뜻은 자연환경에서 물리적으로 나타나는 그 외적인 변화가 “귀먹은 이들도 책에 적힌 말을 듣고,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는”, 그러니까 사회적 상황에서 영적으로 나타나는 질적인 변화로 도약하리리라는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변화는 인간 진화의 영성적 도약 현상인데, 이것이 일어날 수 있는 원인은 메시아께서 지니신 신적 권능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불러일으키신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격적 변화의 목표는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보게 되고, 하느님을 거룩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되는가 하면, 하느님의 뜻을 받들게 되는, 본연의 제사요 파스카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실현된 바 있는 이러한 이사야의 예언은 당시 동시대인들의 메시아 대망(待望) 신앙을 반영한 것일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이 대림 시기에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당되는 희망입니다.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은, ‘나와 너’가 각각이거나 심지어 대립하는 적이 아니라 ‘한 몸’임을 깨닫는 자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소박하지만 자기 혼자만의 소망을 간직하고자 하는 우리를 각성시키시고 도약시키시는 영적 사다리입니다.
메시아께서 오셔서 사람들의 믿음을 불러일으키시어 파스카 과업으로 이끄시는 이러한 영성적 도약이 개인으로나 공동체로서나 또 민족으로서나 인류 전체로서나 세례의 본질입니다.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물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영이 내려오셨으며 하늘에서 그분을 인정하는 소리가 들려왔듯이, 우리가 세례성사를 받을 때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었습니다. 하늘이 열렸으며, 영이 내려오셨고,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세례성사를 받을 당시에는 아직 영적으로 어려서, 영적인 눈이 뜨이지 못했고 귀도 열리지 못했으며 혀도 풀리지 않아서 몰랐을 뿐입니다. 이 대림시기는 메시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시어 또렷하게 보게 하시고, 우리의 귀를 열어주시어 분명하게 알아듣게 해 주시며, 우리의 혀를 풀어 주시어 스스로 말할 수 있게 해 주시는 영적 성숙의 때입니다. 이 은총의 때에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해야만 새로운 삶을 통해 새 하늘이신 예수님의 뜻을 실현하는 새 땅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이 새 땅이 새로운 교회이자 사랑의 문명입니다.
서양인들이 이룩한 물질문명은 제도적인 의미로만 세례를 받은 탓에 비인간화와 세속화 현상을 초래하였고, 동양인들이 고수해 온 정신문화는 인습적으로만 막연한 영성을 물려받은 탓에 전근대적인 봉건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의 동서나 피부색을 넘어서 모든 사람이 다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새 하늘의 빛을 받아 새 땅을 이룩해야 할 새 인류로 거듭 나야 합니다. 그러자면 하느님으로서 사람이 되신 예수의 신성이 사람들 안에서 빛을 발해야만 하고, 이는 먼저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가 그들이 눈높이에서 알아보고 알아들을 수 있도록 증거를 해야 하는 과업입니다. 이것이 메시아 도래와 파스카 과업의 역사적인 뜻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가톨릭교회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눈먼 이들이 청했던 기도를 미사에 도입하였습니다. 바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는 청원 기도입니다. 우리도 미사를 시작할 때마다 이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청원 기도가 들어질 수 있는 요체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다고 믿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진정으로, 그리고 우리 자신의 투신 각오를 담아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해야 우리가 믿는 대로 눈을 뜰 수 있고, 귀가 열릴 수 있으며, 혀가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레바논의 자연에서 일어나는 외적인 변화 현상을 통하여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 이룩하실 내적인 변화 현상을 예언한 이사야의 예언자적 상상력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이사야가 예언해 놓은 바를 더욱 놀라운 신적 권능으로 입증해 보이신 예수님의 자비를 믿어야 합니다. 2천 년 전에는 겨우 눈먼 사람 둘의 눈을 뜨게 해 주시어 사물을 보게 하셨을 뿐이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훨씬 더 많은 신앙인들 안에서 현존하시며 활약하시는 지금에는 우리 자신을 포함한 겨레와 인류 모두를 눈 뜨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의 신성이 지닌 놀라운 권능입니다. 이것이 이 대림시기에 우리를 위하여 마련된 성령의 세례입니다. 하늘을 열어 놓으신 하느님, 당신의 영을 땅에 내려가게 하시어 우리에게 부어주실 준비를 마치신 하느님께서 우리가 하느님의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화답송 후렴. 시편 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