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정몽헌 회장 자살/ ‘자살’이 주는 교훈
정치와 사업은 ‘물과 불’
(전문게재)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의 투신 자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현대그룹의 지도자였고, 남북한의 정치적·경제적 협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근자에는 남북한 정상회담 대가의 대북 송금 의혹에 휩싸여서 특검과 검찰의 조사를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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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관광사업은 고 정몽헌 회장이 공을
들인 사업의 하나였다. |
한 사람의 자살은 대개 여러 가지 원인들에 의해 초래된다. 정몽헌 회장처럼 사회적으로 중요한 자리에서 큰일들을 한 사람의 자살은 특히 그러할 터여서, 그를 삼킨 강물은 여러 지류들이 모여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강물의 연원이 그의 선친 정주영 회장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도 분명하다.
정주영 회장은 1992년에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 그것은 맨손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기업군을 세운 사람에겐 참담한 실패였다. 그의 높은 명망과
엄청난 자원에도 불구하고 그의 득표율은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그 선거에서 이긴 김영삼 대통령의 미움을 샀다는 사실이었으니 김영삼 정권 내내 현대그룹은 정권으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워낙 튼튼했던 터라 현대 그룹은 그 핍박을 견뎌냈지만 그룹의 건강은
크게 약화되었다.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운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자 정주영 회장은 북한과의 협력 사업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긴밀하게 협력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 회장처럼 과감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한국의 칭기즈칸’같은 기업가만이 생각해내고 추진할
수 있었던 대담한 도박이었다.
불행하게도 북한과의 협력 사업은 처음부터 실패로 끝날 운명을 지닌 사업이었다. 먼저 그것은 책임자인 정 회장 자신이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적대적 관계에 있는 나라들이 처음으로 정색하고 협력하는
일이라 그것은 양국 정부가 외교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것에 관한 중요한 결정들은 양국 정치 지도자들이 내렸다. 그리고 정치가들인지라 그들은 경제 논리를 가볍게 무시하고 자신들의 정치 논리를 따랐다. 특히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사업을 남북 관계를 조절하는 통로로 삼았고 자신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사업 집행 속도를 조절했고 자주 사업을 중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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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남북경협 논의를 위해 북한을
방문한 정몽헌 회장과 부친 정주영씨 |
다음으로 그것은 경제적으로 타당성이 불확실한 사업이었다. 북한에 대한 투자가 워낙 위험하고 북한의 시장이 아주 작으므로, 정상적 절차는
북한 당국이 스스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큰 혜택들을 내밀어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었다. 특히 우리 정부가 북한의 위약에 대해 대처할 길이 없었으므로 우리 기업들은 투자에 대한 엄격한 안전 조치들을 요구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사업 허가에 대한 대가로 큰 돈을
먼저 냈고 매우 높은 수수료를 관광사업에 대해 지불하기로 약정했다.
누가 보더라도 그 사업은 이익을 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자연히 당시에
사람들은 현대그룹과 김대중 정권 사이에 어떤 양해가 있었다고 짐작했었고 그런 짐작은 뒤에 현대그룹에 제공된 엄청난 금융 및 조세 지원에
의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의 그런 지원도 원래 수익성이 없는 사업을 살릴 수는 없었다.
셋째, 사업의 외부 환경이 빠르게 악화되었다. 경기 침체는 적어도 초기
단계에선 금강산 관광을 주요 수익원으로 삼은 그 사업의 수지를 급격하게 악화시켰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그런 수지 악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약정 수수료를 징수해갔다. 그리고 북한의 국제적 모험주의는, 특히
핵무기 개발 시도는 이미 어려웠던 국제 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자연히 현대그룹의 북한과의 협력 사업도 부정적 영향을 크게 받았다.
다른 편으로는 우리 경제가 점차 투명해지고 증권 시장이 개방되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늘면서 현대그룹 계열사 사이의 관행적 협력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사업의 추진은 실무적 절차 차원에서 아주 어렵고 더디게 되었다.
정몽헌 회장은 선친이 처음 닦은 길을 충실히 걸어갔다. 이른바 ‘왕자의 난’에서 형 정몽구 회장을 밀어내는 일에서 내건 명분이 대북 협력
사업이었다는 사실과 자신의 시회(屍灰)를 금강산에 뿌려달라는 그의 유언이 잘 말해주듯, 그는 그 사업에 자신의 운명을 걸었다. 애석하게도
그 길은 아무 곳으로도 가지 못하는 미로였다. 민족주의가 거세고 통일에 대한 열망이 뜨거운 사회인지라 대북 협력 사업엔 큰 후광이 어렸다.
그러나 그 후광도 계속 적자를 내는 기업을 인도하는 등불이 될 수는 없었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을 인도하는 등불은 늘 이익을 낼 수 있는
수익 모형이다. 매출액이 커질수록 적자 폭도 따라서 커지는 사업은 미로일 수밖에 없었다. 햇볕정책을 추구한 정권의 큰 지원도 일시적 영양제를 넘을 수 없었다.
매출 늘수록 적자도 늘어
김대중 정권 말기에 끝내 대북 송금 의혹이 불거지자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음습한 추문의 한가운데 섰다. 그의 회사들을 통해서 북한으로 건너간 자금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쓰였으리라는 지적은 그에게 무척 아팠을 터이다. 그 추문의 검은 물살은 그가 감당하기엔 너무 거셌고, 그 물살에 휩쓸려, 그는 깊이 가라앉았다.
그러면 우리는 이 비극적 사건에서 무슨 교훈들을 얻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정치와 사업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가는
자신의 사업에 몰두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동서고금을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사회에서 성공한 기업가가 성공한 정치가로 변신한 경우는 아주 드물다. 기업가가 권력을
잡기도 어려울 뿐더러 권력을 잡더라도 성공적으로 통치하기 어렵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기업을 경영하는 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만일
정주영 회장이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면 그가 세운 현대그룹과
그가 낳은 아들의 앞날은 훨씬 밝았을 터이다.
다음 교훈은 기업가는 특정 정치적 지도자나 그의 정책과 너무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그런 연결은 기업에
특혜라고 불리는 ‘지대’를 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을 외부
정세에 그대로 노출시킨다. 흔히 인용되는 속담대로 기업에 정치 권력은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고 너무 멀어서도 안 되는’ 존재다. 김영삼 정권에서 받은 핍박과 다섯 해의 공백을 단숨에 건너뛰고 싶은 욕심을 고려하면 정주영 회장이 현대그룹의 운명을 김대중 정권 및 ‘햇볕정책’의 운명과 단단하게 묶어맨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현명한 결정은 아니었다.
셋째, 우리는 북한과의 교섭에 따르는 위험들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북한과의 교섭은 어떤 것이든 큰 위험이 따른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졌지만 찬찬히 살피면 그 위험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 드러난다. 북한과 교섭한 자유 세계의 정치인들은 모두 정치적
손실을 입었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물론이고,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도 정치적 손실을 보았다. 그리고 북한에 투자한 우리 기업들 가운데 이익을 본 기업들은 드물다. 북한의 체제가 계속 약화되고 있으므로 그런 위험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대북 교섭의 ‘실체’ 밝혀야
생각해 보면 그런 손실은 필연적이다. 원래 압제적 정권들과 거래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과 거래한 러시아나 프랑스가 큰 손실을 본 것은 우리에게 그 점을 일깨워준다. 국가 경제를
파산시키고 굶주린 주민들이 나라 밖으로 유랑하는 것을 태연히 바라보는 공산주의 정권이, 그들이 드러내놓고 증오하고 경멸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가들이나 기업가들을 신의와 성실로 대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어떻게 합리적일 수 있겠는가?
북한과의 교섭은 진지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이미 우리에겐 그 길 말고
달리 고를 만한 길이 없다. 다른 편으로는 우리 정치가들과 외교관들은
북한과의 교섭에서 보다 조심스러워야 하고 우리 기업가들은 북한에서
벌이는 사업들에서보다 현실적인 가정과 계산에 바탕을 두고 일을 추진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북한의 현 정권과 북한의 주민들을 분리해서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가 긴요하다.
위에서 살핀 교훈들을 제대로 얻고 북한과의 교섭을 보다 탄탄한 바탕
위에 세우려면 우리는 먼저 김대중 정권에서 이루어진 북한과의 교섭이
실제로 어떤 모습을 했는지 알아야 한다. 정주영 회장이 시작했고 정몽헌 회장이 이어받은 대북 협력 사업은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과 비정상적으로 얽혔고 거기서 나온 여러 의혹들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정몽헌 회장의 비극적 죽음은 그런 의혹들을 제대로 밝히는 일에
운동량을 더해야 한다. 그것으로부터의 교훈을 바탕으로 우리는 바람직하고 투명한 ‘대북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그의 마지막 뜻이 무엇이었든, 그것만이 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단 하나의 길이다.
복거일 소설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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