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에서 즐거웠던 일에 대해 쓴 글입니다.
모르는 여인, 한편의 영화, 그리고 연결
자주 가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주로 일본 아마츄어 사진작가들의 작품들이 올라오는 사진전문 사이트다.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게 사진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어찌된 일인지 거기에는 도쿄 밤거리의 풍경이 찍힌 사진들이 많이 올라온다. 다사이 오사무 때문일까? 아니면 하루키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아주 오래전 정말 재미있게 본 백야행이라는 일드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나는 외롭고 무심한 사람들로 가득 찬, 조금은 슬픈 듯 한 느낌의 도쿄 시내를 찍은, 그 사이트의 사진들이 마음에 끌렸다. 그래서 퇴근 후 집에 와 노트북 앞에 앉으면 한 번씩 그 사이트를 방문하는 것이 요 몇 개월 동안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녀가 찍은 사진이 내게 눈에 띤 것은 아마 두 달 전쯤 이었던 것 같다. 특이하게도 그녀의 사진 밑에는 일본 사이트에선 볼 수 없는 한글이 쓰여 있었다. 그 글들은 주로 소설 속에서 발췌한 몇 줄의 구절들이었고 책들에는 고전도 있었고 현대작품들도 있었다. 사실 그녀의 사진 자체는 뛰어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 밑에 붙인 글들은 아주 멋진 글들이어서, 그것을 읽고 그녀의 작품을 다시 보면 사진이 갑자기 좋아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그녀는 알려지지 않은 명문들을 절묘하게 사진 밑에 인용하곤 했다. 자연히 나는 사이트를 방문할 때마다 그녀의 흔적을 찾았다.
이것은 그녀가 퇴근시간 무렵 도쿄거리의, 어떤 건장하지만 조금은 쓸쓸한 듯한 중년 남성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 밑에 붙인 글이다.
강인한 사람들은 소리 없이 피어난다.
그들의
투쟁을 응원하는
격려박수 소리도
그들의 해방을 부러워하는
찬사의 시선도
없이
어둠속에서 홀로
그렇게 소리 없이 피어난다.
그렇게 그녀의 글을 눈팅만 하던 내가 그녀에게 처음 댓글을 단 때는 샤이니의 종현이 자살하고 하루 가 지난날이었다. 그날 그녀는 종현이 쓴 유서를 사진 대신 올려놓고 자신도 우울증 때문에 무려 5년동안 생과 사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말하며 평소와는 다른 절박한 어투로 종현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글을 올려놓았다. 그녀가 평소 인용하던 에너지 넘치는 글들과 다르게, 그날 올라온 열줄 넘게 쓴 그녀의 글들에는 예사롭지 않은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고 나는 슬그머니 그녀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 댓글을 썼다.
내가 쓴 댓글은 오래전 우울증으로 자살한 대학교 후배의 이야기였고 나는 그 먼저 떠난 후배이야기를 하면서 그 성급한 선택이 남아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가슴 저미게 하는지 아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다음 날 나의 글에 너무 감사하다는 답 글을 달았고....... 그리고 그렇게 나는, 모르는 여인과 뜻하지 않은 소통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그녀와의 대화는 서로의 신상에 대하여 몇 가지 간단한 정보를 교환하게 된 뒤, 어느덧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의 인상 깊은 구절을 서로 나누는 정도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무려 열 번 이상 서로 교환하였다. 사실 그녀가 인용한 글과 내가 감동받았던 글들은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비슷한 정서를 가진 사람과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즐거움은 한 이주동안 이루 말할 수 없게 나를 즐겁게 하였다. 그 기쁨이 어느 정도였냐면 나는 직장에서 하루 종일 그녀에게 어떤 구절을 인용해 보내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중 지난 주 그녀는 나에게 영화 한 편을 추천해 주었다. 영어제목은 LOST IN TRANSLATION.......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한 작품이었고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라는 제목으로 시중에서 오래전 개봉된 영화였다. 나는 번역제목을 보고서 섣불리 그 영화가 흔하디흔한 로맨틱 코미디물인줄 알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퇴근 후 그 영화를 보았다.
하지만 그 영화는 짐작과는 다르게 처절하리만큼 외로운 20대 아가씨와 그녀와 똑같이 많이 외로운 중년남자의 짧고 깊은 우정과 소통을 아주 섬세하고 강렬하게 그린 잘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도쿄를 배경으로 한 그 영화의 마지막 씬은 주인공 둘이 작별포옹을 하는 장면인데 그때 스칼렛 요한슨의 커다란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인다.
여운이 길게 남는....... 영화 속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그, 스카렛 요한슨의 눈물은 - 내가 느끼기에는 - 고마움의 눈물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저씨가 나의 외로움을 덜어 주어서 너무나 고맙다는, 아저씨 때문에 어둡기 만한 자기 인생에 조금은 햇빛이 들어온 것 같다는........ 조금 나이차가 많이 나지만 짧은 시간,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를 향한 감사의 눈물이었다. 물른 그때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력은 단연 압권이었다.
이상하게도 영화 속, 우정을 나누는 남녀와 동경의 그녀와 나 사이엔 공통점이 많았다. 영화 속에서 스칼렛 요한슨은 철학과 출신인데 나도 철학전공이다. 남자 주인공은 결혼 한지 25년차 되는 중년남자, 조금 빠르게 나도 작년이 결혼 25주년이었다. 또 남자 주인공 직업은 배우였고 비슷하게 동경의 그녀는 영화를 공부하는 유학생이다. 그녀의 나이도 영화 속 스칼렛 요한슨과 비슷한 28세.
영화를 보고 한 시간쯤 지난 뒤 이 모든 공통점이 정리되자, 나는 그녀가 왜 그 영화를 추천해주었는지 이해가 갔다. 그녀는 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우리의 인적사항이 교묘히 공통되게 교차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를 골라 그 여주인공의 연기를 빌려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표시를 한 것이었다. 과연 그녀다운 멋진 소통방법이었다. 나는 그런 확신이 들자 바로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표시로 추천해준 영화를....... 정말 잘 보았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활짝 웃는 이모티콘으로 답글을 보내왔다.
나는 그날 새벽녘에야 잠에 들 수 있었다. 너무나 멋진 소통, 아니 너무나 멋진 연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나는....... 그녀와의 즐거웠던 소통을 생각하며 가벼운 흥분상태로 몇 시간을 뒤척거렸다. 몇 가지 인적사항 외에는 얼굴도 모르는 우리는 정말, 지난 몇 주 동안 가장 가까운 가족과도 나누지 못한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고, 그 즐거움에서 얻은 힘으로 나는 한동안 삭막한 현실을 버틸 수 있었다. 그녀와의 소통은 별다른 즐거운 일 하나 없이 하루하루를 무미건조하게 사는 나에게는 정말 깜짝 선물 같은 신선하고 즐거운 자극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언하자면, 그녀와의 온라인상의 관계가 오프까지 발전하여 우리가 직접 만나는 관계로 까지 발전하는 일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지금의 순수하고 담백한 관계가 변질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첫댓글 깔끔한 문장과 무리없는 전개로 마치 몇 컷으로 된 단편 영화를 보는 듯이 흥미로웠답니다. 그리하여 아랫글들도 님이 쓰신 것 같아 읽어보니ᆢ이 글이 제일 괜찮은듯, 그러니까 글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읽고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