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도 설날도 지나고 나니 한 층 더 노인이 되어 간다는
확신(?)에 한 일도 없지만 하는 일도 없이 한 것도 없이
어정쩡하게 나이만 먹는다 싶어 두문불출 하였는데
홀로 계시는 모친께서 조금 편찮으시다길래 병원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 무대뽀식의 군소리 겸
싫은 소리를 하면서 대뜸 나이들면 고집도 그러려지와
오랜 습관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이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을 빗대지 않더라도 나 역시 그러면서도 어머니만
탓하는 못 된 아들놈의 목소리가 그렁그렁 우렁차다
"엄니는 하루에 물을 얼매나 마신다요?"
"늙응께긍가어쩐가 국물도 안 맛있고 물도 마시기 싫드라!"
"음식은 맨날 싱겁다면서 짜게 드시면서 물을 안 마시면
피도 진해지고 끈적이면서 혈액순환이 안 되면서 다리도
저리고 팔도 저리고 허리도 더 아프다등마 피가 진하면
심장도 얼매나 힘들겄어요 ... 콩팥도 간도 나빠지고 ,,,"
"글씨 말이다만 안 묵고 자픈디 어쩔꺼시냐!"
"억지로라도 마셔야제라"
"... 안 묵고자픈걸 억지로 묵어서 무신 도움이 된디야?"
"그래도 커피는 꼬박꼬박 드시면서 커피만 드시면 몸 안에
수분만 더 빠져 나가고 골다공증도 더 심하답디다!"
"..."
"긍께롱 커피 마심시롱도 물은 더 많이 마셔야 된다 그말이여라"
"알았어야... 알았응께 그만저만혀라이...!!"
"아무리 추와도 밖에 햇살나면 동네 두어바퀴 돌고 양지녁에
햇볕도 좀 쏘이고 ... 방 안에만 있으면 안 생길 병도 생긴답디다"
"아무도 얼씬하지 않은 빈 곰샅길을 늙은이가 돌아댕기는 모양새가
어디 좋겄냐... 남새스럽지... 넘 보기도 글고..."
"근다고 맨날 테리비나 딜다보고 있다고 어디가 좋다요?"
"좀 쓸 만헌 사람들은 좨다 공공근론가먼가 가버리고 암작에도
쓸모없는 노인내들이나 우글우글허고 바글바글허니..."
중늙은이 아들넘은 도움이 안 된다
딸이라면 그래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들어주고 받다주는 폼새가
생길라는지 몰라도 무뚝뚝한 말투로 서로 우기고 주장만 오가다가
집에 도착해서는 그럭저럭 늙은 어미 밥을 얻어 먹고 나 몰라라하고
제 살던 집으로 돌아와서 기껏 잘 도착하였다는 전화 끝에
"물 좀 마셨어요"
"깜빡했어야 인자 마실란다"
"거봐 ! 얼마나 되얐다고 벌써 잊어부렀다요 얼름 마시시요"
알았다는 말을 귓전에 두고 전화를 끊자니 맬급시 가슴이 두근두근 제 몸도
가늠하지 못하면서 엄니탓을 해 대는 내 꼴이 우습다
봄이 가까이 왔는지 지난 주에도 연달아 사흘 내리더니 이번 주에도
연 사흘이라는 예보에 비가 잦고 봄바람인지 바람도 잦다
우중충한 날씨에 자욱한 안개에 가슴팎도 어둠이 침침이다
봄볕에 무지개가 뜨랴마는 괜시리 마음속은 무지개를 그린다
첫댓글 무지개.
한마디로 변화!
변화를 요구하는 간절함이 어찌 이리도 공감되는지요.
너도 내 나이 돼 봐라!
라고 하는 듯함이 크게 들립니다,
애가 타서 어미에게 이러쿵 저러쿵하며 애타하는 딸내미에게 나도 그리 말했답니다.
울 엄니도 그러셨거든요!
우린 자식이고 부모이기여 다독입니다.
가을 단풍은 봄꽃보다 붉고 저녁노을은 일출보다 화려하다는데 사람은 늙으막에 봄꽃보다 붉고 저녁 노을만큼 아름답기 어렵겠지요? 그저 사라질 뿐이라는 말에 동감하면서도 죽은 고목의 밑둥에서 새싹이 난다는 말도 고목에 피는 꽃의 향이 더 진하다는 말들이 저에게는 꿈만 같은 거짓말처럼 들린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