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을 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던지시고,
평원에는 바람을 풀어 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을 가득가득 하도록 명해 주시옵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녘의 낮을 주시어,
무르익는 것을 재촉하시고
무거워가는 포도에 마지막 달콤함을 넣어주소서,
이제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도록 살것이며,
깨어앉아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나뭇잎이 구를 때면 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불안하게 방황할 것입니다.
- 세계시인선 3 '검은 고양이' R. M. 릴케(김주연 역주) (민음사, 1974)
** 1행의 '여름에는' 이 자꾸 '여름은' 이라고 전에 익혔던 것 같아, 갖고 있는 시집에서
다른 번역으로 된 것을 읽어 봤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여러 다른 번역들을
읽어 봤습니다. 어떤 게 잘 된 것인지 쉽게 말할 수 없고 부분부분마다 이런 번역은 이게
더 낫고, 등등 ... 다양한 번역들이 나와 있네요. 인터넷에서도 대여섯 편 정도를
읽어 봤는데, 어쩌면 하나같이 다 다릅니다.^^
흐르는 물님께서 올려주신 시와 비교를 위해 아래에 덧붙여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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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입니다. 여름에는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에게 결실을 명하십시오.
열매 위에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주시고, 마지막 단 맛이
짙은 포도 송이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계속 고독하게 살 것입니다.
잠자지 않고,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쓰고
그리하여 낙엽이 뒹구는 가로수 길을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헤맬 것입니다.
-김희보 엮음『세계의 명시』(종로서적, 1987)
첫댓글 제게는 '여름은' 쪽의 번역이 더 와 닿네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