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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43회>
씬 1 그 전각
지난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경문왕의 그림에는 칼이 밖힌 채 피가 흐르고 있다. 모두들 증오로 떨고 있는 궁예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궁예 경문대왕이라니.....이런 자가 어떻게 대왕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이자야말로 한 나라를 망치게 한 장본인이 아닌가.... 이것이 무슨 볼거리라고 허월대사는 나를 보고 가라하였단 말인가......
왕건 폐하..... 혹여.... 이 그림과 관련하여... 무슨.... 일이라도 있으시온지...
궁예 일은 무슨......일.....나라를 망친 임금이 외람되게도 부처님의 집에 모셔져 있으니... 그리한게야.... 영정을 떼어 태워 버려라.
주지 예.... 폐하....
궁예 짐은 이 순간부터 신라를 멸도(滅都)라 부를 것이오. 신라는 없어져야 할 나라야....반드시 멸해야 할 나라...
궁예는 천천히 돌아서서 그곳을 빠져나간다. 은부와 내군들이 숨죽여 궁예의 뒤를 따른다. 연화도 상궁들과 함께 돌아서 나간다. 그곳엔 승려들과 왕건, 박지윤들만 남는다.
주지 (승려들에게) 어서 칼을 거두어 들이거라.
주지의 말에 따라 승려 하나가 다가가 그 칼을 뽑는다. 그러나 칼은 꿈쩍도 않는다. 여러 승려들이 달라 붙지만 마찬가지이다.
주지 ....괴이한 일이로다.. 아니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도 뽑히지를 않다니....그리도 깊히 밖혔다는 말인가...?
왕건 허... 단단히도 밖혔소이다...과연 페하의 무예는 대단하시옵니다....소장이 한 번..거드오리까...?
왕건이 다가가 칼의 손잡이를 움켜쥔다. 그리고 침내 손아귀에 힘을 주자 검이 맥없이 빠져나온다. 모두들 놀라 감탄을 한다. 왕건은 덤덤하게 그 칼을 보고 있다.
주지 오...이런.....검을 혼자서 뽑아내다니....(왕건에게 다가가) 장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함자를 여쭤봐도 되겠소이까?
왕건 소장은 왕건이라 하오이다.
주지 ....왕건이라.....왕건? 혹 송악의....?
왕건 그러하옵니다만... 소장이 송악 출신이라는 것을 어찌 아셨사옵니까?
주지 허허허. 그러셨구려. 그랬어요.
왕건 .......? (합장하며) 그럼 소장은 이만........
왕건을 따라 박지윤들이 그곳을 빠져나간다. 주지가 오랜 동안 그 왕건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다.
주지 궁예가 맺고 왕건이 푸는 격이로다. 허허허허...과연 선인들의 예언이 틀림 없구나. 송악에 청솔이 있다더니....
승려들 ...........?
해설 부석사의 이 사건. 궁예는 자신의 생부인 경문왕의 화상을 칼로 내리쳤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궁예는 이로써 신라 왕자로서의 자신을 공개적으로 부정한 것이 된다. 이 때의 일을 역사의 기록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궁예가 한번은 남쪽을 돌아다니다 흥주(영주)의 부석사에 이르렀다. 궁예는 이 때 벽에 신라 왕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칼을 뽑아 쳤는데 그 칼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 라고.......
씬 2 인서트
궁예들이 부석사 경내를 지나 객사로 들고 있다. 주지가 굽실거리며 이들을 방으로 안내 하고 있다.
해설 (계속) 그런데..... 궁예가 생부의 화상을 훼손한 이 사건은 과연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것인가.... 과연 신라 왕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개인적인 원한의 감정에서 나온 것일까.....분명 기록은 그렇게 내용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일국의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른 궁예가 사사로운 감정을 이기지 못해 그러한 과오를 저질렀을까? 학계에서는 이 대목을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다. 궁예의 이러한 행위는 자신이 발판으로 삼고 있는 지역, 즉 고구려 유민의 마음을 끌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궁예는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부정함으로써 자신이 세운 고려의 지지기반을 더욱 견고하게 굳히려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런 점이 바로 승리자의 기록과 행간을 들추어 진실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보는 역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이다. 궁예의 행동은 아무래도 후자에 속해 있었을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씬 3 부석사 법당 안
궁예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차분하게 앉아 있다. 왕건과 연화, 은부들이 찻상을 놓고 앉아 있다.
연화 오늘의 일은 너무 지나치신 것이 아니옵니까?
궁예 지나치다? 허허....무엇이 말이오?
연화 신라왕은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이옵니다. 흉악한 죄인조차도 죽음에 이르면 더이상 그 죄를 묻지 않사옵니다.
궁예 짐은 나라를 망친 신라의 임금에게 부관참시에 해당하는 벌을 내린 것이오. 비록 사후라 하더라도 잘못은 벌을 받아야 하는것이오.
연화 신첩은 그저 백성들이 행여나 오해를 하지 않을까 염려되어드리는 말씀이옵니다..
궁예 백성들은 나의 뜻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외다. 자 그만 떠나도록 하십시다. 이 곳에서 너무 오래 지체한 것 같소이다. 은장군, 차비를 하게.
은부 예, 폐하..
은부가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궁예들도 일어 선다.
씬 4 길
궁예들이 계속 길을 가고 있다. 그때 멀리서 몇 필의 말들이 이쪽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다. 금대와 장일이 앞으로 나선다. 전령이 말에서 내려 군례를 올린다.
금대 어인 자들인가?
전령 소인들은 충주에서 온 전령들이옵니다.
금대 따라오게..
금대가 전령들을 궁예에게 인도한다.
금대 폐하, 충주에서 전령을 보내왔사옵니다.
궁예 충주에서......?
전령들이 군례를 올린다.
왕건 소신의 부장들이 보낸 모양이옵니다. (전령에게) 무슨 일인가?
전령 상주에 있는 견훤의 아비 아자개에 관한 일이옵니다.
은부 아자개?
전령 예.
그러는사이 왕건이 전령이 준 장계를 읽고 있다. 그리고는 웃으며 고개를 끄떡인다.
왕건 칠월 칠석이 아자개의 생일이라.... 헌데 선물을 보낸다...?
은부 적장에게 선물을 .....?
왕건 폐하...... 하명하여 주시오소서. 아마도 적진의 사정을 살펴볼 요량인 것 같사옵니다.
궁예 충주의 사정은 누구보다도 왕장군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뜻대로 하게나.
왕건 망극하옵니다, 폐하. (전령에게) 폐하께오서 재가를 내리셨느니라. 기왕에 선물을 보낼 것이면 고려국 장수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성의와 예의를 다하도록 하라 이르거라.
전령 예, 장군.
왕건 누가 사자로 간다 하느냐?
전령 박술희 부장이옵니다.
왕건 박술희가? ......알았느니라.
전령 그럼 .....................
다시 전령들이 말에 올라 온 길로 되돌아 달려간다. 궁예들도 행군을 계속한다.
궁예 적장에게 선물을 보낼 생각을 다 하다니.... 왕장군의 부장들도 제법이네, 그려. 허허허. 과연 멋을 아는 사내들이야.
왕건 .............망극하옵니다. 페하.
씬 5 충주 관아 외경
씬 6 동 관사
탁자 위에는 아자개에게 보낼 선물들이 가득 놓여있다. 그것들은 대부분 술 항아리들이다. 능산과 유금필, 유긍달, 홍유, 배현경, 김락, 김언 등이 함께 해 있다. 모두들 눈이 휘둥그래져 그것들을 보고 있다. 박술희는 헤헤 웃고 있다.
유긍달 이것들이 다 무엇이오?
박술희 상주 성주께 바칠 선물이옵니다. 진귀한 술은 죄다 모았사옵니다. 허허허...
유긍달 이 많은 것들을 다 가져간단 말이오?
박술희 많다니요? 생각 같아서는 더 준비를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촉박했던지라 이 정도만 해올리는 것이옵니다.
능산 이것들이 다 술이란 말이지?
박술희 (신이 나서) 그러하옵니다. 이 놈은 더덕주고, 저 놈은 백사주, 그리고 이게 가장 귀한 산삼주지요.
홍유 산삼주까지.....? 아니, 박부장, 지금 마치 처가집에라도 가는 것 같소이다?
박술희 놀리지 마시오소서... 아랫것들을 시켜 사흘 밤낮을 구해온 것들이옵니다.
배현경 아자개가 사위깜 하나는 제대로 본 것 같습니다? 서로가 술을 좋아하니...
감락 그러게 말입니다. 본래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호방하고 인심이 좋은 법입니다. 혼담이 잘 되었으면 좋겠소이다. 핫하하하..
김언 일이 잘 되면 견훤왕과는 매부와 처남사이가 되는 것 아닙니까...
홍유 아, 왜 아닙니까......?
모둬들 와 웃는다. 그러나 박술회는 진지하다.
박술희 헤헤헤..... 너무 그러지들 마십시오. 실은 이것뿐만 아니옵니다. 또 다른 볼거리도 있사옵니다.
능산 또....다른 볼거리....그건 또 무엇인고...?
박술회 헤헤헤....그것까지는 모르셔도 되옵니다.
유금필 폐하께오서 지금 이곳으로 오고 계시네. 행여나 경거망동은 금물일세. 문제를 일으켜서는 아니 될 것이야.
박술희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유금필 그럼 어서 출발 하게. 마음은 벌써 콩밭에 가 있으니 이곳에 더 붙잡아 두어야 무엇하겠는가?
박술희 다녀 오겠사옵니다. 술 한 잔 걸죽하게 얻어 마시고 돌아오겠사옵니다. 헤헤헤. (수하들에게) 얘들아, 저것들을 어서 밖으로 옮겨가거라..
수하들 예.
박술희는 즐거운 듯 밖으로 나간다.
유금필 저리도 좋을까?
능산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 헌데 아자개가 술희를 과연 받아줄지 의문이옵니다.
유긍달 사자로 가는 것인데 내치기야 하겠소이까?
홍유 그건 그럴 것입니다. .........
씬 7 들길
박술희가 수하들과 함께 길을 가고 있다. 짐바리들을 짊어맨 수하들과 박술희와의 뒤를 이어 광대패들이 가고 있다. 광대패들은 온갖 기묘한 재주를 부리며 장난처럼 뒤를 따르고 있다.
박술희 내가 광대패거리까지 데리고 가는줄은 아무도 모를게다. 처가집 장인잔치에 이만은 해야지...헤헤헤헤....가서 한바탕 신명나게 놀아보는 것이니라. 이놈들아 가서 장인과 그곳 대주도금이라는 여장부의 혼을 쏙 빼놓아야 하느니라.....그리만 된다면 사례는 후하게 쳐줄 것이니라.
박술회는 신이 났다. 광대패들도 신이 났다.
씬 8 상주 성 외경
아자개 (E) 충주에서 사자가 온다구?
씬 9 동 성안 아자개의 처소
아자개는 멍해있다. 그것은 계모와 용개, 보개도 마찬가지다.
아자개 아니 고려의 북군에서 무슨 일로....?
대주도금 아버님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절들이라 하옵니다. 박술희라는 장수가 많은 선물들과 광대들까지 거느리고 조령과 죽령의 샛길을 넘고 있다 하옵니다.
아자개 (어이 없어) 뭐라, 추...축하....사절?
용개 박술희라면... 예전에 대주 너와 대적했던 자가 아니냐?
대주도금 예..
아자개 고연 놈들 같으니....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발을 들여?
대주도금 사자로 온다하니 무작정 내칠 수도 없는 일이 아니옵니까?
아자개 사자고 뭐고 당장 쫓아버리거라. 이거야말로 병주고 약주는 것이 아니더냐?
용개 그러하옵니다 아버님. 아버님의 생신을 빌미로 우리의 사정을 염탐하려는 것이옵니다.
아자개 긴말 할 것 없느니라. (용개와 보개에게) 너희들이 나가 쫓아버리거라.
용개,보개 예.
계모 그래도 견훤이 보다는 낫사옵니다. 아직까지 선물은 커녕 인사조차 없사옵니다.
대주도금 ......(한숨).......
아자개 ......(생각)..... 아니야 아니야.. 아무리 적이지만.... 사자로 오는 자들을 내쳤다면 세상사람들이 이 아자개를 얼마나 비웃을것인가..... 내 생각이 짧았어. 그냥 두어라.
용개 보개 예....
대주도금 ......?
아자개 상주성의 대장군인 내가 적군이 두려워서 안 받는대서야 말이 안되지...암...... 대주야.
대주도금 예, 아버님.
아자개 그럴것이 아니라 네가 나가보거라.. 가서 그 박술흰가 뭔가 하는 놈을 데려오너라.
대주도금 ......예. (나간다)
아자개 용개 너희도.....같이 가봐..
용개 예..아버님....
아자개 박술희라.... 박술희.... 참으로 엉뚱한 놈이 아닌가?
씬 10 조령길
박술희들이 험한 산길을 넘어오고 있다. 그 길을 지나치면...디졸브 되면서.............
씬 11 천변(해질녘)
박술희들이 천변을 따라 내려오고 있다. 그 때 저만치서 용개들도 대주와 함께 군사들을 데리고 오고 있다.
박술희 우리를 마중나온 모양이구나. 허허허.. 자 가자..
그들의 사이가 가까워진다. 반대편의 용개가 앞으로 나서며 소리친다.
용개 멈추어라! ....그대가 박술희라는 자인가?
박술희 그렇소. 내가 박술희요. 헌데 뉘시오 들?
보개 아자개 대장군님은 우리들의 아버님이시니라....
박술희 그렇소이까? 어쩐지 낯이 익는다 하였더니, 대주장군의 오라버니가 아니신가? 그렇소이까..대주 낭자...?이곳까지 마중을 와 주셨구료. 고맙소이다 낭자....
대주 고마워 할 것 없소이다. 예의상 맡는 것이니 그리 알고 따라오시오
용개 뒤 따라온 저들은 무엇인가...?
박술회 헤헤헤....광대패거리들이옵니다. 잔치에는 흥이 있어야 합지요.
용개 (기가 막힌다) 뭐라? 광대까지.............?
박술회 그러하오이다.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예의를 차릴 때는 정성을 다하라고 우리 장군께서 말씀하셨소이다. 헤헤헤.... 아니그렇소이까 낭자...?
대주 .....................?
박술회 실은 낭자를 한 번 더 뵈옵고자 멀고 험한 길을 넘어 왔소이다. 이건 진심이외다.
대주 허튼 소리 말고 따라 오시오.
용개 허허...저 넉살 하고는.........으흠...어서 가세..
대주와 이들이 앞을 선다. 뒤따르는 박술희는 여전히 대주도금에 넋을 잃은 모습이다.
씬 12 그 길
대주도금은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지만 박술희는 계속 그녀의 옆으로 따라 붙는다.
박술희 낭자.. 그간 무고하셨겠지요?
대주도금 ..........
박술희 그 동안 더욱 아름다워지신 것 같소이다. 하하하..
대주도금 ..........(무섭게 노려본다)
박술희 헌데....대체 그 기막힌 검술은 언제 익히신 게요? 여인의 몸으로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오. 지난 번에 하마트면 낭자의 그 고운 손에 목숨을 잃을 뻔하지 않았소이까?
대주도금 .....말이 많은 것 같구료.....
박술희 예.........?
대주는 외면 하고 그렇게 가고 있다. 박술회는 애가 탄다.
씬 13 완산주 궁궐 외경
견훤(E) 지금쯤 상주에 도착했을까?
씬 14 동 궁궐 대전
견훤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앉아있다. 최승우가 와 있다.
견훤 축하 사절로 간 능애와 공장군 말이야..
최승우 아마 그럴 것이옵니다.
견훤 ..........
최승우 폐하, 너무 심려치 마시오소서. 정성을 다하면 종래에는 어르신께서도 마음을 돌리실 것이옵니다.
견훤 문전박대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일게야. 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건지, 원.......
최승우 감정의 골을 한 번에 다 채울 수는 없는 일이옵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시오소서.
견훤 ........ (한숨)
최승우 이렇게 앉아만 계시지 마시옵고 궐 안 뜰이라도 거니시오소서. 예전처럼 군영도 돌아보시고 사냥도 나가시오소서. 대야성 전투 이후 너무 내전에만 계시는 듯 하옵니다.
견훤 그래.. 그래야겠어. 승평 부인과 함께 궁궐이라도 한 번 돌아봐야겠네. 자 나가세......
두 사람, 밖으로 나간다.
씬 15 궐 안 길
견훤이 고비와 나란히 걷고 있다. 그 뒤로 내관과 상궁들이 뒤따르고 있다.
견훤 궁궐 생활이 답답하지 않은가?
고비 아니옵니다. 신첩은 폐하를 곁에서 뫼시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옵니다.
견훤 허허허... 내 듣자하니 요사이 황후에게 궁중 법도를 배우느라 곤욕을 치른다던데...힘들지 않은가?
고비 ......아니옵니다. 하나 하나 배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옵니다.
견훤 허허허.. 말은 그리해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게야. 허나 어쩌겠는가? 여인들에게는 여인들 나름대로의 법도가 있는 것일세. 그대의 처지가 딱하기는 하나 황제가 되어 그런 것까지 일일히 간섭할 수는 없는 일이고..
고비 폐하께오서 그리 생각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소첩은 기쁘옵니다.
견훤 허허허..그런가?
씬 16 동궁 마당
추허조와 김총이 신검과 양검에게 무예를 가르키고 있다. 능환이 한 켠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견훤들이 다가오자 능환이 다가가 예를 올린다.
능환 어서 오시오소서, 폐하..
무예를 배우던 신검과 양검도 잠시 멈추고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춘다.
견훤 아 아 계속 하거라.
신검과 양검이 다시 무예 연습을 한다.
고비 두 분 태자마마께서 참으로 열심이들이시옵니다.
견훤 ..........(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아니야.. 아직 멀었어. 무예가 아니라 춤을 추고 있구먼... 먼저 마음이 담대해져야해. 마음 말이야.
두형제 ...............예, 아바마마....
견훤이 시큰둥하니 그 곳을 빠져 나간다. 능환이 낮은 한숨을 내쉰다. 두 형제도 맥이 빠지는 모습들이다.
씬 17 길
능애와 공직이 오고 있다. 수많은 짐바리들이 말에 실려 뒤따르고 있다.
능애 (한숨) 걱정이 태산같소이다. 아버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실지...
공직 선물 보따리를 들고 생신을 경하하러 가는 길이옵니다. 예전과는 다르실 것이옵니다.
능애 이런 선물보따리 해결될 일이 아니올시다. 형님 폐하의 영이 있어 떠나오긴 하였으나 발걸음이 무거운 것만은 어쩔수가 없구려.
공직 소장은 이해가 되지 않사옵니다. 궁예군이 목전에 와 있는데, 상주성의 안위를 생각해서라도 어르신께서 폐하께 의탁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소이까?
능애 아버님은 그러한 분이십니다. 궁예에게 영토를 내어줄 망정 형님 폐하께 도움을 구하시지 않을 겝니다.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요. 우리 형제가 어렸을 때부터 그러했소이다.
공직 허 그것 참.............
씬 18 아자개의 성 외경
씬 19 동 성안 관사 마당
박술희가 아자개에게 큰 절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몸을 틀고 앉아있는 아자개는 여전히 못 마땅한 얼굴이다.
아자개 고려국 장수가 여기 상주 땅에는 뭣하러 온 것이야?
박술희 이렇게 대장군님의 생신을 축하 드리려 왔지 않사옵니까?
아자개 어디서 허튼 수작을 하려는 게야. 네 놈은 우리와 서로 칼을 겨누고 있는 적국의 장수가 아닌가?
박술희 소장도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오나 평소 존경하는 어른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자 어렵사리 찾아뵙게 된 것이옵니다.
계모 존경? 지금 존경이라고 하였소?
박술희 그렇사옵니다. 대부인마님....소장은 얼마전 매복을 나갔다가 대장군님의 따님이신 대주장군과 인사를 나눈 적이 있사옵니다. 솔직히 그때 소장은 아주 혼줄이 났었사옵니다. 그예 저렇게 출중한 따님을 두신 대장군께 직접 인사를 드리고 싶었사옵니다.
아자개 그러니까 네 놈이 내 딸아이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로구나.
대주도금 ............. (놀란다)
박술희 하하하. 역시 대장군이시옵니다. 장부들간에는 통하는 것이 있나 보옵니다.
용개 저.... 저 놈이..... 아버님, 저 자는 지금 대주 누이를 욕보이고 있사옵니다. 당장 쫓아버리소서.
계모 가만들 있거라. 대주를 욕보이려고 그 먼 길을 왔겠느냐....
아자개 일개 작은 읍성이나 지키는 군관 주제에 감히 이 아자개의 딸을 넘보는 모양인데.....너는 결과적으로 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궁예의 졸개가 아니더냐?
박술희 비록 그렇기는 하오나....여장부를 연모하는 마음은 순수함 그 자체이옵니다. 사랑...말이옵니다.
모두들 ............ (웃는다)
아자개 조... 조용히들 못할까! (장내가 다시 싸늘해진다) 그래도 대주와 대적할 만큼 무예가 뛰어나다 하여 너를 들여본 것이니라. 헌데 이제보니 말도 안 통하고 앞뒤도 못 가리는 무지한 놈이로구나.
박술희 소장, 천성이 활달하고 거침이 없을 뿐, 무지하지는 않사옵니다.
아자개 그 꼬락서니를 해서는 그래도 자존심은 있는 모양이로다. 그래 천자문 정도는 볼즐 아느냐?
박술희 대장군께오서 그리 말씀하시니 한 귀절 내어보겠사옵니다. 소위제기가재수기신자(所謂齊基家在修基身者)라, 인(人)은, 지기소친애이벽언(之基所親愛而 焉)하며, 지기소천오이벽언(之基所踐惡而 焉)하고, 지기소외경이벽언(之基所畏敬而 焉)하며, 지기소애긍이벽언(之基所哀矜而 焉)하며, 지기소오타이벽언(之基所敖惰而 焉)하니라.
대주 ....(놀랐다).............?
박술회 사람은 생각에 따라 여러 가지 편파적 감정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으니라......먼저 자신이 친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에 따라 편파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고, 다음은 자신이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는 것에 따라 편파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고, 또 다음은 자신이 어렵게 여기고 경외하는 것에 따라 편파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고, 또 그 다음은 자기가 불쌍히 여기고 가련히 여기는 것에 따라 편파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고, 또 그 다음은 자기가 오만히 여기고 업신여기는 것에 따라 편파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니 사람의 편파적인 예가 이와 같으니라 하는 뜻이옵니다.
모두들 ............. (입을 다물고 있지 못한다)
계모 세상에....(마음에 들었다).....
박술희 대학에 나오는 구절이옵니다. 지금의 상황과 그 예가 맞는 듯 하여 소장이 되새겨 보았사옵니다.
아자개 (많이 누그러진) 흠.. 흠.. 산도적처럼 생긴 놈이 글줄깨나 읽긴 읽은 모양이로구나. 그래, 네 놈의 주인은 궁예밑에 누구인가?
박술희 왕자 건자 존함을 가지신 장군을 어른으로 뫼시고 있사옵니다.
아자개 왕건이라.... 왕건.... 들어 보았느니라. 너와 같은 장수를 두었다니 참으로 골치가 아프겠구나. 헌데 네가 여기에 온 것을 왕장군도 알고 있는 것이냐?
박술희 어찌 독단의 결정으로 왔겠사옵니까. (대주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인다)
대주도금 ............. (여전히 싸늘하다)
아자개 기왕에 온 것이니 내쫓지는 않을 것이니라. 조용히 놀다 가거라.
용개, 보개 ...(불만처럼) 아버님..........
박술희 (거퍼 큰 절을 올리며) 고맙사옵니다. 과연.. 과연..대장군이시옵니다.
대주도금은 복잡한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쉰다. 아자개는 곁눈질로 박술희와 대주도금을 쳐다본다. 계모는 아직도 넋이 나가 있다.
계모 무엇 하고들 있는가.... 손님이 오셨는데 어서 상을 차리지 않고,,,
씬 20 상주성 성문
능애와 공직이 그곳에 도착해 있다. 능애는 화가 나 있다.
능애 뭐라 하였느냐? 궁예의 부하가 축하사절로 안에 와 있어?
수문장 그러하옵니다. 지금 대장군님과 함께 여흥을 즐기고 있사옵니다.
공직 대장군께서 그들을 받아들이셨다는 말인가?
수문장 예. 저들에게 술까지 하사하고 게신다 하옵니다.
능애 이럴 수가........ 이런 일이 있나.....
능애와 공직이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향한다.
씬 21 관사 마당
연회가 무르익고 있다. 마당 한 가운데서에는 광대들의 재주가 한참이고 그 주위에서는 타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아자개는 즐거운 듯 연신 웃음을 터트린다. 아자개의 옆으로 앉은 박술희는 계속 대주도금에게 눈길을 보내고 있다.
박술희 자 한 잔 더 받으시오소서.
아자개 이것은 또 무슨 술인가?
박술희 산삼주이옵니다.
계모 산삼주? 아니 산삼으로 술을 담구었다 말인가?
박술희 그렇사옵니다.
계모 호호호. 참으로 정성이 대단하오. 그대 때문에 어르신이 생신이 더욱 더 즐거운 것 같소.
박술희 칭찬을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어서 한 잔 쭈욱 드시오소서.
아자개 그래, 그래 마셔야지. 마셔야하구 말구. (마시고는) 몸에만 좋은 줄 알았더니 술맛도 그만이구나. 하하하. 아무튼 적국의 장수이기는 하지만 대단하이... 그만한 학식에다가 무예까지 갖추었으니...대단해... 자네도 한 잔 받게나.
박술희 예. 대장군...
아자개가 박술희에게 술을 따르려는데 능애가 고함을 치며 공직과 함께 들이닥치고 있다.
능애 (박술희를 향해) 이놈.... 네 이놈..... 여기가 어딘줄 알고.....
모두들 ........... (찬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 진다)
능애 썩 꺼지지 못하겠느냐? 어서 물러가거라.
아자개 (역정) 이놈아, 뉘 앞에서 감히 고성을 지르냐....고성을.....
능애 아버님......
아자개 이런 못 되먹은 놈 같으니라구. 이 애비의 손님이니라
공직 어르신께서는 굽어 살피오소서. 저 자는 궁예의 장수가 아니옵니까? 손님이라니요? 천부당 만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아자개 그거야 내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야.
능애 형님 폐하께서 오셨을 때는 그리 문전박대를 하시더니 저 자에게는 이리 대접을 해주시옵니까? 어찌 이러실 수가 있단 말이옵니까? 형님 폐하께서 이 사실을 아신다면 피눈물을 흘리실 것이옵니다.
대주도금 능애 오라버니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이제는 그만 물리치시오소서.
아자개 듣기 싫다. 모두다 꼴보기 싫으니 그만 물러가거라.
계모 늘 저러하답니다. 늘..... 어쩌다 와가지고는 여흥마저 깨버립니다... 아이구......
대주도금 (눈치를 보다가) 장군...그만 나가주시오. 그쯤하면 된 것 같소이다.. 어서.........
박술희 알았소이다. 소장도 그만한 눈치는 있소이다. 하지만 갈 때 가더라도 인사는 여쭈어야 하지 않겠소. (아자개에게) 그럼 그만 물러 가보겠사옵니다. (큰 절을 올린다)
대주도금 그만하고 어서 나가라 하였소....
아자개 아, 왜들 그러느냐...왜들그래...? 손님께 그 무슨 짓들이야....?
박술회 아, 아니옵니다. 환대를 해주시어 참으로 잘 놀고 가옵니다 부디 만수무강 하시옵소서.. 훗날 다시 뵈올 것이옵니다 대장군.....
아자개 고맙구나...고마워, 오랜만에 장수다운 장수를 보았느니라... 내 기억해두마...박술회라 하였지...?
박술회 예, 대장군..
아자개 후한 선물을 받고도 대접이 변변치 못하였느니라. 답례로 잘 익은 머루술 한동이를 내어주마 가서 잘 먹도록 해라.
계모 어서 내어 드려라...호호호호....참으로 듬직한 장수가 아니옵니까...? 적국의 장수라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아자개 그러게 말이오....
대주도금 ..............
아자개와 계모는 여전히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박술회가 그곳을 빠져 나간다. 대주가 뒤를 따라 간다. 아자개는 능애들을 보자 그만 역정을 내며 고개를 돌려 버린다. 능애들은 한숨을 쉰다.
씬 22 상주성 성문
대주도금이 박술희를 보내고 있다.
박술희 대주낭자.... 참으로 즐거웠소이다. 언제 또 뵈올지.... 너무도 안타깝소이다.
대주도금 안타까울 것 없소이다. 그보다도 명심하시오. 이 성문을 나가는 순간부터 박장군과 나는 적이오.
박술희 ............적... 적이라.....물론 그렇기는 하오만...
대주도금 어서 가시오.
박술희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을 알아주시겠소이까....?
대주도금 ................허튼소리 말고 어서 가시오. 나도 가보아야 겠소. (돌아선다)
박술희 (뒤에 대고) 나는 결코 그대를 놓치지 않을 것이오. 사모하오 낭자.....!
대주 (다시 돌아서서 본다. 그리고 비로소 웃는다.)....쓸데 없는 짓 말라 하였소.... 전장터에서 보십시다. 호호호호호......
그리고 대주는 다시 말을 돌려 굽니진 길을 돌아 사라져 버린다. 안타깝다. 박술희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는 듯 어깨가 쳐진다. 그리고는 천천히 돌아서서 수하들을 이끌고 그곳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대주도금이 사라진 길 쪽에서 나타난다. 박술희가 가는 것을 그렇게 보고 있다. 그녀 역시 안타깝다.
씬 23 충주 관아 근처
유긍달과 충주의 호족들, 그리고 유금필, 능산, 홍유, 배현경, 김락, 김언 등이 군사들과 함께 궁예들을 기다리고 있다. 멀리서 행렬의 선두가 보이기 시작하며 가까워진다. 유금필과 능산이 그 일행들 앞에서 군례를 올린다.
장수들 어서 오시오소서, 폐하.
궁예 고생들이 많소이다.
유금필 아니옵니다, 폐하. 어찌 이것을 고생이라 하겠사옵니까.
궁예 그대들과 같은 용장들이 전선을 지켜주고 있으니 짐의 마음이 한결 가볍소이다. 허허허. (유금필들에게) 왕장군에게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었네. 그대들이 짐의 영토를 넓힌 공로자들이라지?
유금필 과찬이시옵니다.
궁예 짐이 곧 그예 상응하는 상을 내릴 것이네.
유금, 능산 황공하옵니다, 폐하.
궁예 홍장군과 배장군, 두 김장군도 참으로 고생이 많소이다.
두 장군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그런데 한 사람이 아니 보이는구먼? 상주성에 축하사절로 갔다하더니 ...... 그런가?
능산 그렇사옵니다. 박술회라 하옵는데 지금쯤 돌아오고 있을 것이옵니다.
궁예 하하하. ...적진을 마음대로 오가는 장수가 누구인지 빨리 만나보고 싶구만.
은부 폐하, 어서 관아로 드시오소서.
유금필 소장들이 뫼시겠사옵니다. 여봐라 어서 폐하를 모시거라!
군사들이 대답하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궁예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들을 따라 간다.
씬 24 관사 안
능산이 지도를 펴놓고 설명을 하고 있다. 장군들이 모두 보고 있다.
능산 충주는 남한강과 달천 유역의 비옥한 평야지대를 끼고 있고 있는 곳이옵니다. 내륙지역의 북원과, 청주를 잇는 교통의 요지라 할 수 있사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조령을 넘으면 바로 상주가 되옵니다.
궁예 상주라.....?
능산 그러하옵니다. 조령은 산세가 험악하기로 악명이 높사옵니다. 게다가 지금은 견훤의 아비인 아자개가 그곳을 장악 하고 있어 쉽게 넘지를 못하고 있사옵니다.
궁예 아자개라...견훤왕의 아비란 말이지....?
왕건 예, 폐하.....본래 견훤왕의 고향이 상주의 가은현이옵니다.
궁예 참으로 흥미 있는 일이야.... 아비와 아들간에 그토록 반목이 심하다니 말일세..... 하기사 새상일이란...누구도 모르는것이야...그것이 인생이고.....
씬 25 길 (밤)
박술희가 산길을 내려오고 있다. 군사들 몇이 아자개가 내려 준 술동이를 든 채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박술희 어서들 서두르거라. 폐하께서 지금 관아로 와 계신단 말이다. 힘을 내거라.
군사들 예, 예.
박술희 서두르라 하였느니라. 이런 답답한 노릇이 있나.
그러나 밤이 어두운 탓에 군사들의 걸음은 빨라지지 않는다.
씬 26 충주 관사 내아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고 궁예와 왕건, 유긍달, 유금필, 능산이 둘러 앉아 있다.
궁예 적군의 진영에 가서 술을 마시고 온다? 여간한 뱃포가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 아닌가? (왕건에게) 아우의
수하들은 역시 달라.. 왕건 과찬이시옵니다.
궁예 모름지기 사내란 그만한 뱃심과 여유가 있어야해. 그렇고 말고......앞으로 대고려의 장래는 그런 장수들의 손에 달려있네.
유긍달 그러하옵니다. 페하...
궁예 결국은 우리의 주적은 백제야..... 삼한의 통일은 백제와 자웅을 겨루는 것인데..... 전체적으로 보아서 서로간의 전력은 어떻하다고 보는가...아우는....?
왕건 육군의 전력은 서로가 비슷하다 할 것이옵니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결국 수군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옵니다마는.....
은부 그러하옵니다. 바로 수군과 해전이 모든 것을 말해줄것이옵니다.
왕건 백제군의 해상세력은 그 뿌리는 깊으나 규모로서는 매우 빈약하다 할 것이옵니다. 수달이라는 맹장이 있기는 있사오나....아직 서로간에 접전이 없어 어떤지는 모르고 있사옵니다마는......
궁예 (고개를 끄덕이며) 송악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 계책을 아우가 맡아서 한 번 넒고 크게 계획을 잡아보도록 하게... 삼한의 통일문제 말이야.
왕건 예, 폐하....
이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들려온다. 모두들 문쪽을 쳐다보면 능산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간다.
씬 27 그밖
커다란 술동이를 군사들에게 지워서 박술희가 돌아오고 있다. 능산이 그런 박술회를 맞는다.
박술희 형님, 이제서야 돌아왔사옵니다. 하하하.
능산 조용히좀 하게. 내아에 폐하께서 계시네.
박술희 알고 있사옵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인사를 올려야 할 것이 아닙니까요?
능산 그 항아리는 무엇인가?
박술희 아자개 장군으로부터 답례를 받은 술동이옵니다. 귀한 머루술이옵니다. 헤헤헤....
능산 그래.... 어서 들어 가세.
두 사람 안으로 들어간다.
씬 28 동 관사 내아
박술희가 들어와 술동이를 내려놓고 큰 절을 올린다.
박술희 신 박술희, 폐하께 알현이옵니다.
궁예 어서 오게, 박부장. 짐이 한참이나 기다렸네.
박술희 길이 험하여 늦었사옵니다. 용서하시오소서.
궁예 아니야, 아니야. 적진까지 들어갔다 왔다니 그 용기가 정말 가상하이. 재미는 있었는가....? 저 항아리는 술동이 같은데...?
박술회 그러하옵니다. 폐하. 상주는 머루가 아주많이 나는 곳이옵니다. 바로 그 머루주 이옵니다. 맛이 아주 그윽 하옵니다. 한 잔 따라 올리고 싶사옵니다마는....
궁예 하하하. 고맙네. 그렇다면 한 잔 주게나.....
박술획 대답하고 앞에 상에 놓여 있는 사발을 들어 한 잔을 퍼 올린다. 궁에가 받아 마신다.
궁예 정말일세....술맛이 아주 그만이야.... 향이 아주 좋구만....
박술희 황공하옵니다, 폐하.
궁예 아무튼 고생들 하였네. 그대들은 모두 이런 곳에 묻혀 있기에는 아까운 인재들이네. 앞으로 왕장군을 잘 도와주게나
세사람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이보게 아우, 우리는 이제 곧 웅주(공주)를 거쳐 송악으로 돌아갈 것이네. 이곳에는 다른 태수를 내려보낼 것이니 그대의 부장들과 합치도록 하게.
왕건 예 폐하.......
세사람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궁에 자, 이럴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이 머루주를 마셔보기로 하세나. 그래도 견훤왕의 아비가 보내온 것이 아닌가..응..핫하하하하......
유긍달 무엇들 하는가? 잔을 새로 들여 오너라 어서....
서로를 쳐다보며 좋아하는 유금필, 능산, 박술희의 얼굴에서......
씬 29 예성강 포구
포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어 보인다. 종간이 환선길, 이흔암, 복지겸, 강장자들과 함께 오고 있다. 왕평달 부자와 가신들이 나와 종간들을 맞는다.
왕평달 연통도 아니 주시고 어인 왕림이시옵니까?
종간 에성강 포구가 물건들과 사람들로 넘쳐난다 하길래 장군들과 구경좀 나왔소이다.
왕평달 어서 안으로 드시오소서...
종간은 예의 그 냉정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앞장을 선다.
씬 30 그곳 객관
그들이 둘러 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모두들 상석에 앉아있는 종간에게서 무슨 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분위기는 여전히 냉냉하다.
종간 ..........전령의 보고에 의하면 폐하께서는 충주에 와 계시다 하오이다. 그러고 보면 이제 순행길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해야 할 것이오. 폐하께서 돌아오시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오. 본래 순행이란 백성들의 사는 모습을 살피면서 나랏일을 꼼꼼히 따져보는 그런 시간들이외다. 모두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오.
모두들 예.
종간 송악도 그래요. 이만한 규모에 엄청나게 큰 포구와 객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볼 때 큰 의미가 있는 것이외다.
왕평달 예, 내원 어른.......
종간 송악은 그 막강한 재력으로 페하의 황궁을 지어낸 곳이외다. 한동안 주춤하다가 다시 왕성하게 살아나고 있다고 하여 잠시 들려본 것이외다.
왕평달 그토록 관심을 보여주시니 고맙사옵니다.
종간 듣자하니....이 곳에서는 별도로 세작들을 운영하여 여러 정보를 수집한다고 들었소이다마는 .....사실인지요?
모두들 ...................?
왕식렴 사실이옵니다. 장사꾼들을 통하여 각지의 소식과 사건들을 접하고 있사옵니다. 형님이신 왕건 장군과 폐하의 군대를 위해서 하는 일이옵니다.
환선길 그래도....그런 일은 병부에서 알아야지.....
이혼암 그야...그렇지요..
종간 잘못하면 오해의 소지가 생깁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내원이나 내군의 은장군과 자주 의논을 해야 할 것이오.
왕평달 에, 내원 어른 ....앞으로는 그리 하겠사옵니다.
종간 그리고.... 요즘 송악에 괴이한 소문이 떠돈다 들었소이다마는....
왕평달 .............?
종간 왕씨 가문이 진정한 송악의 주인이라는 해괴한 소문이 떠돈다던데....
왕평달 그런 불손한 일이....? 금시..초문이옵니다.
종간 그 이유가 어찌 되었건간에 이러한 소문은 송악에 황도를 두신 폐하를 욕되게 하는 것이오.
환선길 그런 일이....있었사옵니까......?
복지겸 ................?
강장자 세상에....그런 불충이.......?
종간 나도 나름대로 소문의 근원을 쫏고 있소이다. 이것은 능지처참으로 다스리고 삼족을 멸할 죄에 해당하는 일이오.
모두들 ................?
종간 실은 그 때문에 온것이외다. 페하께서 오시기 전에 단단히 일러두려고 말이오. 다시는 이런 소문이 떠돌지 않도록들 하시오. 알겠소이까...?
왕평달 ...예.. 명심하겠사옵니다. 내원어른.......
종간 물론 철 없는사람들의 입방아일 수도 있소이다마는 ....이 얼마나 참담한 일이오....
왕평달 ...............
종간 자...기왕에 왔으니 포구에 나가 바람이나 좀 쏘여보십시다,
왕평달 그리 하시오소서...뫼시겠사옵니다....
평달은 어쩔줄을 모른다. 강장자는 괜한 헛기침을 날리고 있다. 종간은 죽은 듯 고요해진 장내를 다시 한 번 노려보며 자리에서 일어 선다.
씬 31 포구
종간이 멀리 바다를 보고 있다.
종간 (E) 이번 순행은 좋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폐하께서 생부이신 경문왕의 화상에 칼을 꽃으셨다니.... 그것은 스스로 감추어야할 비밀을드러낸 것이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백성들은 과연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폐하께서 꽂은 칼을 왕건이 뺏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 못된 일이다. 불길한 일이야......
종간의 그 근심스런 얼굴에서......
씬 32 충주 관아 외경 (밤)
씬 33 동 궁예의 임시 처소
궁예와 연화는 잠자리에 들고 있다. 연화는 아직도 궁예와 한 침상을 쓰는 것이 낯설다.
궁예 왜 그러고 계시오? 어서 자리에 드시구려.
연화 예, 폐하....폐하께서는... 아니 주무시옵니까?
궁예 나는 이 시간이면 참선에 듭니다. 하지만 오늘은 영 마음자리가 잡히지를 않는구료.
연화 ...........
궁예 이보시오 황후.... 황후는 황제라는 자리를 어찌 생각하시오?
연화 신첩이 어찌 그런.....일을 감히 알 수 있겠사옵니까?
궁예 허허허....백성들은 황제라는 절대적인 신은 무엇이든지 해내는 만능 인간으로 알고 있소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와는 다르단 말이오.
연화 ..............................
궁예 실은 황제도 연약한 인간이거든...... 국가라는 커다란 짐덩이에 눌려서 자신을 감추고 위대한 부처처럼 위장하고 있는것이란 말이오.
연화 ,....................?
궁예 내가 부석사의 절에서 화상에 칼을 꽂은 것은 그와 같은 이치였소이다. (사이) 진시황과 여불위의 고사를 알고 계시오?
연화 ............예.
궁예 시황제는 자신을 낳고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려준 생부 여불위를 제 손으로 죽게 했소이다. 나도...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그리 했을 것이오.
연화 폐하..... 어찌 그런 무서운 말씀을.......?
궁예 옥좌는 그런 것이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다 들 그리 되는 것이라오. 때로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란 말이오.
연화 폐하...어인 말씀이시온지...신첩은......
궁예 그럴 일이 있소이다. 나는 이번 순행길을 통해 더욱더 그 사실을 절감하였소. 황제는 인간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신이 되어야 한다.신...신...완전무결하고 절대적인 위대한 신 말이오. 그런자만이 진정한 황제가 될 수 있는것이오. 진정한 황제!
궁예의 그 굳은 얼굴에서........
(43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