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돌이의 클래식 여행-모차르트의 스승 하이든도 오히려 내가 배워야 할 천재-6
3살 때부터 하프시코드연주,4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작곡
모차르트의 음악은 “앞을 향에 나아가려는 슬픔” <교향곡 제40번>
그가 천재라는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15살의 모차르트를 가르쳤던 스승 하이든은 "나는 더 이상 이 천재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가 없다. 오히려 내가 배워야 할 정도이다. 그는 내가 아는 최고의 작곡가다"라 했다. 14살 때 로마 교황청 바티칸 궁정에 있는 시스 예배당에서 딱 한번 듣고 10여 분짜리 합창곡을 기억만으로 정확히 사보해 내었다니 말이다.
이 시대의 지휘자들 중 최고의 모차르트 해석가인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Nikolaus Harnoncourt, 1929∼12016는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아 “모차르트의 해”를 열고 생일인 1. 27일에는 교향곡 40번을 지휘했고, 기일인 12. 5일에도 미완성 최후작인 레퀴엠을 연주했다.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최고의 해석가인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모차르트는 한 마리의 악어입니다.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됐다고 상상해 보세요, 평범한 소년인줄 알았는데 3살때부터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전신)를 연주하느라 잠을 안자고, 네 살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작곡에 들어갑니다. 그는 음악이나 자연과학뿐 아니라 당대에 셰익스피어까지 소화한 몇 안 되는 문학 광이기도 했어요. 천재라는 말로도 모자랍니다. 그는 외계인이고 신이 소유한 팬이었던 겁니다.”라고 했다.
그러니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뛰어난 음악성을 일찍부터 파악하고 최고의 음악가로 만들기 위해 유년시절의 대부분인 약 17년을 유럽각지를 돌며 각국의 음악을 공부하게 했던 건 당연한 것이었다. 이런 오랫동안의 여행은 모차르트에게 혹독한 어려움이었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서 왕족과 귀족들에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음악가로 대접받게 되었다.
모차르트가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던 때에 헝가리의 귀족으로부터 레퀴엠Requiem을 작곡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일설에는, 1791. 1월에 전혀 알지 못하는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이 편지를 들고 찾아왔다. 서명이 없는 편지에는 레퀴엠Requiem을 작곡해 달라는 청탁이었다. 그런데 이곡을 청탁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려고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도 있었다. 모차르트는 많은 사례금을 받고 이를 수락했다. 레퀴엠이란 가톨릭에서 죽은 자를 위해 드리는 진혼미사의 입당송 첫마디“Reqiem aeternamdona eis, Domine”의 첫 단어 Reqiem안식에서 유래한 것이다.
당시의 그의 건강은 이미 쇠약한 상태로 이 곡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자신을 위한 레퀴엠 이라 생각하면서 온 힘을 다해 몰두했지만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미완성의 이 곡은 그의 제자 쥐스마이어Süssmayer, 1766∼11803에 의해 완성되었다.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 극빈자 장례로 치러진 초라한 장례식에는 참석했던 몇몇 친구들도 험한 날씨 탓에 장지에는 아무도 따라가지 못했다. 훗날에 부인 콘스탄체가 유해를 찾으려 했지만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 없었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던 모차르트의 빈의 중앙묘지에는 유해는 없고 비석과 동상만이 쓸쓸히 우리를 반기고 있다.
모차르트는 1756. 1. 27일 태어나 1791. 12. 5일에 마지막 곡 <레퀴엠, KV626>을 작곡하다 영면하기까지 35년 10개월 8일간의 너무나도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우리에게 남겨준 아름답고 우아한 그의 음악은 100년을 살다간 것 보다 더 길다.
모차르트는 1764∼1788년까지 24년간 우리에게 잘 알려진 41개보다 훨씬 많은 총 68곡의 완전한 교향곡을 작곡했다. 첫 교향곡은 8살에, 마지막 교향곡인 41번 주피터Jupiter는 1788년에 작곡하였다. 이 중 가장 유명한 마지막 세 교향곡 제39번, 제40번과 제41번을 작곡할 시기에 모차르트는 빈곤과 병마와 싸우고 있었지만 “절대음악으로서 이 이상 더 완전한 것은 생각할 수가 없다”는 찬사를 받는 "후기 3대 교향곡"으로 불린다.
잘츠부르크시기에 만든 교향곡은 초기1772∼1773나 후기1773∼11775교향곡으로 나뉘거나, 독일식미뉴에트를 포함 또는 이탈리아식미뉴에트 없음으로 나뉘기도 하는데, 이 곡들은 모차르트의 생전에 출판되지는 않았다. 이탈리아 서곡 형식의 세 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는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 3작품K.136∼138들은 비록「교향곡」은 아니지만「잘츠부르크 교향곡」으로 불리기도 한다.
후기교향곡은 1781∼1791년의 제31번∼제41번이다. <제31번 파리Paris, K.297>는 1778년에 일자리를 찾기 위해 파리에 갔는데, 일자리는 찾지 못하지만 이 곡을 작곡했다. 1779년에는 <제32번 이탈리아 형식의 서곡, K.318>을 작곡했으며, <제35번 하프너Haffner, K.385>는 1782년 잘츠부르크 시장이었던 모차르트의 아버지 친구인 하프너Siegmund Haffner의 딸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하였다. 1783년에는 고향 잘츠부르크를 방문하고 빈으로 돌아가는 도중 연주회가 있었던 린츠에 머무르면서 <제36번 린츠Linz, K.425>를 작곡하였고, 1786년에는 빈에서 동계 음악회를 위하여 <제38번 프라하Prague, K.504>를 만들었다. 제37번은 다른 사람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져서 현재 결번상태이다.
<제40번 G단조, K.550>은 1788년에 작곡되어 같은 G단조인 제25번과 비교해서「큰 g단조 교향곡」으로 불린다.
일본의 수필가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1902∼11983의 1946년 수필집「모차르트」에는 프랑스의 극작가 앙리 게옹Henri Gheon, 1875∼1944이 모차르트의 음악을 “앞을 향에 나아가려는 슬픔”이라 표현한 것을 자기생각과 같다며 인용한 “모차르트의 슬픔은 질주한다. 눈물은 따라잡을 수 없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리하여 일본에서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슬픔은 질주한다.“의 이미지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여기에 꼭 맞는 곡으로 수필의 서두에 <교향곡 제40번>을 연결하여 등장시킨 것이다. 그러나 사실 모차르트 곡에는 ”슬픔 속에 기쁨이, 기쁨속에 슬픔“이라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북아프리카의 아랍국인「튀니지Tunisia」에서 국토부 직원들과 현장조사를 가던 차안에서 레바논 유명여가수의 노래라며 들려주는데···· 조금 듣다가 깜짝 놀랐다. 아무리 들어봐도 모차르트 <교향곡 제40번> 1악장의 선율이 아닌가! 자기들은 모차르트곡인지는 잘 모른다며 즐겨듣는다고 해서, 하여간 그 아랍노래들을 복사해왔다. 아랍여성이 부르는 그 노래는 즐겁기도 하지만 아랍풍의 신비로움이 가득한 음악이었다. 마치 눈감고 아랍 여인이 춤과 함께 신비한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는데, 모차르트의 교향곡이 이런 느낌도 있었구나 하며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양형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