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란다스의 개 - 랄랄라 랄랄라 파트라슈우~!
'성서'에 관련된 주제로 포스팅을 하다보면 종종 루벤스의 그림을 소개하게 됩니다. 그럴때면 꼭 듣게 되는 질문이 있으니 '이 작품이 플란다스의 개에서 나온 바로 그 작품인가요?' 혹은 '네로가 죽어가면서 본 작품이 루벤스의 이 작품이죠?' 라는 댓글들입니다. 사실 저 역시 처음 바로크 미술에서 루벤스에 대해 공부하면서 루벤스가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그림을 그린 화가인 줄 그때 알았었죠.
RUBENS, Pieter Pauwel
Assumption of the Virgin(성모승천)
1626
실제로 만화 플란다스의 개에는 루벤스의 그림 두 점이 등장합니다. 어떤 그림일까요? 첫 번째는 <십자가에서 내려짐(그리스도의 강림)>이며 두 번째 그림은 <성모승천>이라는 천정화입니다.
첫 번째 <십자가에서 내려짐(그리스도의 강림)>은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가 평생동안 무척이나 보고 싶어했던 작품입니다. 평소 커튼 속에 감춰 놓아 '금화 한 닢'이 있어야만 볼 수 있지만 가난한 네로에겐 너무나 멀리 있던 그것이었죠. 그러나 다행히도 네로는 죽기 직전 마음씨 좋은 성당지기 아저씨의 도움으로 이 그림을 보게 됩니다. 또한 <성모승천>은 소원을 이룬 네로가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성당 안에서 죽어갈 때 등장하는 그림입니다. 죽은 네로의 영혼이 파트라슈가 이끄는 우유 수레를 타고 천사들과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과 이 작품이 오버랩되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이 장면은 만화영화상 최고의 엔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루벤스와 네로의 고향 '플란다스'
만화 플란다스의 개는 플란다스라는 시골 마을에서 가난하지만 착한 네로와 전쟁으로 몸을 다쳤지만 네로를 돌보는 할아버지, 늙고 병들어 버려진 개 파트라슈가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플란다스'는 실제로 존재하는 마을일까요? 딩동뎅~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플랑드르 화가 브뤼겔', '북유럽 르네상스의 중심지 플랑드르'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것입니다. 이 지역은 현재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의 북서부 지방으로 프랑스어로 플랑드르(Flandre) 영어로는 플랜더스 (Flanders), 재플리시(Japlish) 즉 일본식 영어로는 플란다스가 되는 곳이지요.
Antwerp, The Onze-Lieve-Vrouwekathedraal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성당)
<플란다스의 개>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벨기에 안트베르펜이 그 무대입니다. 플랑드르의 거장 루벤스의 동상이 세워진 광장에는 거대한 성당이 있는데요, 바로 노트르담 성당입니다. 만화 속에서 네로와 파트라슈가 매일 우유를 배달하기 위하여 지나다녔던 장소이자 삶은 마감한 곳이지요. 이 성당에 바로 만화에 나오는 루벤스의 제단화 <십자가에서 내려짐(그리스도의 강림)과 <성모승천>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그림을 보며 눈시울을 훔치는 일본인 관광객들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영국 작가 위다(Ouida, 1839~1908)의 소설을 만화로 만든 <플란다스의 개>때문입니다.
1975년 일본의 쿠로다 요시오 감독은 위다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플란다스노 이누(플란다스의 개)>라는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합니다.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 작품은 방영되는 도중 슬픈 결말이 알려지면서 일본의 많은 어린이들이 네로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편지를 보낼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는 KBS에서 이 만화를 방영,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다시 SBS에서 방영, 가장 최근에는 EBS가 다시 재방영을 할 정도로 <플란다스의 개>는 지금도 추억의 만화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정작 플랑드르의 사람들은 <플란다스의 개>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플란다스의 개>에 대해서 가장 큰 애정을 보이는 사람들은 영국인이 아닌 일본인들입니다. <플란다스의 개>는 일본,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유럽에서는 별로 호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몇 년전 플랑드르에 사는 30대 영화감독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었습니다. 디디에 보르카르트 감독은 세계 6개국을 돌며 100명 이상을 인터뷰한 뒤 다큐멘터리를 완성했죠. 그가 만난 유럽인들은 대체로 애견 파트라슈와 함께 하늘나라로 가는 주인공 네로에게 크게 공감하지 못했고, 네로를 '현실 부적응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일본인들은(이 다큐멘터리에서 한국은 제외되었답니다 -.-;) 이 비극적인 줄거리에 크게 감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죠. 보르카르트 감독은 이를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멸망의 미학'으로 설명했습니다.
Nello and Pastrache
어쨋든....최근에는 일본인이나 한국인들이 벨기에인들에게 <플란다스의 개>에 대해 워낙 자주 묻다 보니, 안트베르펜에서도 '네로와 파트라슈'를 아는 이들의 전보다는 많이 늘어났습니다. 지금 안트베르펜 대성당에는 매일 300~400여 명의 일본인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조선일보를 보니 지난 2006년 안트베르펜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은 무려 6만 명으로 단일 국가로는 최대였습니다. 그리고 이 중 1만5000여 명은 네로와 파트라슈를 찾아 작은 마을 호보켄까지 찾았습니다. 이들을 위해 '네로와 파트라슈 도보여행'이라는 일본어, 한국어 안내 책자가 나왔고, 네로와 파트라슈의 동상까지 세워졌죠. 호보켄 관광센터측은 '4~5월이면 일본인 관광객들로 이 작은 마을이 발 디딜 틈이 없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막상 호보켄에 가서 그들의 동상을 보면 만화 속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비쩍 마르고 초췌한 네로와 애완견같이 생긴 파트라슈의 모습에 다소 실망하게 되지요.(벨기에인들은 이 만화를 안 본것이 확실!). 마을 여기저기에는 그곳이 네로의 고향임을 강조하듯이 '네로(Nello)'라는 이름의 초등학교와 '파트라슈'라는 이름의 레스토랑과 애견 용품점을 볼 수 있지만, 사실 기대할 만한 추억은 별로 없답니다
RUBENS, Pieter Pauwel
Descent from the Cross
1612-14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1640
17세기 플랑드르 미술은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라는 거장을 배출합니다. 스페인 왕실이 지배하였던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서 태어나고 자란 루벤스는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절정을 이룬 거장으로서 플랑드르 지역뿐 아니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 전 유럽을 무대로 활동하던 국제적인 화가였습니다. 루벤스와 더불어 플랑드르 미술은 비극적이고 장중한 분위기를 벗고 역동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는 삶의 모습들을 담아내기 시작합니다. 루벤스는 그림에 대한 재능을 타고났을 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는 드물게 가정적이며 지적이고 사교적이었고, 외교관으로서도 성공하는 등 화려한 일생을 살았습니다. 루벤스는 서양 미술가들 가운데 여러 기법들을 가장 잘 소화해냈으며, 가장 다양하고 많은 작품을 창조한 화가에 속합니다.
루벤스는 일생 종교와 신화적 주제를 다룬 그림을 비롯하여 풍경화, 초상화, 자화상 등 2,000여 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는데요, 화려하고, 대규모의 역동적인 역사화와 신화화 등을 아우르는 그의 작품은 바로크 미술의 감각적 풍만함을 잘 보여줍니다.
RUBENS, Pieter Pauwel
Descent from the Cross, detail
1612-14
1610-12년 안트워프의 대성당을 위해 그린 제단화 <십자가에서 내려짐(그리스도의 강림)은 그의 미술이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전통을 융합하여 일찍이 높은 경지에 도달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하였던 네덜란드 지역과는 달리 안트워프는 여전히 카톨릭 지역으로 남아 있었으며 안정된 경제를 바탕으로 교회 제단화 주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서 조심스레 내리는 인물들의 다양한 포즈와 동세가 맞물려 화면의 전체적인 역동성을 만들어 내는 이 그림에는 루벤스의 이탈리아에서의 경험이 드러납니다. 예수의 강한 신체는 라오콘이나 미켈란젤로의 인체를 연상시키며, 흰 천에서 뿜어나오는 강렬한 조명의 효과는 그가 카라바지오의 유산을 소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00여년 전 뒤러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그림에서는 북유럽의 전통과 이탈리아 미술을 융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처럼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바로크 미술을 전 유럽으로 확산시키는데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해가 지면서 하늘이 노을로 빨갛게 물들때까지 친구들과 뛰어 놀다가도 시간만 되면 집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던 추억의 만화들.. 사실 <플란다스의 개>는 세대를 초월하는 애절함과 아름다운 감동을 가진 작품입니다. 또한 '먼 동이 터오는 아침에~ 길게 뻗은 가로수를 누비며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이 길을 파트라슈와 함께 걸었네~ 하늘과 맞닿은 이 길을 랄랄라 랄랄라 랄라랄라 랄라라라' 의 오프닝 노래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흥얼거렸던 추억이 담긴 노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의 마음 한켠에 추억으로 남아 있는 그 시절 그 감동을 기억하고 계시나요? 지친 일상 속에서 살고 있는 요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가슴 뭉클한 시간이었습니다.
RUBENS, Pieter Pauwel
Descent from the Cross (centre panel)
1612-14
RUBENS, Pieter Pauwel
Descent from the Cross (left wing)
16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