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째 살고 있는 마포구. 집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에 가면 다른 시장엔 없는 게 많다. 시장을 대표하는 간판스타는 떡볶이 파는 6인조 복제인간 할머니들. 옷가게 골목을 굽이굽이 헤치고 들어가면 같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볶은 게 틀림없는 똑같은 뽀글 파마머리의 할머니들 6명이 떡볶이를 판다.
각각 좌판을 펴놓긴 했으나 할머니들 생김새부터 떡볶이 맛까지 모두가 똑같다. 단골이고 뭐고 없이 아무 빈자리에서 먹으면 된다. 여하튼 그 떡볶이가 참으로 기묘한데 딱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 앞에서 먹던 그 맛이다. 본인들은 쌀 떡이라고 주장하지만 밀가루 떡임이 분명한 떡볶이 떡. 물엿을 많이 사용해서 달콤한 맛이 나는 요즘 떡볶이와 달리 조미료베이스의 기묘한 단맛을 자랑한다. 가격까지 무지무지하게 싸서 3000원이면 어른 2명이 계란 어묵이 푸짐하게 포함된 떡볶이를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시장통에서 삼십 년째 직접 빚은 막걸리와 두부김치 보쌈을 파는 ‘진미보쌈’의 비밀병기인 막걸리는 도대체 뭐가 들어갔는지 달콤새콤 구수한 맛이 간장을 녹인다는 소문이다. 이 비밀병기로 세 남매를 주요대학에 다 보낸 아저씨는 시장의 터주대감이다. 하여튼 이곳에는 만 원짜리 두 장이면 두세 명이 정신줄 놓을 정도로 맛나게 먹고 마실수 있는 주머니 얇은 사람들의 안식처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내가 추천하는 맛집은 시장 모퉁이 한 편에 숨어있는 2000원짜리 콩나물 국밥집. 7평 남짓한 공간에 테이블이 두 개 좁혀 앉아도 열 명이 겨우 마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초라한 가게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긍지와 보람이 담긴 전통의 가게다. 그렁그렁한 횡성 한우의 착한 눈빛을 닮은 주인 아주머니가 말아주는 70도씨의 적정한 온도, 아름다운 빛깔로 조화를 이룬 양념의 배합, 아삭거리면서도 본래의 향을 잃지 않은 콩나물, 담백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주는 국물.
아무런 반찬이 없어도 국밥만으로 완성되는 이 맛은 입안의 혀돌기들이 일제히 일어나 함성을 지르게 하는 그런 기막힌 맛이다. 점심때는 언제나 자리가 부족할 정도지만 누구랄 것도 없이 오순도순 섞여 앉은 손님들은 불만이 없다. 오랜 단골들은 이곳에서 손님이 아니다. 묵묵히 콩나물 국밥을 정성스레 마는 주인 아주머니의 사십년 연륜이 묻은 투박한 정성이 담긴 뚝배기 한 그릇은 시장 단골들에게 일상의 즐거운 생활을 담은 사랑방이자 친구이며 어른이며 가족이다.
12년전 이 동네에 처음 이사와 이삿짐을 풀어놓은 다음 지독한 독감이 왔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열이 펄펄 끓고 전신이 쑤셔댔다. 부지런히 약을 먹었지만 한기와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그때 간절하게 떠오른 것이 뜨끈뜨끈한 국밥 한 그릇. 그 한 그릇만 있으면 벌떡 일어날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간신히 몸을 추스려 집을 나섰다. 차가운 밤거리를 헤매다 발견한 곳이 작은 재래시장. 도심 한 복판에 이런 재래시장이 아직 남아있다니 신기했다. 족발, 떡볶이, 빈대떡... 죽 늘어선 가게를 지나자 아주머니가 텀벙텀벙 무심한 손길로 국밥을 말고 있었다. 김이 무럭무럭나는 콩나물 국밥이었다. 바로 이거야! 이천 원짜리 콩나물 국밥과의 첫 만남이었다. 고열과 통증에 시달린 내몸에 뜨끈뜨끈한 콩나물 국밥이 들어가자 주체할수 없이 흐르는 노폐물 삼종세트 눈물과 콧물과 땀은 독감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사멸시켜버렸다. 그날부터 나는 단골이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이곳 재래시장에도 재건축 바람이 불어왔다. 시장이 철거될 거라고 소문이 돌았다. 양철지붕과 판자로 잇대어 만든 가게들을 철거하고 초호화 쇼핑몰이 들어선다고 했다. 그러고 나자 가게주인들은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40년을 지켜온 가게들이 사라지고 흩어졌다. “내 몸에 불을 싸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만큼은 못 내준다”고 울부짖던 ‘진미보쌈’ 아저씨도 “전통시장은 삶의 터전이다”라고 현수막을 내걸었던 콩나물 국밥집도 ‘시장바닥’을 떠났다.
‘사정상 폐업함’ 오랫만에 콩나물 국밥집을 찾았더니 문이 잠겨있고 대신 흰 종이에 검은 볼펜으로 쓴 폐업 안내문 한 장만 달랑 붙어있다. 썰렁한 공기에 아직 가게자리를 못 구했다는 야채가게만 을씨년스럽게 문을 연채 남아있다. 얼마 있으면 뜨신 국밥이 내게 제공했던 따뜻한 추억의 자리에는 우람한 초고층 쇼핑몰과 반듯하게 정리된 광장이 나를 내려다 볼 것이다.
국밥집 아주머니의 그렁그렁한 큰 눈을 생각하면서 화려한 건물과 반듯한 길로 가난한 삶의 고통스런 흔적을 덮어 가린 새로 정비된 현대화된 쇼핑몰 앞에서 “삶이 꿈꾸고 삶이 고통을 견디던” 그 어둡고 뱀처럼 구불구불한 골목시장의 기억을 송두리째 날려버렸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치 제 땅에서 망명객이 된 사람처럼 이 풍경에 낯설어 할 것이다. 묻고 싶다. 밝고 깨끗하고 번쩍거리는 곳에서 2천 원짜리 콩나물 국밥집이 던져준 그런 감동스러운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그때의 그 기억을 이제 어디서 복원할 수 있을까? 아무쪼록 국밥집 아주머니의 후한 인심과 감칠맛 배인 손맛이 여기 아닌 어딘가에 꼭 살아남아 이 추위에 떠는 누군가의 한기를 녹여주길 바란다. 춥고 아픈이들에게 성탄처럼 되어주길 바란다.
심명희 (마리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