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생이무당벌레는 우리나라 무당벌레 중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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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별다른 거부감 없이 좋아하는 곤충으로 무당벌레를 꼽을 수 있다. 작고 동그란 몸통에 빨갛고 알록달록한 모습이 귀엽고 예뻐서 그런지 특히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덕분에 텔레비전이나 신문 광고에는 청청한 자연의 이미지로 무당벌레가 자주 등장한다.
무당벌레의 무당은 굿을 하는 무당이다. 이 곤충의 붉은 무늬가 울긋불긋 화려한 복장을 차려 입은 무당을 연상시켜서 무당벌레라고 불린다. 무당거미, 무당개구리 등 붉은색 얼룩무늬가 있는 다른 동물들의 이름에 붙은 무당도 같은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무당벌레의 화려한 무늬는 일종의 경고색이라 할 수 있는데, 눈에 잘 띄는 색상은 더 커다란 상위 포식자에게 미리 주의를 주는 환기작용이 있다. 쉽게 말해 ‘나를 건드리면 재미없어’ 이런 뜻이다. 만약 무당벌레를 사람이 손으로 건드리면 곧 죽은 척하며 몸을 뒤집는다. 더 심하게 만지면 시큼한 냄새가 나는 노란색 분비물이 배어 나오는데, 이 현상을 ‘출혈반사’라고 한다. 즉 노란색 물은 무당벌레의 혈액이고 외부 자극을 받으면 무당벌레의 각 다리 무릎 관절부에서 반사적으로 피가 새어나온다. 쓴맛과 악취가 나는 물질을 내뿜어 천적을 피하기 위한 무당벌레만의 독특한 생존전략이다.
위로 올라가는 습성 때문에 ‘천도충’
- ▲ 겨울철 양지의 낙엽 밑에서 월동하는 무당벌레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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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벌레는 실제로 혈액 속에 구토를 유발하는 코치넬린(coccinellin)이라는 성분을 갖고 있다. 만약 멋모르는 어린 새가 무당벌레를 집어삼키면 이내 구역질을 일으켜 토하고 만다. 한 번 고약한 경험을 한 새는 다시는 무당벌레를 건드리지 않으며 이런 사전 경고효과 때문에 무당벌레의 얼룩무늬만 흉내 내고 해로운 성분이 없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곤충들도 있다.
서양에서는 무당벌레를 ‘레이디버그, 레이디버드(ladybug, ladybird)’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 레이디(lady)는 성모마리아를 가리킨다. 즉 성모마리아의 벌레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성모마리아가 무당벌레를 불러 모아 농사를 도왔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일찍부터 중세 사람들은 농작물의 해충을 먹어치우는 포식자로서의 무당벌레 특성에 감탄했던 것 같다.
농작물에 많이 생기는 진딧물은 여러 마리가 떼 지어 나타나 식물의 즙을 빨아먹으면 어린 순을 말라죽게 할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를 매개하여 식물에 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무당벌레는 그런 진딧물의 가장 큰 천적 곤충이라 할 수 있다. 하루 평균 한 마리의 무당벌레가 150마리 이상의 진딧물을 먹어치우므로 가히 살아 있는 농약이라 불릴 만도 하다. 진딧물을 배부르게 잡아먹은 무당벌레는 역시 진딧물이 많은 식물 근처에 알을 낳는다. 노란색 타원형의 알을 20~50개 정도 무더기로 낳아 붙이는데, 여기서 곧 애벌레들이 태어난다. 신기하게도 먼저 태어난 애벌레들이 미처 깨어나지 않은 옆의 알을 갉아먹기도 한다. 어미가 어린 애벌레들이 충분히 자랄 수 있도록 여분의 영양분으로 알을 더 낳은 것이다.
- ▲ 짝짓기하고 있는 칠성무당벌레 등에 7개의 점 무늬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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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벌레는 항상 위로 올라가려는 습성이 있다. 무당벌레를 한자로는 천도충(天道蟲)이라고 하는데, 천도는 해가 움직이는 길을 말한다. 손 위에 무당벌레를 올려놓으면 빙빙 돌다가 결국 손가락 끝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면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향해 날아간다. 즉 이 곤충이 언제나 해를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쫓아다니다 보니, 보통 위를 향해 자라는 싱싱한 어린 가지 끝에 진딧물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이런 습성이 생겼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무당벌레를 몸에 점무늬가 많다고 해서 ‘점벌레’라고 부른다. 무당벌레의 점의 수가 많으면 해충이고, 적으면 익충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무당벌레 중에는 진딧물을 먹는 이로운 종류도 있으나 식물 잎을 갉아먹는 해충도 있다. 따라서 그런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데, 식물의 잎을 갉아먹는 무당벌레는 식식무당벌레아과(Epilachninae)에 속하는 종들로 점의 수가 많은 편이다. 그렇지만 같은 종에서도 점무늬가 없는 것, 두 점인 것, 점 수가 많은 것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에 항상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무당벌레의 식성은 식물을 먹는 것, 진딧물을 먹는 것 외에 꽃가루나 다른 곤충의 애벌레를 잡아먹는 것, 깍지벌레를 먹는 것, 흰가루병균을 먹는 것 등 종류에 따라 선호하는 먹이가 다르다.
온도 변화 적은 구석에서 겨울잠 자기도
- ▲ 무당벌레 애벌레는 어른벌레와 달리 몸은 길쭉하고 등에 가시가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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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무당벌레는 5000여 종, 우리나라에만 90여 종이 살고 있다. 그 중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무당벌레(Harmonia axyridis)는 산지, 공원, 풀밭, 인가 근처 어디에서나 살고 있으며 연중 나타난다. 무늬의 변이가 매우 심해 황갈색 바탕에 흑색 점 무늬, 흑색 바탕에 붉은 점 무늬, 황색 바탕에 점이 없는 경우 등 다양하다. 칠성무당벌레(Coccinella septempunctata) 역시 흔한 종류로 이름처럼 7개의 검은 점 무늬가 뚜렷하다. 진딧물을 포식하는데, 유충 시기에 한 마리가 약 4000마리의 진딧물을 포식할 정도로 익충으로서의 역할이 크다. 남생이무당벌레(Aiolocaria hexaspilota)는 주로 물가나 계곡 등에서 볼 수 있으며, 몸 길이가 11~13㎜로 한국산 무당벌레 중에서 가장 크다. 뚜렷한 적황색 바탕에 흑색의 띠 무늬가 서로 연결되어 매우 아름다운 무당벌레이다. 알 색깔이 빨간색이며 애벌레는 잎벌레의 유충을 잡아먹고 자란다. 큰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Henosepilachna vigintioctomaculata)는 주로 평지의 농경지 주변에서 발견되는데, 황갈색 바탕에 옅은 잔털이 덮여 있다. 성충과 애벌레 모두가 감자나 가지과 식물의 잎을 갉아먹으므로 해충으로 여겨지는 무당벌레다.
무당벌레의 겨우살이
온도가 뚝 떨어진 겨울이면 곤충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변온동물인 곤충은 겨울 추위를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저마다의 전략으로 겨울을 난다. 무당벌레의 방식은 온도 변화가 적은 구석에 숨어들어 떼 지어 월동하는 것이다. 가을이 지나갈 무렵 산이나 공원에 인접한 아파트 담벼락에 흔히 무당벌레가 많이 보인다. 특히 따뜻한 오후, 밝은 색 건물의 외벽에 많은 무당벌레가 붙어 오르락내리락하며 어딘가 갈 곳을 찾는 모습이 눈에 띄곤 한다.
- ▲ 큰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는 감자나 토마토, 가지 잎을 갉아먹는 해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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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의 방향을 따라 분주히 움직이던 무당벌레 무리는 결국 일정한 장소에 집결하게 되는데, 너무 춥지 않고 온도 변화가 적은 그런 곳을 찾게 된다. 따라서 아파트 베란다에 무당벌레가 들어오는 일이 많으며 눈에 잘 띄지 않는 창고 건물 안쪽, 창틀 깊숙한 곳, 때로는 사찰 문화재나 돌탑 속에 숨어들기도 한다.
자연 상태에서 무당벌레는 나무 그늘 아래의 낙엽 속이나 나무 껍질 밑에 무리지어 모이고 이듬해 봄까지 저장된 에너지를 이용하여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그 상태로 겨울잠을 잔다. 유럽에는 매년 무당벌레가 엄청난 수로 모여 월동하는 고원지대가 있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무당벌레는 겨울잠과는 별개로 날씨가 너무 더운 여름이면 서늘한 곳에 숨어 여름잠을 자기도 한다.
/ 글·사진 김태우 국립생물자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