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자 수필 문득.689 --- 가을엔 그리운 것을 그리워하자
가을바람이 분다. 온 세상을 녹일 듯이 연일 달구던 가마솥더위를 하루아침에 슬그머니 밀려내며 꼬리를 감추게 하는 가을바람이다. 선들선들 불어오면서 열렸던 창문을 닫고 잠자리를 챙긴다. “오뉴월 감주 맛 변하듯 한다.”더니 참으로 간사한 사람 마음이지 싶다. 그토록 더위에 시달리며 악몽이라도 꾸듯 늘어졌던 심신이 고새 얼마나 되었다고 가을바람이 조금 불자 마음이 싹 돌아서서 나불나불 춥다고 한다. 어찌 보면 꾸밈도 속임도 없는 순수한 사람의 민낯이다. 그렇게 속고 속이는 것처럼 오고 가는 것이 세월이라면 이러쿵저러쿵 무슨 토를 달으랴. 그래도 지나면 모두가 그리움이 될 거다. 그 와중에도 산천초목은 끊임없이 열매 맺을 자리를 마련하고 감싸면서 가을을 준비하였다. 가을의 전령인 귀뚜리도 몸집을 불려가며 채비를 나섰다. 가을바람에 도토리가 떨어져 떼굴떼굴 굴러다닌다. 날쌘 다람쥐가 물어 가고 사람들이 주워가고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산짐승이 겨울 식량으로 추위를 녹여줄 먹을거리다. 시커먼 청설모가 눈을 부라리며 터줏대감처럼 주인 행세를 한다. 노려보는 눈빛이 좀은 건방지고 눈꼴 시리게 한다. 여기저기서 수런거린다. 가장 미끈하고 몸매가 좋다고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며 가을이 민망한지 붉으락푸르락 해지고 있다. 구름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부수고 만들고 열중하는 작가 같다.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빙원이 있고 짐승도 있다가 사라진다. 누가 어디로 데려가는 것인가. 새털구름, 조각구름, 뭉게구름, 상상 속에 신비스러운 여러 모습이다. 멀뚱멀뚱 그림을 들여다본다. 가을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아련하게 묻혔던 사람까지 그리워하자. 알알이 여무는 곡식, 알차게 익어가는 과일 하나, 파란 하늘에 그리움을 그려보자.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 관심 없던 작은 들꽃이 여물어 씨앗이 되었다. 혹독하게 더웠던 여름은 잊고 풍성해지는 가을만큼 가을엔 그리운 사람, 그리운 것들을 마음껏 그리워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