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왼쪽은 백두대간 대덕산, 오른쪽은 삼봉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깁흔생각은아득이는데
저-바람에 새가슯히 운다
검은내 떠돈다
죵소리 빗긴다
말도업는 밤의셜움
소리업는 봄의가슴
꼿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 김억, 「봄은간다」에서
▶ 산행일시 : 2018년 4월 28일(토), 맑음, 미세먼지
▶ 산행인원 : 13명(모닥불, 스틸영, 악수, 대간거사, 한계령, 산정무한, 에릭, 수담,
신가이버, 두루, 향상, 오모육모, 해피)
▶ 산행거리 : GPS 도상 13.2km(GPS마다 약간씩 차이가 난다)
▶ 산행시간 : 7시간 31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15 - 경부고속도로 죽암휴게소
09 : 24 - 영동군 양강면 산막리 외천마동 마을, 산행시작
10 : 00 - 세 번째 지능선 합류, 첫 휴식
10 : 42 - 면계 주릉 870m봉
11 : 40 ~ 12 : 05 - 808.7m봉, 점심
12 : 43 - 936.9m봉 가기 전 931m봉
13 : 13 - 임도, 안부
13 : 37 - 천마령(天摩嶺, △925.2m)
14 : 20 - 천만산(千萬山, 960.1m)
15 : 38 - 916.0m봉
16 : 25 - 710m봉
16 : 55 - 외천마동 마을, 산행종료
17 : 13 ~ 19 : 10 - 영동, 목욕(인삼목욕탕), 저녁
21 : 45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
▶ 천마령(天摩嶺, △925.2m)
중부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차량행렬은 거대한 물결을 이룬다. 바야흐로 때는 상춘가절이
라 너도나도 청산가자 하고 나왔으려니 했는데 얼마 안 가 승용차가 엉망으로 구겨진 추돌사
고가 있었다. 차가 밀리는 건 사고가 난 차를 구경하느라고 서행해서다. 오늘 천만산 산행의
들날머리까지 상당히 멀다. 영동 산막리 외천마동까지 210km. 네이버 길찾기에 소요시간은
2시간 59분이 걸린다.
이날도 영동 가는 차안에서 말로만의 산행 후 먹거리 산책이 즐겁다. 영동에 가면 어죽과 도
리뱅뱅이 혹은 올갱이국이 별미라면서 운을 뗀다. 어죽은 금강을 낀 옥천이 더 낫지 않느냐
는 부언이 따른다. 그렇지만 결론은 뻔하다. 우리가 다년간 돌아다니며 남도의 한정식, 중국
집 청요리 등을 비롯하여 숱한 음식 맛을 보았으나 반주와 그 안주로 그 고장 삼겹살이 제격
이었다. 이후 그 고장 특산물을 먹는다는 건 곧 삼겹살을 의미하기에 이르렀다.
옥천을 지나 영동이다. 옥천 하면 우리시대 걸출한 작가였던 이문구의 문인기행 한 대목이
생각난다. 이문구가 동료 시인들과 옥천 근처에서 저녁에 술자리를 가졌더랬다. 박용래 시인
이 “내가 옥천을 기억하는 건 오로지 시인 정지용을 낳은 땅이기 때문이오.”라고 하자, 합석
한 그 고장 출신인 시인 이씨가 “그런가요? 나는 정지용이가 우리게 사람인 줄도 몰랐
네…….” 하였다.
곧바로 바람벽에 벼락 치는 소리가 터지면서 박용래 시인의 성난 음성이 귓전을 갈겼다고 한다.
“야, 이문구. 너 정말 한심하구나. 너는 이런 것밖에 친구가 웂네? 정지용이 제 고향 선배인
줄두 모르는 이런 무너리두 시인 명색이라고 하냥 댕기는겨? 이런 것두 사람이라구 마주앉
어 술 마시네?” 박용래 시인은 술잔을 벽에 던져 박살내고도 성이 안 풀려 자리를 박차고 나
가버렸다고 한다.
천만산은 오늘로 오지산행에서 네 번째 오른다. 앞서의 세 번은 모두 무박으로 갔다. 오늘은
그간 도로가 잘 뚫렸기로 당일산행이지만 절대 거리가 있다. 당초의 산행계획은 산막저수지
위쪽 천마교 지난 신대방 마을에서 시작하여 804.4m봉과 871.8m봉을 넘으려고 했으나,
9시가 훌쩍 넘은 지금 사불여의하여 버스로 외천마동 마을까지 들어간다.
사과나무꽃 활짝 핀 과수원을 지나 산자락 덤불숲 헤치고 무덤 옆 지능선을 잡아 오른다.
과수원에 더덕 새순이 보이기에 산에도 이처럼 자생하겠지 하고 눈에 부쩍 힘준다. 인적 드
문 한갓진 산길이다. 새잎인 나뭇잎도 또 다른 꽃이라 만화방창한 산길이다. 좌우 사면을 둘
러보면 여기저기 각시붓꽃이 정겹다. 엎드려 그와 눈 맞추다 보면 일행들은 저 멀리 사라지
고, 서둘러 쫓아가고, 숨차다.
지능선을 모음에 따라 등로는 점점 탄탄해진다. 세 번째 지능선과 합세하고 휴식한다. 입산
주 분음은 산에 든 의식이다. 홍탁은 오늘 같은 봄날 산에서 마시는 것이 제 맛이다. 스틸영
님이 알맞게 익은 홍어회를 무쳐왔고, 역시 잘 익은 탁주는 해피 님의 덕산 명주다. 이런 맛
과 멋을 도시 모르는 신가이버 님이 가련하고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다. 고마운 건 나에게
한 잔이 더 돌아올 수 있어서다.
2. 사과나무꽃
3. 더덕
4. 큰구슬붕이
5. 각시붓꽃
6. 각시붓꽃
7. 각시붓꽃
8. 각시붓꽃
9. 멀리 왼쪽은 각호산, 그 앞은 왼쪽은 천마령
오르막은 계속된다. 네 번째 지능선. 숫제 곧추선 오르막이다. 등로에 수북하게 쌓인 낙엽이
눈보다 더 미끄럽다. 앞사람의 러셀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죽 떠먹은 자리다. 몇 번이나 엎
어지고 나서 낙엽 쓸고 발판 만들어 오른다. 좌우에서 동시에 올라오는 다섯 번째 지능선을
만나고 한 피치 가파르게 오르면 주릉 871.8m봉이다.
능선에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이 시원하다. 미세먼지가 나쁨의 수준이라 원경은 흐릿하다. 어
차피 숲속이어서 조망은 가렸다. 여러 잔봉우리 오르고 내린다. 길을 잘못 들기 쉬운 갈림길
이 나오면 연호하여 방향 잡는다. 808.7m봉에서던가? 다수가 자계리(紫溪里) 구백이 마을
로 갈 듯 오른쪽으로 내닫기에 내가 잠깐 선두로 나서기도 한다.
808.7m봉 근처다. 각시붓꽃이 소담스레 피어 있는 한가한 공터가 나와 아예 점심밥을 먹는
다. 소풍 나온 기분이 난다. 반주 안주는 라면이 좋다. 신록 그늘 아래 취기는 소동파의 ‘봄날
밤의 일각은 천금의 가치(春宵一刻値千金)’를 그대로 적용하여도 무방하다. 산에서(정확히
는 국립공원을 포함한 자연공원으로 지정된 산에서) 음주를 금하고부터 술맛이 더 난다.
로얄 살루트, 고량주, 마가목주, 탁주를 두루 맛보자니 산을 더욱 어렵게 갈 수밖에.
936.9m봉이 준봉이다. 길고 가파른 오르막이다. 또한 독도주의 구간이다. 936.9m봉 정상을
마저 오르기 전에 왼쪽의 넙데데한 사면으로 직각 꺾어야 한다. 골로 갈 듯이 한참 떨어지다
가 두툼한 능선에 슬며시 올라서게 된다. 모처럼 웃을 일이 생긴다. 선두에 선 신가이버 님이
냅다 줄달음하다가 그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936.9m봉을 넘어가버렸다. 도리어 왜 아직
안 오느냐고 전화하기에 알았다.
천마령 가는 길 오른쪽 사면은 기계톱 우잉우잉 소리내며 벌목작업 중이다. 등로 살짝 벗어
나면 나무숲 베어내 조망이 훤히 트인다. 백두대간 대덕산, 삼봉산이 하늘금이다. 바닥 친 안
부는 임도가 지나는 고개 천마령이다. 가파르게 떨어진 딱 그 짝으로 오른다. 진달래꽃이 지
자 철쭉꽃이 한창이다. 등로 내내 그랬지만 철쭉꽃이 없었더라면 참으로 팍팍할 오르막이다.
천마령(天摩嶺). 산봉우리가 아주 뾰족하고 높아 하늘을 만질 만하다 하여 유래한 이름이다.
삼각점은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이제 큰 오르막은 없다. 그나마 건너편에 우뚝 솟은 각호
산과 민주지산의 연봉을 바라보면 평지나 다름없다. 한 차례 뚝 떨어졌다가 그 기세로 878.1
m봉을 대깍 넘고 각호산을 더 잘 볼 양으로 잰걸음하여 천만산이다.
10. 앞 맨 왼쪽은 천만산, 그 오른쪽 뒤는 각호산
11. 가운데는 백두대간 대덕산, 오른쪽은 삼봉산
12. 백두대간 대덕산
13. 백두대간 대덕산, 오른쪽은 삼봉산
14. 각호산
15. 민주지산
16. 왼쪽은 민주지산, 멀리 가운데는 대덕산, 오른쪽은 삼봉산
17. 왼쪽은 각호산, 맨 오른쪽은 민주지산
18. 천만산 정상에서
▶ 천만산(千萬山, 960.1m), 916.0m봉
천만산은 산행교통의 요충지다. 동으로는 도마령 지나 각호산, 민주지산, 석기봉, 삼도봉 백
두대간에 이르고, 북으로는 삼봉산과 이바위산에 이르고, 서로는 천마령, 진삼령 지나 백하
산으로 간다. 백두대간, 각호지맥이 아니래도 물을 건너지 않고 수십 킬로미터를 갈 수 있다.
잠시 동행한 종주꾼들의 산행 표지기 백하지맥은 도마령에서 시작하여 갈기산 넘어 금강에
서 그 맥을 놓는 도상 37km인 사소한 산줄기다.
천만산은 옛 지도에는 천마산(天摩山) 또는 천마산(天馬山)으로도 표기되어 있다. 천만산이
란 이름은 이 산 아래 천만리(千萬里)에서 따왔을 것. 전에처럼 나무숲이 둘러 있어 조망이
없다. 건너편 각호산도 가렸다. 천만산에 대간거사 님과 스틸영 님이 뒤에 늦게 오는 건 오늘
오지산행에 처음 나온 에릭 님을 독려하는 한편 대물 대덕을 만드는 중이어서다.
북진한다. 다시 신록 속에 들고 쭉쭉 내린다. 봄바람은 여전히 살랑댄다. 870m봉에서 잠시
멈칫한다. 에릭 님은 여기서 남쪽 지능선을 타고 내천마동으로 탈출한다. 친구인 산정무한
님이 책임 빠다다. 에릭 님은 헬스장에서 운동하다 무릎 인대가 끊어져 수술했는데 물리치료
중이라고 한다. 그 물리치료의 연장으로 오늘 산행에 나왔다고 한다.
우리는 계속 북진한다. 오솔길 같은 산길이 잠깐이다. 916.0m봉이 멀리서 볼 때도 그랬지만
가까이서는 더 뾰쪽한 첨봉이다. 세 피치로 오른다. 첫 번째 피치는 스트레칭 구간이다. 부드
러운 산길이다. 두 번째 피치는 수직으로 가파르다. 소나무 숲속 바윗길이다. 긴다. 모닥불
님은 육적종주 막판의 적상산 오르막이 생각난다고 한다. 이때는 바람도 잔다. 한여름 비지
땀을 눈 못 뜨게 쏟아가며 오른다.
세 번째 피치에서는 숨 고르며 오른다. 916.0m봉은 Y자 능선이 분기한다. 양쪽 다 장릉이다.
왼쪽(북서쪽)으로 간다. 암봉인 삼봉산의 전모를 보려고 걸음걸음 기웃거렸으나 916.0m봉
을 넘도록 신통하지 않다. 키 작은 철쭉이 줄 이은 꽃길을 간다. 그런 잔봉우리를 넘고 넘는
다. 그중 710m봉은 경점이다. 눈 닿는 데마다 산색이 눈부시게 화려하다.
약간 내렸다가 오른 같은 표고의 710m봉에서 남서쪽 지능선을 잡아 하산한다. 여기서는 시
간 여유에 따라 얼마든지 산행거리를 줄일 수도 있고 늘릴 수도 있다. 길게는 죽촌리 삼현 마
을까지 갈 수 있다. 5.4km를 더 가야 한다. 외천마동 가는 길. 급전직하 내리막이다. 우리가
여태 지나온 산릉을 바라보며 내린다. 천마령이 과연 하늘을 만질 수 있을 만큼 준령준봉이다.
가파른 사면을 낙엽과 쓸려 내려 마른 지계곡을 건너고 사과밭 지나 농로에 다다른다. 곧 오
전에 산행을 출발한 지점이다. 때마침 내천마동에서 산정무한 님과 에릭 님을 태운 우리 버
스가 도착한다. 무사산행을 자축하는 하이파이브 얼른 나누고 이 근방 대처인 영동을 향한다.
19. 양지꽃
20. 관중
21. 오른쪽 멀리는 또 다른 삼봉산
22. 넘어온 916.0m봉
23. 멀리 가운데가 임도가 지나는 안부(천마령), 왼쪽은 천마령(925.2m), 오른쪽은 936.9m봉
24. 외천마동 마을에서 바라본 천마령(925.2m)
첫댓글 그때 능선에 올랐을 때 저쪽으로 우뚝 솟은 각호산의 모습이 참말로 미끈하게 보였습니다. 언제 한번 친견하러 오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ㅎ
이렇듯 마냥 걸어도 좋은 산을....못가서 서운했는데...이번주에는 진짜 마냥 걸어도 좋을 듯한 가야-수도로 초대합니다
마냥 걸어도 좋은, 이번 산행에 딱 맞는 말씀입니다. 길도 마음도 편안했습니다. 꽃 놀이는 아니지만 충분히 상춘했던, 막걸리도 한잔하며 걸으니 더 흥이 났던 ㅎㅎ 산행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