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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7일 화요일 [(녹)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녹]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또는 [홍] 성 식스토 2세 교황과 동료 순교자들 또는 [백] 성 가예타노 사제 주님께서는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야곱 천막의 운명을 되돌려 주고, 그들 가운데에서 그들의 통치자가 나오게 하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겁에 질려 유령이라며 소리를 질러 댄다(복음). <네 허물이 커서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 내가 야곱의 천막을 되돌려 주리라.>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30,1-2.12-15.18-22 1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말씀. 2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에게 한 말을 모두 책에 적어라.” 12 ─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의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너의 부상은 심하다. 13 네 종기에 치료 약이 없고 너에게 새살이 돋지 않으리라. 14 네 정부들은 모두 너를 잊어버리고 너를 찾지 않으리라. 참으로 나는 네 원수를 시켜 너를 내리쳤으니 그것은 가혹한 훈계였다. 너의 죄악이 많고 허물이 컸기 때문이다. 15 어찌하여 네가 다쳤다고, 네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고 소리치느냐? 네 죄악이 많고 허물이 커서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 1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야곱 천막의 운명을 되돌려 주고 그의 거처를 가엾이 여겨 그 언덕에 성읍을 세우고 궁궐도 제자리에 서게 하리라. 19 그들에게서 감사의 노래와 흥겨운 소리가 터져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지 않고 내가 그들을 영예롭게 하리니 그들이 멸시당하지 않으리라. 20 그들의 자손들은 옛날처럼 되고 그 공동체는 내 앞에서 굳건해지며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은 모두 내가 벌하리라. 21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들의 지도자가 되고 그들 가운데에서 그들의 통치자가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도록 하여 나에게 다가오게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누가 감히 나에게 다가오겠느냐? 주님의 말씀이다. 22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2-36 군중이 배불리 먹은 다음,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 주님, 저를구해주십시오.” 하고소리를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렀다. 35 그러자 그곳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고 그 주변 모든 지방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병든 이들을 모두 그분께 데려왔다. 36 그리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초목은 모두 뽑힐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2.10-14 1 그때에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2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어깁니까?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습니다.” 10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듣고 깨달아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12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바리사이들이 그 말씀을 듣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을 아십니까?” 13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초목은 모두 뽑힐 것이다. 14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처음에는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다가 예수님 덕분으로 안전한 뭍에 도착한 제자들의 배는 교회의 고전적인 상징입니다. 마태오 복음서가 편집되었을 때 초기 교회는 신앙의 여정과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의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신자들의 공동체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여정에서도 언제나 유효합니다. 그것은 갖가지 위기 상황과 신앙에 대한 의심 그리고 온갖 두려움의 유령 앞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굳건한 믿음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 안에 사랑과 우정이 메마르고, 혼인으로 맺어진 부부가 서로에게 충실하지 못하며, 사회 안에서 생명에 대한 존중과 정의와 인권이 무시됨으로써 우리 곁에서 하느님의 표징이 희미해질 때가 있습니다. 또한 악과 거짓의 충동질 앞에서 선과 진실이 뒤로 밀려나 보일 때, 질병과 사건과 사고 그리고 불행이 씁쓸하게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계속해서 하느님을 믿고 사람들을 신뢰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신앙의 위기, 하느님에 대한 의심 그리고 거의 불가능한 인간적인 형제 관계 앞에서 절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싸여 실의에 빠지게 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우리를 덮칩니다. 이 모든 것은 젊은이든 어른이든 나약한 믿음의 명백한 표징입니다. 이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고통스러운 밤에 기도하셨고 베드로 사도가 물에 빠져 드는 위험 앞에서 외친 것처럼, 기도의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유혹을 떨쳐 버리고자 하느님과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믿음의 위기 앞에서 두려움의 유령을 떨쳐 버리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청해 봅시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
활동하는 관상가의 모범, 예수님 갈릴래아 호숫가 대평원에서 개최되었던 초대규모 신앙대회를 성황리에 마친 제자들의 기분은 한껏 고무되고 신명났습니다. 신앙대회 참석자 수가 남자 어른들만 5천명이었으니, 여인들, 어린이들까지 합하면 줄잡아 2~3만명이나 되었을 것입니다. 행사를 끝낸 제자들은 큰 보람도 느꼈겠지만, 행사를 운영하느라 다들 기진맥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규모 행사를 마치신 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태도가 참으로 감동적이고 특별합니다. 통상 행사의 뒷처리는 하인들이나 일꾼들, 제자들의 몫입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 직접 나서십니다.
계속되는 과로와 상습피로로 인해 진이 빠질대로 빠진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뒷처리는 당신이 하실 것이니, 먼저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있으라고 재촉하십니다.
제자들이 먼저 떠나간 후 예수님께서는 마이크를 잡으시고 엄청난 규모의 군중을 질서 있게 해산시키셨습니다. 그리고는 손수 행사 뒷정리를 하셨습니다.
여름 신앙학교에 참석한 300명 남짓한 청소년들이 떠나간 자리를 뒷정리하는데도 하루 해가 짧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수의 군중이 떠나간 자리 뒷정리하는 일, 결코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마침내 모든 뒷정리가 마무리 된후, 저같았으면 앞뒤 재지 않고 곧바로 침대로 직행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러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군중이 배불리 먹은 다음,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 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 계셨다.”(마태오 복음 14장 22~23절)
고된 사목활동 후, 자축겸 위로겸, 한잔 한다든지, 회포를 푼다든지 할만 할텐데,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홀로 산으로 오르셨습니다. 거기서 대체 무엇을 하셨을까요?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즉시 답이 나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진심어린 감사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당신의 공생활을 통해 아버지의 뜻이 이 땅위에 이루어지도록 청하셨을 것입니다. 목자없이 방황하는 양떼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목활동도 펼치셨지만, 그에 못지 않게 하느님 아버지 앞에 일대일로 마주앉아,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분과 일치하는, 활동하는 관상가로서의 삶에 충실하셨습니다. 그분은 지상생활 내내 기도와 활동 사이에서 균형잡힌 삶의 모습을 잘 보여주셨습니다.
잠깐 동안이나마 예수님을 떠나있었던 제자들의 모습은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스승님을 중심으로, 영과 지혜와 능력으로 충만했었습니다. 스승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도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목격했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팽배했습니다.
그러나 반나절 후 드러난 제자 공동체의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참으로 희극적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떠난지가 언제인데, 역풍을 만나 몇 킬로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뱅뱅 맴돌고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높은 파도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제정신이 아닌 제자들을 구하러 물위를 걸어오시는 스승님을 향해 “유령이다!”라고 외치기까지 했습니다.
어떻게든 우리 공동체 안에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그분께서 언제나 순례 여정 중에 있는 우리 공동체 중심이 ‘딱!’ 자리잡고 계시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주님께서 언제나 흔들리는 우리 배의 선장이요 주인이 되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려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까짓것!”>
타이타닉, 아바타 등의 최고 흥행 영화를 감독한 ‘제임스 카메론’은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감독이자 제작자입니다. 하지만 그의 직업은 본래 트럭 운전사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가난 때문에 그 길로 뛰어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를 본 이후 크게 충격을 받습니다.
‘나는 왜 못해?’
그리고 트럭운전사를 그만두고 영화 제작사에 들어가 허드렛일부터 배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용당할 뿐이었습니다. 전편 흥행영화였던 ‘피라냐 2’의 감독으로 지목되었지만 사실 다른 감독이 내정되어 있었고 그는 이름만 빌려주었던 것이었습니다. ‘피라냐 2’는 그해 최악의 영화로 기록되었고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감독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트럭을 운전할 때보다 먹고살기가 더 어려워진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무너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하게 되는데 그것이 ‘터미네이터’입니다. 그리고 그 영화를 1달러에 내놓습니다. 10만 달러를 주겠다는 제작사도 있었지만 그는 1달러에 팔았습니다. 자신이 감독을 하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영화를 찍으면서도 ‘에이리언 2’, ‘람보 2’ 등의 시나리오를 쓰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터미네이터가 완성되었고 그 영화는 그 해의 최고 흥행을 기록합니다. 물론 제임스 카레론은 이후 승승장구 하게 됩니다.
물 위를 걸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뛰어내려야합니다. 그런데 그게 제일 힘듭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많이 하면 두려움이 생기고 그러면 평생 못 뛰어내립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의 이야기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들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물 위를 걸어보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던 제자들입니다. 그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 위를 걷는 맛을 느껴본 사람은 유일하게 베드로뿐이었습니다. 제자들 간의 논쟁이 발생하면 베드로는 분명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물 위 안 걸어봤으면 얘기를 하지 마!”
베드로의 위대한 면은 예수님이 하는 것이면 무조건 따라하려 했던 어린이와 같은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부모가 하는 행동과 말을 무조건 따라하며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가지신 것이 무엇이나 좋은 것임을 믿었고 예수님도 당신이 하시는 모든 일을 따라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베드로가 교회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따라쟁이’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닮으려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그런데 따라한다는 말 안에는 자신의 것을 버린다는 모험정신이 들어있습니다. 상대의 모든 것을 더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자신을 따라하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삶이 더 완전하다는 믿음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나 따라 해서는 안 되겠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의 모든 행동을 따라할 필요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가 따라서 할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물 위를 걸어본 마음으로 사는 것과 못 걸어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만약 제가 주저하다가 신학교에 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저로서는 그것이 가장 큰 실수가 됐을 것입니다. 한 번 시도해보면 다른 것을 따라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모든 행위는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더욱 더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처음이 어려운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하였습니다. 끝까지 따라쟁이였습니다. 이 따라쟁이를 예수님은 얼마나 예뻐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물 위에서 기우뚱 하며 허우적대는 그의 모습을 보며 화를 내셨던 것일까요?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이 말은 비난이 아닙니다. 칭찬입니다. 왜냐하면 배 위에 그대로 있는 제자들은 믿음이 아예 없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약하다는 말은 칭찬입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를 내 봅시다. 그러면 주님께 대한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기회는 뛰어내릴 때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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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성 식스토 2세(Sixtus II)
신분 : 교황, 순교자
활동연도 : +258년
같은이름 : 식스또, 식스뚜스, 식스투스, 씩스또, 씩스뚜스
그리스 출신인 성 식스투스 2세(또는 식스토 2세)는 257년 8월 30일에 교황 성 스테파누스 1세(Stephanus I, 8월 2일)를 계승하였다. 그 무렵 황제 발레리아누스는 초기의 관용 정책을 버리고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첫 번째 포고령을 내렸다. 이어 더욱 잔혹한 두 번째 포고령이 발표되고 군사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습격했을 때, 성 식스투스 교황은 개인 묘지인 프래텍스타투스(Praetextatus) 카타콤바에서 전례를 거행하고 있었다.
그 당시 로마(Roma)의 지하 묘지는 박해를 피하기 위한 신자들의 집회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주교좌에 앉아 강론하던 그는 체포되어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의 시신은 후에 아피아(Appia) 가도에 있는 성 칼리스투스(Callistus) 카타콤바의
교황 묘지로 이장되었다.
성 식스투스와 함께 체포되어
순교한 사람은 부제 성 펠리키시무스(Felicissimus)와 성 아가피투스(Agapitus) 그리고 차부제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
성 빈첸시오(Vincentius),
성 마그누스(Magnus),
성 스테파누스(Stephanus)이다.
또 한 명의 동료 순교자로
성 콰르투스(Quartus)가 있다.
그도 부제라는 기록이 있으나 잘못된 기록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들은 교황 성 식스투스 2세와 함께 순교하였기 때문에 로마 순교록에서 같은 날을 축일을 정해 공경해 왔다.
그러나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부제는 며칠 뒤에 순교하였기 때문에 다른 날 축일을 정해 공경한다. 이들은 프래텍스타투스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 오늘날 교황 성 식스투스(8월 7일)와 성 라우렌티우스(8월 10일) 외의 다른 순교자들은 8월 6일을 축일로 지낸다.
성 가예타노 사제Saint Cajetan
St. Cajetan of TienneSan Gaetano Thiene Sacerdote(Vicenza, ottobre 1480 - Napoli, 7 agosto 1547 )Born :October 1480 at Vicenza, Italy as Gaetano dei Conti di TieneDied :1547 at Naples, ItalyBeatified :8 October 1629 by Pope Urban VIIICanonized :12 April 1671 by Pope Clement XGaetano = nativo di Gaeta, dal latino
1480년 이탈리아의 비첸차에서 태어났다.
파도바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법률가로서 평범한 삶을 살았던 성인은 36세에 서품을 받고 가난하고 병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데 일생동안 헌신했다.
그는 테아티노회라는 수도회를 설립했는데 이 수도회는 당시의 부패된 교회를 개혁하려는 운동이었다.
베네치아와 나폴리 지방에 이 수도회를 파급 시키는 데 노력했다.
나폴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가예타노도 평범한 삶을 살았으며 처음에는 법률가로서, 후에는 사제로서 로마 교황청에서 일했다.
그는 36 세에 서품을 받고 곧 로마에 있는 하느님 사랑의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했다.
이것은 그의 인생의 커다란 전환이었다.
이 단체는 동정과 자비를 위해 헌신하는 회였다.
그는 42 세 때 베네치아에 불치병 환자를 위한 병원을 세웠다.
비첸차에서는 가장 하류층의 남자들로만 구성된 평판이 나쁜 수도회에 들어갔다.
그 때문에 그는 친구들로부터 가문을 손상시킨 사람이라는 노골적인 비난을 받았다.
그는 여러 마을을 다니며 환자와 가난한 이들을 찾아내어 도와주었다.
그 시대의 가장 큰 요구는 ’책임자와 구성원들’이 병들어 있는 교회를 개혁하는 것이었다.
가예타노와 3 명의 동료들은,개혁의 최선책은 사제의 정신과 열정을 소생시키는 것이라고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함께 테아티노회로 알려진 수도회를 세웠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은 후에 교황 바오로 4 세가 됨).
최초의 장상인 그들의 주교가 주교좌를 두고 있던 테아테(치에티)에서 테아티노회라는 이름이 나왔다.
그들은 칼 5 세가 1527 년 로마를 약탈하는 와중에 로마에 있던 그들의 집이 파괴되자 베네치아로 피신했다.
테아티노회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이 있기 전에 일어난 가톨릭 개혁 운동 중 가장 뛰어난 운동이었다.
그는 나폴리에 몬테 디 피에티(자선 기금)를 설립했다.
이는 많은 자선 단체 가운데 하나로서
저당물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는 비영리적 신용 기관 중의 하나이다.
이 기관의 목적은 가난한 사람을 돕고 고리 대금업자들에게서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가예타노의 이 작은 기관은 마침내 정치적인 큰 변화와 더불어 나폴리 은행이 되었다
가스팔 디 티에네 백작과 마리아디 포르토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비첸사에서 세례를 받고, 두 살 때 그의 부친이 전사하는 불운을 안았다.
그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나, 파두아 대학교에서 공부하여 민법과 교회법의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곧 비첸사의 시의원이 되었고,1506년에는 로마로 가서 교황 율리오 2세로부터 최초의 공증인으로 임명되었다.
또한 그는 신심 깊은 사제들로 구성된 신애회를 재생시켰다.1513년, 율리오 교황이 서거하자 자신의 직책을 사임하고, 1516년에 사제로 서품된 후, 비첸사로 돌아왔다.
그는 거기서 성 예로니모의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여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다가,베로나에서 이와 비슷한 회를 창설하였다.
1523년, 그는 로마로 가서, 후일 교황 바오로 4세가 된 요한 피에트로 카라파, 바울로 콘시글리에리그리고 보니파시오 다콜레 등과 함께 교회를 개혁하고, 백성들에게 설교하며, 병자를 돕고,최악의 경우에서 허덕이던 성직자의 신분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성직 수도회를 창설하여,1524년에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승인을 받았다.
테아턴회라 부르는 이 수도회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정규 성직자들로 구성하고, 서원을 발하며, 사목직에 종사하였다.
처음에는 그리 성공적이 못되었다.1530년, 가예따노가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가예따노의 주요 업적 중의 하나는 전당포의 설립이었다.
후일, 그는 복자 요한 마리노니와 함께 몬테스 피에타티스를 설립하여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로써 시민들의 복리를 위해 일하였다.
그는 트렌트 공의회 전에 있었던 가톨릭 개혁가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성인이다.그는 기도 생활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뛰어났으며,1547년 8월7일 나폴리에서 운명하였고 1671년에 시성되었다.
복자 아가탄젤로(Agathangelo)
²복자 카시아노(Cassian)
신분: 신부, 순교자
¹활동지역: 방돔(Vendome)
²활동지역: 낭트(Nantes)
활동연도: +1638년
¹같은이름: 아가딴젤로, 아가딴젤루스, 아가탄겔로, 아가탄겔루스, 아가탄젤루스
²같은이름: 가시아노, 가시아누스, 카시아누스, 카시안, 카씨아노, 카씨아누스
아가탄젤로는 1598년에 프랑스의 방돔에서 태어나서 21살 되던 해에 르망(Le Mans)의 카푸친회에 들어갔다.
그는 1625년에 사제로 서품되면서부터 시리아로 갈 때까지 고향에서 유명한 설교자로 명성을 떨쳤다.
또 알레포(Aleppo)에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상인들을 상대로 사목활동을 하였으며, 그 동안에 아라비아어를 공부하여 대화나 강론에서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그는 모슬렘 사회의 문맹을 퇴치하고, 터키인들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하는 등 당시의 교회가 위험하다고 금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계속하였다.
1630년에 카푸친회는 이집트의 카이로에 선교지를 확보하고활동을 개시하였는데, 아가탄젤로는 1633년에 그곳의 책임자로서 동분서주하였다.
이때 마르세유(Marseilles)에서 3명의 선교사들이 합류하였는데, 그들 중에 낭트(Nantes)의 카시아누스(Cassianus) 신부가
가장 출중하였다.
카시아누스는 즉시 아가탄젤로 신부의 오른팔이 되어 활동하였는데, 그가 특히 노력한 것은 로마(Roma) 성좌와 곱트 교회간의 재일치를 도모하는 일이었다.
이들 두 선교사는 그 힘든 일을 계속하다가 에티오피아 선교를 위하여 디바루아(Dibarua)로갔다가 체포되어, 그곳의 왕인 바실리데스 앞으로 끌려가 결국은 순교하고 말았다.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는이
두 분이 17세기의 가장 위대한 선교사였다고 선포하였다.
아가탄젤로와 카시아누스 신부는 1905년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