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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량(李德樑)은 이정지(李廷芝)의 부친입니다.
원문은 《충주의 금석문, 2006년》에서 옮겼습니다.
《충주의 금석문》에서는 《戶曹參議全州李公諱德樑開拓碑》라고 소개하였는데 이 비석은 제내리 성동(聖洞)마을에 있고 《이덕량 묘비》는 사락리 음동(奄洞)에 있습니다. 이 碑에 나오는 墓碣을 옮겨 번역문을 실었습니다. 《충주의 금석문》에도 번역문이 실려 있으나 옮기지 않습니다.
이덕량 묘
왼쪽에 있는 비석이 이덕량 묘비이다.
위 두 사진은 블로그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에서 옮겼습니다.
《충주의 금석문, 2006년 》에서 옮긴 사진.
《周德邑 社樂里 李德樑 墓碣銘》
증통정대부호조참의전주이공휘덕량지묘 배숙부인초계정씨합부(贈通政大夫戶曹參議全州李公諱德樑之墓 配淑夫人草溪鄭氏 合祔)
《參議 李公墓碣銘》
周公文王之子也
魯以周公爲始祖而不以上系於太王王季文王者不敢以諸侯之國而上繼天子之統故也 公諱德樑字厦卿系出璿源即太祖大王第一男 鎭安大君諡靖懿諱芳雨之後也 以靖懿爲鼻祖者卽魯祖周公之義也
靖懿生諱福根推忠協贊靖難定社功臣大匡輔國奉寧府院君諡安簡於公七世祖也
累傳至諱瑀禦侮將軍行忠佐衛大護軍際埴端廟遜位之時憮然無復有意於世以終老之計因退居于槐山西面道樂洞公其玄孫也
曾祖諱枝禦侮將軍行忠佐衛大護軍祖諱義宗禦侮將軍行忠佐衛大護軍考諱軾贈通訓大夫司僕寺正妣淑人丹陽禹氏宣略將軍副司直嗣得其考也
生有淑德爲婦爲母閫範悉備敎子孫有義方撫宗族有敦睦待奴僕有恩義鄕黨稱其賢婦德焉萬曆丙子九月二十九日生公年纔十七遭龍蛇之亂又當天崩地坼之痛哀隕罔極不可形喩瘠骨立幾危僅免臨時權厝於槐山地與六歲幼(원문에는 卯자로 써있는데 幼자로 고친다.)君德栓備經歷險阻累處圖生轉至于忠州德面德蓮山下與鄭上舍德龜隣居避禍又移居于陣浦坪來胥宇芳湖 拓基奠居焉後爲親求山移窆于德面黃金山下枕艮之原平居御家有法度內外斬斬閫門雍睦兄弟怡怡湛樂不衰自奉儉約而待宗族甚厚奉先之誠自小至老益篤不懈每當杞事必前期齊宿克盡誠敬晩年筮仕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以季孫震說貴贈通政大夫戶曹參議孝宗辛卯五月八日考終于正寢得年七十有六墓以生前不得永久侍養之故平生茹恨子孫從其遺意繼葬于先兆階下爲
配淑人草溪鄭氏德麟女文校理竹溪令昌曾孫萬曆乙亥五月六日生天性和柔幽閑事君子以溫容奉祭祀以誠禮女紅中饋乃其餘事隣里親戚咸頌閨房模範云孝宗甲戌六月十九日終享年八十墓合祔(원문에는 六十으로 되어 있는데 八十이 맞으므로 고친다.)
育三男長廷芝贈嘉善大夫戶曹參判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以孝行有碑碣果齊李公世換著文焉 次廷蓂通德郎次廷莢從仕郎其餘曾玄孫多不盡記而至于今日子姓蕃衍殆至數百餘戶積德累仁之家天之報應果然也
夫其后(後)孫東浩競浩甫抱宲(棠이라 써있는데 誤字다. 實과 같은 뜻)錄來謁麗牲之文曰吾先祖之德之懿不可以無銘願吾子之俾不朽也
余辭非其人又以不文而不獲命遂虔撫其實而爲銘
銘曰
遙遙華冑簪纓繼世龍巳之歲怙恃俱逝金山之南尊厥攸居刑于友于 申如大如奉先思孝是宜精禋玉潔蘭芬繩繩振振餘慶所及莫非天騭云胡不壽 有德可必銀嶺嵬嵬堯渡洋洋肅肅奄堤卜吉牛鳴刻此貞珉用表佳城
豐壤 趙東漢 謹撰
十代孫 養浩 謹書
十二代孫 尙應 謹楷
표점
《贈通政大夫 戶曹參議 全州李公 諱德樑之墓
配淑夫人草溪鄭氏合祔》
《參議 李公墓碣銘》
周公,文王之子也。魯以周公爲始祖,而不以上系於太王、王季、文王者,不敢以諸侯之國,而上繼天子之統故也。
公諱德樑,字厦卿。系出璿源,即太祖大王第一男鎭安大君諡靖懿諱芳雨之後也。以靖懿爲鼻祖者,卽魯祖周公之義也。靖懿生諱福根,推忠協贊靖難定社功臣、大匡輔國奉寧府院君、諡安簡,於公七世祖也。累傳至諱瑀,禦侮將軍、行忠佐衛大護軍,際埴端廟遜位之時,憮然無複有意於世,以終老之計,因退居于槐山西面道樂洞,公其玄孫也。曾祖諱枝,禦侮將軍、行忠佐衛大護軍。祖諱義宗,禦侮將軍、行忠佐衛大護軍。考諱軾,贈通訓大夫司僕寺正。妣淑人丹陽禹氏,宣略將軍副司直嗣得,其考也。
生有淑德,爲婦爲母,閫範悉備。敎子孫有義方,撫宗族有敦睦,待奴僕有恩義,鄕黨稱其賢婦德焉。
萬曆丙子九月二十九日生。公年纔十七,遭龍蛇之亂,又當天崩地坼之痛,哀隕罔極,不可形喩。瘠骨立,幾危僅免。臨時權厝於槐山地,與六歲幼君德 栓備經歷險阻,累處圖生。轉至于忠州德面德蓮山下,與鄭上舍德龜隣居避禍,又移居于陣浦坪。來胥宇芳湖,拓基奠居焉。後爲親求山,移窆于德面黃金山下枕艮之原。
平居御家有法度,內外斬斬,閫門雍睦,兄弟怡怡,湛樂不衰。自奉儉約,而待宗族甚厚。奉先之誠,自小至老益篤不懈。每當杞事,必前期齊宿,克盡誠敬。晩年筮仕,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以季孫震說貴,贈通政大夫戶曹參議。孝宗辛卯五月八日考終于正寢,得年七十有六。墓以生前不得永久侍養之故,平生茹恨,子孫從其遺意,繼葬于先兆階下。
配淑人草溪鄭氏,德麟女,文校理竹溪令昌曾孫。萬曆乙亥五月六日生。天性和柔幽閑,事君子以溫容,奉祭祀以誠禮,女紅中饋,乃其餘事,隣里親戚咸頌閨房模範云。孝宗甲戌六月十九日終,享年八十。墓合祔。
育三男。長廷芝,贈嘉善大夫戶曹參判、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以孝行有碑碣,果齊李公世換著文焉。次廷蓂,通德郎。次廷莢,從仕郎。其餘曾玄孫多不盡記,而至于今日,子姓蕃衍,殆至數百餘戶。積德累仁之家,天之報應果然也。
夫其后(後)孫東浩、競浩甫,抱宲錄來謁麗牲之文曰:「吾先祖之德之懿,不可以無銘。願吾子之俾不朽也。」余辭非其人,又以不文而不獲命,遂虔撫其實而爲銘。
銘曰: 遙遙華冑,簪纓繼世。 龍巳之歲,怙恃俱逝。 金山之南,尊厥攸居。 刑于友于,申如大如。 奉先思孝,是宜精禋。 玉潔蘭芬,繩繩振振。 餘慶所及,莫非天騭。 云胡不壽,有德可必。 銀嶺嵬嵬,堯渡洋洋。 肅肅奄堤,卜吉牛鳴。 刻此貞珉,用表佳城。
豐壤 趙東漢 謹撰
十代孫 養浩 謹書
十二代孫 尙應 謹楷
번역
증 통정대부 호조참의 전주이공 휘 덕량지묘
배 숙부인 초계정씨 합부 (증 통정대부 호조참의 전주이씨 덕량의 묘, 숙부인 초계정씨 합장)
《참의 이공 묘갈명》
주공(周公)은 문왕(文王)의 아들이다. 노(魯)나라가 주공을 시조로 삼고 위로 태왕(太王)· 왕계(王季)· 문왕(文王)에게 계통을 대지 않은 것은, 감히 제후의 나라로서 위로 천자의 계통을 잇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공의 이름은 덕량(德樑)이고, 자는 하경(厦卿)이다. 세계(世系)는 왕실(璿源, 선원)에서 나왔으니, 곧 태조대왕의 첫째 아들인 진안대군(鎭安大君, 시호는 정의, 이름은 방우)의 후손이다(諡靖懿諱芳雨之後). 정의공을 비조(鼻祖)로 삼은 것은 노나라의 시조를 주공으로 삼은 뜻과 같다.
정의공이 휘 복근(福根)을 낳았으니 추충협찬정난정사공신 대광보국 봉녕부원군(시호는 안간)으로 공에게 7세조가 된다.(靖懿生諱福根推忠協贊靖難定社功臣大匡輔國奉寧府院君諡安簡於公七世祖也)
여러 대를 전하여 휘 우(瑀, 어모장군 행 충좌위 대호군)에 이르러, 단종대왕께서 왕위를 사양하실 때를 맞아 슬퍼하며 더는 세상에 뜻을 두지 않고 일생을 마칠 계책으로 괴산 서쪽 도락동에 물러나 살았으니 공은 그의 현손이다.(累傳至諱瑀禦侮將軍行忠佐衛大護軍際埴端廟遜位之時憮然無復有意於世以終老之計因退居于槐山西面道樂洞公其玄孫也)
※《주덕읍지, 2007년》을 보면 이덕량(1576 ~ 1651)은 괴산군 감물면 주월리 도락동에서 태어났다고 나온다. 단종(1441~1457)이 왕위를 사양할때 고조부(高祖父)가 괴산 도락동으로 물러나 살았다는 것은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증조의 이름은 지(枝, 어모장군 행 충좌위 대호군)이고, 조부의 이름은 의종(義宗, 어모장군 행 충좌위 대호군)이며, 아버지의 이름은 식(軾, 증 통훈대부 사복시정)이다. 어머니 숙인 단양 우씨는 선략장군 부사직 사득(嗣得)이 그 아버지이다.
어머니 우씨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름다운 덕이 있어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부녀자의 모범을 모두 갖추었다. 자손을 가르침에 도리가 있었고, 종족을 어루만짐에 두터운 화목함이 있었으며, 노복을 대함에 은혜와 의리가 있어 향리에서 현숙한 부덕(婦德)이라 칭송하였다.(妣淑人丹陽禹氏宣略將軍副司直嗣得其考也 生有淑德爲婦爲母閫範悉備敎子孫有義方撫宗族有敦睦待奴僕有恩義鄕黨稱其賢婦德焉)
만력 병자년(1576년) 9월 29일에 태어났다. 공의 나이 겨우(纔) 열일곱에 임진왜란(龍蛇之亂)을 만난 데다 또 부모상을 당하는 슬픔을 겪으니, 애통함이 극에 달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뼈만 남도록 마르고 기력이 쇠하여 겨우 목숨만 건졌다.
임시로 괴산 땅에 가매장하고, 여섯 살 된 어린 아우 덕전(德栓)과 함께 온갖 험난함을 겪으며 여러 곳을 전전하여 살길을 모색하였다. 충주 덕면 덕련산 아래로 옮겨가 정 상사(鄭上舍) 덕구(德龜)와 이웃하며 화를 피하였고, 다시 진포평(陣浦坪, 우리말로 진개, 진개들이다.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어떻게 옮기나 보여준다.)으로 옮겨 살았다. 방호(芳湖, 芳湖는 방죽(防築)의 美稱이다. 제내리에 방죽안이란 지명이 있다. 堤內도 방죽안을 한자로 옮긴 말이다.)로 와서 집터(胥宇)를 가꾸고 기반을 잡아 터전을 마련하였다. 후에 어버이를 위해 명당을 찾아 덕면 황금산 아래 간좌(艮坐, 북서쪽을 등지고 남동쪽을 바라보는 방향)의 언덕으로 옮겨 모셨다.
평소 집안을 다스림에 법도가 있어 안팎이 엄격하고 명확하였으며, 집안 문중은 화목(雍睦, 和睦)하고 형제간에는 화락하여 한없는 즐거움이 줄어들지 않았다. 스스로 봉양함은 검소하게 하였으나 종족을 대함은 매우 두텁게 하였다. 조상을 섬기는 정성이 어릴 때부터 늙어서까지 더욱 두터워 게을러지지 않았으니, 제사를 맞이할 때마다 반드시 기한보다 먼저 재계하고 머무르며 정성과 공경을 다하였다.
늦은 나이에 벼슬길에 들어 절충장군 행 용양위 부호군이 되었고, 막내손자 진열(震說)이 귀하게 됨으로써 통정대부 호조참의에 증직되었다. 효종 신묘년(1651년) 5월 8일 천수를 누리고(終于正寢)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니 향년 76세였다. 묘소는 생전에 부모님을 오래 모시지 못한 까닭에 평생 한을 품었으므로, 자손들이 그 유지를 따라 선영의 아래에 이어 하장(下葬)하였다.(子孫從其遺
意繼葬于先兆階下爲)
배필 숙인 초계 정씨는 덕린(德麟)의 딸이며, 문교리 죽계령 창증(昌曾)의 손녀이다. (配淑人草溪鄭氏德麟女 文校理竹溪令昌曾孫)
만력 을해년(1575년) 5월 6일에 태어났다. 성품이 온화하고 유순하며 그윽하고 정숙하여, 남편을 섬김에 온화한 얼굴로 하였고 제사를 모심에 정성과 예의로 하였다. 바느질과 음식 마련은 그 남은 일일 뿐이라, 이웃과 친척들이 모두 안방의 모범이라고 칭송하였다. 효종 갑술년(1654년) 6월 19일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80세이다. 묘소는 합장하였다.
3남을 두었다. 장남 정지(廷芝)는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 절충장군 행 용양위 부호군으로, 효행이 있어 비석(碑碣)이 있으니 과재 이공 세환(李世換)이 글을 지었다. 차남 정명(廷蓂)은 통덕랑이고, 다음 정협(廷莢)은 종사랑이다. 그 외의 증손과 현손은 많아 다 기록하지 못하나, 오늘날에 이르러 자손이 번창하여 거의 수백여 가구에 이르니, 덕을 쌓고 인(仁)을 누린 집에 하늘의 보응이 과연 그러하도다.
※명협(蓂莢)은 중국(中國) 요(堯)임금때 났었다는 전설상(傳說上)의 상서(祥瑞)로운 풀이다. 둘째와 세째 아들 이름은 여기서 따왔다.
그 후손 동호(東浩)와 경호(競浩)씨가 행장(實錄)을 품에 안고 찾아와 비문(麗牲之文)을 청하며 말하기를, "우리 선조의 아름다운 덕을 비명(銘)이 없게 할 수 없으니, 선생께서 불후의 글을 남겨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내가 적임자가 아니라고 사양하고 또 글재주가 없어 사양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마침내 그 사실을 정성껏 살펴 다음과 같이 명(銘)을 짓는다.
명하여 이르기를,
아득히 먼 명문가에서 벼슬길을 대대로 이어왔네.
임진년 신해년에 부모님 모두 여의었도다.
금산(金山, 黃金山)의 남쪽에 그 거처를 높여 정하였으니,
본보기를 보이고 우애하여 법도가 거룩하도다.
조상을 봉양함에 효도를 생각하니 이에 정성스러운 제사가 마땅하네.
옥처럼 깨끗하고 난초처럼 향기로워 자손들 더욱 번창하리.
집안에 남은 경사가 미침은 하늘이 도우심 아닌 것 없네. 어찌 장수하지 못했으리, 덕이 있으면 반드시 장수하는 법.
은령(銀嶺)은 높고 높으며 요도(堯渡, 堯渡川)는 아득하도다.
엄숙한 엄제(庵堤)에 소 울음 터 길지(吉地)를 얻었으니, 이 다듬은 돌에 새겨 좋은 묘역을 밝히노라.
※몇몇 지명들이 보인다. 金山은 黃金山을 堯渡는 堯渡川을 엄제(奄堤)도 墓가 있는 사락리 음동(奄洞)에 있는 못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奄은 실제 엄으로 발음하나 우리말 지명 <음골>을 한자로 옮긴 지명이다. 奄洞으로 쓰고 음동으로 발음하였다.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1912년》, 《필사본 조선지지자료 충주군, 1914년》에 엄동(奄洞)으로 표기되어 있다. 1970년대 동네 이장이 잘못 써서 엄동으로 바꾼다는 기사가 있다. 그 이장이 잘못한 것은 아니다. 원래 마을이름이 <음골>이었다.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옮기다 보니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한자음도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奄자를 구한말이나 일제시대 어떻게 발음했나 궁금하다.
(銘曰: 遙遙華冑,簪纓繼世。 龍巳之歲,怙恃俱逝。 金山之南,尊厥攸居。 刑于友于,申如大如。 奉先思孝,是宜精禋。 玉潔蘭芬,繩繩振振。 餘慶所及,莫非天騭。 云胡不壽,有德可必。 銀嶺嵬嵬,堯渡洋洋。 肅肅奄堤,卜吉牛鳴。 刻此貞珉,用表佳城。)
풍양 조동한(趙東漢) 삼가 지음(謹撰).
10대손 양호(養浩) 삼가 씀(謹書).
12대손 상응(尙應) 삼가 정서함(謹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