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에 얽힌 사랑 이야기
백화 문상희 (소설)
(4부) 기구한 삶의 현장
정호는 3주째 일도 못 나가고
또 병원 침상아래 간이침대에서 큰 키에다
꼬부린 채 잠을 자다 보니 컨디션이 좋지 않았으나
그래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은주에게 이끌리는 자석처럼 그렇게말이다.
그리고 입원 마지막 날 주치의 교수님이 오셨다.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약 처방전 내용과
복용 방법, 주의사항 등을 알려주고 가셨다.
오후 점심시간이 지나서 처방전이 나왔다는
통보를 받고 은주와 정호는 로비로 내려왔다.
은주씨는 이제 살짝 부축만 해주면 목발에 의지해서
이제는 어느 정도 걸을 수는 있었다.
택시 정류장으로 가던 길에 잠시 멈추어 선 은주는
오랜만에 걸으니 힘들어 했다.
"정호씨 저기 벤치에 좀 앉았다 가도록 해요"
"그래요 은주씨!"
둘이는 나란히 벤치에 앉아 그간 병원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주고받는다.
"정호씨, 저 목이 말라서 물을 좀 마셨으면 해요!"
"아, 그렇군요! 여기 잠깐만 앉아 계세요
구내 편의점에 가서 사 올게요!"
이제는 둘 다 가족 같은 정으로 그렇게 발전했다.
이것저것 사들고 돌아온 정호는 은주에게
물과 음료수를 건네주고 정호도 음료수 한 병을
따 가지고 마시면서 한동안 먼 하늘을 바라본다.
"은주씨,
세상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네요!"
"네~?
무슨 말씀 이신가요?
한참을 하늘에 시선을 고정하던 정호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목소리마저 약간 울먹였다.
"사실은 오래전에 이 병원에서 마누라가
위암 수술을 하고 퇴원 후 저세상으로 떠났답니다
그때는 위암 환자라 음료수 한병도 못 사줬어요
여기에 앉아 있다 보니 그때 그 생각이 납니다."
한참 동안 서로가 침묵의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은주도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동병상련의 눈물을 훔친다.
"은주씨 괜한 말을 했네요 미안해요!"
"아닙니다 정호씨,
그런 아픈 사연이 있었군요!
저는 정호씨가 전혀 내색을 안 해서 몰랐답니다
지금이라도 위로의 말씀드릴게요!"
라며 정호의 손을 꼬옥 잡는다.
한참이 지났을까 은주가 꼭 잡은 손을 흔들며
"정호씨 늦었는데 이제 집으로 가요!
"아, 그렇군요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천천히 일어서 볼까요!"
하고 은주를 부축해서 택시 정류장으로 간다.
아직은 퇴근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아니면 불경기라 그런지
정류장에 택시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정호는 택시 트렁크에 노크를 하고
장기간 입원을 한터라 이것저것 두 사람 몫의
보따리가 많아 짐을 택시 드링크에 넣은 후 문을 닫았다.
"기사 아저씨, 이분이 다리가 좀 불편해요!
그러니 천천히 탈 테니까 양해 부탁드립니다!"
"네~! 그러세요!"
친절한 기사님의 말을 들으며 택시에 오른다.
"은주씨 목발은 내게 주시고 내가 부축을 할 테니
먼저 앉아보세요!"
그리고 반대편으로 가서 팔을 부축해 당겨서
겨우 제자리를 잡아 앉혔다.
그리고 정호는 이어서 앞 좌석에 앉는다.
"기사 아저씨 감사합니다, 이 주소대로 좀 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하고 택시기사는 네비게이션을 조작한다.
그렇게 택시는 은주 씨가 얘기한 주소대로
독립문 근처 행촌동으로 향한다.
큰 도로에서 골목길로 접어들어서도 한참을 올라간다.
꼬불꼬불 언덕길에서 택시기사 하는 말,
"가르쳐주신 주소대로는 계단이 있어서
더 이상 못 가겠네요!
"네, 그렇군요,
그러면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하고 카드를 내밀어 계산을 마치자 친절한 기사님이
트렁크에 짐을 내려놓고 인사를 한다.
"안녕히 가세요!
"네~, 고맙습니다 기사님!
정호는 그렇게 택시를 돌려보낸 후 계단을 보니
너무 경사가 커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은주 씨 계단이 있는데 올라갈 수 있겠어요?"
"네, 맨날 다니던 길이라 익숙하고 또
목발이 있어서 갈 수는 있을 거예요!"
그렇게 몇 발짝 내딛고 계단 때문에 바로 휘청거렸다.
정호는 얼른 부축을 하며
*아이구요 안 되겠어요 그 자리 앉아 계셔요 ~!
내가 음료수와 목발부터 저 꼭대기에 가져다 놓고
다시 내려와서 제가 업고 갈게요
그래도 제가 촌놈이라 힘은 좋답니다!"
은주는 계면쩍어하면서
"네, 죄송합니다!"를 연발이다.
정호는 짐과 목발을 언덕에 두고 다시 내려왔다.
"자, 내가 한 계단 내려가서 업어볼테니
천천히 기대면서 업혀보세요!"
"아이구요 힘들지 않겠어요?"
하면서 멋쩍은 모습으로 그렇게 업혔다.
가벼운 여자 몸무게라 힘들지는 않았지만
다친 다리를 잡을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은주의
엉덩이를 잡았다.
물컹하는 느낌에 정호도 움찔한다.
여자 엉덩이를 잡은 데다 젖가슴이 등짝에
찰싹 달라붙어 야릇한 느낌으로 전해온다.
한 계단 한 계단 겨우 끝까지 올라와서
"휴~!
아니, 여기서 굴렀으니 안 죽은 게 천만다행입니다!
어쨌거나 여기 앉아서 잠시 쉬었다 갑시다!"
"네, 정호씨 힘드셨지요?
고생시켜 드려서 미안해요!"
"아이구요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계단 끝에서 둘이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때, 은주의 가방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내가 같다 드릴게요"
하고 정호는 재빨리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은주에게 들이민다.
"여보세요!
그래, 너 오늘 퇴원했다면서!"
"그래 은혜야!
여러 가지로 신경 써줘서 고마워~!
이제 정호씨와 집에 거의 다 왔단다."
그래 너는 지금 어디에 있냐?"
"응 병원에 가니까 간호사가 퇴원했다고 그래서
지금은 명수씨랑 경복궁 밤 나들이 나왔어!
여하튼 퇴원 후에도 몸관리 잘해라~!"
"그래 고마워 은혜야 명수 씨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해줘!"
그렇게 전화를 끊고 정호에게 말을 건넨다.
"은혜에게 전화가 왔는데요 명수 씨랑 경복궁
데이트 나왔다고 그러네요!"
"참 팔자 좋은 사람들이네요!"
하고 시큰둥하며 시내 풍경을 둘러본다.
그렇게 나란히 앉아 도심을 내려다보았다.
산꼭대기의 장점이라면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게 아닐까 싶어 정호가 말을 건넨다.
"다른 것은 몰라도 시내를 훤히 내려다 보여
도심 야경 구경하기는 좋겠습니다"
"네, 맞아요 정호씨,
퇴근길이나 시장 다녀오면서 여기에 앉아서
쉬었다 간답니다."
"그렇군요!,
사실 저도 예전에 관악구 봉천동 달동네에서
살았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꼭 옛날 살던 동네에 온 것 같습니다.
"아~!
정호씨도 이런 동네에 살아보셨군요,
"네, 맞아요 신혼 때부터 거기서 살았었고요
아들놈 군대 가서 사고로 죽은 후 그 흔적이
아른거려 답십리로 이사를 했고요
또 그 집에서 마누라가 병들어 저세상 가는 바람에
십여 년 전 면목동으로 이사를 왔고요
지금은 신내동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답니다."
"정호씨도 참 사연이 많은 인생이군요"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날이 어두워져서 둘이는 발걸음을 옮긴다.
도착한 곳은 산 꼭대기에 있는 오래된 이층집
단독주택 반지하 창고와 화장실이 딸린 단칸방이다.
"정호씨, 집이 누추하니 욕하지 마세요~!"
"아이구요 별걱정을 다 하십니다!
저도 예전에 이런 집에 살았었답니다."
키 큰 정호는 머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방이다.
어찌어찌해서 부축을 해서 싱글침대에 눕히고 보니
한쪽 벽에 시계는 벌써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은주씨, 저녁 시간이라 밥은 해 먹어야 하니
냉장고를 좀 열어볼게요~!"
"네~! 집을 오래 비워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그러게요 반찬에 곰팡이가 다 슬었네요!
은주씨, 3주씩이나 집을 비워서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제가 영천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좀 사 올게요!"
"네~! 고맙습니다, 제가 면목이 없네요!
그런데 이쪽 지리를 잘 알고 계시네요?
영천시장도 아시게요!"
"네, 지금은 연락처도 잊어버린 친구가
예전에 여기 천연동에 살아서 자주 왔었답니다!
"너무 늦기 전에 다녀올게요!"
"네~! 정호씨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알겠습니다~!"
정호는 대답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산길을 따라 터덜터덜 내려가는 정호,
"아무리 끼리끼리 만나는 게 인연이라지만
기구한 운명까지 어떻게 이리도 닮았을까!"
중얼중얼하며 풀 죽은 모습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마지막 5부도 일부 수정을 거쳐 내일 올라갑니다
첫댓글 마지막 5부 기대됩니다.
네,감사합니다 샷가스 선생님,
전문 유투버 낭독을 위한 작품이라
제목과 달리 순정소설로 써봤답니다.
사진 귀한 자료....와우
즐겁습니다 .
매번 관심과 공감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다음번 소설은 완성작 한편으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