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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묵상하다보면 사사 시대의 암흑기는
하나님을 떠난 인류의 종말론적인 현상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출애굽의 구원 역사와 그 노정의 광야 교회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얻기 위한 천로역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손을 빌어 행하셨던 애굽의 재앙과 출애굽의 구원역사, 그리고 광야의 노정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방불케 하는 구원의 모멘텀이었습니다.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시고 날마다 하늘의 만나가 내리고
마라의 기적과 므리바의 기적, 그리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반포되고
상막을 세워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기의 법, 그 율례를 완성하였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이 온전히 되었던 출애굽의 구원 역사는
종말론적인 구원의 서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졌던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은
모세의 다음 세대가 여호수아로 끝이나고 다른 세대의 종말적 현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가나안의 비전과 그 구원을 말하면서 가나안의 종말론적 상황을 간과한다면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향한 천로역정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율법을 돌에 새겨 세겜 언약을 세웠지만
여호수아의 다음 세대는 세겜 언약의 돌비를 잃어 버렸습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을 분배하였던 아론의 아들 대제사장 엘르아살은
영원한 제사장의 언약을 받은 그의 아들 비느하스가 있었지만
비느하스의 다음 세대는 사사 시대의 암흑기를 이루며 실로의 성소를 잃어버렸습니다.
비느하스의 마지막 모습은
레위인의 타락과 그로 말미암은 베냐민 지파의 도성 기브아의 참극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연합군과 베냐민 지파가 싸우는 벧엘 전쟁을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워 승인한 것입니다.
그 후 비느하스의 후손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이 아닌 이다말의 후손 엘리 제사장 시대 실로의 성소는 파괴되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사사 시대에 한번도 출현하지 않았고
가나안 땅의 이스라엘은 모세의 율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잃어 버리고
완전히 다른 세대의 사람들로 가나안의 토착화를 이루었습니다.
☞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삿2:8-17)
한편 하나님의 종 모세의 아들과 그 손자는 출애굽의 경험을 갖지 못한 채
단 지파의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의 타락상을 보였습니다.
☞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삿18:30-31)
이처럼 가나안 땅의 이스라엘, 곧 다른 세대는 그들의 조상이 경험하였던
유월절의 기적과 낮에는 구름 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사 시대 가나안 땅에서 유월절을 지킨 것은 요단을 건넌 후 여호수아 때에 지킨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유월절을 비롯한 3대 절기를 지키지 않았던 다른 세대의 이스라엘은
5대 제사를 비롯하여 각 지파의 레위인 기업은 보장받지 못하였고
한국 교회가 그토록 강조하는 교조적 십일조도 전혀 드리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의 십일조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남 왕국 유다의 히스기야 시대에 처음 종교개혁으로 드려졌으며
남 왕국 유다마저 멸망하고 바벨론 포로귀환 후 스룹바벨 성전에서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에 드려졌습니다.
그나마 말라기 시대는 십일조의 봉헌물 창고가 비었고
이스라엘 백성을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고 제사장은 봉헌물 창고의 십일조를 도적하였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드리는 교조적 십일조는
신약 성경의 후원을 받지 못하는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도 드리지 않았던 가나안 땅의 십일조입니다.
구약 시대 십일조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기업이었지만
가나안 땅의 레위인이 각 지파의 십일조로 살았던 시대는 성경의 고수로 단언컨데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각 지파의 레위인은 오랜 세월 다른 지파의 종살이를 하거나 유랑하였고
레위인의 참혹한 수난 시대는 훗날 바벨론 귀환 후 에스라 시대에 이스라엘의 지배층으로 부각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레위 지파와 평화의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사자가 되게 하였지만
말라기 시대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평화의 언약을 꺠뜨리고 심판의 경고를 받았습니다.
블레셋과 아벡 전투에서 실로의 성소가 파괴되고 놉 땅으로 피신한 제사장들은
사울 시대에 제사장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 한 사람을 남기고 모두 척살되었습니다.
가나안 시대를 비롯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율법, 곧 레위기법과 신명기법으로 살지 못하여 멸망하였습니다.
이렇게 구약의 성서지대는 모세의 율법을 잃어 버렸고 엘리 시대 성막이 파괴되었으며
솔로몬의 성전은 당대에 우상의 전당이 되었고 담무스와 성전을 등지고 태양을 숭배하는 모습으로
바벨론에 의해 무너지고 전소되었습니다.
신약 시대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 성전이라 불릴 정도로
헤롯의 이스라엘 통치를 위한 수단이었고 로마에 의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위에 세워진 신약의 교회는 율법과 복음의 긴장과 갈등 구조를 가졌으며
바울의 로마서는 율법을 평정하고 복음의 위대한 승리를 기술하였습니다.
그 후 신약 시대의 교회 역사는
서방교회와 동방교회, 그리고 그리이스 정교를 거친 후 종교개혁으로 개신교를 탄생시켰고
장로교를 비롯한 침례교와 감리교와 성결교 등 제 소견에 옳은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제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던 사사 시대의 이념은
오늘날 소종파의 각종 이단을 능가하는 인본주의 신앙의 무속화를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깨어 있으면 있을수록
다니는 교회를 위한 헌신과 봉사는 바알을 여호와로 섬기는 패러다임에 농락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니는 교회가 없었던 초대교회는
주 예수의 복음을 각처에 전파하는 교회로서의 예수의 하나님 나라, 그 본을 보였습니다.
선포된 말씀에 충성하지 않고
교조적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한국 교회는 실로 "대면 예배"라는 코로나19의 도전, 그 사활에 직면하였습니다.
예배 중심의 교회가 아니었던 초대 교회는
로마 황제의 10대 극악한 박해를 견뎌내고 카타콤의 지하교회를 세웠습니다.
소위 다니는 교회의 대면 예배는 집합금지 명령의 덫에 걸려
한번도 가보지 않는 나라의 다른 세대를 적색광풍의 쓰나미로 그 참상을 겪고 있습니다.
대면예배 적발, 법적조치, 고발, 구상권 청구라는 초강수는 한국의 기독교 역사상 처음 겪는 일이요,
정치 방역의혹으로 말미암은 기독교 탄압의 실상으로 이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 19의 방역으로 말미암은 무소불위, 그 전가의 보도는
신천지를 격파하였고 전광훈 목사를 옥죄였으며, 그 기세로 한국 교회를 코로나 방역의 적폐로 몰았습니다.
한국 교회의 정통과 사이비, 그 임계지점의 사각지대를 강타한 전가의 보도는
개혁과 혁신이 아닌 탄압의 벼랑끝 낭떠러지로 몰았습니다.
코로나 19 사태가 장기화 되면......
위기의 한국 교회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것입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의 낯선 광경은
자유의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보수를 적폐청산으로 간주하는 정치일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으로 이념의 다른 세대는 자유의 가치보다 평화의 가치를 더 높이며
좌파 독재 시대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좌파의 민중사관이 낳은 독초는 김씨, 설씨, 배씨 등의 역사 왜곡과 날조로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정신과 박정희 대통령의 부국강병과 박근혜 대통령의 자유통일을 말살하고 있습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의 적색광풍은 일지기 좌파의 진지전을 구축하여
법원의 우리법 연구회를 비롯하여 기업의 민주노총, 방송의 언노련, 교육의 전교조를 양산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로 진출하여 일부 천주교와 불교와 기독교를 좌경화시켰으며
진보연대와 참여연대 등 좌파 사회단체의 꽃물결을 이루었습니다.
촛불의 빛무리를 만든 좌파의 연대는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을 불법적으로 행하였으며
정권을 창출하여 국정 교과서를 파기하였으며 사립 교육을 평정하였고
군인권위와 공관병 갑질로 휘두른 전가의 보도는 기무사를 없애고 군을 완전 장악하였습니다.
공관병 갑질의 모략은 육군대장의 옷을 벗겼으며
중대장 이상 공관병을 둔 모든 군지휘자는 복지부동하였습니다.
또한 코로나 19의 정치 방역으로 예배의 바이러스 감염온상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집합금지 명령을 하였으며
대면예배라는 낯선 상황을 만들어 적발과 고발과 구상권 청구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법원과 경찰과 약사는 쉽게 좌파의 수족을 만들었으나
좌파의식으로 길들지 않는 검찰과 의사는 사회주의로 가는 길의 마지막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위급한 코로나 방역에도 불구하고 의사 협회의 거친 저항은
한반도의 사회주의로 가는 길의 그 마지막 보루가 되었습니다.
촛불에 불타지 않는 의사협회의 거친 저항은
허울뿐인 K방역의 성공을 반전시킬 마지막 카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이념과 박정희 대통령의 부국강병과 박근혜 대통령의 자유통일을......
역사의 기록에서 지우려는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다른세대와 다를 바 없습니다.
참으로 방역의 실패에 대한 당국의 반성은 전혀 없고
코로나 19의 확진자는 인권이 상실되고 방역방해의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범죄자가 되었습니다.
군부독재보다 더 사악한 좌파독재는
사람이 먼저라는 인민의 탈을 썼습니다.
혼용무도한 패역한 세대는
모두가 멸망의 심판을 자초하는 다른 세대의 길입니다.
성서지대의 다른 세대, 그 가나안의 토착화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잃어버렸고
대한민국의 다른 세대는 적색광풍의 무풍지대, 그 이념의 촛불에 자유의 씨앗이 불타고 있습니다.
성서지대의 다른 세대가 적용된 작금의 패역한 세대는
성서지대의 장래 세대가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회복할 것입니다.
성서지대는 다음 세대를 착취한 다른 세대의 대안으로
장래세대의 묵시로 패역한 오늘의 세대를 극복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전도서는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며
새 것이라 할 것이 없는 장래세대를 헛되고 헛되다며 헛되지 않는 창조주를 기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또한 시편 기자는 적막하고 빈궁한 인생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영원히 계시고
주에 대한 기억은 대대에 이르며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며
하나님의 행하신 그 모든 행사는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참으로 다음 세대를 영원히 빛낼 장래세대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과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충만하고 가득할 것입니다.
☞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9)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2:14)
우리 주 예수의 얼굴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받은 주의 성도는
다음세대를 영원히 잇는 장래세대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주역이 될 것입니다.
참된 성도의 기도는 환난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며
영원히 계시며 영존하시는 하나님을 깨닫는 신앙고백입니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그의 높은 성소에서 굽어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살펴보셨으니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성찰하였습니다.
다른 세대가 만들어 가는 위험한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며
그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주의 백성은 영생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종말론적인 다른 세대에 대한 경계의 말씀으로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다고 말씀하시며 계시의 종결을 선언하였습니다.
영성과 직통 계시를 추구하는 인본주의 무속 신앙은
성령의 충만에 대한 종말론적인 바울의 경계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많았지만 율법을 반포한 하나님의 종은 모세뿐이며
구약의 수 많은 선지자들 있었지만 엘리야와 엘리사의 권능은 고유(固有)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죽은 자를 살리신 제자는 베드로뿐이며
스데반과 야고보는 성령의 충만으로 순교하였고
빌립 집사는 성령의 충만으로 성령을 받게 하는 안수를 행하지 않았으며 오직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를 다른 세대의 길로 가게 하는
신사도 운동과 알파 영성, 그리고 성령의 임파테이션은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교훈의 길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천명한 바
방언으로 하는 기도는 계시 언어가 아니며 무속적 소리현상일 뿐입니다.
영성 신앙과 그 신학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따른 사사기의 암흑을 낳은 다른 세대의 길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영성 신앙은 성서지대의 다른 세대요,
종말론적인 미혹의 영에 유혹된 바벨론 교회 현상일 뿐입니다.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에 오염된 한국 교회의 지수는 거의 90%이상이며
코로나 19의 시련으로 오직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인내의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각색된 설교로 성경을 이해하는 신앙은 오히려 이단처럼 진리의 말씀을 대적하는 덫에 걸리지만
말씀 묵상의 경지로 성경을 이해하면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복음으로 깨달을 것입니다.
각색된 설교로 강조되는 십일조는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사이비가 되고
성경대로 말씀 그대로 주장하면 이단이 되는 애물단지, 그 자충수가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사회와 교회는
사사시대의 그 다른 세대의 늪에 깊이 함몰되었습니다.
이렇게 다른 세대의 패역한 현실 상황에서 구원받을 장래세대에 대한 깊은 고민은
오직 말씀의 묵상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말씀과 구원의 복음을 듣고 마침내 깨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