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글은 몇 년 전부터 반재경 전도사님이 작성한 글로, 매년 교정 및 첨삭하여 올리고 있습니다. ]
(전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살다 보면, "아주 적절한 때"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감이 올 때가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봐야 이해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밥도 적당히 뜸이 들어야지 너무 빨리 불을 꺼도 안 되고, 너무 늦게 불을 꺼도 안 됩니다. 조금 일찍 딴 감은 또 얼마나 떫습니까.... 이처럼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습니다. 때를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를 "미숙아"라고 하듯이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는데 시작하는 일들도 전부 "미숙 未熟"의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이렇듯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느낀다면 그때는 뿌리를 내리는 기간입니다. 제가 캐리스 바이블 칼리지에서 배운 것 중, 저의 뇌리에 깊이 박힌 예화가 하나 있는데 바로 대나무의 예화입니다. 대나무는 5년간 뿌리만 내린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뿌리를 내리는 일을 마치면 쑥, 쑥 자라기 시작하는데, 자라는 속도가 너무 빨라, 눈에 보일 정도라고 하네요. '우후죽순'이란 말이 거기서 나왔습니다. 이미 깊이 내린 뿌리가 필요한 영양분을 마구 빨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자연적인 시간은 말 그대로 시간이 가면 채워지지만, 영적인 시간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봄이 가면 반드시 여름이 오고, 10달째는 아이가 반드시 나옵니다. 그러나 영적 성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간이 간다고 모두가 성숙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옛사람의 죽음과 새 사람의 탄생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십자가에서는 그것을 배웁니다. 복음의 반쪽이지요. 또한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우리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나머지 반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자기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내가 죽어야지...." 하는데 그래도 안 되니 결국 성장을 포기한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는 자기 정죄라는 쳇바퀴 속에서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하며 고생하고 있습니다. (아.... 종교의 굴레 속에서 힘들어하던 저의 과거가 생각나네요)
제가 보는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의 장래는 매우 밝습니다.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때가 되어 그분이 십자가를 지셨고, 또 때가 되어 부활하셨듯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 전체에 걸쳐 약속하신 마지막 대 부흥이 시작될 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필요한 일들이 있습니다. 대나무가 오랜 시간 뿌리를 내려 땅속 영양분을 위로 보내주듯, 지금은 대부흥 때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각자는 자기 자신을 준비하고 사역자들은 그때를 위한 기초를 다지는 등,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지금 이 시간 뿌리를 내리는 일에 충실히 행합시다. 뿌리도 나무 일부가 아닙니까? 그런 시각으로 보자면 지금 우리 자신을 준비하는 이 시간도 부흥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준비하는 시간은 낭비되는 시간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