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3 항쟁의 교훈
4월은 잔인한 달이기도 하다. 오늘은 70년 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으로 이듬해 4.3 민중항쟁이 시작된 날이다. 수년간 이어진 군경의 토벌작전으로 제주도민 수만 명이 희생당한 미증유의 사건이 시작된 날이다. 북에서 건너온 서북청년단과 대동 청년단은 조병옥의 선동으로 양민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도륙했던 그 비극의 역사를 어떻게 일일이 다 설명할 것인가?
당시 서북청년단과 대동 청년단에 속한 이북청년들은 나이가 어렸다. 교육수준이 거의 무학에 가까웠다. 이들은 제주도는 작은 모스크바이며 제주도민은 거의 공산주의에 물들었으므로 의심이 가면 일단 즉결 처분하라는 조병옥의 말에 크게 고무된 채 양민학살이라는 피의 광풍에 망나니처럼 날뛴다. 심지어는 공비내통자로 내몰린 군중들 앞에서 시아버지로 하여금 며느리를 강간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서슴없이 저지를 정도로 극악무도했었다.
양민을 빨갱이로 중상하...고 모략하는 방법은 쉬웠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간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연행한 뒤 고문을 가해서 억지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다. 성기를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지거나 고환을 으깨는 방법 등 일제강점시기에 친일경찰들이 하던 짓거리를 그대로 답습해서 죄도 없는 양민을 빨갱이로 만든 후 이들로 하여금 죄도 없는 동료와 같은 마을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자백시켰던 것이다. 수백 명이 이런 식으로 잡혀 들어가고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이 모슬포 동굴이나 다랑쉬 동굴이나 이런 저런 곳으로 트럭에 실려가 총살당했던 것이다.
4.3 민중항쟁을 빨갱이들이 선동으로 일어났다는 주장은 아직도 극우보수일파에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자료가 당시 4.3 항쟁의 발생 원인을 적나라하게 증명하고 있다. 지금도 극우보수주의자들은 민주인권을 주장하는 선량한 대한민국국민을 걸핏하면 종북이니 친북세력이니 공산주의동조자니 하면서 색깔론에 미쳐있다. 박사모와 친박 진영과 어버이 연합과 엄마부대 대령연합회 무슨 전우회 등 숱한 보수단체는 자신들의 구미에 틀어지면 반공주의자건 자유민주주의자건 가리지 않고 종북주의자로 몰아댄다.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런 성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들의 DNA 속에 이런 잔인하고 무자비한 유전인자가 내재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일제 강점 36년이 만들어낸 역사의 산물일까? 이승만 시절에는 이길 자신도 없으면서 시도 때도 없이 북진통일을 외쳤었다. 옹진반도로 장산곶 등지로 특공부대를 수시로 침투시켜 군경을 죽이고 납치하는 일도 벌렸다.
신성모 국방장관은 대한민국 군대의 우수한 전투력을 과장 발표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남침의 조짐은 많았다. 이승만은 평소에 신성모를 불러 '만약에 북한과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되겠나?' 라는 질문을 자주 했다. 신성모는 '각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국군이 100% 이깁니다. 아침은 개성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의주에서 먹을 겁니다.' 라고 자신만만하게 얘기를 했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터지자 국군은 힘도 쓰지 못하고 괴멸된다. 신성모는 이승만에게 거짓보고를 한다. '각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승리하고 있습니다. 국군은 북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보고서가 서울이 함락된 뒤 북한에게 넘어간다. 그때부터 북한은 이 보고서를 근거로 북침설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홍수처럼 밀려오는 북괴침공군 앞에 국군은 파죽지세로 무너진다. 6월 27일 새벽4시의 국무회의에서 신성모는 전황에 대해서 아는바가 없다고 발언했다. 그런 뒤 이승만과 신성모는 서울을 사수하라고 방송한 뒤 먼저 달아나고 한강다리를 폭파하여 수많은 서울시민을 적치 하에서 고통 받게 만들고 말았다. 이런 비열한 이승만을 여전히 국부라고 우기는 일파도 적지 않다.
이제 우리는 배신의 역사를 청산해야한다. 나라를 망친 폐족을 응징할 때가 되었다. 정경유착의 뿌리를 온전하게 제거할 천우신조의 기회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색깔론을 앞세워 분열주의를 조장하던 악마의 무리를 척결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위록지마의 암흑시대를 종식시켜야하는 것이다.
4.3 직후 제주도는 남자가 거의 사라졌다. 살아남은 소수의 청년은 살기 위하여 자원입대했고 더러는 일본으로 밀항하여 목숨을 건졌다. 온 마을은 여성들뿐으로 농사조차 짓기 힘든 상황이었다. 초근목피로 생명을 이어가며 해녀들이 바다에서 건져낸 해산물로 목숨을 이어가야했다. 이런 황폐한 대지가 이제 낙토로 변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학살 현장이던 오라리와 중산간 부락이 어엿한 국제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4.3으로 가족들을 잃어버린 수많은 제주도민은 아직도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 응어리를 누가 어떻게 풀어줄 수 있을까? 국가원수로는 유일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주도를 찾아와 4.3 제단 앞에서 사과를 한 적이 있었다. 4.3은 미군정과 극우반공주의자들과 친일매국노 일당과 이승만 부패정권이 한통속이 되어 제주도를 희생양의 번제 제물로 삼은 국가주도의 최악의 범죄행위였다. 이를 교훈 삼아서 동족끼리 중상 모함하는 야만성을 탈피하고 수치스러운 역사에 종지부를 찍어야한다. 이제 어둠의 날이 가고 새 시대가 밝아오고 있다. 정의와 인권과 자유와 민주가 숨 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자랑스러운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