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떨기 꽃으로, 스러진 넋을 기린 낙화암
이헌 조미경
2026년 하계 문학기행은 공주와 부여를 1박2일의 일정을 잡아 첫째 날은 공주를 돌아 보고 두 번째 날은 부여로 왔다. 부여에 도착 점심 식사 후 소화를 시킬 겸 산책을 겸한 낙화암을 보기 위해 걸었다.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옛사람들이 산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을 그곳으로 향했다. 산속에서는 까치가 몰려나와 암수 서로 정답게 노래하고 있었는데, 수백 년 이상 된 나무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곧게 뻗어 있었다. 낙화암 가는 길 양 쪽에,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자연의 한없는 선물에 감사한다. 코를 킁킁대며 나무들이 내뿜는 산소를 마시니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날아갔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낙화암에 관한 이야기를 실제 눈으로 보고 느끼니 감동이 다르다. 이렇듯 역사의 한 장면을 실제 피부로 느끼고 공기를 마시면서 지난 시간을 되짚으며
앞으로 우리가 배워야 하고 간직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알아가는 시간이다. 비록 부여는 역사의 한 귀퉁이에 남아 있지만 그 시대의 생활상은 남아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듯 하다.
나무들이 숨을 쉴 때마다 공기는 한층 맑아지고 향기가 알싸한 소나무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가는 곳마다 쉬어 갈 수 있는 정자는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높은 곳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 좋을 것 같았다.
길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에도 긍녀들이 흘린 눈물이 고여 동글게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좁은 산길을 따라 두려움에 떨었을 소녀들의 넋이 발걸음을 붙드는 듯, 길을 걷는데 자꾸만 붙잡는 느낌이었다.
낙화암은 깎아 지른 듯한 높은 곳에 위치. 그곳에는 커다란 바위가 버티고 서서 마치 백마강의 물길을 붙잡는 것처럼 좁은 바위틈으로 식물들이 자신만의 멋을 부리며 자라고 있었다, 백화정 정자에 오르려 하니 살짝 두려움이 몰려온다. 길이 험하고 정자는 높은 곳에 서 있는데,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미끄러질 것처럼 돌멩이가 많았다. 뾰족한 바위에는 그곳을 다녀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정자에 올라 백마강을 바라보니 하늘에는 구름도 없고 바람만이 간간이 불어와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씻어 주었다. 유적지를 따라 걸으며 흘린 땀은 등을 적시고 머리카락을 적셨다. 산 위에 올라 백화 정 정자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을 바라보았다.
강은 궁녀들의 눈물 자국을 기억하는지 모르는지 조용하게 흐르고 있다. 강가에는 푸른 나무들이 눈을 즐겁게 하였다. 마루로 만든 바닥에 다리를 쭉 펴고 앉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그윽한 눈길로 멀리 시선을 던지니 옛 사비성의 생활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전쟁을 피해 막다른 골목으로 숨어든 아리따운 소녀. 채 피지 못하고 강물로 뛰어들어 남은 자의 가슴에 회한을 남긴 궁녀들. 전쟁이라는 아픈 상처는 죽어서 고귀한 넋이 되었기를 소망한다.
낙화암은 충남 부여의 백마 강변에 있는 바위이다. 백제의 의자왕이 당나라 군사에게 패하게 되자, 3천 궁녀가 쏟아져 나와 이 바위에 올라,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진 데서 유래한다. 음양의 논리를 떠나 여자를 비너스로 표현하듯, 아름다움. 그 자체이므로 꽃에 비유한다. 그러므로 절벽 아래로 꽃잎처럼 떨어진 궁녀들의 모습을 보고, 낙화암이라 이름 지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낙화암의 아름답고 수려한 경관은 자연이 주는 최상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 주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좋은 것을 느끼고 후대에 물려 주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그것은 문학으로 그리고 예술로 승화시켜서, 많은 사람이 즐기고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낙화암에. 앉아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시 한수 읇 으면 어떤 글이 나올까.
경치는 아름답고
풍광은 계절에 따라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으로
현란하게 맴도는 머릿속에서
글들이 서로 엉키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
낙화암을 오르는 일은 행여 발이 미끄러질까
매우 조심스러웠다.
좁은 바위 사이로 발을 한발씩 떼고 다시 오르고
그리고 나서 나무 계단을 올라 백화즹에 도착.
이 모든 일이 경이로운 일이다.
궁녀의 한서린 낙화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