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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라반과 품삯을 정함
창 30:25-36
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26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28 또 이르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29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가축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31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32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33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34 라반이 이르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35 그 날에 그가 숫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양 중의 검은 것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36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 떼를 치니라
창 30:25-36 / [라반과 흥정하는 야곱] 야곱은 요셉을 낳고 나서 라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26) `외삼촌 이제 저는 아버지가 계시는 고향으로 가야겠어요. 제가 일한 대가로 얻은 아내들과 자식들도 함께 데리고 떠나야겠습니다. 제가 그 동안 외삼촌을 위해서 얼마나 일을 많이 하였는지는 외삼촌이 잘 아시지요 그러니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27) `내가 점을 쳐보았더니 내가 이렇게 재산이 많이 늘어난 것은 여호와께서 너 때문에 내게 복을 내리신 것이더구나. 28) 그래, 내가 얼마만큼 주어야 하겠니. 말해 보아라. 네가 말한 만큼 다 주마' 하고 라반이 대답하였다. 29) 야곱이 대답하였다. `그 동안 제가 얼마만큼 외삼촌 일을 하였는지는 외삼촌도 잘 아시지요. 제가 외삼촌의 가축 떼를 돌보는 동안 그 가축이 얼마나 많이 불어났는지는 외삼촌도 잘 아실 겁니다. 30) 처음에는 외삼촌이 제게 맡기신 가축이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엄청나게 불어나지 않았습니까? 제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여호와께서 외삼촌께 복을 내리셨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도 제 몫을 받아 가정을 오붓하게 꾸려야하지 않겠어요? 지금이 바로 그럴 때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31)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니?' 하고 라반이 말하자 야곱이 이렇게 제안하였다. `예, 저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아요. 다만 저의 제안을 따르시겠다고 대답해 주신다면 계속해서 외삼촌의 가축 떼를 돌보겠어요. 32) 저의 제안은 이렇습니다. 제가 오늘 외삼촌 가축 떼 중에서 양(羊)은 점이 있는 것과 얼룩무늬 있는 것과 검은 것, 그리고 염소는 점이 있는 것과 얼룩무늬가 있는 것을 골라 모두 제 품삯으로 가져가지요. 33) 나중에 외삼촌이 보시면 제가 정직하게 골라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혹시 염소 가운데서 점이 없는 것이나 얼룩무늬가 없는 것, 또 양 가운데서는 점이 없는 것이나 얼룩무늬가 없는 것이나 흰 것은 모두 외삼촌의 가축 떼 중에서 훔쳐 낸 것이라고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34) `좋다 네 말대로 하마' 하고 라반이 대답하였다. 35) 라반은 그날 숫염소 가운데서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이 있는 것, 그리고 암염소 가운데서는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을 빼돌려 자기 아들들에게 내주어 보살피게 하였다. 36) 그러고 나서 야곱이 사는 곳과 자기가 사는 곳을 사흘 길쯤 떨어지게 하고는 자기 가축 떼 중 나머지를 야곱에게 맡겨 보살피게 하였다.
야곱은 요셉을 낳고 나서 라반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한다고 이야기하며, 그동안의 일했던 품삯을 요청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25-27) 야곱은 요셉을 낳고 라반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자기를 좋게 여긴다면 계속 머물러 달라고 합니다. 라반은 야곱의 개인으로서의 능력이나 수완이 필요해서 뿐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감지하고 그를 다시 붙잡아 두려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훈련만 시키시는 분이 아니라 벧엘에서의 야곱의 서원을 기억하시고 야곱이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시고 재물의 축복을 몰고 오는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것을 그와 관계하는 사람이 알게 하십니다.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28-30) 라반은 야곱을 붙잡아두기 위해서 품삯을 야곱에게 정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이후에 품삯을 열 번이나 속여 야곱을 계속해서 붙잡아 둘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야곱이 라반에게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되었습니다.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31-36) 야곱은 “외삼촌께서 내게 품삯으로 아무 것도 주시지 않아도 되고 단지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 내 품삯이 되게 해달라”고 제안을 합니다. 이는 라반의 탐심과 간교성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야곱은 자신에게 전적으로 불리한 조건부 비율 분배 방식으로 제안합니다. 라반은 야곱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 날로 야곱에게 돌아갈 점박이들을 모두 빼돌려 자기 아들들에게 맡깁니다. 점박이 동물이 단색 동물에게는 생물학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혹시 은밀히 가져갈까봐 사흘 길 갈 만큼 야곱을 멀리 떼어 놓고 양들을 치게 합니다. 약삭빠른 조치를 합니다.
적용: 야곱이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라는 고백을 통해서 당신은 무엇을 배웁니까? 당신은 야곱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는지 묵상해 보세요.
우리의 삶이 가장 힘들 때, 전혀 알 수 없는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침묵은 참으로 야속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위대한 일을 이루고 계신다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그 시간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성경 속 인물들의 결과만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하나님의 침묵을 견디어 냈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침묵하는 동안 부지런히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다면 오히려 침묵의 시간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게 되면 왜 고난이 왔는지, 그 해답을 알게 됩니다.
< 설 교 >
네 품삯을 정하라
돛단배는 돛을 달아야 앞으로 갑니다. 자동차나 비행기도 엔진을 가동해야 앞으로 갑니다. 돛단배의 돛과 닻을 내리면 배는 서고 자동차나 비행기도 엔진을 끄면 섭니다. 그러나 세월은 돛을 달지 않아도, 엔진을 가동하지 않아도 잘 갑니다. 세월은 끌 수도 없습니다. 다른 것들은 끄면 멈추는데 세월은 끄는 방법이 없습니다. “세월아, 멈추어라!” 하며 아무리 막아도 세월은 계속 갑니다. 여름도 가고, 가을도 가고, 인생도 갑니다.
야곱이 어머니의 애정 어린 음성을 들은 것이 바로 어제 같습니다.
“아들아, 외갓집에 가서 몇 날만 기다려라. 네 형 에서의 분노가 풀리면 내가 사람을 보내어 너를 오게 할 테니 몇 날만 가서 살아라.”
“엄마, 그럴게요.”
그러고 하란의 외갓집에 와서 얹혀산 지가 십 수 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어머니의 기별이 없습니다. 지금 야곱에게 가장 큰 문제는 자식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 되는 것도 아닙니다. 형의 칼에 죽지 않아야 되는 것인데, 형은 20년 세월이 다 되어가도 복수의 칼을 거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기별이 없는 것입니다. 야곱은 고향 하늘을 보면 때때로 가슴이 철렁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야곱의 아들은 요셉까지 더하여 열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딸 디나도 태어났습니다. 야곱의 딸은 디나 하나뿐이 아닙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듯이 성경에는 보통 여자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너무나 큰 인물인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 사고를 쳤던 디나와 같은 특별한 여자의 이름만 기록된 것입니다. 창세기 46장 7절에 보면 야곱의 딸들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들만 많은 것이 아니라 딸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착잡했습니다.
이제까지 18년 가까이 처가살이를 했습니다. 14년까지는 아내를 얻기 위해 일했고, 15년째부터는 품삯을 결정하고 일했는데 창세기 31장 7절에 보면 외삼촌이 품삯을 열 번이나 속였습니다. 외삼촌이자 장인이니 고발할 수도 없고 농성할 수도 없어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야곱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덕택에 라반은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 때문에 복을 주셔서 거부가 되었는데도 라반은 야곱에게 대가를 치루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야곱이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내가 이곳에서 10년, 20년을 더 살아도 희망이 없겠구나.’ 하며 하나님 앞에 깊이 생각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인을 주십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말합니다.
“외삼촌, 저는 이제 고향으로 가겠습니다. 제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가겠습니다.”
라반이 충격을 받습니다. 야곱이 가면 축복도 따라가서 자기 집이 안 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품삯을 열 번이나 속여도 간다는 말을 하지 않던 야곱이 간다고 하니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야곱! 그건 안 돼. 자네가 나를 좋게 여기거든 여기에 있게. 이제 자네가 무엇을 달라 하든 다 줄 테니 여기에 있게. 그리고 자네 임금을 자네가 정하게.”
“외삼촌, 제가 외삼촌을 어떻게 섬겼는지 아시지요?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외삼촌의 재산이 적었는데 하나님께서 저의 공력을 따라 축복하셔서 외삼촌의 소유가 떼를 이루고 이렇게 거부가 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저는 언제 제 집을 세우겠습니까? 저는 지금 집 한 채 없는 알거지인데…….”
“알았네. 자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줄 테니 여기에 있어 주게. 무엇이든지 자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주겠네.”
그때 야곱이 하나님께 받은 사인을 말합니다.
“외삼촌, 이렇게 이렇게 해 주시면 다시 외삼촌의 양을 치고 먹이겠습니다. 무엇을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게.”
그래서 그대로 하니 잠시 잠깐 사이에 야곱에게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 라반의 재산이 야곱에게 옮겨져서 야곱이 거부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가슴에 잔잔하게 담아 주시는 보석 같은 교훈이 많습니다.
먼저는, 생각 없이 일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아무리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수고의 떡을 먹고 고생의 물을 마시며 땀 흘려 일해도 발전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야곱이 자식을 보는 기쁨에, 아내와 사는 기쁨에 그냥 일만 하고 살았다면 그의 일생은 머슴살이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게 아닌데……. 내가 이렇게 살아서 앞으로 어떻게 되나? 10년 뒤, 20년 뒤에 내가 어떻게 되나?’ 하며 깊이 생각하니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일하는 것도 중하지만 더 중한 것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느 회사에서 신입사원 교육 때 회사를 구경시켰습니다. 그런데 한 큰 방에 들어가니 여자가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저분은 지금 여기에서 뭐 하는 겁니까?”
“저분은 우리 회사에서 제일 큰 일을 하는 분이네.”
“아무것도 없는 이 방에서 무얼 하십니까?”
“생각을 하고 있다네. 어떡하면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는 물건을 만들지, 어떡하면 우리 회사가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한다네. 작년에도 저분의 아이디어 때문에 우리 회사가 30억 원의 이익을 얻었다네.”
일하는 것도 중하지만 생각하는 것이 더 귀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둘째아들은 아버지 집에서, 좋은 집에서 배불리 먹고 좋은 옷을 입으며 살아도 그 삶이 권태로웠습니다. 아버지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아버지의 영향권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쟁취하듯이 아버지에게서 재산을 빼앗아 먼 나라로 이민을 가 젊음을 마음껏 발산하며 살았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며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았습니다. 사람은 제약을 받지 않으면 본능대로 사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아들이 그렇게 허랑방탕하다가 폐인이 된 것입니다. 게다가 그 지역에 흉년이 들어 취직할 일터가 없어 굶어죽을 지경이 되자 그는 할 수 없이 돼지치기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돼지를 아주 더러운 것으로 여겨 먹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돼지치기는 사람취급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돼지치기가 되어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고 사는데 그마저도 부족하여 늘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니 그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배불리 먹는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부잣집 아들인 내가 어쩌다 이렇게 돼지치기가 되었는고! 어쩌다 내가 늘 굶주린 배를 붙잡고 서럽게 사는 신세가 되었는고! 그래, 이제라도 내 아버지께 돌아가자. 가서 아버지께 이렇게 말하자.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어요. 배가 고파 왔으니 불쌍히 여기시고 아들이 아닌 품꾼의 하나로 받아 주세요.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품꾼의 하나로는 받아 주시겠지.’
그는 용기를 내어 집으로 갑니다. 아직 동네 입구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동네 어귀에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가 달려와 울며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어요. 너무 부끄럽고 죄송해요. 저를 아들로 맞아 달라는 것이 아니에요. 품꾼의 하나로만 써 주세요. 배가 고파서 왔어요.”
아버지가 종들에게 말합니다.
“여봐라! 제일 좋은 옷을 갖고 와서 입혀라. 손에 가락지를 끼워라. 신발을 신겨라.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여라. 죽었던 아들이 살아왔구나. 잃었던 아들을 찾았구나.”
그래서 그 아들이 잃었던 것을 다 회복했습니다.
만일 그가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게 내 팔자구나.’ 하며 돼지치기로 인생을 끝냈을 텐데, 깊이 생각하니 새 출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김유신 장군이 한때 기생에게 빠져 자기 젊음, 에너지, 힘, 시간을 탕진했습니다. 그러다 깊이 생각합니다.
‘이렇게 나라가 어려운데 사내대장부로 태어난 내가 어쩌다 여자의 종이 되어 인생을 망치고 있는고! 이건 내 길이 아니다.’
그래서 결단하고 다시는 그 기생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말을 타고 가다 졸았는데 말이 습관적으로 그 술집 앞에 가서 섰습니다. 그 기생이 뛰어나와 “서방님!” 하며 달라붙었습니다. 유혹을 받아 마음이 흔들렸지만 ‘지금 흔들리면 나는 끝이다.’ 하며 칼을 뽑아 말의 목을 치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갔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일으킨 위대한 장군이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마가복음 5장에 보면, 열두 해 동안 피를 쏟는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나옵니다. 용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다녔지만 돈만 쓰고 오히려 병은 더 깊어졌습니다.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내 병을 고치실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내 병 고치는 것이 쉬울 거다.’ 하고 예수님을 생각하니 용기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군중 속을 헤치고 예수님께 다가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의 능력이 흘러 병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만일 그 여자가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혈루증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이 성전 안을 거니시는 주님의 옷자락을 잡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주여!’ 하고 주님을 붙잡을 때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래 전, 우리 교회의 한 집사님도 혈루증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피가 흐를 때마다 지혈제를 사용하며 견뎠는데, 하루는 지혈제를 써도 안 되니 기도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사택으로 왔습니다. 저희 가족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집사님이 다급히 들어와 무릎을 꿇고 “목사님, 피가 멈추지 않습니다. 지혈제를 써도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식사하다가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집사님을 돌아보셔서 그 시간에 병을 깨끗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 후로 집사님의 샛노란 얼굴이 밝아지고 달덩이처럼 되었습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하면 몸에도, 가정에도, 삶에도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가슴 아픈 기사를 보았습니다.
한 부인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쓰러져 죽었습니다. 죽은 지 3,4일이 되어 냄새가 나는데도 세 살과 여섯 살 먹은 어린 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엄마! 배고파. 왜 안 일어나. 엄마! 배고파.” 하며 울고 있었답니다. 만일 이웃 사람들이 몰랐다면 그 아이들은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냄새가 진동하니 이웃이 신고를 하여 경찰이 문을 따고 들어가서 보니 이미 부인은 죽어 있었고 방바닥에는 술병이 널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기사 앞부분을 볼 때는 당장 그 아이들에게 밥도 사 먹이고 도움도 좀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기사를 보니 아이들의 아버지가 있어서 그 생각을 접었습니다. 그 부인이 심한 부부싸움 끝에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와 방 하나를 얻어서 살았답니다. 그러다 세상을 한탄하던 그 부인이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만일 그 부인이 예수님을 믿었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기도하지, 그렇게 술을 마시고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남편이 예수님을 믿었다면 아내의 가슴을 그렇게 아프게 하는 남편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생각하면 그렇게 살지 않을 것입니다. 생각을 깊이 하면 남편은 남편 자리에, 아내는 아내 자리에, 자식은 자식의 자리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깊이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셔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길을 열어 주십니다.
시편 92편 5절에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충 생각하셔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시편 139편 2절에는 “주께서……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깊이 생각하면 우리의 생각을 통찰하시고 새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매일 일기도 쓰고 생각도 하지만 그 정도의 생각으로는 안 됩니다.
야곱처럼 내가 오늘까지 살아온 과거를 돌이켜 보고, 현재 나의 모습을 살펴보고, 앞으로 10년, 20년 후의 나의 모습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저희 아이들에게 이 말은 꼭 합니다.
“아들(딸)아, 지금보다 10년, 20년, 30년 뒤를 생각해라. 갈수록 좋아야 그게 좋은 길이야. 지금은 좋은데 갈수록 초라하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야. 직장이든, 사업이든 인생의 길이 갈수록 쇠퇴하는 것은 좋은 게 아니야. 지금은 어려워도 갈수록 좋은 게 좋은 거야.”
여러분, 미래를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서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도 잘 달려오셨지만 다시 새 출발(New beginning)하셔서 여러분의 삶이 보석처럼 빛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다음으로 얻게 되는 교훈은 하나님의 축복은 언제나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자식을 얻은 것 말고는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자기 형 에서가 여전히 복수의 칼을 거두지 않았고, 자기는 20년 가까이 고생하며 살았어도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장인어른에게 열 번이나 사기를 당했고 자기 아내들은 늘 서로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함께하셨습니다. 이제 조금 지나면 그 축복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야곱이 “야!” 하며 금의환향하게 됩니다.
여러분, 원하는 길이 17년간 열리지 않았습니까? 기도하는 제목이 20년이 다 되어도 응답이 없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그대로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야곱이 열 번이나 사기 당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한꺼번에 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여러분의 억울함을 풀어 주십니다. 저의 억울함을 풀어 주십니다. 요셉의 억울함도 풀어 주셨습니다.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덮어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강간 미수범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으로 감옥에 들어가는 창피를 당하지만, 하나님께서 요셉의 나이 서른에 그를 총리로 세우셔서 금같이 귀한 사람임을 세상에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두는 것도 축복이지만, 지금 거두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의 축복은 여전히 함께하심을 확신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저, 이제 고향으로 갈래요.”라고 할 때, 라반이 “안 돼! 자네는 가면 안 돼. 자네가 원하는 대로 임금을 줄 테니 가지 말게.”라고 했습니다. 만일 야곱이 빈둥빈둥 놀면서 문제나 만드는, 복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라반이 “그래, 잘 가게.” 하며 시원하게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반이 “아니야, 자네는 가면 안 돼!”라며 야곱을 붙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회사를 그만 두겠습니다.”라고 할 때, 여러분의 직장에서 “안 되네! 자네는 가면 안 돼!”라며 만류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중에서는 있으나마나 한 직원, 차라리 없다면 좋을 직원, 속만 썩이는 직원, 그런 직원인 사람은 없을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좋은 직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일만 열심히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의 발길이 닿고 손길이 닿는 곳마다 복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됩니다. 그런데 야곱이 일을 하면 무엇이든 다 일어났습니다. 야곱은 양을 기르는 기술, 소와 약대를 기르는 기술, 초장을 가꾸는 기술이 아주 탁월했습니다. 라반의 집에 종들이 많아도 야곱 한 사람과 바꿀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의 직장에 사람이 많아도 여러분 하나와 바꿀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계속 공부해야 됩니다. 실력을 쌓아 나가야 됩니다.
잠언 22장 29절에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부지런히 일하면 귀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원어를 보니 아니었습니다.
‘Do you see a man skilled in his work? (자기 일에 기술이 탁월한 사람을 보았느냐?) He will serve before kings;(그는 왕 앞에서 일한다.)’
자기 분야에 탁월한 기술이 있어야 쓰임 받는 것입니다.
목사인 저는 ‘어떡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씀을 전할까? 어떡하면 교인들이 맛있게 먹고 힘을 얻는 말씀을 전할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말씀을 전할까? 어떻게 하면 가정과 사업과 나라를 살리는 말씀을 전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람들이 복을 받는 말씀을 전할까?’ 하며 이를 위해 저를 쏟고 계속 연마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사실이니 말씀을 드립니다. 주일날, 제가 설교를 마치고 나면 기진합니다. 힘이 없어 제 가방 하나 들기도 싫습니다. 토요일 밤에도 얼마나 피곤한지 모릅니다. 어제 밤에도 10시가 넘어서 아내가 저를 태우러 교회에 왔습니다. 낮에 우리 권사님이 떡 한 박스를 주셨는데, 그것을 들 힘이 없어 “당신이 좀 들어요.”라고 했습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면 벽에 기대고 ‘주님, 피곤해요.’라고 합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경험하는 일입니다. 제가 부족하지만 ‘설교를 귀하게, 맛있게 준비해야 되는데…….’ 하며 저를 쏟기 때문입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도 이제 설교를 할 만큼 했고 모 신학대학에서는 제 설교집을 교과서로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만하면 됐다.’가 아니라 계속해서 노력해야 주님께서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디모데전서 4:15)
5년 뒤 제 설교가 지금보다 열 배로 좋아지기를 원합니다. 20년 뒤 제 설교가 열 배로 좋아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제가 은퇴할 때 여러분이 “목사님! 은퇴 못해요.” 하는 일이 있기 바랍니다.
존 듀이는 미국 교육계의 별입니다.
그의 90회 생일에 한 신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엄청나게 큰 일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 90회 생신을 맞이했는데 앞으로도 하실 일이 있나요?”
“나는 큰 산맥의 산들을 넘고 있소. 한 산을 넘으면 또 산이 나타나지요. 그래서 그 산을 넘으면 또 산을 넘어야 하지요. 내 인생에는 언제나 도전할 산이 있소.”
여러분, 잘 들으세요.
‘뭐,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나는 끝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생이 끝난 사람입니다. 나이가 90이 되어도 할 일이 있어야 됩니다. 올라가고 도전할 산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사업에서 은퇴를 해도 의욕적인 일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전도하리라. 기도하리라.’라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자꾸 기술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10년 전의 일입니다.
○○회사에서 모든 사원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달 안에 스스로 퇴직하면 2년간의 연봉을 추가로 지급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놓치면 그런 혜택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너무나 죄송하지만,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음 달부터는 감원해야 하니 잘 선택하십시오.”
거의 모든 사원들은 어차피 감원당할 바에야 2년 연봉 더 받는 것이 낫겠다며 스스로 퇴직했습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 한 분도 사직원을 냈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당신은 나가면 안 됩니다. 당신은 우리 회사에 남아 있어야 됩니다.” 하며 딱 붙잡아서 지금까지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저분 때문에 우리 회사가 이렇게 잘 돼.’라는 말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년 전, 1700억 원의 매출에 220억 원의 수익을 올린 회사가 1년 만에 매출액이 449억 원으로 떨어지고 269억 원의 손해를 보았습니다. 사원들이 일은 하지 않고 3년 동안 목숨을 걸고 농성을 했기 때문입니다. 농성장에 관까지 갖다 놓고 농성을 했습니다. 농성을 하다 죽으면 그 관에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농성해서 회사와 사원들이 같이 망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농성을 해도 일하는 시간에는 일하고, 일을 마친 다음에 피켓을 들고 농성을 합니다. ‘이것, 이것 좀 도와 달라. 회사에서 이것을 알아 달라.’라는 것입니다. 회사를 살리면서 농성을 해야 회사도 살고, 자기들의 소원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회사가 망하면 어떻게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농성을 하는 데는 물론 경영주의 책임도 크지만 우리 사원들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회사를 망하게 하는 사원이 아니라 회사를 살리는 사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영주도 정신 차려야 됩니다.
라반은 야곱 때문에 자기 집이 잘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야곱에게 충분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런데 라반은 야곱에게 제대로 임금을 주기는커녕 열 번이나 사기를 쳤습니다.
결국 라반의 촛대가 옮겨지게 됩니다. 라반이 무너지게 됩니다.
1,000억 원을 벌었으면 100억이나 200억은 사장이 갖고 나머지는 사원들에게 공정하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이 벌었으면서도 사원들에게는 월급을 쥐꼬리만큼 주고 자기는 하룻밤에 술값으로 몇 백만 원을 쓰는 사장이 있다면 그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공정하게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원들이 땀 흘려 일해서 회사가 잘 되었으면 그 사원들에게 만족할 만큼, 만족하지는 못해도 섭섭하지 않을 만큼은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24장 1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끌지 말라 이는 그가 빈궁하므로 마음에 품삯을 사모함이라 두렵건대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
그리고 사원들을 사람 대접해 주어야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3년간 최고의 CEO로 뽑혔던 분이 있습니다. 모든 사원들이 존경하여 닮고 싶어하는 CEO인 그분은 새파란 말단 청년 사원에게도 존댓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원들이 그분이 고마워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하는 데는 사연이 있답니다.
그의 어머니께서 그에게 늘 존댓말을 하셨답니다. 그가 고등학생 때에는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어떤 일로 시간이 급해 택시를 타고 학교에 가는데 그의 어머니께서 택시를 잡아 주시며 “잘 다녀오세요.”라고 인사를 하셨답니다. 그것을 보고 택시 기사분이 묻더랍니다.
“형수요?”
“어머니입니다.”
“아, 훌륭한 어머니를 두었소.”
어머니가 아들에게 늘 존댓말을 하니 존댓말이 습관이 되어 그도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원들이 그것을 특별히 고마워하여 ‘나 같은 사원에게도 이렇게 대접을 해주다니…….’ 하며 사원들이 회사를 위해 목숨을 걸다시피 일을 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직장인이 되고 복 있는 사장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기쁨과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나 때문에 복을 받아야 되겠구나.’, 아내는 ‘내 남편이 나 때문에 행복해야 되겠구나.’, 또 부모는 ‘내 자식이 나 때문에 자랑스러워야 되겠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 자식은 ‘내 부모가 나 때문에 행복해야지.’ 하며 살아야 합니다. 부모님의 가슴을 치게 하는 자식이 되지 말고 부모님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자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구멍가게를 해도 최고의 가게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가게를 은혜롭고 깨끗하게 만들고 좋은 물건을 갖다 놓아 손님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해야 합니다. 또 내가 물건을 사러 가게에 갔으면 최고의 고객, 멋있는 소비자가 되어 주인에게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며칠 전, 제가 서울에 가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저는 식사 외에는 휴게소에서 무엇을 사먹는 일이 없는데, 그날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같이 이렇게 팔아 주지 않으면 휴게소 운영이 되겠나?’
그래서 ‘무얼 살까?’ 하고 둘러보니 오징어 굽는 냄새가 났습니다. ‘모처럼 오징어나 사 먹어 볼까?’ 하고 오징어를 구워 파는 곳으로 가서 “오징어 한 마리 구워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예.” 하고는 굽기 시작했습니다. 오징어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막 굽고 나서 뜨거울 때 바로 찢어야지, 식으면 딱딱해져 찢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그리고 뜨거운 것을 찢으려면 맨손으로는 힘듭니다. 마침 아주머니가 장갑을 끼고 계셔서 오징어를 좀 찢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주여!’ 하는데 ‘저 아주머니는 이렇게 오징어를 굽고 찢으면서도 맛도 못 보시는구나. 이것을 아주머니와 나눠 먹어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났습니다. 봉지에 오징어를 담는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 다 담지 마세요. 아주머니도 좀 드세요.”라고 했더니 아주머니가 “아이고, 목사님! 감사합니다.” 하며 아주 밝은 표정으로 오징어를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챙기셨습니다.
아주머니가 저를 알아보니 제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러나 차에 타서 오징어를 먹는데 행복했습니다. 만일 제가 그 아주머니에게 오징어를 나누어 주지 않았다면 아주머니가 ‘아이고, 지용수 목사도 똑같네.’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조그마한 것이라도 나누니 ‘역시 목사님이 다르구나.’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물 한 병을 살 때나 과자 한 봉지를 살 때도 최고의 구매자가 되고, 가게나 길가에서 달걀 하나를 팔아도 최고의 상인이 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십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안 되어도 되는 것입니다. 욕을 먹어도 되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는 매일 아침에 “와! 오늘은 좋은 날이구나. 오늘, 좋은 일이 생기겠네. 무엇이든지 다 하겠네.”라고 말하고 일터로 출발했답니다.
따라 합시다.
“아! 좋은 날이구나.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기겠네. 무엇이든지 하겠네.”
아라비아의 격언에 “돌아오지 않는 것 네 가지가 있다. 그것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 흘러가버린 과거, 그리고 놓쳐버린 기회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회는 한 번, 한 번 오는데 그 기회는 놓치면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우리는 이것을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기회입니다. 좋은 기회입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모릅니다.
깊이 생각하며 살아서 직장인이 되어도, 경영주가 되어도, 상인이 되어도, 고객이 되어도, 어디에 가도 꼭 필요한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