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334)
십자가에서 쫓겨난 세상 임금(5)
주 예수님의 독백에 어떤 거부 할 수 없는 운명을 보는 것 같습니다. 거부하고 싶어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느껴집니다. 주 예수님하고 십자가는 마치 부메랑처럼 멀리 도망갔다가도 다시 원위치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운명과 같습니다. 이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유대인들이 신경질을 냅니다.
“아니, 니가 뭔데? 그래 니가 뭔데? 죽으면 사람들을 하늘로 끌어당긴다는 말이냐?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지 말아라!”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요약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은 어찌 보면 성경 전체를 축약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창세 전 언약에서부터 그 성취까지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한 단원으로 말하면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먼저 주 예수님의 기도를 봅니다. 주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의 제물로 죽을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주 예수님의 심정은 마치 사형 집행날짜를 앞둔 사형수와 같습니다. 주 예수님의 겟세마네의 기도를 보면, 귓전에 죽음이 다가오는 시계 소리가 들려옵니다.
입은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흐릅니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은 몽롱해 가고,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주님도 육신을 입고 있으므로 인간이 당하는 아픔을 다 당하시고, 인간들이 겪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다 겪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우리 처지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나를 좀 구원해 주세요. 죽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합니다. 주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죽음에 쫓기는 모든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체휼(體恤)이라 합니다. 그러자 성령님께서 주 예수님의 마음을 다스려 주십니다. “아니지! 아버지가 나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십자가에 죽으라는 것이지!”
“내가 이 일을 하려고 왔잖아! 내가 죽어야지 내 백성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지! 그러니 마음 약해지지 말고 단단히 먹고 정신 차리자!”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주 예수님의 기도를 가만히 들어보면 아버지와 아들 간에 미리 약속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 왔나이다”라고 하십니다. 이미 십자가를 지기로 약속하고 지금 왔다고 하십니다. 이는 곧 미리 약속된 일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약속이 언제 이루어졌습니까? 사도바울은 창세 전에 이루어졌다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1:4절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7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창세 전이란, 만물이 만들어지기 전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있기 전에 이미 아버지와 아들 간에 약속한 것입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아들 안에서 자기 백성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아들의 죽음으로 자기 백성들이 구속 곧 죄 사함을 받기로 한 약속입니다.
이것이 창세 전 언약입니다. 참 의미심장한 언약입니다. 그러니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어서 자기 백성을 살려낸다는 시나리오를 쓴 것입니다. 창세 전 언약은 곧 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정점(頂點)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세운 창세 전 언약은 주 예수님의 십자가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는 마치 모든 것을 흡입하는 블랙홀과 같습니다. 창세 전 언약을 근거해서 만물을 만듭니다. 저와 여러분을 만듭니다. 마귀도 만들고 천사도 만듭니다. 선악과도 만들고 생명과도 만듭니다. 아담도 만들고 뱀도 만듭니다. 가인도 만들고 아벨도 만듭니다. 에서도 만들고 야곱도 만듭니다.
아브라함도 만들고 다른 사람들도 만듭니다. 이스라엘도 만들고 이방인도 만듭니다. 주 예수님을 믿을 사람도 만들고 안 믿을 사람도 만듭니다. 이 모두가 창세 전 언약이라는 시나리오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창세 전 언약을 보면 거룩함을 입을 백성도 필요하고 입지 못할 백성도 필요합니다.
즉 구원을 받을 사람도 있고 저주를 받을 사람도 있다는 말입니다. 가룟 유다도 필요하고, 바라바도 필요하고, 빌라도도 필요하고, 로마 군병도 필요하고, 모든 셋트를 완벽하게 만들었습니다. 신자나 불신자나 모두가 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필요합니다. 시나리오를 보면 런닝타임이 7천 년입니다.
7일 만에 창조를 하셨습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 원리로 7천 년이라고 합니다. 7천 년이란 하나님의 시간을 말합니다. 이것은 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그 시간에 맞추어서 아들에 피로 자기 백성들이 구속받는 일들을 찍어냅니다.
창세 전 언약이라는 시나리오에 의하면 주 예수님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것같이 이때, 유월절에 맞추어서 십자가에 죽기로 되어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이 죽는 시간에 맞추어서 진행이 착착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이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 왔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다’라는 것은 십자가에 죽는 것입니다. 죽어서 자기 피로 자기 백성들의 죄를 사해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백성들을 대신해서 죽는다는 말입니다. 그때가 지금이니 마음은 죽기 싫지만, 아버지와의 창세 전에 언약을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