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이클 잭슨의 비데를 좋아한다
김 명희
얼마 전 이제 성년이 된 아이의 방을 뒤집어엎기로 했다. 그 무렵 마침 이사를 한 동생과 전화 통화를 하다가 옷가지며 장난감들을 덜어내고 가구들을 정리해서 방을 좀 넓혀야겠다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동생은 웃으며 “제발 정리하다가 오랜만에 본 책이라고 읽느라 붙들고 앉아있지는 마!” 라고 놀렸다. 책장 정리한다고 들어간 날은 쏟아놓은 책 보느라 정리가 도리어 안 되는 날이었다나 하며 책장은 정리를 하지말기를 권했다.
아이의 장난감과 그림, 공작물들이 구석구석에서 나왔다. 종이접기를 좋아하던 아이를 위해 하나씩 사 모았던 종이접기 관련 책들과 어류 관련 책들을 다시 정리했다. 아직도 남아있던 동화책들은 사촌들에게 물려주도록 상자에 담았다. 생각보다 내가 사 주지 않은 책들이 많았다. 내가 자식에게 욕심을 많이 부린 사람이었는지 내가 모르는 아이의 모습을 알게 되고 의외로 기쁨보다 아쉬움이 컸다. 책꽂이 제일 아랫단에 쌓인 종이들을 정리하다가 해묵은 일기장을 보았다. 십여 권이 뭉쳐져 있던 일기장들을 옆으로 챙기며 정리하고 한번 보자 다짐을 했는데 그만 한 권을 꺼내 읽고 말았다.
글자를 막 배운 일고여덟 살 무렵의 일기장에는 해석이 필요한 문장들이 있었다. 일기장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중에는 남편을 불러 같이 들여다보면서 다시 박장대소를 했다.
추석 무렵의 일기에는 ‘외할머니 집에서 놀고 있는데 친척 형이 과음을 지르는 것이었다.’ 라는 문장이 있었다. 술 먹고 고함지를 사람이 없는데 과음을 지르다니 무슨 일이었지?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 한참 해석을 했다. 아이에게 물어도 모르겠다고 해서 나는 해석을 끼워 맞춰 보기 시작했다. 문장을 소리 내어 몇 번을 읽고서야 그 뜻을 알았다.
과음을 지르다 과음을 지르다 괌을 지르다 감 지르다 가암 지르다.
느리게 빠르게 몇 번을 소리 내어 읽으니 감이 잡혔다. ‘고함을 지르다.’ 이모나 할머니가 떠드는 애들에게 “가암 지르지 마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일기장에 적은 것이었다. 영어 파닉스를 공부할 때도 유독 소리 나는 대로 단어를 적어서 글자와 소리가 조금 다르다는 걸 가르치는 데 고생을 했던 것이 생각이 나서 요 맘 때였구나 싶었다.
또 다른 페이지에는 마이클 잭슨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나는 또 다시 해석의 어려움에 빠졌다. 거기에는 ‘나는 마이클 잭슨의 비데를 좋아한다.’ 라고 적혀 있었다. 마이클 잭슨 사후에 집의 비데까지 뜯어갔다 경매를 했다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울 아들이 비데를 좋아 했단 말이지? 라며 아들을 놀렸더니 머쓱해 한다. 그 맘 때 아이는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을 자주 소리 높여 부르곤 했었다. 유튜브를 검색해 다시 노래를 들어보니 흥이 오르는 부분의 가사 just beat it beat it beat it 하는 부분이 ‘삐레’로 들리기도 하고 ‘비데’로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들과 한 번 씩 푸닥거리를 한다. 뭔가 일을 저지르곤 늘 엄마에게 이야기 했다고 하거나 엄마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분명히 듣지 않은 이야기라 가볍게 무시하고 다그칠 때도 있지만 아이도 끝까지 우기는 날이 있다. 그런 날 우리 집은 전쟁터다. 내가 한 것을 안 했다고 할 수도 안 한 것을 했다고 할 수도 없기 때문에 나와 아들의 대화는 대립한다. 키가 훌쩍 커진 아들 녀석이 인상을 쓰며 나를 아래로 내려다본다. 나보다 키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위압감을 주는 녀석의 입에서 따박따박 말대답이 나오면 기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나도 기억을 소환시켜 더 강하게 내가 옳다며 주장하곤 했다. 둘만 있는 집에서 들이 다 인상을 쓰고 있으면 집은 썰렁함을 넘어 냉랭해지고 하루 저녁 정도를 좋지 않은 분위기에서 보낸 후에나 다시 이야기를 건네며 얼렁뚱땅 넘어갔다. 이때 쯤은 자기의 주장을 살짝 밀어 두지만 마음속에서 내가 옳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아마 아이도 넘어가자 하고 자기 뜻을 밀어둔 것이었겠지.
누군가 ‘고함’을 질렀는데 할머니는 ‘가암’ 질렀다고 하시고 아이는 ‘과음’을 질렀다고 하는 것에 잘못된 것은 없는데 무언가가 맞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들과 이야기 할 때, 아니 누군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 좀 더 신경을 쓰고 살아야겠다. 마이클 잭슨은 지금도 화면 속에서 ‘just beat it beat it’ 하며 노래를 하고 있다. 이미 죽은 가수를 불러 ‘비데’라고 하는 지 ‘삐레’라고 하는지 물어 볼 수도 없다. 그는 그저 ‘beat it’ 이라고 했을 뿐인데 나와 내 아들은 다르게 들었다. 가끔 아이가 비딧 이라고 했는데 내가 비데나 삐레로 들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살아야겠다.
책장 정리는 아이의 일기장에 있는 단어들을 해석하느라 그만 뒷전이 되어 한참을 어질러 진 채로 있었다. 울 아들은 여전히 마이클 잭슨의 비데를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마이클 잭슨의 삐레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2019년 9월호 한국수필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