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사학계에서 강원 영동·영서 지역(명주·오대산문) 고려 초기 석조보살좌상들의 편년(編年)과 양식적 계보를 논할 때, 한송사지 보살상 → 월정사 보살상 → 신복사지 보살상으로 이어지는 순서가 전형적인 양식적 편년 체계이다. 통일신라 조각의 사실적인 양감과 장식성에서 출발하여 고려 초기 특유의 도식화·정형화로 이행하는 3단계 변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신라 시대 경주 남산 바위에 부처나 탑을 새기며 그 발치나 옆면에 선각/부조 형태의 궤좌 공양자를 배치사였고, 고려 초기 강원 오대산문·명주에 신라의 마애 궤좌 공양 도상이 발전하여, 석탑 앞 연화대좌 위에 입체적·독립적인 대형 석조 궤좌 보살상으로 현현(顯現)한 것이다.
경주(남산)와 강릉(신복사지·한송사지) 및 평창(월정사)의 공양 도상들은 "불타의 진신을 상징하는 탑 또는 본존불을 향해 헌공하고 경배하는 구법·공양의 자세"라는 공통된 본질을 공유한다. 그러나 경주(신라)에서 강릉·오대산(고려 초)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공양 대상의 공간적 층차'와 '도상적 표현 방식'이 한 단계 전환되었다.
강릉 신복사지·평창 월정사 (고려 초)에서는 공양의 대상이 단순한 불상에서 '진신사리가 봉안된 석탑'으로 직결·확장된다. 고려 초기 강원 지역에서는 "탑(塔)이 부처님의 완벽한 현현(석가여래의 진신)"이라는 법화·사리신앙이 극대화되면서, 부처가 계셔야 할 연화대좌 자리에 석탑을 모시고 보살이 석탑을 본존 삼아 궤좌 공양하는 도상이 완성된다.
강릉·평창(고려 초)에서는 헌공 주체가 보관을 쓴 고위 보살(약왕보살·문수보살)로 격상된다.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에서 약왕보살이 전생(희견보살)에 부처님의 탑을 향해 자신의 몸과 팔을 태워(소신공양) 사리탑에 헌공했던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사상적 결실이 보살상으로 구현된 것이다.
남산 마애불의 궤좌상이 "부처님을 향해 무릎 꿇고 헌공하는 신라의 경배 도상"이었다면, 강릉 신복사지와 평창 월정사의 보살상은 그 도상이 사리탑 신앙 및 법화공양 사상과 결합하여 "석탑(부처의 진신)을 향해 보살이 무릎 꿇고 헌공하는 3차원적 완성형"으로 승화·개화한 궤적이다.
첫댓글 신복사지 석탑 바로 앞에서 오른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탑(부처)을 향해 공양을 올리는 경건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한국 미술사에서 매우 희귀하고 독창적인 도상(Iconography)을 지닌 보살상이다.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앞의 석조보살좌상(국보)과 함께, 고려 초기 강원 영동(명주) 지역의 독자적인 불교 신앙 의례와 가람 배치 양식을 보여주는 최고(最高)이자 유일무이한 쌍봉(雙峰)으로 수식된다.
머리에는 상하로 띠를 두른 독특하고 화려한 높은 보관(타원형의 원통형 보관)을 쓰고 있으며, 그 위로 흘러내린 장식적 요소들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어 고려 시대 귀족적이면서도 화려한 불교 미술의 미감을 잘 보여준다.
상체에 걸친 천의(天衣)와 목걸이, 팔찌 등 장신구의 표현에서 고려 전기의 정교한 조각 수법이 유감없이 발휘된 대표작으로 꼽힌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둥글고 원만하며, 자비롭고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어 친근하면서도 엄숙한 종교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체는 통일신라의 사실적이고 육감적인 삼도(三道)·볼륨감에서 벗어나, 약간은 경직된 듯하면서도 단정하게 통블록 형태로 내려오는 고려 초기 불상 특유의 양식적 변천 과정을 명확히 보여주는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국 미술사학계에서 강원 영동·영서 지역(명주·오대산문) 고려 초기 석조보살좌상들의 편년(編年)과 양식적 계보를 논할 때, 한송사지 보살상 → 월정사 보살상 → 신복사지 보살상으로 이어지는 순서가 전형적인 양식적 편년 체계이다.
통일신라 조각의 사실적인 양감과 장식성에서 출발하여 고려 초기 특유의 도식화·정형화로 이행하는 3단계 변화 과정을 잘 보여준다.
10세기 초(고려 극초기)의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은 통일신라 조각의 여운이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출발점이다.
화강암 대신 대리석을 사용하여 매우 부드럽고 풍부한 육감(볼륨감)과 입체적인 이목구비를 갖추고 있다.
높은 원통형 보관(高冠) 수법의 시초를 보여주며, 석굴암 감실 보살상 등 신라 석조 조각 특유의 사실적이고 우아한 미감이 잘 드러난다.
10세기 후반 ~ 11세기 초의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은 한송사지 보살상의 양식을 계승하면서 '탑전 공양보살상'이라는 독자적인 가람/도상 배치가 확립되는 단계이다.
한송사지 상의 원통형 보관과 풍부한 얼굴 윤곽을 계승하고 있으나, 화강암 소재로 전환되면서 세부 장식과 옷주름 선이 상대적으로 기하학적·입체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한다.
오른쪽 무릎을 꿇고 탑(부처)을 향해 헌공하는 공양 자세의 완성을 보여준다.
11세기 초 ~ 중엽 (월정사 상보다 후대)의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은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의 도상을 수용·계승하였으나, 조형 수법에서 고려 중기로 이행하는 둔화 및 정형화(양식화)가 확연해진 완성형/후행 단계이다.
월정사 보살상에 비해 신체 비례가 통블록(원통형) 형태로 단정해지고 양감이 다소 감소한다.
천의와 장신구의 표현이 유려한 곡선에서 굵은 선각(線刻) 위주의 단순·평면적인 표현으로 변화하였으며, 원통형 보관 위로 얇은 석조 천개(天蓋)를 얹는 독특한 변용을 보여준다.
"무릎을 꿇은 공양상"을 불상 및 석조 조각의 형식 분류와 용어의 학술적 정확성을 기준으로는 궤좌(跪坐), 더 명확하게는 오른쪽 무릎을 바닥에 댄 우슬궤좌(右膝跪坐)라고 표현한다.
강릉 신복사지와 평창 월정사 석조공양보살좌상에서 볼 수 있는 자세이다.
선행 작품으로 경주 남산 삼릉계(삼릉골)와 탑곡(탑골)의 마애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양자들의 자세 역시 미술사학에서 주목하는 가장 대표적이고 정교한 신라 궤좌(跪坐) 도상의 본보기들이다.
경주 남산 삼릉계와 탑곡의 궤좌상은, 훗날 고려 시대 강원 영동·오대산문 지역에서 유행한 '독립된 대형 석조 궤좌 공양보살상(한송사지·월정사·신복사지)'의 조형적·사상적 뿌리(원형)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증명해 준다.
신라 시대 경주 남산 바위에 부처나 탑을 새기며 그 발치나 옆면에 선각/부조 형태의 궤좌 공양자를 배치사였고,
고려 초기 강원 오대산문·명주에 신라의 마애 궤좌 공양 도상이 발전하여, 석탑 앞 연화대좌 위에 입체적·독립적인 대형 석조 궤좌 보살상으로 현현(顯現)한 것이다.
바위 면에 평면적으로 새겨졌던 신라의 궤좌 공양 도상이 고려 시대에 이르러 석탑과 일체를 이루는 거대한 입체 석조 조각으로 발전하는 궤적을 명확하게 연결해 주고 있다.
경주(남산)와 강릉(신복사지·한송사지) 및 평창(월정사)의 공양 도상들은 "불타의 진신을 상징하는 탑 또는 본존불을 향해 헌공하고 경배하는 구법·공양의 자세"라는 공통된 본질을 공유한다.
그러나 경주(신라)에서 강릉·오대산(고려 초)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공양 대상의 공간적 층차'와 '도상적 표현 방식'이 한 단계 전환되었다.
경주 남산(신라)
삼릉계 선각삼존입상 측면과 탑곡 마애조상군의 궤좌 공양상들은 기본적으로 '본존 여래(불상) 또는 연화대좌 위 부처님'을 향해 직접 향로나 연꽃을 올리며 공양한다.
강릉 신복사지·평창 월정사 (고려 초)에서는 공양의 대상이 단순한 불상에서 '진신사리가 봉안된 석탑'으로 직결·확장된다.
고려 초기 강원 지역에서는 "탑(塔)이 부처님의 완벽한 현현(석가여래의 진신)"이라는 법화·사리신앙이 극대화되면서, 부처가 계셔야 할 연화대좌 자리에 석탑을 모시고 보살이 석탑을 본존 삼아 궤좌 공양하는 도상이 완성된다.
남산(신라) 삼릉계나 탑곡이나 삼릉계 공양자들은 승려, 재가 신자, 혹은 협시 성격의 인물로 표현되는 경향이 강하다.
강릉·평창(고려 초)에서는
헌공 주체가 보관을 쓴 고위 보살(약왕보살·문수보살)로 격상된다.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에서 약왕보살이 전생(희견보살)에 부처님의 탑을 향해 자신의 몸과 팔을 태워(소신공양) 사리탑에 헌공했던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사상적 결실이 보살상으로 구현된 것이다.
매체의 표현 기법도 2차원(마애 선각/부조)에서 3차원(독립 석조 조각)으로 진화했다.
경주(신라)에서는 거대한 바위에 본존과 함께 평면적(2D)선각 또는 반부조로 궤좌 공양하는 모습을 조율해 새겼다.
강릉·평창(고려 초)에서는 석탑 앞이라는 입체적 공간으로 나와, 부처(탑)와 공양보살이 완벽히 판석과 대좌 위에 독립된 3차원(3D) 입체 석조 조각으로 결합했다.
남산 마애불의 궤좌상이 "부처님을 향해 무릎 꿇고 헌공하는 신라의 경배 도상"이었다면, 강릉 신복사지와 평창 월정사의 보살상은 그 도상이 사리탑 신앙 및 법화공양 사상과 결합하여 "석탑(부처의 진신)을 향해 보살이 무릎 꿇고 헌공하는 3차원적 완성형"으로 승화·개화한 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