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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깨달음터 - 앱솔의 세계 원문보기 글쓴이: 앱솔
작자, 연대 미상의 고려가요 - 가시리 | |
원문 (原文) | 앱솔의 풀이 |
가시나요 가시는가요 (나는 여기에 있는데) 버리고 가시는가요 (나는 여기에 있는데) (우리의 정겨움으로 평온한 영혼에 머무르게 하소서) | |
<1연> [ 가삿말에 표현된 예전의 언문을 이해하려면, 표현된 언문을 떠나서 먼저 화자의 갈망하는 구도적 감성에 동화되어야 본질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을테고 현대어로도 표현될 수 있으리라 본다. ] * 가시리 : 요즘 말로 '잊으리'라는 독백하는 표현의 말이 있다. 자신에게 없다는 실연의 감정을 독백으로 한 '가시리'임. * 가시리 잇고 : '어찌 이럴 수 있는고'라는 표현으로서 '잇고'는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독백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나난 : 이 시어의 모든 표현은 싯귀마다 화자를 중심으로 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요즘말로 '나는 어떡하라고' '나를 이렇게 두고' 이런 감정의 넋두리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쉬운 이해로 '가족들이 나 어디 갔다가 없는 사이에 지네들끼리 맛있는거 다 먹은 후에 도착해서 따지듯이 '내-는?!!ㅠ.ㅠ"이라며 절규하며 울먹이는 감정에 비유할 수 있다. 코러스(chorus)임. * 위 : '우'와 모음 'ㅣ'의 합성으로서 '우리'로 보여짐. * 증즐가 : 이 시어의 주제어는 대상자와의 정겨움이라 할 수 있으며, '증'이 정으로 보여진다. '정(情)'을 붙이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삶 속에서 '정'을 떼어놓을 수 없기도 하다. '즐'은 다정다감한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가'는 '증 과 즐'의 정겨움을 표현하는 접미사격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건배할때 '우리가! 남이가!"라며 외치듯. * 대평성대(大平盛代) : 큰,클大. 평평할,고를平. 담다,채우다盛. 대를이음,世世토록代. 혹자는 태평성대라고 볼 수도 있다고 하나, '태평'은 물질적임과 심적인 심신의 평안함을 추구함이라 볼 수 있으며, 여기서 표현된 '대평'은 물질적인 평안보다 영(靈)적인 평온이라 할 수 있다. |
날더러 어찌 살라 하고 버리고 가가시는가요 (나는 여기에 있는데) (우리의 정겨움으로 평온한 영혼에 머무르게 하소서) | |
<2연> * 날러는 : 말 그대로 '날더러' 어찌 살라 하고 이다. * 위 증즐가 대평성대 : 반복되는 후렴구는 지속적인 염원의 연인적 감정을 나타내는 여흥의 코러스(chorus)라 할 수 있다. |
부여잡아 두고싶지만 (나에게로) 섣부른 마음 보시면 아니 올세라 (우리의 정겨움으로 평온한 영혼에 머무르게 하소서) | |
<3연> * 잡사와 : 동등 이하의 연배나 물건에는 '잡는다'라고 할 수 있으나, 존칭어로서 '잡겠습니다'라는 뜻으로 '부여잡다'라는 표현으로 함. * 두어리마나난 : 본래 문장은 '두어리마나 나난'인데, '나'가 중복이 되어 생략된 것으로 보아 '나난'이라는 여흥의 후렴구를 살려줌. |
설핏온 님 보내옵노니 (나는 여기에 있는데) 가신날 다시 돌아서 오시옵소서 (나에게로) (우리의 정겨움으로 평온한 영혼에 머무르게 하소서) | |
<4연> * 셜온 : 본래적 의미는 '슬슬'이라는 표시나지 않게 라는 뜻이나, 현실적인 어감으로 '설핏'에 가깝게 보임. - 국어사전) 설핏 : 발음 : [-핃] ① 생각이나 모습 따위가 잠깐 나타나거나 떠오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 가시난 : 상실감을 갖게되는 싯점을 의미하며, 뒤에 '닷'이 오기 때문에 '가시는 날 또는 때, 오늘이 가기 전에'라는 표현이 맞을듯 함. * 닷 : '다시'라는 요즘의 말. * 도셔 : '돌아'라는 요즘의 말. * 옵쇼셔 : '오라'는 존칭의 말. |
'깨달음'은 죽은 나무에 꽃을 피움에 비유할 수 있다. 깨달음은 인간으로서 마지막으로 가져야 하는 존재함의 의미로서 삶의 희망이자 종착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깨달음에 근접한 의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현실에서 오는 상실감은 늘 이 희망의 끈이 약해지거나 흐려지게 할 수 있다. 이 '가시리'라는 싯귀에서도 약해지지 않으려는 자기염원이 짙게 배여 있는 듯 하기도 하다.
혹여나, '깨달음'이라 하여 불교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의 '천지인의 삼신신앙'에 바탕을 둔 구도자가 갈망하는 청순한 깨달음의 노래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그리고, '아리랑'과 '청산별곡' '가시리'의 통속적인 싯귀를 통하여, 우리의 고대 민족은 민중이 함께하는 거대한 종교국가였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시대의 우리의 삶에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물질적 삶의 영화보다는 우리 민족 고대에 누렸던 영(靈)적인 영화를 이 시대의 우리가 부활하여야 할 책임성과 필요성이 있다. 또 하나의 '나'인 미래인류를 위하여!
다시금, 세계 속에 부활시킬 영성(靈性)의 한류를 위하여~!
두터운 외래(外來)의 겉 껍질을 버리고, 깨어나자~!! 한겨레여~~!!!
~ㅅ
제 목 : 가시리 / 노 래 : 전명신 / 전명신은 대한민국의 국악가수이며 대금 연주자이다.
( 대 금 : 홍경림 / 가야금 : 정현정 / 작 곡 : 류자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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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 고려 가요 | 브리태니커
작자·연대 미상의 고려가요.
님을 떠나보내는 이별의 안타까움을 노래했다. 〈귀호곡 歸乎曲〉이라고도 하며 전체 4절로 이루어져 있다. 후렴구를 제외한 각 절은 2행으로 나뉘며 각 행은 대개 3음보의 운율을 유지하고 있다.
1절에서 행 끝마다 반복되는 "나"은 시행의 앞에 있는 것으로 보고 주체를 강조하는 '나는'으로 해석하거나, 피리의 입소리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운율을 고려할 때 이는 3음보를 맞추기 위한 조자(助字)로서 고려가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흥구(助興句)라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매 절마다 반복되는 후렴구의 "대평성대"(또는 태평성대)를 제외하면 작품 전체가 우리말로 되어 있으며,단순하면서도 소박한 표현으로 이별의 안타까움을 묘미있게 나타냈다. 후렴구 "위 증즐가 대평성대"는 작품의 주조를 이루는 이별의 정조와는 달리 왕의 선정(善政)과 나라의 태평함을 드러내고 있으므로, 원래 민간에서 불리던 노래가 궁중의 속악(俗樂)으로 채택되던 과정에서 삽입된 것이라 추정된다. 말의 해석에 까다로운 부분은 없으나,
3절의 "선면"의 해석에 있어서는 이견이 있다.'서운하면,(그악이) 심하면, 사룻하면'의 뜻으로 보아 '님께 매달려 님을 서운하게 하면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보아'로 해석하는 입장도 있고,'눈에 선하면,얼굴을 마주보기만 하면'의 뜻으로 보아 '눈에 선할 정도로 보고싶으면 설마 아니오겠느냐'로 해석하는 입장도 있다. 작품의 정조로 비춰볼 때 전자의 해석에 타당성이 있다. 이에 따라 내용을 보면,
1절에서 님과 이별하는 상황에 부딪친 화자는 '가시리'를 세번이나 반복하면서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진위(眞僞)를 확인하고자 한다. 2절에서는 님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걱정하며 이별이 구체화되는 데 따른 화자의 불안한 감정을 드러냈다. 3절에서는 님을 붙잡고 싶으나 서운하게 하면 님을 다시 못 볼 것 같아 애써 자제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4절에서 화자는 님을 떠나 보내기는 하나 빨리 재회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망을 제시하면서 작품을 마무리짓고 있다. 각 절에서 보이는 시상전개의 방식은 한시의 절구(絶句)를 짓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의 방식과 대응된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화자를 설정하여 이별의 정한을 애틋하고도 절절하게 노래하는 이 작품의 정서는 근대시인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도 맥이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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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 떠나는 것을 차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이별의 사실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떠나지 말라는 애원을 담고 있는 표현
날러는 어찌 살라하고 ⇒이별에 대한 옛날 우리 여인의 전형인 수동적 자세가 드러나 있다.
님 잡아 둘 것이지만 ⇒떠나는 임을 붙잡고 싶지만 그러면 영원히 나를 떠나 버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담고 있다. 임을 보내는 서러움이 절제된 가운데 드러나 있다.
서러운 님 보내옵나니 ⇒'셜온'의 주체는 임이 아니고 임과 서러운 이별을 하는 서정적 자아이다. '가시 듯 도셔오쇼셔'는 '가시자마자'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은근한 역설적 표현으로, 언제까지나 떠난 임을 기다리겠다는 간절한 기다림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함축적으로 주제가 드러난 부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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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다, 도가 트다, 성통광명하다...
저는 이런 말들이 의아한 수준(?)에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 그 자체가 하나님인데 뭘 깨달아야 하는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만약 인간에게 깨달아야 할 그 어떤 이유가 있었다면, 모든 인류가 그 깨달음이라는 것에 목말랐어야하지 않은가? 라고도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사람이라면 먹고, 자는 것(종족보존)을 초월할 수없듯이 깨닫는 것이 정~말 인류에게 필요한 그 무엇이라면 식욕, 수면욕(성욕)만큼이나 인간을 속박해야하는 거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물론 영적인 것을 갈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종교가 인간에게 있다고는 생각을 합니다만, 모든 인류가 '깨달음'을 향해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깨달음'이라는 것을 의미있게 여기는 분들은 또 다른 취향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제가 이런 말을 했더니 제 영적 수준이 요만큼이기 때문이라고 일러주시더군요. ^^
깨닫는다는 것, 깨달았다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상태인지 궁금하지 않고 깨닫기위해 정진하시는 분들이 다시 보이지요. 그게 무엇이길래 그것을 향해 그리도 간절히 가실까...
깨달으셨다는 별명을 쓰시기에 혼잣말처럼 주절거렸습니다.~~ ^^*
깨달음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며, 내세울 수 있는 어떠한 벼슬도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라는 영혼만이 가질 수 있는 이 삶의 마지막 의미라 할 수 있으며, 가짐이자 곧 놓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의 내용 마지막부분에 이야기가 되었듯이, 깨달음은 죽은 나무에 꽃을 피움에 비할수 있습니다.
죽음 직전에서야 느낄수 있는 이 세상살이의 일들은 마치 꿈결같이 다가 올수 있다 할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의 삶의 일들이 꿈일지라도, 서로 사기치고 훔치고 죽이는 고통스러운 꿈이 아니라,
서로에게 좋은 꿈이 되어주고 기쁨되는 역할의 면으로 살고자함이 깨달음으로서 갖게되는 작은 효과라 할수도 있겠습니다.
깨달음을 인류보편적인 진리에 도달함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새 말하듯 동물적으로 태어나서 곧 죽거니 생각하면 그저 동물일 뿐인데,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사는 것을 알아채는 것. . . . .
영아기때부터 우리는 분별속에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현상 세상에서는 분별해야 살수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성인이라 추앙받는 분들의 말씀을 경쳥해보노라면, 우리는 분별이전의 생각망상이 닿지 않는 영성지능을
본래부터 가지고있었다고 이구동성으로 가르칩니다.
그 자리를 종교마다 표현은 다르나 똑같이 달을 가르키고 있는데 그들의 메세지를 귀담아 들을 필욘있다고 봐요.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으로는
가령, 道, 一者, 둘아닌 하나(님), 색즉공 공즉색의 체험, 여래, 진여, 참나, 하나님 아버지 마음자리, 구지선사의 손가락드는것,간화선조사선 어록에서 밝히고 있는 각종 체험들, 알라(神), 神, 元神, 靈性覺知,
등등 우리들의 생각이 닿지않는 그자리를 지속적으로 일러줍니다. 그 마음자리가 바로 부끄러움이라는 생각분별이 없는 에덴의 동산이요, 성령이 임하는 자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이것을 몸소 체험해봐야 알수 있는 것이라고들 하고요. 깨달음(붓다)이 온 이후는 그 이전과 비교해서 세상을보는 나의 의식이 혁명적으로 확장되어 분별망상이 피어올라도 깨달음있기 이전보다 쉽사리 분별망상탐진치에 끄달려가질않고 그것이 실재하지 않는 허깨비라는 걸 인식하게 되어 장주의 소요유편에서의 소요유를 경험한다 합니다. 우주와 계합되어 둘아닌 不二를 경험하게 되어 육체는 현상계를 살아도 동시에 절대계를 공유하면서(이를 석가모니는
"양족존" 이라는 가르침을 준바 있습니다. ) 살아가기 때문에 , 현상계에서만 사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있을법한 "육도윤회"나 사후에 있다고들 하는 이른바 "천당/지옥/극락세상"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저절로 체험한다고 합니다. 유불선을 공부하다보면 어느정도 지금 말씀드린 이 한가지점에 깔대기처럼 모아지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문제에 관심이 더 있으신분들은 이른바 聖人이라 일컬어지는 분들이 생노병사가 관철되는 이 현상계에서 살다가시면서 남겨놓으신 어록들을 면밀하게 살펴보실 것을 권유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다 보면 이런것들에 대한 해답의 길이 어렴풋하게 나마 보입니다.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