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는 ‘라면’이 없다고 하지만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큰 미련이 생기기도 합니다. 소현세자가 차라리 그냥 청국에 머물러 살았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고국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생각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내 사정을 너무 몰랐던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일입니다. 8년 만의 귀국,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더구나 어린 아들과의 이별로 자식도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모든 아픔을 딛고 사실 세자는 청나라에서 조선을 지키기 위해 나름 꽤 큰 외교적 활동을 하였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정작 고국에서는 평가절하에 모함까지 벌이고 있었습니다. 당쟁의 결과 권력투쟁의 희생물이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조는 나름 남한산성의 굴욕이 평생 트라우마로 괴롭혔을 것입니다. 그래도 한 나라의 왕인데 적국의 장수에게 무릎 꿇는 치욕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청나라’에 대해서 듣는 것만도 치를 떨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자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산다니 말이나 됩니까? 철천지원수, 씹어 먹어도 시원찮은데 그들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신하들도 옛 명나라와의 신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 누구도 세자 편을 들어주고 있지 않습니다. 나라를 혼자서 이끌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인조는 생각합니다. 이런 아들에게 나라를 물려주었다가는 거덜 나겠구나.
그리웠던 고국, 보고 싶었던 가족,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오는 날부터 찬밥 신세입니다. 간신히 자리를 잡으려 하지만 그 누구도 따라주지 않습니다. 더구나 아버지인 왕은 대놓고 반대하며 나아가 적대적으로 상대합니다. 가지고 온 청나라 새로운 문물을 보여주어도 거들떠보려 하지 않습니다. 청나라는 그저 원수일 뿐입니다. 가까이 할 수도, 가까이 해서도 안 되는 상대일 뿐입니다. 한 가지 구호가 있다면 ‘타도 청국’이 있을 뿐입니다.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나라의 장래와 현실과는 차이가 심합니다. 더구나 방향타를 쥐고 있는 왕은 전혀 먹히지를 않습니다. 세자의 행동반경이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세자는 오랜 이국생활과 그 속에서 당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여러 지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침술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뛰어난 침술사 ‘경수’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우연히 그가 써놓은 동생에게 써놓은 편지를 보게 됩니다. 아니 맹인이 어떻게 편지를 쓰지? 이상합니다. 그리고 경수가 주맹증 침술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빛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볼 수 없지만 캄캄해지면 희미하게 볼 수 있습니다. 사실을 알게 되자 오히려 경수에게 공부도 열심히 하라고 청나라에서 가지고 온 돋보기안경까지 선물합니다. 거짓말쟁이로 혼이 나야 할 판에 세자의 신뢰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원손과도 가까워집니다.
궁 밖은 다를지 몰라도 궁 안에서는 세자의 편에 서주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인조 왕은 세자를 박대하고 나아가 왕권까지 위협당하는 줄 의심하며 그 정도가 심해집니다. 역사 속에서 권력투쟁으로 인하여 가족 안에서도 피비린내 나는 다툼이 발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친지가 아니라 바로 부모자식 간에서 말입니다. 잘 아는 대로 이씨조선이 출발하며 형제의 난으로 이방원이 두 형제를 제거한 이야기는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아버지까지 제거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을 제거하는 일도 발생합니다. 어떻게 권력을 지키려 자기 자식을 살해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만큼 권력의 힘은 무섭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침술사 경수가 궁에 들어온 것은 ‘이형익’이라는 어의에게 발견되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궁에 들어와서도 그를 보필하며 왕을 비롯한 왕족의 건강을 지켜줍니다. 세자가 돌아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세자가 아프다 하여 두 사람이 세자를 찾아갑니다. 침을 놓고 돌아서는데 경수가 침이 이상함을 감지합니다. 어둠 속에서 보였지요. 이형익은 경수가 주맹증 환자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형익이 퇴근하고 경수가 다시 확인하려 들어가 확인한 사이 들켜 도망합니다. 그리고 세자는 사망합니다. 암살자로 몰리는 가운데 이형익과 인조 왕의 밀담을 엿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사건을 어떻게 드러냅니까? 더구나 맹인의 증언을 누가 믿겠습니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사실을 이야기했다가는 목숨이 날아갑니다. 말을 해요 말아요? 그런가 하면 자기가 본 것을, 아는 것을 밝혀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어찌 하지요? 아무튼 조그마한 의문으로 탄생한 역사 스릴러입니다. 인조실록에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 같았다’라고 기록된 역사적 미스터리에서 출발하여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개인감정에 매여 있음으로 그 주변인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당해야 하는 아픔을 봅니다. 다시 말하지만 소현세자의 생각과 의지대로 조선이 움직였다면 그 후의 나라가 어떻게 변했을까 기대해봄직도 한데 말입니다. 영화 ‘올빼미’(The night owl)를 보았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복된 한 주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