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첫만남은 17년전 여름 산악회에서 매주 수요일에 진행하는 야간산행때였다
그전에 이미 산악회카페 출석방에서 그녀의사진을 보고 참 예쁘다고 생각하고
혹시 연예인 사진이 아닐까 했는데 실물은 그보다 훨씬 더 예쁘게 보였다
야산 출발전 모두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산에 올라가는데 누가 뒤에서 내배낭을 잡고 따라오는거였다
돌아보니 그녀였다. 그다음해 구정때 나는 남자후배 한명과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떠났고
산행을 마치고 포카라의 pc방에 들렀는데 뜻밖에도 그녀로부터 건강히 잘다녀오라는 쪽지가 와있었다
네팔에서 돌아온후 그녀와 나는 백두대간을 비롯하여 수많은 산행을 함께 다녔다
천안과 아산의 거리도 많이 다녔고 어느해 가을에는 마곡사에 갔는데
데이트하는 남녀를 보더니 남자가 여자의 가방을 메고가는 모습이 많이 부러웠다하길래
그녀의 가방을 내어깨에 걸고 연인처럼 팔짱끼며 함께 걸었다
마곡사 경내를 흐르는 냇가에서 그녀가 내게 결혼안하고 그산님하고 산이나 다니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결혼해야지 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얼마후 그녀는 결혼한다는 말을 하였고 결혼후 신랑을 데리고 와서
내게 인사도 시켜주었다. 결혼후에도 그녀는 산악회 정기산행도 몇번 같이 했고
9년전 내가 몽블랑등반 가기전에 잘다녀오라고 찾아와 점심도 같이 했었다
그런데 몽블랑등반을 마치고 돌아온지 얼마안되어 그녀에게서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
그산님^^
오랜만에 연락드리죠?
다름이 아니라
슬프게도 제가 암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항암치료 몇번하고
지금은 엄마한테 와있어요.
좋은상태는 아니고요..
급성으로 갑자기 이렇게 안좋게되었네요
이나쁜 녀석하고 친해져서 잘버텨나갈수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예요.
좋은소식이 아니라
이제야 그산님께 연락드립니다.
다른분들을 많이 뵙는건 아직까진 몸도 마음도 힘이 들고요..
그산님은 뵙고싶네요..
그동안 저를 챙겨주신 은혜 잊지않고 있습니다.
늙어서까지 산에 같이 다니기로 한 약속은 제가 지키기가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좋은분들과 함께하고 싶으니 잘 버텨 볼게요.
문자를 받자마자 그녀와 통화후
그녀가 알려준대로 천안 외곽에 있는 그녀의 친정집을 찾아갔다
그녀는 전화에서 자기를 만나거든 왜이렇게 말랐냐고
말하지 말라하면서 아버지께 드릴 소고기 한근을 사오라고 하였다
집에 어른이 계시고 워낙 눈치가 없는 나를 잘알기에 그말을 한것 같았다
나는 회사인근 마트에서 소고기한근을 사들고 그녀가 알려준 집을 찾아갔다
대문앞에서 가다리던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많이 야위어 있었다
농담으로 내가 신랑감으로 인사드리러 가면 좋겠다고 하니까
그녀는 밝게 웃었다
그곳에서 그녀의 큰오빠 내외와 어머니를 뵙고 방안으로 들어가니
얼마전 있었던 그녀의 생일잔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진속에서 그녀는 환한 웃음을 짓고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며칠후 그녀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지금 집에 혼자있고 뒷산에 올라가려 하는데
같이 가는게 어떠냐고 한다
비록 뒷산이지만 아픈 사람이 홀로 산에 간다는 얘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수는 없는 일이었다
차를 몰고 그녀가 살고 있는 태학산아래 작은마을 외딴집을 찾아갔다
처음 가보는 길이지만 그녀의 상세한 설명으로 금방 찾을수 있었다
그녀의 집은 마을입구에 자리잡고 있고 그녀의 말대로 마당에
큰감나무가 한그루 서있었다
집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녀와 천천히 마을길을 걸어
낮으막하지만 소나무가 울창한 산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산능선에는 예쁜 텐트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이 그녀의 쉼터였다
그곳에서 잠시 쉬다가 그녀의 템포에 맞추어 천천히 함께 산을 내려왔다
집에는 그녀밖에 없다하여 따라 들어갔는데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남자는 다름아닌 그녀의 신랑이었다
전에 그녀가 신랑이라며 회사에 데려와 인사시켜준 적이 있어
우리는 구면이었다.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함께 시내로 나와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며칠후 그녀는 시내 대학병원에 혼자 왔다하여 찾아가서 부축하고
진료받을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는데 대기실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정색을 하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고 묻는다.
당신 부인이 병원에 혼자 있다하여 왔다고 말하고 돌아왔다.
아마 신랑하고 통화가 안되니 나한테 전화한것 같았다
그후 그녀가 한번 더 전화와서 많이 아프다고 했는데 그것이 그녀와 마지막 통화였다
얼마후 그녀의 절친으로부터 그녀의 임종이 얼마안남았다는 연락을 받고
그녀가 입원해있는 병원 중환자실로 갔다
구면인 신랑과 그녀의 오빠가 반갑게 맞아줬지만
그녀는 미동도 없이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있었고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바라만 보다 나왔다
다음날 그녀의 사망소식을 들었고
마지막 가는길에 손한번 잡아주지 못한것을 오래동안 후회했다
지금도 천안논산 고속도로쪽으로 가기위해 43번도로를 달리면
태학산아래 그녀가 살았던 집과 마지막 산행을 했던 마을뒷산이 보인다
광덕산 하산길에 그녀와
Last Date - Ace Cannon
첫댓글
참으로 오래 전 이야기지만,
며칠 전의 이야기처럼,
안개꽃 이야기 같은 추억입니다.
뭔가 표현되지 못한 일도 있을 법 한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멀리 추억의 한 페이지,
곱게 펼쳐보았다가
한 번 씩 꺼내보는 젊은 날의 肖像입니다.^^
방장님 감사합니다
그녀가 떠난지 9년이 지났습니다
한동안그녀의 꿈도 많이 꾸었고
함께 걸었던 천안과 아산거리를 보면 그녀생각이
많이 났었는데 작년부터 꿈도 안꾸고 예전처럼
마음도 아프지 않더군요
그래서 산사람은 사나봅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시간들
가슴아픈 추억 그리고 행복했던 순간들 이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8년을 함께 산행다녔는데
그녀가 떠난지 9년이 되니
이렇게 담담하게 회상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슴에 묻는 사랑이 더오래남고 아름다움인 것 같아요....
반갑습니다
그렇게 예쁘고 착한 사람을
허무하게 보내고나니
오래 아팠습니다
조만간에 돌아가실거를 아는 분과의 마지막 산행이 안타깝습니다
나도 8 년전에 불치의 병으로 입원해 있는 친구가 엠피3를 사 달라고 하길래
이게 그 친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 이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병실에 면회를 가서 엠피3를 전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일이 있은지 며칠만에 그 친구는 돌아가셨지요
그 친구는 지금도 꿈에 가끔 보입니당
충성
넵 반갑습니다
저는 한동안 꿈에 그녀를 많이 만났는데
꿈에서도 몸이 많이 아파서 제가 업고 간적도 있습니다
이상하게 작년 그녀의 기일에 산소에 다녀온 이후부터는
꿈에 안보였습니다
저도 충성 !!!
'아름다운 슬픈 이야기'
제가 그산님이 되어 몰입하여 산길을 걷다가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처연한 기억일지라도
그런 추억조차 없는 이들보다는
훨~~나은 삶이신 것 같습니다.^^
둥실님 감사합니다
그녀와 함께 다닌 그 수많은 산과 거리들을
지나칠때마다 그녀 생각이 났었습니다
지금도 함께 다녔던 곳을 지나가면
생각이 나는데 예전처럼 마음이 아프진 않습니다
역시 세월은 명약인것 같습니다
ㅎㅎ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그산님. 부럽습니다.
넵 감사합니다
아름답기보다는 너무 가슴시린 추억입니다
그래도 그녀생각을 하면 예전에 함께 다녔던 산들이
생각나 홀로 미소짓습니다
아름답고도 슬픈 인연 이야기네요.
산에서든 어디서든 사람을 만나다 보면 정이 들고
친해지기도 하는데, 차라리 서로 눈흘기며 하는
이별이 죽음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가슴에 별을 묻고 사시네요.
앵커리지님 반갑습니다
홀로 천안 광덕산에 갔다가 그녀와 함께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거짓말처럼 제앞에 나타나서
다시 산에 오른적도 있습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가슴아프지도 않아
그녀도 그곳에서 평안히 잘지내리라 생각합니다
언저 함산 하시지요.
닭띠들 모여서요.이베리아님 나무랑님 모두
갑장이라네요.
@앵커리지 아 그러시군요
57 정유생들 반갑습니다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인듯 싶습니다.
제 가슴에 그리운 건, 너만 잘 살면
된다고 하는 막내 아들과
그리고 손자.
그리고 올리브 나무 하나입니다.
올리브 나무는 3년 전 제 생일날
아들과 며느리가 사 온 건데
그 정성이 너무 이뻐서 식물 잘 죽이는
저도 정성껏 키우고 있답니다.
아들도 결혼했으니까 마음에서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더라고요.
늘 달고 사는 약 때문에
마음이 무덤덤합니다.
그산 님, 애틋한 글 잘 읽었습니다.
이베리아님 반갑습니다
작년 8주기때 그녀 묘소에 갔더니 장지에서
그렇게 슬퍼하셨던 아버님 어머님 두분다 돌아가셨더군요
이제는 슬펐던 마음보다는 따스했던 기억만 남습니다
아드님과 며느님 손자 모두 행복하게 잘사시는 모습 아름답습니다
건강관리잘하시고 오래오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아련한 옛추억을 다시 꺼내어 들려주어 고맙지만 슬픕니다. 사람사는게 전부 회자정리입니다. 힘내시고 남은인생 잘지냅시다. 자이제 저는 동기들과 아차산갑니다.
넵 감사합니다 저도 입사동기들과
아차산에 오른 추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대이작도가는 배안에 있습니다
문득
그녀 남편이 외롭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반갑습니다
둘다 나이 들어 만났고
자녀가 없어서 그런지
그후 다른 여인과 다니는것을
봤습니다
글은 벌써 읽었는데 댓글을 바로 쓰지 못했습니다 .
떠났기에 더 슬픈 추억으로 남아있을테지요.
그래도 이렇게 잊지 않고 계신 그산님을
그분은 고마워 할것 같습니다 .
감사합니다
오늘도 변산반도 갔다오면서
마지막산행했던 곳을 지나왔습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마음 아프지 않지만
잊혀지지는 않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