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李明博·65) 서울시장은 어린 시절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남의 집 일을 도우라는 어머니의 ‘명령’도 처음엔 따르기 어려웠다.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부엌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물을 긷고 음식을 나르다 일이 끝났다 싶으면 소리 없이 돌아오곤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그의 어머니는 국화빵 기계 옆에 뻥튀기 기계를 갖다놓고 두 가지 장사를 했다. 이명박은 교복을 입은 채 뻥튀기를 팔았다. 변변한 옷이라곤 교복 한 벌뿐이기도 했지만, 일이 끝나자마자 학교로 곧장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장사하는 곳이 여자고등학교로 통하는 골목이었다. 등하교하는 여학생들이 지나가며 쳐다볼 때마다 이명박은 모닥불을 끼얹은 것처럼 얼굴이 뜨거워져 견딜 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밀짚모자를 구해 푹 눌러쓰고 쌀을 튀겼다. “한겨울에 밀짚모자를 쓰고 야단이냐”는 어머니의 핀잔이 날아왔다. 이렇듯 이명박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우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대학에 진학한 뒤엔 이런 성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안으로 움츠러드는 소심한 성격을 대범하고 활달하게 바꾸기 위해 대학 3학년 때 고려대 상대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 당선됐다. 그후로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자세의 외향적 성격으로 바뀌어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게 됐다. 지금도 그는 외향적으로 비치지만, 그렇다고 어릴 때의 내향형 성격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다.
사장 부인 부탁도 거절한 ‘원칙주의자’
이명박 시장의 타고난 성격은 ‘내향적 사고형’으로 보인다. 내향적 사고형은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원리원칙을 고수한다. 그가 현대건설 중기사업소 관리과장으로 있을 때 ‘청운동 사모님’ 변 여사(정주영 사장의 부인)가 아는 사람을 중기공장 기능공으로 써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했다. 그는 회사에서 직원이 필요할 때 채용기준에 맞는 사람을 뽑아서 쓴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사장 부인뿐만 아니라 고향 사람들, 친척들의 부탁도 모두 물리쳤다. 이런 태도 때문에 ‘건방지다’ ‘융통성이 없다’는 말이 나왔고, 당시 코오롱에 몸담고 있던 둘째형 이상득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어느 날 저녁, 형이 그를 불렀다.
“직장생활을 그렇게 원리원칙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사원일 때는 그런 자세로 일해도 되지만, 간부가 되어서도 그런 식으로 하면 곤란하다. 간부가 곧이곧대로 했다간 중역이 되지 못한다.”
이명박은 이렇게 답했다.
“저는 지금 사원 신분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원은 원리원칙대로 일해야 합니다. 사원의 신분으로 지나친 재량권을 행사하면 회사 전체가 흔들리고 맙니다. 만약 중역이 되면 그때 가서 그 위치에 맞는 융통성을 갖도록 하지요. 그러나 저는 중역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내향적 사고형은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명박은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항상 무언가를 탐색하고, 지적 작업을 통해 개념화하고, 그런 내용을 토론하고 체계화하는 것을 즐겼다.
그는 행복은 소득만이 전부가 아니며 문화와 환경이 뒷받침돼야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왔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저 사람은 아마 취미도 없을 거야. 일이 취미일 거야’라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는 취미생활을 철저히 즐기는 스타일이다. 틈나는 대로 클래식 음악을 듣고 골프와 테니스도 즐겨 친다. 런던 출장 중에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영국 로열발레단 공연을 보기 위해 파리에 갔다 밤늦게 돌아온 적도 있을 만큼 발레를 좋아한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은 ‘일이 취미이며 일이 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비즈니스나 정치를 하면서 각국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은데, 그 나라의 문화를 모르면 대화 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이해한다는 것은 성공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에티켓 같은 것이라고 여긴다.
내향적 사고형은 분석적·논리적이며 치밀하여 매사에 빈틈없이 일처리를 한다. 현대건설이 1965년 태국의 파타니 나리티왓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할 때 이명박은 적자가 날 것을 알아채고 정주영에게 직언을 했다.
“일개 말단 경리사원으로 공사 윤곽이나 진행 과정을 종합적으로 볼 수 없고 전체 원가를 계산해볼 기회가 없어 단정할 순 없지만, 제가 어림짐작해볼 때 이 공사는 밑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앞으로도 손해가 크게 늘어날 것 같아 걱정입니다. 혹시 알고 계시는지요?”
그후 그는 자료를 총동원해 집계를 내고 문제점까지 추가하여 손해가 난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보고서대로 현대건설은 당시 1년 매출액과 맞먹는 규모의 손실을 입었다. 결국 당시 경리과장과 관리부장은 소환당했고, 이명박은 책임지고 공사를 잘 마무리했다. 이 일을 계기로 정주영의 신임을 얻게 됐다.
“딱 한 번만 도와주시오”
내향적 사고형은 겉으로는 냉정하고 가까이 하기 힘들어 보이지만 친한 사람에게는 따뜻하고 인정이 많다. 이명박이 태국 고속도로 현장에서 경리로 일할 때 최씨라고 하는 현장 십장이 있었다. 그는 작업 지시에 반발하는 태국인들로부터 총격을 당했다. 최씨는 숨을 거두기 전 이명박에게 “이 경리는 회사에서 큰일을 하게 될 거요. 그때 내 가족이 찾아가거든 모른다 하지 말고 딱 한 번만 도와주시오”라고 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어느 날, 사장이 된 그에게 최씨의 부인이 찾아왔다. 부인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딱 한 번만 그를 찾아가보라’고 남편이 보낸 편지 한 장을 꺼내 보였다. 홀몸으로 자식을 공부시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시켰지만 아무 곳에도 취직이 되지 않자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최씨의 아들을 현대건설에 입사시켜 해외 건설현장으로 보냈다.
한편 내향적 사고형은 감정 표현이 부족해 친화력이 모자란다는 단점이 있다. 이명박을 접해본 일부 사람들은 그가 차갑고 인간미가 없다고 한다. 그가 중기사업소에 근무하던 시절 임 사장이라는 납품업체 대표가 추석이라고 중기사업소 전 직원에게 와이셔츠 한 벌씩 돌렸다. 그러나 이명박은 총무과에 지시해 와이셔츠를 모두 회수해 돌려보냈다. 와이셔츠를 되돌려받은 임 사장은 이명박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차장에게선 찬바람이 나요. 내 생각에 이 차장은 부장도 빨리 될 것 같소. 그런데 그렇게 곧이곧대로 해서 과연 중역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완벽하고 정직하게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훈훈한 인정과 덕이 없으면 큰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융통성이 없으면 기계나 다름없지요.”
그는 현실주의자다. 현대에 입사한 신입 사원들에게 “적성을 바꾸라. 이 일이 내 적성에 맞다, 안 맞다 판단하지 말고 여러분의 적성을 일에 맞추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내 방식이 침대에 몸을 맞추라는, 권위적이고 비과학적인 발상이라며 반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은 한 개인에게 적성에 맞는 일만을 주지는 않는다. 기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만 찾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그 넓은 간격을 메우는 고통스러운 노력보다는, 자신의 적성을 앞에 있는 일에 맞게 바꾸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이게 현실이다.”
그가 현대건설 면접시험을 볼 때의 일이다. 정주영은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느닷없이 “건설이 뭐라고 생각하나?”라고 물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지만 이명박은 저도 모르게 “창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왜 그런가?”라고 다시 묻자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정주영은 “그 사람, 말은 잘 하는구먼” 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이명박은 내향적 사고형인 동시에 내향적 감각형이다. 내향적 감각형은 눈치가 빠르고 현실을 잘 파악해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한다.
“굴복할 수는 없다”
이명박에게는 호전적인 기질이 있다. 도전의식이 강하다. 대학시절 6·3한일회담반대운동을 주도한 이명박은 졸업 후 ‘내란선동죄’ 경력 때문에 취직할 수가 없었다. 몇 군데 입사시험을 치렀지만 2차 서류전형이나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 한구석에서 ‘해외 건설현장에서 일할 역군 모집’이라는 작은 광고를 보았다.
건설회사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지만,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해외로 나갈 수 있다는 말에 감전된 듯 이끌렸다. 현대건설에 입사원서를 낸 뒤 1차 필기시험은 합격했는데, 문제는 면접이었다. ‘인사부장 면담요(要)’라는 불길한 전보가 날아들더니, 이어 만난 인사부장은 아니나다를까 학생운동 전력(前歷)을 걱정했다. 이명박은 정면으로 부딪쳐 보기로 작정했다.
집에 돌아가 편지를 썼다. 수신인은 대통령 박정희. 먼저 자신의 전력을 밝히고 학생운동의 순수성과 충정을 토로한 뒤 사회진출을 막는 당국의 처사를 비판했다. 며칠 뒤 청와대 민정담당비서관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고, 국영기업체 취업이나 해외유학을 권유했다. 정부가 내미는 당근을 덥석 잡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명박은 “한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길을 국가가 가로막는다면 국가는 그 개인에게 영원한 빚을 지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로 그는 ‘아무 짓도 안 하고 일만 하는 조건’으로 현대건설에 입사할 수 있었다.
이명박은 어려운 상황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한국 건설사상 최초의 해외공사인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말단 경리사원으로 일할 때 일이다. 현장에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태국 인부들과 한국 인부들의 갈등이 고조되던 어느 날 저녁, 사무실에서 밀린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갑자기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태국인 경리가 “미스터 리, 빨리 도망가!” 하고 소리쳤다. 한국 인부들이 난동을 일으켰다. 서울에서 장비 기능공을 모집했는데, 인천지역 폭력배가 대거 뽑혀온 것이었다. 인부들은 사무실을 포위했다. 한 인부가 단도를 책상 위에 내려꽂으며 협박했다.
“좋게 말할 때 금고 열쇠 내놔.”
“못 내놓겠다.”
“죽고 싶냐.”
정말 칼을 휘두를 기세였다. 이명박은 벽에 등을 갖다대고 금고를 막아섰다. 단도가 목 왼편으로 꽂혔다. 이명박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오른편으로 단도가 날아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왼쪽으로 돌아갔다.
‘이러다 죽는구나!’ 싶어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금고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야, 뭉개버려” 하는 외침과 동시에 발길질이 시작됐다. 온몸에 불이 났지만 힘을 다해 금고를 끌어안았다. 한참 후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말단사원 이명박의 무용담은 신화로 증폭됐고 그는 말 그대로 영웅이 되었다. 그런데 당시 금고 안에는 잔돈 몇 푼 밖에 없었다. 금고 열쇠를 내준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할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목숨을 걸고 대항한 것은 천성적으로 굴복당하기 싫어하는 그의 성향 때문이다.
추진력, 융통성 갖춘 이상주의자
서울시장으로서 이명박은 추진력을 갖춘 이상주의자다. 청계천 복원 공사가 대표적인 예다. 이밖에도 그는 서울숲 조성, 서울광장 및 숭례문광장 개장, 대중교통체계 개편 등을 통해 서울을 인간중심의 문화도시로 만들려고 했다. 이러한 정책이 관철된 것은 끈기 있고 집념이 강한 그의 성격에 기인한 바가 크다.
2004년 7월 개편 시행된 대중교통체계는 초기엔 혼선이 빚어져 교통대란이 일어나는 등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이명박은 서울시민에게 사과했고, 실무자들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그러나 이명박은 포기하지 않고 교통체계를 개편 시행한 첫날부터 두 달 동안 일요일도 예외없이 매일 저녁 9시 교통상황실에서 2시간씩 대책회의를 하면서 문제점을 꾸준히 보완해 나갔다. 그 결과 처음엔 다소 불편했지만 차츰 교통 소통 속도가 빨라져 대중교통체계 개편은 성공을 거뒀다.
이명박은 현실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상황에 맞게 정책을 선택하는 ‘융통성’을 갖고 있는 듯하다. 서울광장도 처음엔 ‘빛의 광장’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삼성과 LG 등에 검토를 의뢰한 결과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이 나오자 곧바로 잔디광장으로 방향을 바꿔 준공했다. 이처럼 문제가 발생하면 신축적이고, 탄력적으로 대응하면서 일을 끌어간다.
그러나 이명박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은 ‘항상 옳다’는 생각에 빠지기 쉬운 성격이다. 경실련이 실시한 2004년 여론조사에서 이명박의 ‘의견수렴 능력’은 시민들로부터 낮은 점수를 얻었다. “시장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가”란 질문에 ‘매우 그렇다’고 대답한 시민은 전체의 3.1%, ‘그렇다’는 13.4%였던 반면, ‘매우 그렇지 않다’는 32%, ‘그렇지 않다’가 34%였다. 부정적인 응답이 66%에 달한 셈이다.
서울시 내부에서도 “이 시장은 ‘이래서 안 됩니다’ ‘저래서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부하를 싫어한다”는 말이 있었다. 이명박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사고한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능력은 부족해 보인다. 이명박은 정책을 추진하기 전 치밀하게 준비한다. 그리고 일단 시작하면 강하게 밀고나간다.
그는 평소 “한국의 지도자는 한 발짝이든 반 발짝이든 앞서 나가야 나라가 발전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일단 결정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해의 폭을 확대해가는 과정을 축소한다. 이명박에게 ‘불도저’라는 별칭이 붙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인지 모른다.
지난해 10월6일 발표된 문화연대의 ‘전문가 100명 설문조사’ 결과는 이명박에 대한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응축해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명박이 ‘가장 잘한 정책’으로 ‘청계천 복원사업’(26명)을 꼽았지만, 각론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쏟아냈다. ‘가장 잘못한 사업’에는 뉴타운 사업(31명)이 1등으로 꼽혔다.
‘문화도시 서울’을 표방하며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와 새 시청사를 짓는 일에 대해서도 반대여론이 만만찮다. 부지를 선정하는 데 전문가 의견과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또 설명하는 인내심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이명박의 강력한 추진력은 그의 언행에도 확연히 드러난다. 2005년 2월24일 서울시장 기자 간담회에서 이명박은 정부의 신행정수도 건설에 대해 “군대라도 동원해 막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측근은 “군대라도 동원할까?”라며 답답한 심정을 한탄조로 토로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불도저’ 싫어하는 불도저
이명박의 성격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다.
▲에난치오드로미 현상(대극의 반전) : 고등학교 때까지 이명박은 내향적 성격이었지만, 대학 3학년 때 상대 학생회장이 되면서 외향적으로 바뀌었다.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은 심리학적 유형론을 설명하면서 성격은 고정불변이 아니고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분석심리학에서는 이와 같이 내향형의 성격이 외향형으로 바뀌는 현상을 ‘에난치오드로미’ 현상이라고 한다.
내향형의 성격이 외향화하는 경우 보통의 외향형보다 더 외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이같이 성격을 바꿈으로써 이명박은 현실적응 능력이 좋아졌다. 강인하고 적극적이며 도전적인 자세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과보상(過補償)으로 인한 강박적인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사람들은 이명박에게서 ‘불도저’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자신은 불도저라는 말을 싫어한다. 자신의 본래 모습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명박은 겉으로는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내향적 사고형이어서 치밀하고 철저하게 준비한다. 어떤 일을 결정하기 전까지 생각을 많이 하는데 주위에서 우유부단하다고 느낄 정도로 더딘 적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노력하는 자세가 바로 내향적 사고형이다. 이명박은 이를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여기고 있다. 내향형 성격이 이처럼 외향화하면 피로감이나 허무감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거나 전시회에 가는 등의 문화, 예술 활동으로 정신적 균형을 유지했다.
▲말 실수 : 분자 내의 전자가 에너지를 많이 갖게 되면 불안정해지듯이 내향적 성격을 외향화함으로써 이명박은 강인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지만, 한편으로 언행에서 직설적 성향을 보인다. 이명박의 언행을 둘러싼 구설은 대부분의 경우 이명박의 진의가 잘못 전달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는 어휘 구사와 행동 하나 하나에 조심해야 한다. 정치지도자는 친구나 지지자들과 함께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앞에 앉은 사람들 중엔 자신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빌미를 잡아 공격하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전문경영인 출신 정치인 : 대기업 전문 경영인 경험은 이명박에게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가 됐다. 20세기 후반부터 전세계적으로 기업은 가장 효율적인 조직을 형성했다. 이러한 효율적인 조직을 책임지고 관리하면서 그는 위기상황이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방법을 체득할 수 있었다. 서울시장이 된 다음 그는 지하철 파업에 대비해 119 소방대원, 특전사 군인들은 물론 심지어 지하철공사 간부들에게까지 지하철 기관사 훈련을 받게 했다. 덕분에 2004년 7월에 발생한 지하철노조 파업 때 지하철을 정상운행시켜 파업을 중지시켰다.
몸에 밴 경영 마인드
이명박은 기업에서 체득한 경험과 경영 마인드를 행정에 접목시켜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행정을 실현하려 했다. 경영 마인드는 단순한 이윤추구가 아니라 예산을 줄이고 낭비를 없애 효율을 높이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그는 시장에 취임하자마자 시 직원들에게 경영마인드를 심었다. 그리고 예산의 편성-집행-결과평가 단계를 민간 시스템과 같은 방법으로 개선해 예산의 10%를 줄였다.
서울시의 예산절감은 기존 사업을 줄이는 식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방만한 요인을 없애는 방식이라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예산절감으로 서울시는 대규모 예산지출이 수반되는 청계천 복원, 교통체계 개편, 뉴타운 건설, 서울숲 조성, 서울광장 조성 등에서 커다란 성과를 이뤘으며 복지, 산업, 문화 부문 예산도 오히려 늘릴 수 있었다.
▲가난의 경험 : 이명박은 내향적 사고형으로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며, 하나의 관념에 대한 깊은 통찰로 지식의 심화에 관심을 쏟는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어릴 때 경험해 무의식에 갈등을 형성하고 있는 가난을 의식화해서 ‘가난의 극복’을 자신의 정치적 이념으로 만들었다.
이명박은 중학교 때 길거리에서 부모님을 도와 장사를 했다. 고등학교에 갈 형편이 못되어 진학을 포기했는데, 중학교 선생님이 어머니를 설득한 덕에 겨우 야간상고에 진학했다. 낮에는 과일장수로 일하고 밤에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와서는 달동네에 살면서 일용직 노동자 노릇도 했다.
가난을 체험했기에 이명박은 시장으로서 서민을 위한 복지에 신경을 썼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할 지경에 이른 고교생들에게 서울시 SH공사(옛 서울도시개발공사)에서 아파트 분양으로 얻은 수익금으로 장학기금을 만들어서 지원했다.
▲정주영과의 관계 :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가능성을 보고 모험을 하면서 사업을 추진했다. 해외 투자자에게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 그림을 보여주고 조선소 건설자금을 유치하는 등 무모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중공업, 자동차 업종에 과감히 도전해 현대를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이처럼 미래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실현시키는 데 비상한 재주를 가진 사람은 외향적 직관형이다. 외향적 직관형은 차분하고 세심하게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이명박은 뛰어난 감각과 치밀함으로 정주영의 이러한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했다.
그가 나이와 연공서열을 뛰어넘는 고속 승진을 계속해 주위에서 말이 많자 정주영은 “내가 언제 이 이사를 승진시켰어. 스스로 진급한 거지. 세상이 그걸 모르고 찧고 까부는 거야”라고 했다는데, 그만큼 이명박이 정주영에게 필요한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이명박 자신도 “서로 다른 점이 많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함께 일하는 두 사람이 똑같이 실수를 하면 그 조직은 망하는데,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니까 일의 완성도나 추진력을 두 배로 이끌 수 있었다”고 했다. 또한 이명박과 같은 감각형은 대체로 현재의 상황에 충실하게 적응해 나가기 때문에 미래를 잘 대비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그런데 직관이 발달한 정주영과 함께 일하면서 이러한 약점을 많이 보완했다.
내향적 사고형 장점 부각 못 시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상적이고 개혁적인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치밀하게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독선에 빠지기 쉬운 단점도 드러낼 것이다.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경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점이 이명박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이다. 또한 어려서 겪은 가난의 경험을 통해 경제발전을 ‘정치적 이념’으로 형성화해 경제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급한 성향은 신뢰감을 감소하는 요인이 된다.
그가 대선주자가 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점은 이미지 개선이다. 많은 사람에게 불도저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듯이 독선적이고 친화력이 부족한 점이 부각되어왔다. 내향적 사고형의 장점, 즉 개혁적이고 내면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면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뛰어난 감각이 한편으로는 불리하게 작용해 오히려 보통 사람들과의 공감대 형성에 장애가 되고 있다. 이명박은 감각이 뛰어난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안다. 그는 자신이 보고 아는 것은 남들도 보고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사실을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金鍾碩 ● 1954년 서울 출생 ● 서울대 의대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 서울대 의대 외래교수 ● 現 인천의료원 신경정신과장 ● 논문 : ‘대통령의 성격유형과 리더십 스타일에 관한 연구’
정치지도자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화력이 있어야 한다. 정치란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기에 일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는 자신의 장점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에 대한 이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걸림돌이 되어 다른 사람들은 그의 긍정적인 면을 보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