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인 연기 뿐만 아니라
영화, 소설, 그림, 작곡, 가수로까지 활동하고 있는 구혜선에 대해서
찬반 여론이 굉장히 많고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는데
나는 영화를 전공했고 글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싫든 좋든 구혜선의 영화와 글들을 주목해서 봤음
거기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이야기를 몇 자 적어봄
(내 생각, 내 취향이니 당연히 주관적이야 감안해서 봐줘)
1. 유쾌한 도우미 (2008)

출연 : 서현진, 김명수, 전태수
구혜선의 첫 영화인 14분짜리 단편영화.
안락사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가톨릭을 접목시켰고 수녀가 등장하는데,
당시 좀 논란이 있었던 걸로 기억함.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 구원, 신과 같은 무거운 질문을 던지기에는
깊이가 부족했던 느낌이 강했고
가톨릭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가톨릭 신자들 중엔 불쾌감을 표한 사람들도 있었음.
영상미는 좋았지만
작품 자체는 혼자 쓴 일기 같은 느낌이었어.
2. 요술 (2010)

출연 : 임지규, 서현진, 김정욱
구혜선의 첫 장편영화.
우선 영상이 아주 아주 예뻤음
구도와 색감, 촬영기법까지 다 예뻤어
마치 이와이슌지나 초기 허진호, 이명세 영화처럼!!
그런데 문제는 첫 단편에서 보여줬던 바로 그
'혼자 쓴 일기' 같은 느낌이 더 극대화됐다는 점.

이 작품은 감성은 좋지만
공감을 끌어내기엔 힘들고
예쁜 영상의 힘에 기댄 느낌이 강했음.

이때 구혜선 월드라는 말이 나타났는데,
구혜선만의 세계관이 뚜렷하다는 인상을 받았어.
현실적인 세계라기엔 좀 거리가 있는
묘하고 신비롭고 어딘가 딴 세상 같은 곳을 무대로 하는 느낌이
뒤에 다룰 다른 영화들에도 나타나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
예쁘고 신비로운 이미지는 좋지만
영화는 그림도 뮤직비디오도 아니기에
그 이미지를 떠받드는 이야기가 가장 중요할 텐데
이야기랄 게 거의 없는 영화라고 생각함
물론 <M>과 같은 영화처럼 이미지성이 중시되는 영화들도 있지만
그런 작품들과 동등한 위치에 두기에도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전문가 20자평
이동진 ★☆ (3) 열망과 감성만으론
박평식 ★☆ (3) 섣부른 도전
황진미 ★☆ (3) 흡연은 사망의 지름길, 물은 셀프
(황진미 평은 영화를 봐야 이해가 될듯...)
3. 당신 (2010)

출연 : 남상미, 최일화
7분짜리 초단편영화.
앞의 두 작품이 모두 별로여서 큰 기대를 안 하고 봤떤 영화인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았음.
그래서 놀랐어.
구혜선월드라는 말에서 보여지듯이
독특한 세계관이 있고 따라서 장소나 소품 같은 것들도
독특한 것들이 많은데
그게 장점으로 승화된 작품인 것 같아.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재치도 있고
7분으로 짧은 작품이지만
결말 부분에서 약간 의문이 들면서도
곱씹다보면 뒷통수를 탁 치게 되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음.
이 작품으로 나는
구혜선이 그렇게 마냥 조롱거리가 되기엔
전혀 재능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
4. 기억의 조각들 (2012)

출연 : 유승호, 최일화, 서현진
이 작품 역시 짧은 9분짜리 단편.
단편, 그 중에서도 이렇게 분량이 짧은 단편에서
구혜선의 장점이 부각되는 것 같음.
이 작품도 당신과 비슷한 느낌으로 좋았어.
신비로운 느낌과
섬세한 감성이 영화에 잘 어울렸고
아이디어나 그 아이디어를 구현해내는 방식도 괜찮았음
5. 복숭아나무 (2012)

출연 : 조승우, 류덕환, 남상미
단편에서 구혜선의 가능성을 엿보았지만
이 작품은 다시 실망스러웠음.
단편에서 구혜선의 장점이 크게 드러난다면
장편에선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남.
바로, 구혜선 월드에 갇혀있다는 문제지.
그녀가 그리는 세계는 그녀만의 세계 같아.
관객을 이입시키는 판타지가 아니라
혼자만의 판타지.
구혜선이 가진 장점 (영상, 기법, 아이디어, 세계관)
같은 것들은 사실 장편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일뿐
그것만으로는 장편을 끌고가기가 힘들거든.

복숭아나무라는 영화는
소재가 굉장히 좋았음 (샴 쌍둥이와 한 여자의 이야기)
잘 풀면 꽤 괜찮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더 아쉬웠떤 영화...

우선 영화가 관객과 호흡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독백만을 계속하는 느낌이 강했음. 이건 구혜선 장편에서 계속 나타나는 특징 같음.
그걸 의도한 거라기 보다는 능력 부족인 것 같음.
판타지적 요소를 감안하더라도 개연성이 많이 떨어졌고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너무 말로만 이입시키는 경향이 강했음.
우연적 요소 남발, 지나친 반복, 군더더기 등 초보감독의 의욕과잉이 많이 느껴짐

하지만 역시 영상은 예뻤음.
노래도 좋았고.
그래서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어.
요술도 복숭아나무도 참 예뻐. 근데 포장지만 예쁜 선물 같아서 문제였지.
전문가 20자평
박평식 ★★ (4) 뿌리 깊은 나르시시즘
이용철 ★★☆ (5) 책 보며 찍은 영화
6. 다우더

출연 : 심혜진, 구혜선
구혜선 본인이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 연출과 출연을 같이 한 영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봤는데
이 작품 여시 소재는 좋다고 느꼈어.
예고편도 좋았고 공감대를 끌어내기에 좋은 이야기.
그러나 보고난 감상은
역시 깊고 무거운 질문을 끌어내고 그걸 풀어가기엔
역량 부족이라는 느낌...
자녀를 자신의 장난감이나 부속품쯤으로 여기는 엄마와
그런 엄마에 대한 애증을 가진 딸의 이야기는
굉장히 좋은 소재지만
애초부터 이 영화는 소재만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뭐랄까... 이런 걸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 봐야지!
하는 데서 그쳤다고 할까.
저 큰 뿌리만 있을 뿐
그 것들을 연결하는 가지들은 없다보니
영화 자체가 빈약하고 감독 자신도 모르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인상을 줘.
이 작품 역시 현실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구혜선만의 독백 .
전문가 20자평
이용철 ☆ (1) 이제 그만 당신의 본업에 충실하길 바람
박평식 ★★ (4) 어리광 메들리
송효정 ★★ (4) 순수와 속악 사이, 어딘가 작위적인 성장통
내가 영화를 전공했고 업으로 하다보니
역시 작품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연예인이라는 후광이 없었다면
이 작품들이 투자, 제작, 섭외, 촬영, 개봉,
그리고 이런 관심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과 자괴감 같은 건 들었음.
장편을 만들기엔 역량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아.
하지만 분명한 건 단편에선 재능이 돋보였고
장편영화 속에서도 군데군데 빼어난 점들이 있었기 때문에
구혜선의 행보와 작품들이 언급될 때마다
구혜선의 도전이나 열정, 노력 자체가 완전히 조롱당하는 게 안타까웠어.
넌 그냥 니 본업이나 해, 라고 말할 권리는 우리 누구에게도 없고
본인이 원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하는 게 구혜선의 자유겠지만
다음에도 계속 영화를 한다면
그때는 독백 대신 관객과 대화를 했으면 좋겠음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은 꼭 감성 충만한 새벽 두시에 쓴 일기 같거든.
자의식 과잉, 나르시시즘에서 좀 헤어나와서
자신이 가진 장점들을 잘 구현한다면
앞으로 괜찮은 영화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함.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거나 조롱하거나
또 반대로 과대평가하거나 하지 않고 본다면
기대해볼만한 초보감독이라고 생각해.
첫댓글 사실 영화보지도 않고 연예인빨이라고 생각했는데 언니글보니까 단편영화들은 예쁜 영상보는 느낌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을거 같아!
정성들인 후기 정말 고마워!
구혜선 남상미랑 서현진이랑 친해?
작품마다 거의 다 출연하네ㅇㅅㅇ
류덕환 조승우 김정욱 유승호 좋아하는데
팬심으로 영화 볼 수 있을까?
재미없을까 걱정이다 흠...
서현진은 친하다들어써
남상미 서현진 둘다 절친이래!
구혜선이 이 글을 한번 봐줬음 좋겠다
구혜선 영화 항상 보고싶었는데 뭔가 늘 무거워보여서 못봤었거든
글 잘봤어♥
우와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단편은 한번 찾아서 보고 싶다
나는 복숭아나무 괜찮게 봐서 다른 영화도 찾아봐야겠당 꽤 많구나
채널 돌리다가 요술 나오길래 여시에도 검색해봤더니 이런 좋은 글이 나왔네!! 잘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