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부터 4년 동안 붉은 유니폼을 입었던 제이 데이비스는, 2003년 재계약에 실패하고 멕시칸리그에서 1년을 보냈습니다. 1년 후 다시 독수리 둥지로 돌아온 이 '용병'은 2년 전에 쓰던 구단 가방과 용품을 모두 갖고 돌아왔습니다.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구단직원들이 그 이유를 물어보자, "내 집에 돌아오는데 내 물건 갖고 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냐"며 넉살을 떨었던 선수입니다.
투수들이 집단 난조에 빠졌을 때 클럽하우스에서 돈 뭉치를 꺼내보이며 "오늘부터 삼진을 잡는 사람한테는 내가 10달러씩 주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던 선수, 투수와의 수싸움에서 실패하면 누구보다도 분해하며 자기 자신을 강하게 질책했던 선수, 술집에서 만나 사인을 요청하는 팬에게 또렷한 한국말로 "나 데이비스 아니에요"라고 뻥을 쳤다는 일화도 그의 행동이기에 귀여웠습니다.
이정훈 코치의 멱살을 잡았던 적이 있고 몸이 안 좋으면 출전을 거부하는 일도 다반사여서, 그는 항상 '악동'이나 '문제아'취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KBO최고의 중견수였고, 빙그레-한화를 통틀어 역사상 가장 강력한 3번타자인 그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습니다. 코치의 멱살을 잡은 것은 백번 잘못한 일이라고 해도, 부상을 숨기며 뛰다가 결국 시즌을 말아먹는 선수보다는 자기 몸이 아플 때 떳떳하게 쉬고 다음 경기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더 영리한 행동이지요. 게다가 그는 1~2경기 쉰 적은 있어도 부상관리에 실패해 장기결장하면서 팀에 손해를 끼친 적은 없습니다.
가득염과 류택현의 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는 했지만, 그는 왼쪽 배터박스에서 좌투수의 공을 가장 잘 때리는 타자들 중 한명이었습니다. 자기가 좌완투수라는 것만 믿고 어설픈 변화구를 무릎쪽에 찔러넣는 투수라면 라인드라이브로 꽃히는 초스피드 홈런에 그대로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상대 타자의 방망이가 돌아가는 순간부터 타구를 향해 첫 걸음을 내딛는 외야수였습니다. 그의 점프력과 글러브는 펜스보다 더 높아서 아군 투수들의 피장타와 피홈런이 수 없이 그의 글러브에 빨려들어 무효처리 됐습니다.
2003년의 이글스에는 이영우도 있고 송지만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김태균이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말 그대로 물방망이였습니다. 데이비스가 없어서 그랬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겠지요. 1971년생 용병이 팀을 떠나는 것은 그닥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그 선수가 등번호 25번의 제이 데이비스라면, 그리고 20년 팀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중견수이자 가장 훌륭했던 3번타자라면 그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마치 장작을 패듯 날카롭게 돌아가던 그의 붉은 방망이와 라이너성 타구를, 상대의 타격과 동시에 공을 쫓아 달려가던 그의 센스있는 발을, 훨훨 날아다니며 타구를 건져내던 그의 자석같은 글러브를, 상대 투수를 노려보는 불타는 눈동자를, 그리고 유지훤 코치에게 헌사하는 멋들어진 거수 경례를 이제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제이 데이비스의 플레이는 탁 트인 녹색 그라운드에서, 그 중에서도 가장 광활하고 넓은 센터필더 자리에서 봐야 제맛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의 플레이를 고작 14인치짜리 흐릿한 모니터에서 동영상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니 정말 슬픈 일입니다. 나중에 내 자녀들에게 우리팀에 이렇게 훌륭한 3번타자 중견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붉은 방망이를 쓰는 왼손타자는 또 생기겠지만, 외야의 사령관 중견수 자리에도 누군가 새로 들어서겠지만, 그리고 전광판의 세번째 자리에도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지겠지만 7년 동안 즐거움을 줬던 데이비스의 빈 자리는 누가 채울 수 있을까요.
오승환의 직구에 방망이를 헛돌리고 분에 못이겨 땅을 내려치던 그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내년을 기약했습니다. 오늘은 비록 저 방망이가 그라운드를 후려갈기지만 내년에는 저 방망이가 상대를 무릎꿇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포물선이 아닌 직선으로 넘어가는 홈런으로 두번째 우승컵을 선물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 됐네요.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는 안하겠습니다.
그 동안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씁쓸한 기억 모두 잊고 마음 편하게 가세요.
나는 당신의 붉은 방망이를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P.S_위 내용은 제가 2007년 1월 6일 카페 게시판에 올렸던 글이며
KBO 최장수 외국인 선수는, 더스틴 니퍼트가 아니라 제이 데이비스입니다.
첫댓글 외야석에서 멋진 홈런 뒤에 공수교대로 수비하러 들어온 데이비스를 연호하자 살짝 손을 들어주며 쑥스러워하던 기억이 있어요. 그립네요 정말:)
거수경례보다 맨 아래사진이 제일 기억남네요... 노감독 머리를 종종 쓰다듬곤 했죠ㅎ 올해 저런 용병이 온다면 4강은 따놓은 당상일텐데...
잠실 전광판 라인업의 출신고가 '시카고'로 표기된게 나만 왜 그리 웃기던지.. 아직도 데이비스때문에 한화는 타자 용병은 잘뽑지.라는 오해가..
99년 5월 어느날, 서울 지금의 The K 호텔에서 세미나중 우리팀이 들어온 걸 보고 세미나고 나발이고 니가 선수들에게 세미나 책자에 상인 받는 중, 데이비스에게 사인을 부탁했을때 해맑게 웃으며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리는 동료들어게 먼저 가라고 하고 내 이름을 물으며 친절히 사인해주던 신남연, 그 때 조경택이 내게 영어 좀 되시는데요? 했었죠...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수원구장에서 경기중 교쳬를 했는데 중간에 경기장 밖에서 데이비스 만나서 왜 교체했니 했더니 등이 아프다 그럼 다음 경기는 나올 수 있니 했던 잘 모르겠다고 트레이너와 상의 할거라고 친절히 대화를 마칠 때까지 친구처럼 대해줬던..나만의 경험입니다
데이비스한테 뭔 일이 생긴줄 알았네요..... ㄷㄷㄷ
그립습니다 데이비스 ㅠㅠ
저두요. 데이비스에게 뭔일이 있나 했어요..ㅋㅋㅋ 요즘은 뭘하며 지내는지 모르겠네요.
대구구장에서 이승엽선수의 55호 홈런이 될수도 있었던 홈런성 타구를 멋지게 잡아내고 대구관중들이 미친듯이 쓰레기를 던져대자 역시 던져진 우산 하나를 쓰고서 자리를 지키던 데이비스의 모습이 생각나네요
그립네여...진짜 다시한번 데이비스 같은 타자 구해주세요...
데이빗~ 데이빗~ 데이빗~ 얍!
데이비스 정말 그립습니다 그저 외인용병이 아니라 한국인 같았던 내 가족 같았던 선수였어요
진짜... KBO 최고의 외인 용병 타자였던 것 같습니다. 정말 그때가 많이 그립네요~ 글 잘 보았습니다.
정말 그립네요 한화 이글스 용병 타자 역사상 데이비스 만큼 잘해준 선수도 없었던것 같네요 그리고 1번선발님 말마따나 KBO 최장수 용병 이지요
올해 홈개막전 시구시타 로마이어 데이비스 초청해서 하면 얼마나좋을까요?^^ 꿈 입니다만요...
이제껏 데이비스같은 외국인 선수는 없었던거 같네요..
경기 중엔 먹이를 노려보는 맹수의 모습이지만 팬들에게는 순박한.. 그냥 동네 형같은 선수였었죠..
보고싶네요..
한때 신남연이라는 한국이름도있었고
대전택시기사에게 깍아달라는말도했다고하더군여
지금은 농구하는아들을둔아버지로
세월을보낸다는기사까지 접한듯합니다
아... 저 경례
최고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