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의 외출입니다. 부자유스러웠던 기간이 길어서인지 아직도 이런 외출이 합법적인지 불법적인지 모를 때도 있지만 설레이는 것만은 분명 합니다. 영광스럽게도 우리나라 최고 명문 연세대에서 그것도 존경하는 최평길교수님의 요청으로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특히 세브란스 병원은 김대중대통령님 내외분과 저와 제 처의 건강을 지켜주는 곳이어서 보은한다는 차원에서도 이번 강의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저의 비서실장 재직시 경험담과 솔직한 심정을 오늘 오후까지 정리 해보았습니다.
저는 금년 2월 사면이 되어 5년만에 일본, 독일, 미국을 여행하였습니다. 5년만에 먹는 기내식은 감격적이었습니다. 더구나 지난 5년의 어려움을 생각할 때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새삼스레 “감옥은 좁고, 세상은 넓다”는 당연하지만 이상한 생각도 떠올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저는 어떤 의미에서 반쪽짜리 국민입니다. 정치인의 사면복권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게 관행입니다. 저도 사면복권을 위한 사실상의 법적 요건이 갖추어져 있고, 같은 대북송금특검 관계자들의 경우, 지난 2004년 8.15때 이미 사면복권이 모두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납득하기 어렵지만 오직 저만 사면만 되고 복권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식물정치인으로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 4년 반이 박지원 징역 4년 반”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제가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은 이 시점에서 부적절 하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최교수님께서 어떠한 주제의 설정과 원고를 갖춘 강의보다는 실질적으로 경험에서 오는 청와대 비서실의 정책결정 과정 등과 비서실의 운영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말씀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어떠한 학술적인 정리보다는 최교수님의 말씀대로 제 경험과 생각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림으로써 실무적 참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는 국민의 정부 5년 동안 참으로 많은 기복이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으로부터 일곱 번의 임명장을 받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좋게는 김대중 대통령님의 신임을 받았다는 의미도 되지만 그만큼 시련도 비판도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인수위원, 당선자대변인, 공보수석, 문화관광부장관, 정책기획 수석, 정책특보,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임명장을 받을 때마다 저는 저에게 그리고 청와대비서실 직원들에게 강조를 했습니다.
“대통령이 실패하면 나라가 망했다.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라가 산다. 우리는 애국심을 가지고 대통령님께 충성하자”고 말했습니다. 특히 임기 마지막 1년을 앞두고 비서실장에 임명되었을 때에는 "우리에게는 실패할 시간도 없다. 확실한 리더십을 가지고 대통령을 보필하자”고 다짐했습니다. "대통령의 비서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비서는 비서일 뿐입니다.”
대통령님께 건의할 수 있는 입은 있어도 공개적으로 개인의견을 주장할 정치적인 입은 없는 것이 비서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중심제 아래서 비서실은 앞장서서 국정운영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합니다. 국정운영에 오류가 있다고 해서 그 결과의 책임을 직접 대통령님께 지우는 행위는 비서로서의 책무를 회피하는 것입니다. 도마뱀도 몸통을 살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제 꼬리를 자릅니다. 임기 마지막까지 대통령님께서 국정의 중심에서 역사적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설사 대통령님의 결정이라고 해도 결과가 잘못될 경우엔 비서가 책임지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저는 지금도 확신합니다. 물론 공은 대통령님께 모두 돌려야 하겠습니다. 비서실은 정책의 결정기관도 집행기관도 아닙니다. 비서실은 대통령님을 보좌하는 기관일 뿐입니다. 국정업무를 내각과 함께 조정하여 대통령님께 보고하고, 대통령님의 결정을 내각에서 잘 집행하도록 모니터링 하는 업무가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과거 비서실이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최고의 권력기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서실의 불행을 가져온 적도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께서는 총리를 중심으로 한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네 곳으로 분할하여 토론하게 하고 최종적으로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비서실은 토론에 참여하여 대통령님의 의중을 전달하고 각 부처의 업무를 조정하여 사전에 대통령님께 보고함으로써 대통령님이 국정을 파악하고 장악하도록 하는 대통령 참모기능으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대통령님께 국민의 소리를 가감없이 보고하는 비서실의 기능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흔히들 대통령님께 신문도 방송도 보시지 않는게 도움이 된다는 충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국민정서와 국정운영에 대해서 언론만큼 정확하게 지적하는 기관도 현재로서는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김대중대통령님께서는 모든 신문을 철저하게 정독하시고 TV뉴스 때로는 드라마까지도 시청하셨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이러한 과정에 의문사항이 있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실 때는 관계장관이나 수석에게 때때로 전화지시를 하고 비서실장을 찾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통령님의 저녁 10시 이후 일정관리가 중요합니다.
제 경험상 대통령님께서는 조중석식을 공식 혹은 비공식적으로 청와대 내에서 하십니다. 그리고 저녁 9시쯤 마치시게 됩니다. 김대중 대통령님께서는 관저에서 9시 뉴스를 시청하시고 10시경부터는 신문과 보고서를 탐독하셨습니다. 반면 김영삼 대통령님께서는 10시부터 알려진 대로 특정인과 대화를 하셨고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인터넷을 하시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청와대는 밤 10시부터는 절해의 고도처럼 느껴지고 적막강산이 따로 없습니다. 이때 대통령님께서 밤 12시 취침시간까지 무엇을 하시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옳지 않은 사람을 만나 좋지 않은 보고를 받으면 국정난맥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충고되는 언론과 국정보고서를 대하시면 바른 국정이 가능할 것입니다. 만약 인터넷상에 악플이라도 읽게되면 스스로 화나는 일도 발생하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현 정부의 그럴만한 분들에게 대통령의 밤 10시부터 12시까지를 효과적으로 지내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라고 충고도 한 적이 있습니다. 비서실은 대통령님께 바른 말씀을 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해드리는 업무도 가장 중요한 업무중의 하나입니다. 대개 대통령 면담인사들은 대통령님 앞에서 국민이 느낀 아픔이나 직언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으로 故 강원룡목사님이나 전 KBS 박권상 사장님 같은 분은 직언을 많이 하신 분으로 기억합니다. 때로는 비서실장인 저에 대해서도 아픈 이야기를 하셨지만 저는 개의치 않고 그분들을 만나시도록 권했습니다. 이러한 것이 국정에 어떻게 반영되든 그것은 대통령님께서 결정하실 문제이고 비서실은 세상의 흐름을 가감 없이 보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과거부터 있던 7대종단 대표자 모임을 8대종단 대표자 모임으로 확대하여 대통령님과 대화를 나누도록 하였습니다. 처음엔 개신교에서는 KNCC가 멤버였고 보수교단인 한기총은 소속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KNCC와 다른 종단 대표들을 설득하여 한기총 대표목사님을 포함 8대종단 대표자들을 1년에 몇 차례 청와대로 초청하여 대통령님과 격이 없는 대화를 나누도록 하였고, 저도 자주 8대종단 대표는 물론 종교계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서 민심의 흐름을 알고 정책의 방향을 참고하기도 하셨다고 믿습니다. 또한 언론과도 꾸준한 접촉을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국민의 정부 5년간 언론으로부터 결코 후한 점수를 받은 것도 아니지만 어차피 국정은 국민에게 전달되어야 되고 전달매체는 언론이기에 참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때로는 언론의 가혹한 비판에 원망도 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고 넘어야 할 사항이었지 결코 무시하거나 회피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열심히 국민을 위해서 일한다고 믿었지만 언론의 무자비한 비판에는 견딜 수 없을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세계적 공항으로 평가를 받는 인천국제공항도 개항 전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까. 저는 언론사 간부들에게 역사적인 사업인 인천국제공항을 홍보는 못해줄 망정 그렇게 사고라도 나서 개항을 못하도록 비난한다면 외국의 경쟁공항에서 쾌재를 부를 것이고 악용될 것이라며 협조를 구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언론의 비판사항을 공항측과 건교부를 모니터링 했으며 최종적으로는 청와대 비서실에서 직접 나가 점검을 하도록 했습니다.
성공적으로 개항일 비행기 이착륙이 순조롭게 되자 대통령님께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셨습니다. 저는 성공적인 개항후 다시 언론사 간부들을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언론사 간부들은 자기들이 지나친 보도를 했다고 하면서도 언론의 지적이 있었기에 사전에 대비를 해서 성공적인 개항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공적인 개항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습니다. 모 신문에서는 칼럼을 통해 정부를 극찬했고 개항을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끝자락에는 언론의 지적이 있었기에 이렇게 되었다고 첨언했습니다. 이것이 언론입니다. 이 경지를 넘어야 정치를 할 수 있고, 국정을 이끌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2002년 월드컵의 감격을 지금도 있지 못합니다. 사실 월드컵은 주최국에서 하는 일보다는 FIFA에서 모든 일을 집행하고 주최국은 보조역할을 한다고 해야 맞습니다. 당시 9.11테러후 처음으로 열리는 세계적인 이벤트에 얼마나 세계인들이 참석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명제였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안전, 경제, 문화, IT월드컵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에서 월드컵 안전대책본부내의 업무협조 미흡으로 프레스카드가 잘못 발급되었습니다. 월드컵 안전대책본부는 국정원이 주축이 되고 경찰, 군 그리고 청와대 경호실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최고의 권력기관들이 관계되어 업무협조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다고 비서실에서 파악되었습니다. 대통령님께 이 사실을 보고하고 비서실장인 제가 상황대책반장이 되고 김진표 수석이 차장이 되어 사실상 월드컵 업무를 비서실에서 장악했습니다.
청와대 내에는 24시간 상황반을 가동하고, 10개의 경기장에 비서실 직원들을 파견하여 심지어 FIFA에서 발행한 입장권을 일일이 확인하여 공석을 인터넷을 통해 사전 공지하여 판매하고 여기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좌석은 긴급조치로 자원봉사자들로 자리를 채웠습니다. 일본의 경우 빈자리가 반씩이나 되는 것을 TV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보기 흉한 사태를 미리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나 일본의 잘못이 아니고 FIFA의 잘못이었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따지고 들 때는 이미 늦습니다. 비서실은 이러한 때 가장 확실하게 개입할 수 있는 기관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모 전대통령께서는 일찍 입장권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외신을 통해서 비판도 하셨고 실제로 참석도 안하신 적도 있습니다. 사실은 FIFA에서 대회 3일전에 입장권을 전달해오는 사항이니 화를 내실만도 하지만 설명하였는데 이렇게 하신데 대해서 섭섭도 했습니다. 이때도 언론은 비서실이 개입한다거나 준비가 소홀하다고 비난했지만 이러한 비판이 오히려 약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여기서 월드컵시 가장 고민하였던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사실 길거리 응원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한국인의 저력으로, 나중엔 한류의 상징으로 세계가 받아들였지만 광화문 한복판을 흥분한 국민들에게 그냥 내어준 당시 느꼈던 우려는 표현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당시 경찰은 광화문 서울시청앞 길거리 응원과 관련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종로차선은 물론 남대문에서 광화문까지도 차선을 열어야 한다는 내용과 더 효과적인 응원을 위해 남대문에서 광화문을 완전 차단해야 한다는 두 가지의 의견을 보고했습니다. 아무런 결론 없는 이런 보고를 왜 하느냐며 경찰이 알아서 결정하라고 짜증을 냈지만 많은 고심 끝에 저는 남대문에서 광화문까지는 차단시키고 종로통 차선은 통행을 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사전에 대통령님께 보고는 안 드렸지만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대통령님께서는 경기의 승리와 안전한 길거리 응원 관계로 사고없이 진행되는지 노심초사하셨습니다. 저는 대통령님을 모시고 응원을 하면서도 매 10분 간격으로 경찰과 비서실 등 관계기관으로부터 진행상황을 보고 받아 대통령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무사히 경기를 마치고 길거리 응원단이 쓰레기까지 치우면서 소위 완전해산 했다는 보고는 새벽 2-3시경에 받았고 이를 다시 대통령님께 전화보고를 했습니다.
지금도 길거리 응원은 감격스럽게 기억되지만 만약에 안전사고라도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합니다. 비서실의 구성은 시민사회, 학계, 정, 관 출신 등을 조화롭게함으로써 다양한 국민의 소리를 담아낼 수 있으며 대통령님을 보좌하는데도 효과적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통령님의 측근도 반드시 포함되는 것이 효율성 면에서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측근은 대통령님의 입을 때로는 손으로 막고, 차 앞에 드러눕는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수석이나 장관들이 말씀드리지 못하는 내용을 가감 없이 보고하는 운명공동체로서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그 내용이 설사 대통령님으로부터 채택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측근만이 과감하게 말할 수 있는 내용도 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말씀드렸다고 자부합니다. 때로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내용이 있다면 서면으로 작성해서 한번 읽어보시라고 놓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비서실의 조정기능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 6시 반경 출근하여 8시까지 각 부처에서 올라오는 3백 내지 5백 페이지의 업무보고를 검토했습니다. 아침 8시 반에 수석회의가 열렸었지만 저는 8시로 당겼습니다. 거의 모든 수석들이 운동 등 건강에 문제가 있다며 반대를 했지만 우리는 마지막 비서실이니 더 큰 희생과 봉사가 필요하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국정상황실에서 검토된 내용과 각 수석실의 업무보고 그리고 대통령님께 보고한 내용의 결정사항 등을 토론하여 1시간내에 회의를 끝마치도록 했습니다. 사실 미국의 백악관 시스템은 모든 국정에 대해 사전에 시나리오를 작성해서 해당 이슈에 대해 백악관은 물론 각 부처에서 시간별로 역할을 분담하여 같은 내용을 발표하고 코멘트 함으로써 언론과 국민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제도를 도입해 보려고 했지만 사실 사전 누설의 부담이 크고 자신이 없어서 결국 회의를 당기고 한시간 내에 끝내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결정된 업무내용을 각 수석들은 해당부처에 9시전에 통보를 합니다. 그러면 각 부처는 실국장 회의를 대개 9시 이후에 하고 또한 언론의 발표사항이 9시 이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 국민의 정부에서는 각 부처간에 의견 충돌이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더욱이 총리실과 협조하여 국무조정실에서의 국정조정업무는 국민의 정부의 자랑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사실 나쁜 정책보다도 일관성 없는 정책이 더 나쁜 정책이며 혼선을 가져오는 것은 더 나쁜 결과로 귀착된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또한 우리 비서실에서는 매일 12시현재 각 수석실 별로 관계 부처의 현황업무를 부처별로 1페이지 정도 파악하여 정책기획 수석실에서 종합하고 오후 2시까지 18개부처 업무진행상황을 20-25페이지 정도로 축약하여 대통령님께 서면보고했습니다.
이때는 대통령님 건강이 좋지 않을 때였습니다. 외부인사 접견, 각 수석들의 대면보고 줄인 상황에서 대통령님께서는 이를 검토하시고 때때로 관계부처 장관이나 수석에게 전화문의를 하심으로써 혹시라도 해이해질 수 있는 임기말의 업무를 독려하고 긴장하도록 대통령님께서도 파악할 수 있게끔 보좌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책기획수석실에 총리비서실에서 보고서 내용 카피를 한부 협조를 요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비서실은 어떻게 대통령보고사항을 총리께 드릴 수 있느냐고 거절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국정을 총괄하는 총리께서 더욱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대통령님께 올리는 보고서를 총리실에 보내도록 결정했습니다. 특히 지금도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은 대통령님께서 국정 마무리사항을 각 부처에서 파악토록 하여 임기말까지 차질 없이 집행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계셨고 이를 위해서 우리는 각 부처로부터 파악하여 71개의 임기말 국정마무리과제를 설정하여 4개 관계부처 장관회의는 물론 국무회의, 국무조정실, 비서실과 협력하여 처리하는데 마지막 노력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 기록을 볼 때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아이디어를 창출하셨는지 김대중대통령님을 새삼스럽게 존경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퇴임하는 2월24일 자정까지 우리에게는 국정을 집행할 책임과 권한을 통감하고 2월21일에도 회의를 주재하셔 마무리를 하고 미진한 사항을 차기정부로 넘기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제 경험이 효과적이었다는 판단 하에서 현 참여 정부의 관계자들에게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임기말은 대통령선거의 해이기도 합니다. 저는 비서실장으로서 대통령님의 령을 받아 정치적 중립입장을 수 차례 천명했습니다. 특히 2002년 4월 16일에는 비서실 모든 직원에게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은 청와대를 떠나라, 대통령과 청와대가 정치권과 철저히 분리되어야 우리는 우리대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성공할 수 있다”는 ‘병행성공론’을 밝혔고, 실제로 대선캠프에 참여한다는 비서실직원은 때때로 한달만 말미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저는 즉시 사표제출을 지시했고 이를 수리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자부하는 게 “언론의 비판을 두려워하지 말라, 비판이 없다면 긴장도 도전도 없다, 비판은 받아들이되 우리가 승화하여 우리 방향으로 가자”고 강조하며 끊임없이 거론되는 대선개입 문제를 차단했고 '정치뚝 경제only’ 그리고 ‘정치적 식물인간’을 자처하면서 역대선거에 회자되던 정치자금 지원, 그리고 공무원들의 폭로도 유일하게 국민의 정부에서는 한 건도 없었던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여기에 협력해주었던 모든 공직자들에게 감사를 표시합니다.
비서실은 대선 후 차기정부와의 인수인계를 위해서도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시대는 끝나고 노무현 대통령시대가 열리는 때를 맞추어 저는 2002년부터 아태재단을 정리하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으로 이관시켰고 정치적 용어인 동교동계의 이름을 사용한 정치활동은 없을 것이라고 2003년 1월초 언론을 통해 밝혔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대통령께 국정업무를 인계하면서 최소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고 믿습니다. 2003년 2월초 청와대비서실 마지막 조회에서 제가 말씀드렸던 내용을 언론에서는 박지원 실장의‘마지막 잎새론’이라고 보도된 내용을 기억하면서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나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풍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단풍은 아름다움으로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행복을 줍니다. 이제 단풍은 낙엽으로 떨어져 차기 노무현정부의 밑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남은 마지막 잎새, 21일간 단풍의 역할에서 낙엽의 역할로 최선을 다합시다. 우리는 승자입니다. 승자는 눈이오면 눈을 치우면서 앞으로 가고 패자는 눈이 녹기만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남은 21일 동안 우리 국민의 정부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눈을 치우면서 앞으로 나아갑시다. 5년 동안 우리는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라도 성공한다는 신념속에서 열심히 일해왔습니다. 그 결과 IMF경제파탄을 극복하고 신용등급 F학점에서 A학점으로, 외환보유고 39억불에서 1천2백30억불을 만들었고, 한반도 전쟁위험이 사라지 고 남북화해와 민주인권국가, 생산적 복지국가 그리고 세계적인 IT강국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우리는 성공한 정권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잘 마무리해 노무현 당선자와 인수위에 인계해줍시다. 이제 마지막 잎새는 21일 남았습니다.”
첫댓글 노루목님 감사합니다...^^ 덕담을 섞어가며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박지원 비서실장을 보면 과연 대통령님을 보필할 자격이 갖춰졌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한편 훌륭한 비서를 곁에 두신 대통령님이 자랑스럽고 부럽기도 하고요.. 관련 기사를 답글로 올립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박실장님 그동안 지내온 마음고생,몸고생 잘 추스리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