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져 주시는 하나님
(사무엘상 17 : 31-40)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다윗과 사울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이 무엇인가요?
1. 사람으로 낙담하지 말라(32절)
본문 32절에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
골리앗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한사람이 대표로 나와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라 크게 두려웠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골리앗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심히 두려워 합니다. 도망갑니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다윗은 사울에게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나요?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과 싸운다고 하니 사울이 무엇이라고 하였나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울은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이것이 바로 사울의 생각이요, 사울의 신앙이었습니다.
철저한 인본주의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떻습니까?
사울과는 달리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본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골리앗과 맞닥뜨린 그 상황에서 다윗은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고, 사울은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도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기에, 저 블레셋 사람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사울은 “하나님이 지금도 너를 도울 수 있을까?” 라고 하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한 말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너와 함께 계실 것이다.” 라고 확신있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불확실한 가운데,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불가능하지만 자꾸 우기니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 말이었다는 겁니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는 이런 다윗과 같은 확신있는 믿음이 있습니까?
골리앗과 같은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마다, 사울과 같이 “혹시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을까?” 라고 하는, 어떤 막연한 기대감으로 기도하고, 불가능한 일이지만, 주변에서 자꾸 기도하면 된다고 강조하니까,
사울과 같이 마지못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입니다.
아예 기도하는 자리, 믿음자리에 있지 않는 것인가요?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오직 믿음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지금까지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다윗이 무엇이라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나요?
2. 건져내셨은즉 건져 내시리이다.(37절)
본문 37절에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신다고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자신을 도우셨던 그 하나님을, 다윗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자신을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그는 늘 잊지 않고 생활 속에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애굽 땅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원망했지 않습니까?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모세에게 원망한 것이었지만, 사실 그들은 누구를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애굽 땅에서 홍해를 가르며 나올 때에, 그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소리높여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이렇게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광야의 생활 속에서 물이 없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들이 홍해를 갈라서 자신들을 구출해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그 마음에 기억하고 있었다면, 이런 원망은 나오지 아니 했을 것입니다.
엄청난 홍해 바다의 물을 주관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물이 없음으로 목말라 죽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잊어 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떻습니까? 다윗은 옛적에,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행한 일이었지만, 그 행한 일의 주체가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을 다윗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여호와께서” 누구라고 했습니까?
“여호와께서”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쉬어요.
사울은 어떻습니까? 사울은 달랐습니다. 사울도 분명 하나님께서 택하여 기름부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도 하나님은 수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질 못했습니다.
다윗은 확신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라.” 아멘!!!!
건져 내셨은즉 건져 내시리라
작은 문제이든 큰 문제이든
골리앗과 같은 큰문제가 있을지라도
과거에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오늘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담대히 나가는 것입니다.
3.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 나가라
본문 40절에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 가니라”
사울은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혔습니다.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고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고 하고 곧 갑옷을 벗었습니다.
다윗이 곰과 사자와 싸울 때, 무장하고 싸웠겠습니까?
맨 몸으로 싸웠습니다.
목동의 복장 그대로 곰과 사자와 싸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도우셨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만약에 칼과 활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싸워 이겼다면, 하나님이 도우셨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기에, 싸움에 이길만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이제 골리앗과 싸우는 순간입니다. 곰과 사자와는 비교가 되질 않는 골리앗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사울이 입혀준 갑옷과 무장을 해제하고, 원래 목동의 복장으로, 그리고 목동의 제구를 가지고, 평소에 즐겨 쓰던 유일한 무기, 무엇입니까?
물매돌 다섯 개를 준비해서 골리앗에게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랐다.”
다윗이, 사울이 주는 복장이 익숙치않아서, 그냥 있는 그대로 나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기도의 의미가, 이 “골랐다”는 말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일부러 시냇가에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돌을 집은 것이 아니라,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랐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이 돌 가운데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적인 방법과 수단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윗이 매끄러운 돌을 찾아 시냇가까지 찾아갔습니다.
익숙한 것입니다. 늘 해봤던 것입니다.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랐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이 건져 주셨고 지금도 건져 주실 것을 믿습니다. 건져 주셨은즉 건져 주시리라
골리앗에게 선포하였습니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바로 이러한 모습이, 다윗의 신앙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사람에게 이런 소리를 들을수 있습니다.
“예수 믿어도 별 볼일 없네.” “예수 믿는 사람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네.”
“어찌 예수 믿는 사람이 저모양이야, 우리보다 더 못해”
자신만 욕을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까지도 욕을 먹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 하나님의 불을 받은 사람/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사람들로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십니다.
건져 주셨은즉 건져 주시리라.
과거에도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셨고 지금도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시고
앞으로도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실 것입니다고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건져 주시는 하나님, 도와 주시는 하나님
함께 해 주시는 하나님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