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9년 7월 17일 B2스텔스 폭격기 시험비행 성공
▲B2스텔스 폭격기.
적의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도록 설계된 미국의 B2스텔스 폭격기가 1989년 7월17일 오랫동안 지체해 왔던 시험비행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개발에 8년의 시일과 2백30억달러의 경비가 소요된 B2스텔스 폭격기는 이날 두 조종사를 태우고 캘리포니아 사막의 팜데일에 있는 한 공군 활주로를 이륙한 뒤 하늘높이 상승하여 2시간의 비행 끝에 에드워드 공군기지에 무사히 착륙했다. B2스텔스 폭격기는 제작비용이 대당 5억 3천만달러나 소요되어 의회에서도 제작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았았다.
➡️2009년✦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호텔 폭탄 테러
➡️2009년✦전설적인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 별세
➡️2005년✦‘아시아의 물개’ 조오련과 두 아들, 제주 모슬포~마라도 횡단
➡️2002년✦정부, ‘외국 인력제도 개선대책’ 발표
👉🏿 정부가 17일 내놓은 ‘외국 인력제도 개선대책’으로 국내 외국인 근로자의 운용 틀이 크게 바뀌게 됐다. 정부가 개선책 마련에 나선 것은 현행 제도로는 26만6000여명에 달하는 불법 체류자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산업연수생의 불법 근로자화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송출기관의 연수생 선발권을 제한해, 국내 관리기관에서 연수생을 컴퓨터로 추첨해 뽑게 했다. 신설될 연수생 관리기관은 연 2회씩 정기감사를 받게 되고, 연수생을 한국으로 보내는 국가는 한국 내에 관리사무소를 신설해야한다. 연수생 이탈률이 높은 국가는 ‘송출국 지정 취소’ 등 강력한 제재를 받게된다.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음식점업, 사업지원서비스업, 사회복지사업, 청소관련 서비스업 등에 대한 외국동포 취업이 이번에 처음 허용됐다. 단, 유흥관련업종 취업은
전면 금지된다.
정부는 현재 서비스업종에 취업중인 외국인 대부분이 동포인 점을 감안, 서비스업종 취업자격을 일단 동포들에게만 허용했다. 대상은 ‘국내에 8촌이내의 혈족 또는 4촌 이내의 인척이 있거나 대한민국 호적에 등재된 자 및 그의 직계존비속으로 40세 이상인 외국 국적 동포’로 정한게 그것이다. 이들은 ‘방문동거 체류자격(F1)’ 비자를 받아 국내에 입국한 뒤 서비스 업종에 취업할 수 있다.
음식점업 등 서비스 분야에서 외국동포를 고용하고 싶은 업체는 산재보험 및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며, 신청일 이전 6개월간 임금체불, 근로계약 위반 등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사실이 없어야 하고, 신청일 기준 2년 이내에 불법고용으로 처벌을 받은 적이 없어야한다.
또한, 외국동포를 고용한 업체는 이들이 일을 마치고 귀국하는 것을 보증하기 위해 법무부에 300만원 이하의 ‘귀국 보증금’을 예치해야한다. 반대로 외국동포는
한번 택한 업체를 바꿀 수 없고 가족동반을 할 수 없다.
➡️2001년✦캐서린 그레이엄 워싱턴포스트지 회장 별세
➡️1999년✦영화 `용가리` 개봉
➡️1997년✦서양화가 한봉덕 화백 별세
👉🏿 온몸에 퍼진 암세포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화가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 90여점을 다른 환자들이 힘을 얻어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써달라며 병원에 내놓았다. 기증자는 서양화가 한봉덕 화백이다. 자신이 입원한 병원의 환자들을 위해 노년의 작품을 아무 조건없이 기증한 원로 서양화가 한봉덕 화백이 1997년 7월 17일 끝내 별세했다.
평북 영변 태생으로 만주 신경미술학교 출신인 한 화백은 1950년대 말 우리나라 현대미술문화운동의 중요한 이벤트가 된 `조선일보 현대작가 초대전`을 탄생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1970년대 초 스웨덴 의사의 권유로 스웨덴으로 이주해서는 붓글씨 쓰는 모필로 서양화를 그리는 독특한 작업방식으로 그곳 화단에서도 잘 알려졌다. 지난 1988년 귀국, 제주도와 용인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국내 서양화단의 가장 원로그룹을 형성하며 작품판매보단 제작에만 몰두해왔다.
➡️1997년✦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위버 사망
➡️1996년✦TWA 보잉747 여객기 공중폭발, 2백28명 몰사
➡️1994년✦세기의 우주쇼, 슈메이커-레비 혜성 파편들과 목성 충돌
➡️1983년✦남북이산가족재회 촉진대회
➡️1980년✦일본 수상에 스즈키 젠코(영목선행) 피선
➡️1980년✦미국내 이상폭서로 1000여명 사망
➡️1980년✦볼리비아에 군사 쿠데타, 가르시아 집권
➡️1979년✦니카라과에 좌익정권 탄생, 소모사대통령 미국 망명
➡️1976년✦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 개막
➡️1975년✦아폴로-소유즈 도킹 성공
➡️1973년✦아프가니스탄에 쿠데타 왕정 폐지
➡️1969년✦3선개헌 반대 투위(鬪委) 발기
➡️1969년✦여의도 국회의사당 기공
➡️1959년✦美 재즈 가수 빌리 할리데이 사망
➡️1959년✦부산 공설운동장서 참사, 시민위안의 밤 진행중 폭우로 출구에서 67명 사망 150명 부상
👉🏿 부산에서 시민위안잔치에 참석한 관중 3만여명이 소나기를 피하려고 좁은 출입구로 쏟아져 나오다 67명이 압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1959년 7월 17일 부산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제2회 부산시민위안회에는 가난과 실직에 찌든 3만여명의 부산시민들이 여름 오후 구경거리를 찾아 모여들었다.
오후 8시경 영화배우팀과 만화가팀 간의 야구시합에 뒤이은 시민위안공연이 한창일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당황한 군중들이 하나 뿐인 출입문으로 몰려들면서 앞으로 쓰러진 사람들을 뒤에서 그대로 짓밟아 순식간에 남녀 67명이 목숨을 잃고 24명이 크게 다쳤다. 정부에서는 시체1구당 매장비 등으로 3천환씩 지급했을 뿐 아무런 보상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1955년✦디즈니랜드 개원
➡️1955년✦제1회 학ㆍ예술상 시상
➡️1954년✦학술원-예술원 개원
➡️1952년✦부산 부두노동자 총파업
➡️1948년✦제헌절 제정
➡️[1948년] 대한민국 헌법 공포
👉🏿 1948년은 `대한민국호(號)`를 진수(進水)시키기 위해 전 국민이 숨가쁘게 질주했던 한 해였다. 5월10일 총선으로 198명의 제헌의원을 탄생시켰고, 5월31일에는 최고령자 이승만을 임시의장으로 한 역사적인 제헌의회가 개원을 맞았다. 첫 본회의는 188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이승만을 정식 국회의장으로 선출했다. 이로써 3권분립의 한 축이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이제 대한민국의 밑그림이 될 헌법을 제정할 차례다. 누군들 경험이 있었을까, 당연히 시행착오가 따랐다. 국회 내에 발족한 `헌법 및 정부조직법 기초위원회`는 유진오 등 10명을 전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이들이 내놓은 헌법 초안은 내각책임제와 양원제였다. 대통령 중심제를 원했던 이승만은 분노를 드러내며 압력을 가했다. 내각책임제를 강행할 경우 자신은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것. 당시 이승만의 위치는 김구가 현실정치에서 한 발 빠져있는 상태에서 유일한 절대 강자였다.
6월22일 한민당이 이승만에게 먼저 굴복했다. 내각책임제를 대통령중심제로 바꾼 수정안을 다음날 국회 본회의에 상정한 것이다. 이래서 "하룻밤 사이에 역사가 뒤바뀌었다"는 말이 돌았다. 수정안을 놓고 12차례나 토론을 벌였지만 대세는 이미 이승만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7월12일 국회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헌법이 가결됐고, 17일에는 이승만 의장이 국회의사당에서 헌법에 서명ㆍ날인하고 이를 내외에 공포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그리고 사흘 뒤 이승만은 국회에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이승만에게 실질적인 힘이 실리는 순간이었다.
➡️1946년✦38선 이북으로의 통행 금지
➡️1945년✦미국-영국-소련 수뇌 포츠담회담 개최
➡️1917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기ㆍ예능보유자 명고수 김득수 출생
➡️1917년✦수리조합령 공포
➡️1902년✦미국 윌리스 캐리어, 에어컨 발명
➡️1876년✦소련의 외교관 막심 리트비노프 출생
➡️1868년✦일본 강호를 동경으로 개칭
➡️1865년✦독립운동가 임예환 출생
➡️1790년✦고전경제학 창시자 애덤 스미스 사망
➡️1763년✦미국의 모피 왕 애스터 출생
➡️1744년✦미국의 독립선언문 서명자, 부통령 게리 출생
➡️1674년✦제2차 예송논쟁에서 남인 승리
➡️1453년✦백년전쟁 종결
➡️1392년✦태조 이성계 수창궁(壽昌宮)에서 즉위, 조선왕조 건국
https://youtu.be/GGyHbQVg4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