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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城)의 신학과 농(農)의 신학
-창세기 4장 17절을 중심으로
들어가는 말
헬레니즘 시대에 도시국가의 질서를 가리켜서 그리스어로 “코스모스”라고 불렀다. 고 박홍규 교수의 유고집에 「코스모스」란 논문이 이를 잘 보여준다. 요한신학에서 ‘세상’이라고 하면 그리스어로 “코스모스”이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요 1:10) 도시국가는 그리스어로 “폴리스”인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펼친 책 『니코마스윤리학』에 “폴리스”의 질서와 가치관이 잘 드러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노예에게 인권이 없다고 본 점이다. 도시국가의 신민들에게 있어서 노예는 인간이 아니라 가축이었다. 고대노예제를 주도하던 폴리스 체제의 가치관이다. 폴리스 이데올로기가 바로 헬레니즘의 문명을 가능케 하였다.
헤브라이즘은 성서에 잘 나타나 있다. 이는 헬레니즘과 갈등하는 개념이다. 성서는 헬레니즘이 갈등하는 책이다. “폴리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이르”이다. “이르”에서 고통을 당하는 노예들이 성서의 주인공들이다. 십계명은 “이르”에서 히브리 노예들을 이끌어 내신 하나님이 곧 야웨이시라고 증언한다.(출 20:2) 고대노예제 사회에서 도시국가의 문명을 주도하던 왕들을 진멸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오경/육경의 이야기이다.(수 12) 헤브라이즘을 유대국가 내지는 유대민족이 펼친 사상과 가치관이라고 보는 것은 조금 빗나간 관찰이다. 국가나 민족 개념은 헤브라임에서 긍정하는 항목이 못된다. 국가는 오히려 헬레니즘의 주제이다.
오경연구의 학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지 오래다. 솔로몬 시대의 J문서와 북왕국 시대의 E문서를 설정하는 가설은 무너졌다. 다만 포로기의 D문서와 포로기 이후의 P문서만 남았다. 오경은 솔로몬 시대나 유대왕국 시대의 저작물이 아니다. 오경은 포로기 내지 포로기 이후 시대의 산물이다. 바빌로니아 내지 페르시아의 도시국가체제 아래서 노예노동에 종사하던 유대인 디아스포라 집단이 펼친 신학책이 토라이다. 다시 말하자면 도시국가의 생산체제 아래서 많은 문명적 문제를 안고 고통당하면서 노예노동력을 제공하던 하층민들의 사상과 가치관을 펼친 책이 오경이다.
그래서 오경에는 세상의 도시국가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갈대아 ‘우르’, ‘하란’, 이집트의 ‘미츠라임’, 블레셋의 ‘그랄’, 가나안의 ‘소돔’과 ‘고모라’, 시날 땅의 ‘바벨’, 아시리아의 ‘니느웨’ 등등 무수하다. 이 모든 도시국가들에서 믿음의 조상들이 고난을 당했으며 이스라엘은 이들 도시국가들을 극복해야 했다.
오경은 도시국가의 기원론을 제시한다. 도시건설의 원조는 가인이다. 아벨을 죽인 가인이 복수를 당할까 두려워 성벽을 쌓고 도시를 건설하였다. 이 이야기가 창세기 4장에 나온다. 특히 창세기 4장 17절에는 가인이 아들을 낳고 가족을 원수로부터 보호하려고 지은 것이 “에녹” 성이라고 묘사한다. 성서는 도시의 건설이나 국가의 건설을 죄의 산물이라고 규정하고 도시국가가 펼치는 문명과 역사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본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어지러운 세상 한가운데 있다. 세상국가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쟁투의 사건들에 교회도 휘말려 어지럽다. 고요한 마음으로 묵상과 영성생활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소음이 굉장하다. 소위 ‘교회와 국가’ 또는 ‘교회와 사회’라는 주제로 오래 고민하던 신학의 쟁점이 다시 논의되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안고 창세기 4장을 자세히 살펴보고 묵상해 보자.
1. 도시의 기원: 죄의 결과
[창4: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창세기 4장 17절의 구문은 창세기 4장 1절의 구문과 동일하다. 동사도 일치한다. 그리고 창세기 4장 25절에도 이 구문은 반복된다.
창 4:17,
(카인이 자기 아내를 알았을 때 그녀가 임신하여 하녹을 낳았다)
창 4:1,
(그 사람이 자기 아내 하와를 알았을 때 그녀는 임신하여 카인을 낳았다) 창 4: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를 알았을 때 그녀는 한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이름을 세트라고 불렀다)
위의 세 구절에 동사 “야다”가 공히 등장한다. “야다”는 ‘알다’란 뜻이다. 남녀 간에 성관계를 가리켜 야하지 않게 표현하는 점잖은 용어이다. 이후로 창세기 5장부터는 아담의 후손들의 출생을 보도할 때 “야다” 동사는 쓰지 않고 “얄라드” 동사만 사용한다. 창세기 4장 1절, 17절, 25절에 특별히 동사 “야다”를 쓴 것은 아무래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란 명칭 속에 동사 “야다”가 사용된 점과 밀접히 연결되는 것 같다. 선악과를 따먹고 선과 악을 구별하게 된 이후에 사람이 자녀를 출생하게 되었다. 창세기 4장은 선악과를 먹은 죄의 아들 가인에게서 죄가 더 불어나서 동생 아벨을 죽이고 그 후유증으로 에녹성이 생겨났다고 설명하고 있다.
위의 1절과 17절에 동사 “하라”가 사용되었다.(타하르) “하라”는 ‘임신하다’란 뜻이다. 이 동사는 선악과를 먹은 여자를 저주할 때 사용된 용어로서(창 3:16, “헤론”,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에덴 이후의 출생이 모두 죄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 같다. 동사 “하라”는 출산의 고통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고 간주해야 할 것이다. 창세기 1장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복주셨으니 에덴동산 안에 살 때에도 생육하고 번성하였을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살 때에 “아담”은 사람 일반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쓰였으며 선악과를 먹고 에덴에서 쫓겨날 때 비로소 이름으로서의 “아담”과 “하와”가 등장한다.
가인은 어디서 아내를 구하였을까? 당시 세계에는 사람이라고는 고작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 밖에는 없지 않는가? 또 가인이 살인죄를 범하고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라고 탄원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전제하는 것도 에덴에 살던 사람이 많았음을 의미한다. 창세기 2-3장은 “아담”에 정관사 ‘하’를 붙여서 “하아담”이라 표기함으로써 인류를 통칭하게 하였다. 가인이 놋 땅의 여자와 결혼했다고 하는데 에덴에서 추방된 사람들이 흩어져 놋 땅에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인의 아내 놋 땅의 여자가 임신하여 첫 아들 ‘에녹’을 낳았다.
가인은 아들을 낳은 때부터 마음이 더욱 불안해졌다.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야웨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는 표를 주셨지만 그것이 어디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확실한 보안대책이 되지 못하였다. 창세기 4장 15절의 ‘보호하는 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오트”이다. “오트”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기적과 이사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하나님께서 기적과 이사를 일으켜서 가인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며 원수들의 폭행에서 건져 주신다는 것이다. 이마에 찍히는 것과 같은 어떤 보증이 아니다. 하나님의 “오트”를 신뢰하려면 믿음이 필요했다. 오직 믿음으로만 불안한 삶의 안정성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가인의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들이 생기자 가인은 불안에 휩싸인다. 언제 피의 복수자가 가족을 해칠지 모른다. 하나님의 보호하신다는 약속만 믿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가인은 자기 힘으로 가족을 보호할 대책을 세운다. 가인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단의 조치를 취한다.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겠다고 표를 주셨지만 그 표를 믿을 수가 없었다. 사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했다. 급기야 가인은 한 성(城)을 쌓았다.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서 그 성을 ‘에녹’성이라 불렀다. 이로써 인류 최초의 도성이 탄생하였다. 성벽은 인간 사이의 불통을 상징한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불소통되었다가 마침내 사람 사이에도 불통되고 투쟁의 관계로 타락해 버린 것을 상징한다.
도성은 히브리어로 “이르”이고 그리스어로는 “폴리스”이다. 영역본은 대개 city라고 번역한다. 고대의 도성은 초기에는 가로 세로 약 300m 가량의 대지에 성벽을 쌓아 둘러싼 모양으로 건설되었다. 후대에 갈수록 그 규모가 커져 수 킬로미터로 확장되었다. 도성은 길가메쉬와 같은 영웅들이 건설하였다. 도성에는 왕이 군림하였고 도성 인근의 농토의 보호권을 행사하였고, 산림 채굴권과 광산의 소유권을 행사하였다. 도성에는 도수로가 필요했고 성벽축조, 왕궁, 신전 등 건축물이 필요했기 때문에 수학과 건축술과 토목기술이 발달하였다. 경제생활을 위해서 수공업과 상업이 발달하였으며 도성의 아고라에서는 농산물을 위시한 각종 상품들이 거래되었고 전쟁의 전리품이 분배되었다. 이 공간에서 발달한 것을 우리는 ‘문명’이라고 부른다. 우리말로는 표현되지 않지만 영어 civilization에는 도시가 문명의 터전임이 표현되어 있다. 이 단어는 키비타스(civitas, 고대로마의 시민권)에서 파생했는데 도시인의 생활방식을 가리킨다. 성서는 살인자 가인이 문명의 창시자였다고 제시한다.
도성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력이 투여되었다. 많은 노동력을 취득하려면 전쟁을 일으켜야 했다. 도성이 여기저기 생김으로써 평화는 깨어지고 전쟁이 수시로 발발하였다. 도성들은 서로 연맹을 맺고 다른 도시연맹들의 침략에 대항하였다.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침략을 일삼기도 하였다. 도성을 유지하려면 대규모의 노예노동력을 계속 공급해야 했기 때문이다. 도성으로 물을 끌어오는 도수로를 위시하여 성벽과 성안의 시설들을 건축하기 위해서 석재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공급해야 했다.
석재를 공급하는 곳이 채석장이며 생산을 위해서 노예노동을 계속 대량으로 투여해야 했다. 고대의 도성들 주변에 채석장이 있었음은 사사기의 에훗 이야기에 나타나 있다. 사사 에훗은 모압 왕 에글론을 죽였다. 에훗은 ‘채석장’에서 출발해서 에글론을 죽였고 그 후에 ‘책석장’을 통하여 도망을 쳤다.(삿 3:19, 26) ‘돌 뜨는 곳’의 히브리어는 “퍼실림”인데 단수 “페셀”의 복수형이다. “페셀”은 십계명인 출애굽기 20장 4절에 나오는데 ‘새긴 우상’이라고 번역하였다. ‘새긴 우상’“페셀”은 채석장에서 나온 제품이다. 솔로몬도 석재를 구하려고 백성 가운데 ‘돌 뜨는 자’1)를 팔만 명이나 동원하여 채석장의 부역에 투입하였다.(왕상 5:15[히 29])
도성을 건설하려면 대량의 목재가 필요했다. 목재는 산판에서 생산되었다. 도시건설자는 노예들을 산으로 보내어 나무를 베어내고 목재를 운반해 와야 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려고 레바논 산으로 삼만 명의 ‘역군’을 보냈다.(왕상 5:13[히 27]) ‘역군’은 히브리어로 “마스”인데 강제노동에 동원된 집단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청동기 시대나 철기 시대에는 광물을 캐내기 위하여 노예노동력을 투여하여 광산을 개발하였다. 최초의 도성 에녹성에 살면서 가인의 후예들이 최초로 광산을 개발하였다.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창 4:22) 청동제 무기와 철제 무기가 개발되었다. 블레셋 군대는 철제 무기로 무장하였지만 이스라엘 사울의 군대는 청동제 무기로 그들을 대항하였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골리앗은 청동제 갑옷을 입었고 사울의 갑옷도 청동으로 만든 것이었다.(삼상 17:5, 38) 여리고 도성 안에는 금은과 동철기구가 많이 있었다.(수 6:19, 24)
에녹성에 사는 가인의 후예들은 육식을 즐겼던 것 같다. 육식은 아직 허용된 식품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먹을거리는 채소니라’고 정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창 1:29), 에녹성의 성민들은 성 바깥에서 가축을 길러 고기를 공급하였다. 도성의 주변에서 축산업이 발달하였다.(창 4:20) 도성에서 육식을 함으로써 육신의 강함을 도모하고 용사들을 배출해야 원수들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다. 도성에서는 저녁마다 향연을 베풀고 학문과 기예를 뽐내고 나누며 고기와 술을 먹었다. 여기에 악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가인의 후예 유발이 수금과 퉁소를 제작하여 연주하였다. 도성에서 음악이 발달한 것이다. 이러한 도성의 의식주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많은 집약노동이 필요했다. 또한 도성의 잡일을 처리하는 노예들도 필요했다. 도성의 지배자들이 노예를 대규모로 취득할 수 있는 길은 다른 지역을 침공하여 주민들을 포로로 끌고 오는 방법뿐이었다.(창 14:12)
도성이 출현함으로써 세계에는 문명이 출범하게 되었다. 고대의 도성이 현대도시의 원조이다. 도시에서 문명이 발달한다. 문명(文明)은 영어로 civilization이다. 곧 도시화를 가리킨다. 도시를 지배하는 왕이 권력을 키워갈수록 대제국을 형성하였다. 이집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페르시아, 헬라, 로마, 합스부르크 등의 제국이 다 한 도성에서 출범하였다. 오늘날에도 도시들이 문명을 주도한다.
도성은 곧 국가였다. 도시국가에 사는 성민들은 왕을 중심으로 잘 통합하고 굳게 단결해야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번영을 위해서는 통합된 이데올로기가 필요하였다. 이것이 도시국가의 신전에서 발달한 종교였다. 거대한 지구랏을 만든 바빌로니아의 마르둑 종교나 웅대한 피라미드를 쌓은 이집트의 태양신 종교를 들 수 있다. 가나안에서는 바알종교가 도시국가들의 안녕을 보장해 주었다. 도성 안에는 궁궐이 있고 그 곁에는 신전이 있었다. 이 신전의 제사장들이 도시를 통합하는 이데올로기를 지어냈다. 모든 도시마다 그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우상이다.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렘 2:28; 11:13) 도시들마다 우상을 성문에 내걸고 신전에서 표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폭력을 휘두르는 영웅들이 출현하여 자기중심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이것이 도성이다. 자기들의 문명을 옹호하고 지켜주는 신들을 만들어 내고 숭배함으로써 단결을 꾀하였다. 도성의 주변세계를 수직하향식 만신전의 권력체계로 표상하였다. 신들의 형상을 조각하여 도성의 중앙에 내걸었다. 우상숭배는 도성의 문명이 낳은 종교현상이다. 성서는 우상숭배를 철저히 배격한다.
요약하자면, 도시문명의 조상은 가인이었다. 도시문명의 배후에는 살인의 기억과 불안한 생존과 흔들리는 안보의식이 깔려 있다. 이것은 믿음의 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 바탕에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인생을 자기중심으로 살아온 조상들의 오래 누적된 죄가 깔려 있다. 그 본질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성이다. 도시문명이 인간중심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인간의 죄성은 극복할 수 없다.
2. 성(城)의 우상종교과 농(農)의 야웨신앙
도성의 만신전은 신의 위계질서를 갖추고 있다. 신들은 서로 투쟁하는 관계에 있다고 믿는 종교사상이다. 이것이 우상신학이다. 우상신학은 『에누마 엘리쉬』에 잘 나타나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나 페르시아의 신전에서 펼치던 지배자들의 엘리트신학이 『에누마 엘리쉬』이다. 창세기의 창조이야기는 『에누마 엘리쉬』의 신학을 부정하고 뒤집어엎는다. 고대의 도성민들의 국정교과서가 곧 『에누마 엘리쉬』였다는 말인데 성서는 이에 대한 대안교과서로 출판되었다는 말이다. 『에누마 엘리쉬』는 신들이 전쟁을 벌인 결과로 세계가 창조되었다고 노래한다. 하지만 창세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계가 창조되었다고 선언한다.
이외에도 우상신학의 대표작은 『길가메쉬 서사시』이다. 이는 최초의 도성국가 우룩의 제5대 임금으로서 왕노릇했던 길가메쉬의 일대기를 노래한다. 그는 엄청난 능력을 지닌 영웅이다. 우상신학은 영웅숭배의 사상을 펼친다. 정의는 강자의 것이며 신들은 엘리트를 사랑한다. 패자나 약자는 신들에게 버림받아 노예가 된다. 노예는 신에게 버림받았으므로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영웅들을 예찬하는 찬송가가 길가메쉬 서사시이다. 그러나 성서는 약자와 패자를 사랑하시는 야웨 하나님을 증언한다. 창세기 6장 1-4절에 보도된 네필림 이야기는 영웅숭배의 신학을 뒤집어엎기 위해서 작성된 문단이다. 영웅들의 출현은 죄가 증가한 결과라고 해석하여 영웅숭배의 우상신학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영웅들(하나님의 아들들)의 출현으로 힘없는 민중(사람의 딸들)은 고통을 앓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폭력의 죄가 세상을 뒤덮게 되었다. 이로써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흐트러지게 되었다.(창 6:5) 이로써 노아 시대에 이르러 대홍수의 심판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성서는 고대 제국들 안에서 널리 퍼져있던 민담들과 사상세계를 되짚는 거꾸로 해석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우상신학을 비판하는 것이다. 예컨대, 길가메쉬에 동원된 「우트나파티쉼 홍수이야기」나, 애굽인 사이에 널리 퍼져있던 「시누헤의 이야기」나 「두 형제들의 이야기」의 요소들이 성서에 많이 인용된다. 고대에 만연한 우상신학이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디아스포라 토라공동체는 새로운 신학을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창조신학이다. 따라서 성서의 창조신학은 주로 도성의 죄악을 타격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고대근동의 사회는 노예제 사회체제였다. 노예가 모든 생산을 맡았다. 노예를 부리는 주인은 도성에 살고 있는 왕과 귀족들이다. 고대근동에서 왕과 귀족들이 추동한 국가체제가 정립하였다. 왕들이 벌이는 정복전쟁은 영토를 확장하고 재물과 노예를 확보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노예들은 정복전쟁을 통해서 양산되었으며 부차적으로 가난한 자들의 채무로 인해서 노예가 보충되었다.
창세기 4장 17절은 고대노예제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광역권의 지배체제를 구축한 제국들은 도성의 연합체제로 이룩되었다. 도성의 연합체가 바로 국가이다. 이집트의 람세스성과 비돔성을 탈출하였다는 것은 바로 국가체제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도성을 탈출하여 시나이 광야로 나아갔다는 것은 대안의 사회체제를 구성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출 19:1, 민 10:10) 이집트제국 하에서 노예로 일하던 히브리인들이 시내광야에서 호렙산에 이르러서 야웨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이 오경 시나리오의 중심이다.(출 25:22) 시내단화는 구구절절 도시문명과의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운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말씀을 전달하는 고독한 설교자 모세(출 20:18-21)는 광야를 헤쳐 나아가야 한다. 에스겔은 믿음의 공동체가 국가들 사이에서 움직여 사는 것을 가리켜서 ‘열국광야’란 용어로 표현하였다.(겔 20:35, <미드바르 하암밈>)
해석학의 과정을 거쳐 보자. 성서는 도성들의 연합체제로 세운 제국이 내세우는 우상숭배의 문명을 타격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국가주의에 반대하는 책이다. 이러한 쟁점을 지금까지 그리스도인과 기독신학자들이 보지 못하고 있다.
이영재 l 목사는 한신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스코틀랜드 에버딘대학(Aberdeen University)에서 석사(M.Th.)와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독일 보쿰에서 1년간 연구했으며, 현재 전주 화평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전주성경학당 길잡이를 맡고 있다. 한신대와 광주 바이블칼리지 등에서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히브리성서 연구의 최근동향」, 『광야에서 I , II 』, 『토라로 세상읽기』, 『토라서론 I, II 』등의 연구와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