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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44회>
씬 1 충주 관아 외경 (밤)
어두운 밤 하늘 위로 천둥 번개가 진동하고 있고 엄청난 빗줄기가 그곳 관아로 퍼붓는다.
씬 2 동 관아 궁예의 임시 처소 외경
내군의 군사들이 굵은 빗줄기를 맞으며 철통같은 경계를 서고 있다.
씬 3 동 처소 안
궁예와 연화가 나란히 침상에 누워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궁예와는 달리 연화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몸을 뒤척인다. 창밖에서는 계속 비바람 소리가 극성이다. 연화, 잠이 든 궁예를 보다가는 침상에서 내려와 옷을 걸친다.
씬 4 동 처소 밖
연화가 밖으로 나온다. 내관들과 제조상궁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제조상궁 마마......
연화 잠이 오지 않는다네.......바람이라도 쏘이고 싶어서 그러네..
제조상궁 하오나 밖의 날씨가 매우 좋지 않사옵니다. 마마...
연화 괜찮으니 가서 슬이나 좀 불러주게.
제조상궁 쇤네가 따르겠사옵니다.
연화 그럴 필요 없네.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전하게.
제조상궁 (조아리며) 예.
연화, 천천히 밖으로 나간다. 제조상궁이 어쩔줄 모르며 상궁 하나에게 눈치를 주자 그 상궁이 어디론가 급히 향한다.
씬 5 그 밖
계속 폭우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연화는 처마 밑에 서서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를 쳐다보고 있다. 연화의 얼글은 깊은 수심에 잠겨있다
연화 (E) 웬 비가 이렇게 내린단 말인가? 이 마음은 또 왜 이리 갈피를 잡지못하고 이럴고.... 왜 이리.....안절부절 이럴꼬......
그렇게 얼마를 비를 보고 있는데 슬이가 제조상궁과 함께 다가오고 있다.
슬이 마마...
연화 그래. 곤히 자는 것을 공연히 깨운 것 같구나.,
슬이 아니옵니다. 마마....어인 일이시옵니까?
연화 (제조상궁에게) 슬이와 함께 있을테니 자네는 그만 들어가 보게.
제조상궁 예. 하오면......... (뒷걸음질 쳐 물러간다)
슬이 (한 걸음 다가와)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연화 일은 무슨......그저 마음이 잡히지를 않아서 나왔느니라.
슬이 .............
연화 비는 이렇게 쏟아지고 .....잠은 아니오고.....그리고 오늘 따라 북원부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구나.
슬이 그 일은 이제 잊으시오소서. 다 끝난 일이옵니다.
연화 그래야 할텐데..... 쉽지가 않구나.
슬이 안으로 드시오소서. 밤바람이 차옵고 비도 들이치고 있사옵니다.
연화 이렇게 있는 것이 좋으니라. 비를 보고 있으니 참으로 좋아..... 마음이 후련해지는 듯도 싶구나.
슬이 ..............
천둥이 친다. 천지를 부술듯이 그렇게 울고 있다. 그 쏟아지는 비..빗소리에서.....
씬 6 궁예의 임시 처소 안
이곳에서도 천둥소리는 울고 있다. 궁예가 심하게 몸을 뒤척이고 있다. 악몽을 꾸는 듯 온 몸은 온통 식은땀 투성이다. 어디선가 음산하고 처절한 신음 소리가 궁예를 부르고 있다.
경문왕 (E) 궁예야....... 궁예야.......
궁예 ...누구요.......? 누... 누구요?
씬 7 그 꿈속
놀라서 일어서는 궁예의 몸둥아리 위로, 경문왕이 보기에도 끔찍한 몰골로 나타난다. 그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다.
경문왕 그만 일어 나거라, 궁예야. 네 아비가 왔느니라. 내가 너의 생부이니라. 나를 못 알아 보겠느냐?
궁예 (신음 섞인) 나는 모르오..... 나는 모르오.....
경문왕 이놈.... 내가 너의 아비이니라. 내 얼굴을 똑똑히 보거라......
궁예 나는 아버지가 없소. 당신은 나를 버렸고.... 나 또한 당신을 버렸소.......
악몽속의 궁예의 얼굴이 점점 더 처절하게 일그러진다. 경문왕이 점점 궁예에게로 다가오고 있다. 궁예는 장도를 겨누며 뒷걸음질 치고 있다.
경문왕 궁예야..... 궁예야......나를 모르겠느냐? 네가 죽인 아비니라.
궁예 .......... (계속 뒷걸음 친다)
경문왕 궁예야......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니라. 내 화상에 칼을 꽂아, 나를 또 한 번 죽였느니라. 네 아비를 말이다.
궁예 아니오... 아니오.... 나에게 아버지따윈 없소이다. 당신은 나를 죽이려 했소. 나의 아버지가 아니오.
경문왕 너는 나의 아들이니라. 신라의 왕자이니라. 신라의 핏줄은 타고 났느니라.... 그것을 아무리 부정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야.
궁예 나는 신라의 왕자가 아니오. 고려의 황제요.
경문왕 하하하. 다른 사람은 속여도 이 애비만은 속이지 못하느니라. 너는 분명 신라의 왕자다.
궁예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궁예는 미친 듯이 칼을 휘둘러대며 부정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경문왕은 고통스럽게 궁예에게 다가서고 있다.
경문왕 너는 네 장인인 양길을 죽이고 네 처 또한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들 또한 지하에서 너를 지켜보고 있느니라. 그 피의 댓가가 무엇이란 말이냐?
궁예 미륵의 세상이 도래할 것이외다. 모든 이들이 바라마지 않은 그러한 세상이오.
경문왕 하하하. 그것 또한 허상에 지나지 않느니라. 너는 미륵이 아니라 인간이니라.........세달사의 중 선종이고 나의 아들 궁예니라......
궁예 나는 미륵이오......
경문왕 (다시 무섭게 다가오며) 아니니라. 너는 미륵이 아니니라.
궁예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며) 미륵이오.... 나는 미륵이오......
경문왕 너는 미륵이 아니니라.... 나의 아들이고 ... 신라의 왕자이니라.......
궁예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경문왕 이리 오너라. 무서워 하고 있구나 궁예야..... 애비를 보거라. 너의 애비니라. 자,,어서...네가 죽인 애비를 보거라.....
궁예 가까이 오지마오, 가까이 오지마.......가까이 오지마...에잇....
궁예는 몸부림을 치며 칼을 계속 휘두른다. 그러나 경문왕은 죽지 않고 계속 다가와 궁예의 목을 감아 쥔다. 발버둥치는 궁예....경문왕의 그 처참한 몰골이 궁예의 얼굴을 덮어들며 목을 조인다, 궁예의 비명소리.....비명소리.....
씬 8 현실
궁예는 두 손을 허공에 저으며 절규하고 있다. 문으로 내관들이 뛰어들어온다.
낸관 폐하.......폐하...?
궁예 (벌떡 일어서며 한참을 본다......)......
내관 악몽을 꾸셨던 모양이옵니다.
궁예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차린다)... 물이나 한 잔 주게.
내관 예.폐하.... (물그릇을 바쳐 올린다)
궁예 (고개를 가로 저으며 E) 흉몽이었어. 지독한 흉몽이었어. (물을 마시고는) 황후는 왜 보이지가 않는가?
내관 잠도 오지 않고 답답하시다 하여 바람을 쏘이시러 나가셨사옵니다.
궁예 그랬구먼. 알았으니 그만 나가들 보게.
내관 (고개를 조아리고 물러나는데)
궁예 아니야. 아니야. 잠이 올 것 같지가 않구먼.....짐도....바깥바람 좀 소여야 겠노라...... 황후를 따라 산책이나 나가야 겠어. 용포를 내어주게.
내관 예...........
씬 9 처소 밖
하늘에서는 천둥 번개가 요란하지만 비는 그쳤다.
슬이 (처마 밑에서 나오며)마마.... 신기하게도 비가 그쳤사옵니다.
연화 그렇구나.
슬이 무슨 날씨가 이렇게 변덕스러운지 모르겠사옵니다.
연화 그렇구나... 지금의 내 마음 처럼 말이다......좀 걷고 싶구나.
슬이 예? 하오나........행궁으로 돌아가셔야......
그러나 연화가 벌써 앞서간다. 슬이도 더 이상 대꾸 하지 못하고 빠르게 뒤로 따라 붙는다.
씬 10 왕건 처소 외경
씬 11 동 처소 안
왕건과 의형제들, 홍유들이 모여 앉았다.
유금필 비가 그친 듯 싶사옵니다.
박술희 그렇사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쏟아지더니......
왕건 이렇게 늦 장마가 계속되면 농사에도 적지 아니 피해가 있겠어. 큰 수해는 없어야 할 터인데...... 폐하께오서는 침수 드셨다 하던가?
유금필 예. 긴 순행길에 피곤이 누적되신 듯 싶사옵니다. 황후마마와 일찍 침소로 드셨다 하옵니다.
왕건 잠자리에 불편함이 없으실지 모르겠네?
홍유 여기 유긍달 장자가 온갖 성의를 다하였습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황궁만이야 하겠습니까?.
왕건 (끄덕인다)........................
유금필 순행길은 어떠하였사옵니까?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다 들었사옵니다만.
왕건 순행중에 후원의 마님께서 돌아가셨어. 안타까운 일이지.
능산 소장들도 들었사옵니다. 그것.....참.....
홍유 결국.... 그렇게 될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누구 하나....의지할 곳이 없었지 않사옵니까......?
배현경 그래도 복지겸장군이 그나마 상당한 관심을 주고 있었지요.
김언 그랬습니다. 많은 오해까지 받아가며 북원부인을 감쌌다 들었사옵니다.
김락 ....................허어....
왕건 그 일만 아니였다면 참으로 유익한 순행길이었소이다.. 새삼 폐하의 장대한 웅지를 엿볼 수 있는 큰 기회였어요.. 폐하께서는 삼한은 물론 멀리 저 대륙의 영토에까지도 염두에 두고 계셨소이다.
유금필 대륙이라 하심은 요동땅과 중원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옵니까? 참으로 엄청난 계획이 아니옵니까?
왕건 나는 그 분의 그 넘쳐나는 의지와 흔들림 없는 의욕을 존경하네. 그 분은 사내중에 사내이시고 황제중에 대황제실세....
모두들 ................
왕건 그 분은 나와 자네들, 그리고 여기 계시는 여러 장군들과 더불어 대업을 이루고 싶다고 하셨소이다... 적어도 일차적 목표인 삼한통일에 있어서는 우리가 선봉을 맡아야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능산 .............
왕건 이번에 나의 세 아우들은 나와 폐하를 따라 송악으로 갑니다.
유금필 그렇습니까?
왕건 이 곳은 홍유 장군께서 당분간 책임을 맡게 되실 것입니다.
홍유 내군의 은부 장군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언질 받았습니다.
배현경 허허.... 그렇게 되면 박술회장군은 어찌되는 겝니까? 견훤왕의 누이가 보고 싶으실 터인데......
김락 정말 그렇소이다?
모두들 (와 웃으면)..................
박술회 그렇게들 말씀하시니 정말 슬퍼지옵니다.
김언 (농담) 허허... 천하의 박장군께서 정말로 우시는 것 아니오이까?
모두들 다시 와 웃는다. 왕건이 정리를 한다.
왕건 자, 밤이 깊었소이다. 이제 가서들 쉬시구료.
유금필 일어들 서십시다. 장군께서도 좀 쉬셔야지요.
홍유 그리 하십시다. 장군...그럼 쉬십시오.
모두들 쉬십시요...
의형제들과 장군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왕건이 그들을 보내면서.......
씬 12 왕건의 처소 부근
유금필들이 숙소로 향하고 있다. 그때 저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다. 유장자다.
유금필 대룡부령님이 아니시옵니까?
유장자 유금필 부장이 아닌가? 능부장과 박부장도 함께 있었구먼.
능, 박 예........... (인사를 한다)
유금필 이 야심한 밤에 어딜 그렇게 가시옵니까?
유장자 딱히 어디를 정해 놓은 것이 아니네. 비가 그치고 나니 밤바람이 시원하고 해서...... 헌데 왕장군은 벌써 자리에 드셨는가?
유금필 아니옵니다. 소장들이 방금 그곳에서 나오는 길이옵니다.
유장자 잘 됐구먼. 함께 차라도 마시려고 온 것인데....
유금필 하하하. 그렇게 하시오소서.
유장자 그럼 들어들 가시게.
그들 그렇게 헤어진다. 유장자는 멀리 왕건의 처소를 쳐다보며 한 걸음을 떼어 놓으려다가 문득 멈춰선다. 저 멀리로 또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왕건의 처소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황후와 슬이이다. 유장자, 뭔가를 생각하다가 조심스레 뒤를 따른다.
씬 13 왕건의 처소 앞
연화와 슬이가 그 앞을 지나가고 있다. 왕건의 처소에는 아직도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연화 이 밤에 잠 못 드는 사람이 또 있는 모양이구나.
슬이 그런 것 같사옵니다.
연화 여기는 누구의 처소인고?
슬이 소녀도 이곳은 처음인지라........
그때, 문이 열리며 헛기침소리와 함께 왕건이 마당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연화는 순간 온 몸이 경직되는 듯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만다. 그것은 왕건도 마찬가지다. 슬이는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고 있다.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말없이 서로를 지켜보고 있다.
왕건 (황급히) 황... 황후마마가 아니시옵니까? 이 밤에 어인 일이시옵니까?
연화 (어색하게) 산보를 나왔다가 어쩌다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곳이 왕장군이 머무시는 처소인가 봅니다?
왕건 그렇사옵니다.
연화 한적하고 고요한 것이 이삼일 쉬어가시기는 참 좋은 곳 같습니다.
왕건 ..........예. 폐하를 모시는 몸이 어디인들 어떻겠사옵니까?
연화 그렇기는 하지만..........
슬이가 슬며시 뒤로 물러 선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러고도 두 사람은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다. 어느 사이엔가 먹구름에 가리워져 있던 달이 모습을 드러낸다.
씬 14 궁예의 처소 앞
궁예가 내관들과 제조상궁을 앞세워 나오고 있다.
궁예 황후가 어디로 간다고는 말이 없었던가?
제조상궁 (난감하고 황급하여) 그저 좀 돌아보신다 하셨사옵니다.
궁예 그리 서둘 필요는 없어. 천천히들 찾아보세.
모두들 예.
궁예들이 그렇게 가려는데 은부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궁예 병부령이 아닌가? 자네는 왜 일어났는가?
은부 폐하께오서 산책을 가신다하니 신이 어찌 잠을 청하겠사옵니까?
궁예 알겠네. 기왕에 이렇게 된 것이니 함께 가세나. 비가 멎고나니 하늘이 참 밝네그려....
은부 예. 하온데 이렇게 갑작스레 처소 밖으로 거동하심은.....?
궁예 하하. 그게 다 황후 때문이라네.
은부 ...........
궁예 황후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산책을 나갔다 하네. 해서 짐도 따라 나서는 것이야.
은부 이렇게 야심한 밤에 말이옵니까?
궁예 오히려 좋지 않은가? 비도 개었고 하니 밤공기도 맑을 게야. 자 다들 가세나.
모두들 예.
내관을 앞세우고 궁예와 은부가 따라 나선다. 은부는 잠이 덜 깨어서인지 어쩐지 찜찜한 표정이다.
씬 15 왕건의 처소 앞
여전히 그곳에서는 왕건과 연화가 서있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함은 많이 걷어져 있다. 슬이는 주위를 둘러보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연화 그래.... 어떻게 지내고 있으십니까? 송악 소식은 자주 들으시는지요?
왕건 ......... 예 마마.....
연화 괜찮습니다. 이 자리를 너무 거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예전처럼 편하게 대하시면 됩니다. 예전처럼.......
왕건 이제는 하늘같은 황후마마가 되시옵니다. 신하된 도리로서 그럴 수는 없사옵니다. 용서하시오소서.
연화 (씁쓸한 웃음) 그 성품만은 여전하십니다. (사이) 저는 가끔씩 옛일을 떠올린답니다. 왕장군과 함께 포구에서 말을 달리던 일을요.
왕건 ..........
연화 붉디 붉은 석양이 온통 바닷가를 수 놓았었지요. 참으로 아름다운 장관이었습니다.... (허탈한 미소) 왕장군도 그런 생각을 하실 때가 있으십니까?
왕건 ............
연화 기억나십니까? 왕장군께서 송악 포구로 돌아올 때면 언제나 제게 주실 선물을 품속에 꼬옥 간직하고 계셨지요.
왕건 ...........
연화 나는 그것이 무엇일까 늘 궁금해서 가슴이 조렸답니다. 그때가 제게는 가장 행복했을 때였습니다.
왕건 소신은 다 잊었사옵니다. 그리고 다 버렸사옵니다. 그저 마마의 평온과 행복을 빌 뿐이옵니다.
연화 그래요....?
왕건 예, 마마.........
연화 헌데....이 몸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그리 하려고 애를 써보지만....잘 되지를 않습니다.
왕건 이제 마마의 곁에는 폐하께서 계시옵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 위대하신 폐하께서 말이옵니다. 그에 비하면 소장은 너무도 작은 사람이옵니다.
연화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미 정해진 운명이 아닙니까....? 다...받아드려야 겠지요. 알고 있습니다.
왕건 폐하께오서 마마를 위해 무엇이든 다 해드릴것이옵니다. 폐하께오서 는 마마를 통하여 비로소 사람사는 즐거움을 배우신다하셨사옵니다.마마를 위해 무엇이든 드리고 싶어하시옵니다.
연화 압니다. 그래서 제게 내려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폐하를 위해 살 것입니다. 잘 되지는 않지만.....그것이 운명이라고 하니까...받을 수 박에요....
왕건 ..........밤이...너무... 늦었사옵니다.
연화 그렇습니다....돌아가야 할 것 같군요....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그렇게 어색한 침묵 속에 서있다. 이제는 먹구름이 완전히 걷혀 달빛이 환하다. 연화는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왕건도 그렇게 연화의 모습을 아프게 보고 있다.
씬 16 그 일각
어둠 속에서 유장자가 계속 왕건과 연화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윽고 유장자가 발길을 돌리려다가 문득 청사등롱을 앞세우고 오고 있는 궁예와 은부들을 발견한다. 유장자는 그 자리에 멈춰 심각하게 양쪽을 번갈아 본다. 위기인 것이다.
씬 17 그 부근
궁예와 은부가 천천히 왕건과 연화쪽으로 가고 있다. 순간 은부의 눈길이 부르르 떨리고 있다. 왕건과 연화를 발견한 것이다. 숨이 멎을 듯 은부는 긴장하고 있다. 궁예도 그제서야 두 사람을 발견한 듯 점점 의혹스런 빛을 띄우기 시작한다.
궁예 황후가 저기 있구먼. .......헌데 같이 있는 저 사람은 또 누구인가?
은부 .............
내관 왕장군이 아닌가 싶사옵니다.
궁예 왕건 아우라고? 황후와 아우가 이 밤에 무슨 일로 만나고 있다는 말인가?
궁예는 굳은 얼굴로 빠르게 그들에게 다가간다. 은부도 사색이 되어 따라 붙는다.
씬 18 왕건의 처소 앞
왕건과 연화도 다가오고 있는 궁예를 쳐다보고 있다. 두 사람도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고 있다.
연화 폐하..........
궁예 여기서 무엇을 하시는 게요? 아우는 또 웬 일인가?
왕건 ..............
왕건과 연화는 순진하게도 뭐라 대꾸하지 못한다. 점점 궁예의 의혹스런 눈길이 짙어지는데 유장자가 그들 사이로 끼어든다.
유장자 폐하가 아니시옵니까?
궁예 아니, 대룡부령....? 그대는 또 어인 일이시오?
유장자 그것은 소신이 드릴 말씀이옵니다. 소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렇게들 모두 와 계시니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겠사옵니다.허허허...
궁예 .............?
유장자 아이구... 황후마마께서도 와 계셨사옵니까?
연화 ............예. ....오다보니.....
은부 (궁예의 눈치를 보며) 허면...이제껏 왕장군과 함께 계시었소이까?
유장자 그러믄요....허허허....
은부 허면 어디를 다녀오시는 길이오?
유장자 (헛기침을 하며) 흠.. 흠... 어디긴 어디겠소이까?...차 몇 잔 거퍼 마다보면....
궁예 하하하. 급한 볼 일을 보신게로구려.
유장자 예, 폐하.....소신도 이제...나이는 못 속이는 모양이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일을 보는 시간이 길어지니 말이옵니다.
모두들 ............ (소리없이 웃는다)
궁예 그런 줄도 모르고 짐은 왕장군과 황후가 왜 이 시각에 둘이 만나고 있을까.....생각하고 있었소이다. 도저히 이해가 아니가는 일이라서 말이요. 아니 그렇소이까....? 물론 산책이라는 것이 가다보면...우연히 걸어걸어가는 것이지마는.......
유장자 정말 그렇사옵니다. 폐하.....이야말로 생각하기에 따라서 자칫 잘못 된다면 어머어머한 사건이 될 수 있겠사옵니다.....?
궁예 사건.....?(파안 대소를 한다)....재미 있구먼....정말 그럴 수도 있겠소이다그려 핫하하하하하하..... 그럴 수도 있어..
연화, 왕건 ....................
은부 ....................?
궁예 자, 자 모두들 잠이 안오는 모양이니....이렇게 서 있지만 말고 짐의 처소로 가서 한 잔 씩들 하십시다. (내관에게) 가서 사람들을 깨워 주안상을 드리거라.
내관 예. 폐하.
궁예 황후, 가십시다.
궁예가 먼저 연화와 앞장을 선다. 은부는 안도하면서 왕건을 쏘아보고 있다. 그들의 그런 표정에서......
씬 19 궁예의 임시 처소 밖
웃음소리들이 들려오고 있다.
씬 20 동 처소안
다들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연화와 왕건은 다소 상기된 표정이다. 유장자가 술을 한잔 들이키며 떠벌리고 있다.
유장자 오늘은 참으로 이상한 밤이었사옵니다. 모두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둠속의 뜰을 거닐었으니 말이옵니다.
궁예 그게 다 비때문이었소이다. 핫하하하...아니 그렇소 황후....?
황후 예...폐하....
유장자 비때문이라.......정말 그런것 같사옵니다..?
모두들 .......(웃고)
유장자 우리야...그 비로하여 이렇게 폐하를 뫼시고 좋은 술자리를 갖사옵니다마는.... 백제의 견훤왕은 얼마나 이 비가 분하고 원통했겠사옵니까? 장마가 오고 전염병이 돌고 그래서 군대를 물린것이 아니옵니까?
궁예 딴은 그렇기도 하구료. 허허허허..... 그러길래 하늘의 이치는 아무도 거스리지 못한다고 하였소이다. 견훤왕이 너무 욕심을 부렸어요.
은부 그러하옵니다. 폐하....얼마나 많은 군사를 잃었고 또 군비를 탕진하였겠사옵니까?
궁예 .....(끄덕인다)
유장자 기왕에 군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씀이옵니다마는........역시 전쟁이란 누가 좀 더 많은 재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에서부터 판가름이 나는것 같사옵니다.
궁예 암...군대란...재력이 없이는 안되는 것이지요.
유장자 신이 듣기로 백제국의 견훤왕도 수 차례 순행을 하면서 호족들을 점검하고 쉬임없이 세원을 걷우어 드리고 재촉하고 있다하옵니다. 그것들을 허망하게 잃고있으니......
궁예 무리한 세금은 백성들의 원망을 사게 되는 것이지.
유장자 허나 국가가 필요로 할 때는 내놓아야지요. 나라가 없는 개인이 어디 있겠사옵니까?
은부 사실 그간 나라의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여기 대룡부령의 노고가 컸사옵니다. 세금을 공정하게 함은 물론이고 그 스스로가 앞장서서 호족들을 독려 했사옵니다.
유장자 병부령께서 그리 칭찬을 해주시니 폐하께 고개를 들 수가 없소이다.
궁예 하하하.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해야지요.
유장자 허허..이런... 칭찬을 받기에는 신이 한 일이 너무도 미미하옵니다.
궁예 아니오. 경의 말은 맞소이다. 재력이 바침되지 않고서는 전쟁을 수행할 수가 없지요. 참으로 큰 일을 맡고 계시는게요.....그러나 좋은 일을 한다 하더라도....모든 것은 순리로 풀어가야 할 것이오. 백성들을 억압해서는 아니됩니다.
융장자 이를 말씀이옵니까...?
궁예 자자자.....이 머루주가 그냥 남아 있지를 않소...? 이것이 그래도 백제 임금의 아버지되는 사람이 보내준 선물인데 말이오...
모두들 와 웃는다.
유장자 신이 듣자하니 여기 왕장군의 의제가 되는 박술회부장이 견훤임금의 누이를 연모한다 들었사옵니다. 일이 이리되면 어찌되는 것이옵니까...?
궁예 어찌 되기는....? 견훤왕과 그 일가를 사로잡아서 강제혼례를 시키면 되는 것이지....아니 그렇소 황후...?
연화 예, 폐하....그러하옵니다
그러자 모두들 와 웃는다. 웃다가 궁예가 왕건을 본다.
궁예 이보게 아우,
왕건 예, 폐하....
궁예 그러고 보니 못된 아우들이 아닌가? 제 형은 이렇게 혼기를 훌쩍 넘기고도 아직 총각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데 저희들 먼저 장가를 가려하다니....
왕건 (웃으며) 그럴리가 있겠사옵니까.... 어쩌다보니 형편이 그리 돌아가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궁예 그래 아우는 정말 어찌 할것인가....?
왕건 ................
궁예 이보시오. 대룡부령..
유장자 예, 폐하...
궁예 어디 좋은 규수 한사람 없소이까....? 대룡부령 주변은 어떻소이까?
유장자 폐하께오서 신의 마음을 꿰뚫고 계시나보옵니다. 사실 혼기를 앞둔 여식이 하나 있어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옵니다.
궁예 (반색하며) 혼기를 앞둔 여식이라? 허허허. 그거 참 잘 됐구려.그런데도 왜 아직 운을 떼어보지 않으셨소? 짐이 두 사람의 중신을 서면 되겠구려.
유장자 왕장군같은 사람이라면야 소신은 두 말 않고 딸을 보내겠사옵니다.
궁예 그래요....? 허허... 등잔 맡이 어두웠네그려. 어떤가 아우, 생각이 있는가? 이 형이 중신을 서겠다니까......?
왕건 ............. (난감하다)
궁예 하하. 사람하고는.....아, 대답을 좀해봐....?
왕건 폐하,.
궁예 응, 그래
왕건 .....벌서 새벽이 밝아오고....있사옵니다. 내일..또 먼 길 가시려면...
궁에 뭐라.... 새벽이 밝아? 겨우 대답이 그 것인가? 이런....이런....
모두들 ..........(그렇게 웃고)
궁예 새벽이면 어떻고 대낮이면 어떤가.....동생 장가를 보내는 일인데....?자꾸 피하려고 하지 말게, 이제 이 형님이 나선 것일세. 아우를 위해서 형님이 나섰단 말일세........ 송악에 가거든 내 이 일을 서두를 것이야..
장난스러운 궁예의 표정에서.....
씬 21 송악 황궁 전경
씬 22 동 황궁 내원
전령으로 온 염상이 종간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다. 종간은 보내온 서류들을 보고 있고...
염상 폐하께오서는 지금 충주를 출발하시어 웅주(공주)로 향하시고 계시옵니다. 웅주에 도착하시게 되오면 곧바로 송악으로 돌아오실 것이라 하셨사옵니다.
종간 청주를 우회 하신다는 말씀이시군.
염상 그렇게 될 것 같사옵니다.
종간 음..... 서서히 폐하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하겠어.
시종 (E) 내원 어른, 신천 어른께오서 드셨사옵니다.
종간 오, 그래. 안으로 뫼시거라. 수고 했네. 그만 페하께 돌아 가게나.
염상 예 내원어른.....
염상이 나가고 강장자 내외가 들어선다.
종간 어서 오시오소서.
강장자 찾아계셨사옵니까?
종간 그렇사옵니다. 이리 앉으시지요. 두 분은 늘 이렇게 힘게 다니시니 참으로 보기가 좋사옵니다.
백씨 고맙사옵니다.
강장자들 ............ (앉는다. 시종이 차를 따라 올린다.)
종간 지난 번에 겸사겸사해서 예성강을 가보았사옵니다마는.... 아무래도 그 곳의 구체적인 깊은 사정에 대해서는 강장자 어른의 조언을 듣는 것이 좋을 듯 싶어 이렇게 뫼시게 되었사옵니다.
강장자 그러한 일이라면 기꺼이 도움을 드려야지요. 사실 저로서도 걱정이 많사옵니다.
종간 허허허. 그러시옵니까?
강장자 저는 이미 황실사람이 되었사옵니다. 황실사람으로서 보는 왕씨가문의 모습은 그야말로 걱정투성이옵니다. 모든 것이 너무 잘 나가고 있어요. 옛날의 영광을 모두 되찾은 것 같습니다.
종간 ......................(끄떡인다.)
강장자 송악에서 왕씨가문이 잘 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폐하의 위엄에 부담을 끼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종간 그렇겠지요......헌데 말입니다. 저는 ... 아직도 이 송악에 대해서 모르는 일이 많습니다... 특히나 도선대사와 왕씨 집안의 예언에 대해서 말입니다. 알고 계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강장자 그야 쉬쉬하고들 있지만 알건 다압지요....도선 대사가 두 번을 이 송악에 왔었는데...... 한 번은 집터를 잡아주면서 삼한을 구할 큰 성인이 날 것을 예언하였다고 합니다.
종간 그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 인물이 바로 왕건 장군 아닙니까?
강장자 그...그렇습니다. 삼한을 구하다니요...? 터무니 없는 요설이지요. 어떻게 폐하께서 계시는데 제가 삼한을 구한다는 말입니까.... 이야말로 어불성설이지요...
종간 그렇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폐하께서 하실 일을 누군가가 대신하겠다 하는 것은 그야말로 대역에 해당하는 일이올시다. 대역......
강장자 그.....그렇습지요.
종간 그래 두 번째는 언제 왔었습니까?
강장자 두 번째는 왕건장군 나이 열일곱 때였지요. 그 때도 쉬쉬 하면서 대사와 왕건장군이 함께 세달사로 가서.....
종간 허어....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강장자 그건 아무도 알 수가 없었지요. 무슨 공부를 한 것도 같은데.....
종간 사람들은 도선대사를 어떻게 봅니까?
강장자 아, 그야 고승이시고....대 예언가시고....
종간 그렇다면... 그 예언대로라면...왕씨 가문은 폐하에게 어떤 존재라고 보십니까....
두부부 예........?
종간 폐하께서는 이렇게도 엄청나게 위험한 인물을 이미 폐하 다음자리의 인물로 점찍고 계십니다. .
강장자 무슨 말씀을..... 내원께서 계시는데 어찌 ..........?
종간 아니올시다. 이번 순행길에서 모든 것이 들어 났습니다. 그 때문에 함께 왕씨 집안도 들려 보았고 또 이렇게 뵙자 한 것입니다. 우리 두사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도선대사의 예언이 현실로 올 수가 있습니다.
강장자부부 ....(두려움으로 끄덕인다)
종간 폐하께서 이사람의 경고를 듣지 않으시니 우리라도 더욱 단단히 힘을 모아야 한다 이런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강장자 (끄덕인다)..............
씬 23 인써트
궁예의 일행들이 오고 있다, 어느 고갯길에서 청주 사람들이 나와 다가오는 궁예들 앞에 정중하게 고개를 조아리고 영접하고 있다. 의문스런 얼굴의 궁예의 얼굴에서......
씬 24 청주 부근
호족들의 대표격인 아지태가 궁예의 앞으로 나와 큰 절을 올리고 있다.
아지태 신 아지태, 황제 폐하께 문안이옵니다. 폐하께오서 청주를 지나치신다하여 이리 영접을 나오게 되었사옵니다.
은부 폐하께오서는 이곳 청주에 들리실 계획이 없소이다. 지금 웅주로가는 길이시오.
아지태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청주를 아니 들리시다니요?
궁예 그대들의 마음은 알겠으나 일이 그리 되었구료. 순행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니 다음을 기약하도록 하오.
아지태 ........... (여전히 그곳에 무릎을 꿇고 있다)
은부 폐하의 말씀이 아니 들리시오?
아지태 청주로 가주시오소서. 소신 뿐만 아니라 이곳 청주의 백성들의 간곡한 소망이옵니다. 이곳 백성들은 폐하께서 오시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거듭 간청 드리옵니다. 소신들을 외면하지 마시오소서.
백성들 외면하지 마시오소서..
은부 아니 이 자들이..........
궁예 허허, 그거 참......
왕건 폐하, 저들의 정성이 지극하니 잠시 들려 사정을 살피시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사옵니다.
궁예 허허허....아우의 생각이 그렇다면.....하는 수 없구만....일정이 하루 이틀 늦어지겠지만 그리 하세나......
은부 ...........
궁예 그대들의 정성이 갸륵하여 청을 받아드렸소. 함께 가도록 하십시다.헌데 경은 누구요?
아지태 신은 이 곳의 향도 아지태라 하옵니다.
궁예 아지태?
아지태 예 폐하.......
궁예 특별한 이름이로군 그래.....그럼 앞서게나.....
아지태 예, 폐하... 얘들아 어서 폐하를 뫼시어라...
관료들과 호족들이 앞서기 시작 한다. 궁예와 그 일행들이 길게 다르기 시작한다. 길게 디졸브 되면서......
씬 25 청주 관아 외경(밤)
궁예의 숙위군들이 여기 저기 군막들을 치고 경계를 서고 있다.
씬 26 동 관아 안
탁자 위로 놓여진 찻잔에서 김이 오르고 있다. 궁예와 왕건, 은부가 아지태와 마주 앉아 이야기 하고 있다.
아지태 청주는 일찍부터 교육과 문화가 발달한 곳으로서 백성들의 자긍심이 대단한 고장이옵니다.
궁예 ..........(끄덕인다)
아지태 신이 굳이 폐하를 이리로 납시게한 것은 이러한 청주만의 지역적인 높은 문화와 지식들이 폐하를 위해 씌여지기를 원해서이옵니다.
궁예 ............허허허....자부심이 아주 대단 하구려. 이보시오 아지태라고 하였던가?
아지태 예, 폐하...
궁예 이곳 청주의 문화와 교육이 다른 곳보다 높다고 할만한 이유는 무엇이오?
아지태 물론 궁금하실 것이옵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곳 호족들의 대부분은 신라의 옛 귀족들이 낙향한 사람들이옵니다.
궁예 오....그렇소이까?
아지태 그 호족들 상당수가 과거에 당나라에 유학하였거나 유학에 매우 밝은 사람들이옵니다. 또한 이들은 과거에 신라의 왕족들과 대립관계에 있던 사람들인지라 과거의 신라에 대하여 반감이 높았사옵니다. 결과적으로 소인들은 진정한 새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옵니다. 바로 대왕폐하를 말이옵니다.
궁예 .............!
아지태 소생은 비록 당나라에서 돌아와 청주에 묻혀 있었으나 폐하의 웅대한 염원을 알고 있었사옵니다. 폐하께오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고려가 아니옵니다. 새로운 국가의 건설, 보다 넓고 큰 제국의 건설이시옵니다. 저 끝없이 넓은 중원대륙을 포함하는 대 동방국의 건설 말이옵니다.
궁예 대 동방국이라.... 대 동방국........?
아지태 그러하옵니다 폐하. 이곳 청주의 호족들과 장자들은 쓰시오소서. 일치 단결하여 폐하의 대동방국 건설에 충성을 다 바치기로 이미 결의하였사옵니다.
궁예 (뭔가 충격 같은 강열함으로).....대동방국이라...대 동방국.....?
해설 청주. 그리고 이곳 사람 아지태의 출현..... 궁예에게 있어서 아지태의 출현은 그가 순행에 나서서 얻은 결과중 아마도 최대의 것이라 할만한 일이었다. 궁예는 지금 아지태의 대동방국 발언에 사뭇 고조되고 있었다. 대동방국....신라의 왕자이면서 고려국을 재건한 궁예였다. 그로서는 분명 보이지 않는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궁에에게 새로운 국가건설이라는 희망찬 이야기를 제시해준 아지태가 어찌 반갑게 다가오지 않았겠는가.........? 한편..
씬 27 완산주 황궁 외경
씬 28 동 황궁 대전
견훤이 최승우, 능애, 박영규, 공직과 술상을 두고 마주 앉아 있다. 견훤의 곁에는 고비가 앉아 시중을 들고 있다.
견훤 자, 자.... 뭣들 하고 있는 게야? 짐이 잔을 비웠어. 그대들도 마셔야 할 것이 아닌가?
공직 예, 폐하.
견훤 (술병을 들고) 사위도 한 잔 받게.
박영규 황공하옵니다.
견훤 (고비에게) 무엇하는가? 짐에게도 한 잔 따르게.
고비 (술을 따르며) ....이러다 취하시겠사옵니다.
견훤 하하하. 그대와 같이 어여쁜 여인네와 연을 맺어준 사위가 와있지 않는가? 더구나 매곡성주(보은)까지 왔는데 어찌 한 잔 아니 할 수 있겠는가?
고비 ....폐하.. 신첩을 총애해 주시는 것은 황공할 따름이오나 황후마마께도 마음을 써 주시오소서.
견훤 ....? 왜. 황후가 눈총이라도 주는 것인가?
고비 아니옵니다. 신첩은 그저.... 폐하께오서 신첩만을 너무도 편애하시는 것 같아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다른 뜻은 없사옵니다.
견훤 하하하. 이 사람의 말을 좀 들어보게나. 이러니 짐이 더욱 이 사람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일세.
고비 듣잡기 민망하옵니다, 폐하...
박영규 허허허....
고비 하옵고 폐하... (조금은 망설이는)
견훤 말해 보게..
고비 (부끄러운) 아무래도 신첩에게 태기가.........
견훤 뭐라..... 아이를 가졌단 말인가? 그게 사실인가?
고비 ............ (끄덕인다)
박영규 감축드리옵니다, 마마.
모두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견훤 하하하. 기쁘도다. 참으로 기쁜 일이도다. 자고로 황실에는 손이 많아야 하는 법이야. 정말로 장하도다..... (내관에게) 내관은 들으라 이 소식을 내의원에 알려 의원들로 하여금 승평부인의 건강을 매일 살펴올리라 이르라.
내관 예. 폐하
견훤 자.자.... 모두들 오늘 한 번 취해보세그려... 취해보자구...
견훤은 뛸 듯 기뻐하고 있다.
씬 29 신검의 처소 외경
박씨 (E) 뭐라? 후원의 승평 부인에게 태기가 있어......?
씬 30 신검의 처소
박씨가 놀라 흥분해 있다. 주위로 능환, 신검, 양검, 둘째딸이 둘러 앉았다.
능환 고정하시오소서, 마마.
신검 그렇사옵니다. 어마마마...고정하시오소서....
박씨 그 소식은 어디서 전해 들은 게야?
둘째딸 방금 대전 내관이 사실을 알려왔다 하옵니다.
박씨 그예 그렇게 되었어. 그예......
능환 경사로 생각하시오소서. 좋게 생각하셔야 하옵니다.
박씨 경사.......? 아버님의 일을 생각해 보세요. 다른 곳에서 아이를 보다니요? 틀림없이 분란의 원인이 될겝니다.
능환 그저 다 너그럽게 보시오소서
박씨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게 그렇게 되어야 말이지요. 승평 부인이 황궁에 들어온 이후로 폐하께서는 술을 가까이 하시는 시간이 늘어 나고 있습니다.
능환 참으셔야 하옵니다. 앞으로도 혼인 정책은 계속 될 것이고 얼마나 더 많은 여인들이 궁으로 들어올지 모르는 일이옵니다.
박씨 예? 또...들어 온다구요?
씬 31 대전
견훤은 이미 많이 취했다.
견훤 한 잔 더 따르게.
고비 그만 하시오소서. 너무 취하셨사옵니다.
견훤 (웃으며) 오늘같은 날 좀 취하면 어떤가?
고비 ............폐하........
견훤 서남해 넓은 들녁에는 사위가 있고 그 아래 바다에는 수달이 있어.또한 매곡성에는 공직 장군이 있으니 걱정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최승우 (걱정스러운) 그렇게 안심하실 때는 아니옵니다. 궁예는 지금 청주에 머무르고 있사옵니다. 우리 군대의 최일선이 대치하고 있는 곳이옵니다.
견훤 그저 순행일 뿐이야. 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네.... 궁예는 이제 아예 밖에서 살려는 모양이지. 순행이 너무 길지 않은가?
최승우 그 만큼 여러지역에 고루고루 공을 들이는 듯 싶사옵니다.
능애 폐하. 궁예의 수하들이 아버님께 마수를 뻗치고 있사옵니다. 박술희라는 자는 노골적으로 대주에게 청혼의 뜻을 비추었다 하옵니다.
견훤 나도 들었다. 아버님이 저러하시니 집안꼴이 엉망이란 말이야. 그러니 궁예의 졸개들이 대주를 넘보는 것이 아닌가....? 그 자가 박..뭐라 한다지?
능애 박술회이옵니다. 살아있는 것은 무엇이든 먹는자라 하옵니다.
최승우 하지만 학문과 무예는 출중하다 들었사옵니다.
견훤 어쨌든 기가막힌 일이야. 궁예의 졸개가 이 백제국 황제의 누이를 넘보다니.....기가막혀.....
취해 붉어진 견훤의 눈에는 어느새 불꽃이 튀고 있다.
씬 32 청주 관아
궁예와 왕건, 은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궁예 하마터면 청주를 그냥 지나칠 뻔했네. 진흙 속에 진주라고나 할까..... 들어보니 청주는 생각 이상일세 그려.
은부 그렇사옵니다. 충분히 폐하의 제국을 뒷바침할 만한 사람들로 보이옵니다. 짐짓 폐하의 위세에 눌려서 자신들의 안위에만 급급한 패서의 호족들과는 확연히 다른 것 같사옵니다.
궁예 ............맞아...
왕건 특히나 아지태란 사람은 아주 이채로워 보이옵니다. 학문도 깊어보이고 말이옵니다.
궁예 동감일세. 눈여겨 볼만한 것 같으이......가까히 불러서 그 그릇을 한 번 제대로 살펴보아야 할 것 같구먼 .....
그때 밖에서 내관의 소리가 들려 온다.
내관 폐하, 청주향도 아지태 입시옵니다.
궁예 오....들라 하라.
아지태가 들어와 예를 올린다.
궁예 마침 경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었소이다. 어서 오시구료.
아지태 폐하, 멀리 웅주에서 이치라는 장수가 폐하께 인사를 여쭙고자 찾아왔기에 밖에 기다리라 일러놓았사옵니다.
궁예 웅주의...이치라....?
아지태 예, 그러하옵니다.
궁예 이치. 이치라.......그럼 함께 오지 않구....여봐라, 웅주에서 온 이장군을 안으로 들여라.
대답소리와 함께 이치가 안으로 들어 온다. 예를 올리면........
이치 웅주의 장군 신 이치, 폐하께 알현이옵니다.
궁예 오, 어서 오시구료. 이름은 익히 듣고 있었소이다.
이치 폐하께오서 신이 머무는 웅주로 오시기로 하였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들었사옵니다. 그리하여 찾아뵈었사오니 용서하시오소서.
궁예 허어....무슨 소리.....일정을 함부로 바꾼 짐이 미안할 따름이오.
이치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허허허.....경은 금강 일대와 더불어 넓은 웅주성의 백성들을 그동안 참으로잘 다스려 왔다고 들었소.
이치 칭찬을 주시니 망극하옵니다.
궁예 또한 금강 일대를 오래도록 다스리면서 물길과 뱃길에도 아주 큰 영향력이 있다 들었소. 그러고 보니 왕장군과 뜻이 잘 맞을 것 같구먼....허허허....
왕건 그러하옵니다. 폐하, 배를 다루고 물을 아는 사람들은 금방 서로를 알아보옵니다. 이장군은 앞으로 큰일을 하실분 같사옵니다.
이치 과분한 말씀이시옵니다 장군.
해설 이치. 전의 예안 이씨의 시조로 초명은 치였으나 고려 태조가 훗날 그의 공을 기려 도라고 이름을 내려 주게 된다. 지금의 공주인 웅주 출신이다. 훗날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신검을 정벌코자 남하할 때 홍수로 금강이 범람하여 진군치 못하고 멈추게 되자 도강책을 주도하여 결정적인 승리의 계기를 마련한 바로 그 사람이다. 그로 인하여 그는 왕건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으며 후백제 정벌이후 삼한통합 완수에 크게 기여한 공으로 익찬 2등공신을 책록받게 되는 인물이다.
궁예 수전에 상당히 밝다하니 앞으로 왕장군과 가까히 자리를 하시구료.함께 해야할 일이 많을 것이요
이치 예, 폐하....허면 바로 송악으로 돌아가실 것이옵니까?
궁예 그래야 할 것 같소이다 너무 오래 도성을 비웠소이다.
이치 웅주를 보여드리지 못하여 참으로 아쉽사옵니다.
궁예 이미 그대를 보았는데 웅주를 아니 본들 어떻소..장군도 웅주에만 연연할 것이 아니라... 여기 아지태 이 사람과 더불어 송악구경좀 하러 오시구려. 분명 해야할 일이 있을 것이오.
이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자, 그러면 이보시게 은장군.
은부 예. 폐하.....
궁예 떠날 준비를 하세.
은부 예, 폐하......
궁예 이보시오. 아지태 향도.
아지태 예, 폐하.
궁예 나는 경의 그 대동방국이라는 말에 새로운 눈을 떳소이다. 대동방국. 이 얼마나 설레는 말이란 말인가.....? 속히 이곳의 일을 정리 하고 송악으로 오오. 그리고 우리가 달려갈 동방국에 대해서 논의해 봅시다. 대동방국......대동방국....! 핫하하하하하하........
궁예의 그 웃음소리에서 스톱모션 되면서........
(44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