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본문 – 누가복음 10:25~37
율법사의 질문: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하리이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로 알려진 이 본문은 다음과 같은 대화로 이루어진다:
율법사: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 율법에는 무엇이라 기록되었는가?
율법사: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 그렇다! 그렇게 하면 살 것이다.
율법사: 그러면 제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님: (강도 만난 사람을 도운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후에) 네 의견에는 이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누구냐?
율법사: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님: 가서 너도 그렇게 하라!
우선 율법사는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물었다. 영생이 무엇인가? 그것을 요한복음에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28절에서 ‘그러면 살리라’고 대답하셨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영생은 ‘장차 오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은 몸과 영혼, 땅의 삶과 하늘의 삶, 현세와 천상의 세상을 상정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현세와 오는 세상으로 시간을 나누었다. 오는 세상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바로잡으신 후에 열리는 세상이다. 그 세상은 예언자들이 꿈꾸던 세상이며, 모든 것이 새롭게 되는 이 세상을 의미한다. 마치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며,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사막이 변하여 백합화 만발하게 되는 신세계를 말한다. 그 세상을 물려받고 그 오는 세상에 동참하는 것이 곧 영생이다. 그것은 몸의 부활이며 생명의 부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율법사는 모든 유대인들이 꿈꾸는 바로 그 질문을 했다. 오는 세상에 들어가고 그 세상을 물려받는 것, 즉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물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율법에 기록한 대로 지켜 행하라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요한복음에 근거하여 영생을 얻으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우리는 듣는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답하신다.
영생을 얻게 하는 율법준수에서 그 율법의 핵심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을 간단하게 말하면, 진실과 자비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영생, 즉 오는 세상에 들어가는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오는 세상은 어떻게 열리는가? 그것은 진실과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그들에게 열리는 세상이다. 영생은 그런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이 지구를 떠나 올라가서 천상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예수님은 이웃이 누구냐고 묻는 율법사의 질문에 대하여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그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고 건져준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율법사는 ‘내 이웃이 누구인가’라고 물었는데, 예수님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은 누구냐고 물으셨다. 여기서 율법사는 그 사람의 이웃은 사마리아인이라고 대답하지 않고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자비를 베푸는 행동이 오는 세상을 여는 열쇠이며 그것만이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할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영생을 사후에 천상에서 누리는 신선 같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경을 잘 보면 영생은 우리에게 열리는 새로운 세상이다. 그 세상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곳이며, 사람마다 진실과 자비를 실천하는 곳이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영생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며,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며, 주님을 아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이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따른다는 말은 곧 주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음은 결국 그리스도의 계명을 행하는 것이 된다. 여기에는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이 아니라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여러 번 한다. 그러나 그 말을 누구에게 하는가? 그것은 율법을 소유했다고 자부하면서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을 향한 것이었다. 입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듯이, 율법을 소유했다고 또는 할례를 받았다고 자부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십자가를 목에 장식으로 걸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십자가를 푯대로 하여 자신을 부인하며 율법의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영생이 주어지듯이, 율법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오는 세상의 삶이 열린다. ‘오직 믿음’은 사도 바울이 율법주의자들과 논쟁하는 과정에서 나온 매우 특별한 상황 가운데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누가복음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는 우리에게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려준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실과 자비를 실천하는 삶이다. 누구든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새로운 세상이 열리며 그 세상은 언제나 은혜와 기쁨이 충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