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2주일설교 고린도전서7:1-16
본문: 고린도전서7:1-16
제목: 결혼에 대하여
오늘은 고린도전서 7:1-16의 말씀을 가지고
“결혼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결혼에 대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결혼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선택사항으로 생각하거나
아예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입니다.
결혼하여 살고 있지만 가정 폭력이 난무하고
성격이 맞지 않다고 합의 이혼을 하기도 합니다.
가출한 엄마도 있고,
자녀 양육을 방임하는 아버지도 있어서
나쁜 아버지라고 공개를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결혼은 현대의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결혼을 무너뜨리는 가장 큰 적은 무엇일까요?
아무리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결혼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결혼을 무너뜨리는
큰 적을 당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가장 큰 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기심입니다.
나와 자신, 자아로 이루어진 이 사악한 삼위일체는
배우자가 끼어들 여지를 남겨놓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아 중심의 문화에서
사람들이 결혼에 대한 성경의 원칙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혼 문제를 다루면서
결혼에 관한 문제에 대해
모든 세대가 적용할 수 있는
시대를 초월한 지혜를 제공합니다.
그러니 논쟁의 폭풍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시대의 어둡고, 불길한 구름이 갇혀 있지 말고
지평선 너머를 바라봅시다.
하나님 말씀의 환하고 아름답게 빛남이
폭풍 속의 어둠을 뚫고 거룩함이라는
안전한 피난처로 우리를 인도하게 합시다.
1.결혼은
성경은 결혼을 통해서
가정이 이루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혼은 모든 사회의 출발입니다.
결혼이 있기에 자녀가 있고
그 자녀들을 통해서 사회가 이루어졌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이 배필로 주신
여자와 만나서 가정이 이루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2:24)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로 인하여
부모들이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만난 동기 목사님의 자녀는
30대 중반이 넘었지만 둘 다 결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모가 70세가 다 되어 가는 대도
아직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지 않고 있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딸들이 다 결혼했을 때
큰일을 이룬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딸들이 자녀를 한 명씩이라도 낳게 되었을 때
내가 할 일을 다 한 느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독신 생활이 결혼 생활보다 더 바람직하다고 인정하면서 시작합니다.
바울이 독신 생활을 권장했던 것은
28절에서 말하듯이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독신 생활이 좋다고 한 것입니다.
물론 독신 생활로 부름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결혼하면 신경써야 할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게 됩니다.
하지만 온전히 주님의 일을 하려는 자들에게는
독신 생활도 좋다고 한 것입니다.
결혼을 하든지
독신으로 살든지
모두가 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 안에서 해야 합니다.
하기 싫어서 귀찮아서 신경 쓰기 싫어서
결혼하지 않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부르신 고결한 삶이라면 독신도
결혼 생활도 다 좋은 것입니다.
이왕이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서
하나님의 백성을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한 명이라도 더 낳아 살수 있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 됩니다.
2.부부의 책임
결혼한 부부에 대해서 바울은
우리에게 무슨 권면을 해 주고 있습니까?
고상한 척 하지 않고 서로의 성적 욕구를
채워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욕은 추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듯이
성욕도 또한 그렇습니다.
결혼한 부부라면 의무가 있습니다.
3절에 의무로 번역한 단어는 갚아야 할 ‘빚’을 뜻합니다.
빚은 어떻게 해서든지 갚아야 합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말씀하실 때
‘의무를 다하다’라는 용어를 사용하셨습니다.
바울은 이 비유를 결혼에 적용해서
남편과 아내는 결혼 서약에서 언약한 바를
서로에게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적 친밀감은 결혼 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배우자는 반드시 배우자의
육체적 욕구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부부의 몸은 그 배우자에게 속해 있음을
기억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바울은 남편과 아내는 서로의 몸에 대해
권한 있다고 말합니다.
서로에게 순복하고 서로를 책임지는
부부의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배우자가 항시 상대방의 유익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 결혼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십시오.
참으로 아름답고 보기에 좋은 모습입니다.
한 배우자가 가장 깊은 사랑의
친밀감을 필요로 하거나 원할 때
상대 배우자는 그 필요를 기쁨으로 채워주어야 합니다.
물로 예외는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합의 즉 상호 동의에 의해
분방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서만
분방할 수 있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지
계속적인 것이 될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배우자에게 성적 친밀감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결혼 생활에 문제를 자초하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성적으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어도 그 나이와 건강에 맞도록
성적 관계를 맺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서로가 애써서 노력해야 합니다.
3.결혼 생활의 영속성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결혼에 대한 입장은 무엇입니까?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10-11)
이 말씀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이 말씀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이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수백 번 이혼을 꿈꿉니다.
그리고 쉽게 이혼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혼을 하면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살라고 하고 살겠다고 합니다.
결혼에 관한 성경의 기본 원칙은 영속성입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충실하고, 하나로 묶이며,
한 몸이 되고 안정된 결혼의 견고하고
확실한 토대 위에 튼튼한 가정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부부는 이혼이 가정을 파괴하도록
놓아두고 항복 해서는 안됩니다.
영속성이라는 이상 위에
결혼을 세우고 가꾸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결혼은 평생에 걸친 헌신이어야 한다는
엄연한 이상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바울은 죄로 가득한 세상의 현실을 인정합니다.
가장 건강한 결혼조차도 죄로 얼룩져
영속성이라는 이상은 어려운 도전이 되었습니다.
어떤 결혼은 인간의 타락으로 너무나 변질되어서
그 이상이 꼭 유지되지는 않습니다.
바울은 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대신, 정면으로 맞서서 고통스럽고 역기능적인 결혼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실제적인 지침을 제시합니다.
바울은 죄 또는 이기심의 날카로운 칼날에
이혼한 그리스도인을 향해
계속 독신 상태를 유지하거나 화해하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부부가 갈라선 원인을 말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방임이나 다른 위기로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냥 도저히 좁힐 수 없는
성격 차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혼은 영속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그렇게 하도록 애쓰고 힘써서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거의 어르신들은 힘들고 어려워도
가정을 지키려고 힘쓰고 애썼습니다.
매를 맞기도 하고 듣지 못한 온갖 소리를 들으면서도
가정을 깨뜨리지 않고 자녀를 양육하였습니다.
그렇게 가정을 지켜온 부모님들이 있었기에
저도 있고 여러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을 살아가는 어떤 분들은
성격차이나, 집안 문제나, 자신이 원하는 일 이나,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결혼을 그만두겠다고 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결혼한 세 쌍 중에
한 쌍이 이혼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혼을 삶의 하나의 방편으로
선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혼은 대안이 될 수 없었는데
이제는 통례가 되어 흠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혼인 서약을 ‘깰 수 있는’ 선택권을 갖는 것이
전 세대에서 유행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이 가족, 자녀, 교회 및 사회에
미치는 비극적인 영향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극단적인 상황만 제외하고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는
바울의 분명한 권고에 대해서 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끝까지 헤쳐 나가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실망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부단한 노력과
결단의 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떠나고, 피하고, 심지어 숨기는 것은
갈등과 결별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결혼 생활에서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어려움이 있습니까?
또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안으로 썩어 가고 있거나
오랜 시간 서서히 끓어올라 폭발 직전인 관계를
견디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떠나거나 포기하거나 도망가고 싶은
유혹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그때마다 두 번, 세 번 더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대부분은 경우 부부는 별거나 이혼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에 다다르기 훨씬 전에 그만두기로 합니다.
화해할 수 없는 성격 차이, 개인의 행복
그리고 “더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는
성경적 이혼 사유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 선한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고
권고하는데도 걸핏하면 이런 저런 이유로 물러섭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가 위험해질 수 있는
학대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상황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격랑 속에서 붙잡아주시는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결단력과 큰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아무도 그리스도인의 삶이 쉽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결혼 생활은 그리스도인조차도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닥친 시련과 고난 가운데서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은혜와 분명한 임재를 약속하십니다.
결혼하여 잘 살고 있다면 참 좋은 일입니다.
그보다 행복한 일은 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잠시 멈추고 상황을 천천히 살피면서
성경을 펴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태도를 바꾸며, 가야 할 길을 밝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냥 내 생각대로 세상 방식대로 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습니까?
결혼에 어려움이 있다면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성경을 찾아 연구를 해야 합니다.
먼저 창세기2:18-25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가정을 세우셨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신명기24:1-4은 이혼에 대해서
율법에서 가르쳐 주는 말씀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 마태복음19:3-12 결혼에 대한
우리 주 예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네 번째로 에베소서5:22-33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하며
남편은 아내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을 살펴
나는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다섯 번째로 베드로전서 3:1-7절입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아내들이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남편은 또한 아내에게 어떻게 할지를 가르쳐 주고 있는데
나는 그렇게 살았는지 살펴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반복하시고 강조하시고
명령하시고 허락하시는 것들을 잘 보아야 합니다.
부부에게 순종하고 사랑하고 지켜야 할 것을
잘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씀을 잘 알아 그 말씀에 따라 행하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처럼 철부지처럼
자기 생각만 내세우며 행동하여
가정을 깨뜨리는 자가 아니길 바랍니다.
오직 말씀을 따라 행하는 성숙한 성도가 되어
가정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