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롱베이 갓바 섬 주변 해벽등반/애수의 바다 수직의 절벽
글 고미영 청주대·코오롱스포츠·사진 남영호 기자·협찬 코오롱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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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 티엔 옹 섬의 택시 걸(5.12d)을 등반중인 손상원씨. 첫 스타트 지점부터 오버행이어서 시작이 만만치 않다. |
호텔 베란다의 아래 거리는 아침부터 이런저런 소리들로 무척이나 시끄럽다.
큰소리로 호객하는 빵장수 할머니, 자전거에 단 확성기로 그날의 기사 제목을 외치고 다니는 신문팔이,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새벽부터 울려 퍼지는 망치소리, 아침 일찍 직장으로 향하는 스쿠터들의 엔진소리에 눈이 절로 떠진다. 아침부터 소음에 잠을 깨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베트남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거리에 자전거보다 스쿠터가 늘어나고 있다’는 텔레비전 CF의 카피처럼 그들의 새로운 도약을 알리는 소리라는 느낌이 든다.
유명 영화 배경이 된 하롱베이
프랑스는 70년 동안 베트남을 통치한 뒤 1954년 물러났지만 아직도 거리 곳곳에는 식민지 시절의 유산인 황갈색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안개 자욱한 아침 바다는 애수에 젖는다. 사라진 인도차이나의 영혼이 산들바람 속에 떠도는 것 같다.
바다는 안개와 한기가 뒤덮여 있다.
영화 ‘인도차이나’ 와 ‘007’의 배경으로 잘 알려지기도 한 하롱베이는 무수히 작은 바위섬들에 둘러싸여 지상낙원이라 할 만한 아름다운 경치를 간직한 땅이다.
그 중 가장 큰 섬인 깟바 섬은 수백 종의 아열대식물과 100여 종의 동물 그리고 종유동굴로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섬 안에는 훼손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해변이 여러 개 있으며, 호텔과 레스토랑 등의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시간만 허락된다면 며칠 묵으며 천천히 깟바 섬의 매력을 즐겨보는 것도 좋다.
깟바 섬은 하롱만의 수많은 섬들 중에서도 그 규모가 가장 큰 섬으로 바이짜이에서 남쪽으로 약 15㎞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우리가 등반을 하려고 계획한 3번 지역 폴리쉬 필라(Polish Pillar) 섬이 이곳 깟바 섬에서 가깝기 때문에 2004년의 마지막 밤을 이곳에서 보내기로 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마감하며 모두들 나름대로 멋진 저녁식사를 원했는지 우리는 해변가에 늘어선 식당들을 유심히 살피며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다. 수많은 식당 중에 결국 우리가 선택한 기준은 음식점의 분위기였다. 밖에서 보기에도 인테리어가 예사롭지 않은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무색투명의 줄에 여러 색깔의 장미꽃을 달아 천장부터 아래로 늘어뜨린 실내 장식이 제법 고급스럽고 정성이 들어간 것이 음식 맛도 좋겠다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
현지인들에게는 부담스러울 만한 가격 때문인지 식당 안은 거의 외국손님이 자리하고 있었다. 낮에 등반 도중 다친 무릎이 시큰거렸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 동안은 통증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누구와 함께 하는가에 따라 무엇이든 그 느낌을 달리한다. 좋은 등반 파트너와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다. 와인을 곁들인 저녁식사는 며칠 동안의 고생을 잊게 할 만큼 훌륭했다.
등반은 문제없다 어프로치가 문제다
깟바 섬에서 약 40분 거리에 있는 폴리쉬 필라 섬에는 2개의 루트가 있다. 왼쪽 루트는 폴스카 마피아(Polska Mafia·5.12d), 오른쪽은 동스 그레이트 이스케이프(Dong’s Great Escape·5.12d/13a)라는 이름의 바윗길이다. 모두 같은 지점에서 출발하며 첫 볼트와 두 번째 볼트가 깨져 있어 주의해야 한다.
그 구간이 전체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에 너트를 이용해 볼트행거를 대신하거나 와이어행거를 챙겨 가면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여름에는 백사장으로 되어있는 해변에서 등반을 시작할 수 있는데 겨울에는 수위가 높아져 해변이 잠긴다. 때문에 배 위에서 선등자 확보를 봐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우리는 GPS가 없는 큰 배를 빌렸는데 얕은 해변에는 가까이 갈 수 없어서 따로 조그만 보트로 갈아타야 했다.
하롱베이 해벽을 등반하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등반대상지에 대한 정보가 워낙 부족했기에 많은 부분을 현지인들에게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복잡한 바닷길을 찾는 것은 그들에게도 쉽지 않았다. 서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갈수록 목청을 높이는 일이 많아졌다. “이곳이 맞다”고 해서 찾아가보면 등반 흔적이 없는 곳들이 많았다. 몇 번을 그렇게 헤맸는지 모른다. 우리의 가이드를 맡은 쭝은 그렇게 헤맬 때마다 “돈 워리(Don’t worry)”를 연발하며 이곳은 유명한 곳이라 금방 찾을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자신감이 가득한 쭝의 얼굴을 보면 잠시 믿음이 갔지만 워낙 헤매다보니 그런 믿음은 곧 사라졌다.
산에서 환상방황처럼 4시간이나 바다를 헤매고 제자리에 돌아왔을 때의 허무함이란…. 결국 배를 운전하던 쭝의 아버지는 하롱만에서 가까운 몇 곳의 관광지들은 잘 알지만 클라이밍 지역은 유명하지도 않고 가본 적도 없어서 찾는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처음부터 그렇게 솔직하게 말해 주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이미 다른 배를 수배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들은 GPS가 없었기 때문에 허술한 지도를 보고 수천 개의 섬들을 일일이 대조하며 길을 찾았다.
매일 배를 타고 수천 개의 바위섬 속에 있다보니 첫날에 우리가 느낀 하롱베이의 신비스러움이 잊혀지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일은 날씨도 좋고, 우리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호텔로 돌아갔다.
바이짜이로 돌아와 식당을 찾았지만 이미 밤이 늦어 모두 문을 닫았다. 허름한 식당을 찾아 들어간 곳엔 놀랄만한 크기의 큰 쥐가 돌아다녔다. 몸은 지치고 배도 고팠지만 쥐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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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펙트라인 오르는 고미영씨. |
아쉬운 등반 끝에 암초에 걸리다
다음날 여러 번의 수소문 끝에 어렵게 2번 지역인 항 티엔 옹(Hang Tien Ong) 섬을 찾았다. 이곳은 하롱만의 수상가옥에 사는 젊은 아가씨가 이곳을 안다고 해서 우리를 안내했기에 그나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항 티엔 옹 섬은 그 아가씨가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어서인지 바닷길을 잘 알고 있었다. 아가씨의 작은 배로 옮겨 타고 섬에 내렸다.
몇 m를 걸어 올라가니 꽤나 깊고 넓은 아늑한 느낌의 동굴이 있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왔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고 동굴의 내부는 바깥보다 따듯했다.
이곳엔 총 8개의 루트가 있으며 가장 왼쪽의 퍼펙트 라인(Perfect Line)은 가이드북에는 5.13b로 나와 있으나 두 번의 시도 끝에 완등한 상원이가 5.13c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등반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바위 면엔 초크 흔적이 거의 없는데다 미끄러운 이끼까지 있어 등반을 더욱 힘들게 했다. 중간 지점에서는 큰 동작을 요구하는데 그 위로는 경사가 약해지면서 미묘한 밸런스를 요구하는 루트였다.
바로 오른쪽에 있는 택시 걸(Taxi Girl)은 무난하게 등반이 가능한 5.12d의 루트였다.
정면 중앙에 위치한 티엔 비엔토 푸(Tien Biento Fou·5.11b)는 시쳇말로 ‘노가다’형 크랙이다. 첫 볼트에 행거가 부러져 있었지만 윤길수(애스트로맨 인공암장 대표) 선배는 노련하게 크랙에 프렌드 하나를 설치하고 등반을 시작했다.
깨끗하게 등반을 마치고 내려온 선배는 ‘나의 길’이라며 즐거워한다. 얼굴과 온몸은 시커먼 먼지와 이끼로 뒤덮여 있었지만 나이를 잊은 듯한 청년 같은 모습이다. 어디에서든 오름짓은 클라이머에게 삶에 대한 강한 의욕과 맑은 정신을 주는 것 같다.
등반 중 가끔 바다를 내려다보면 우리를 안내해준 아가씨가 혼자서 기다리느라 심심했는지 타고 온 조그만 배를 맨발로 젓는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맨발로 젓는데도 잘 간다. 손톱에 네일 아트까지 한 걸 보면 깊은 바다 안쪽 수상마을에도 도시의 문명이 들어온 것 같다.
배 위에서 지켜보던 선원들은 벽에 매달려 있는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든다. ‘이제야 우리가 클라이머라는 사실을 알았나 보군’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의 손짓이 등반을 빨리 끝내라고 자꾸 재촉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해벽을 오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위에 매달렸다.
배를 띄우면서 선장은 수신호로 배를 운행하기 때문에 밤에는 땅 밑이 보이지 않아 암초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결국 우리에게 그런 일이 닥치고 말았다. 등반이 늦어져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출발한 것이 화근이었다.
배가 암초에 걸려 꼼짝 못하자 3시간 이상을 바다 한가운데서 아무런 난방기구도 없이 추위에 떨어야 했다. 남국의 겨울은 의외로 춥고 매서웠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암초에 단단히 박힌 배는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겨우 빠져나오는 듯 하다가 다시 걸렸을 때의 막막함이란…. 멀리 육지의 불빛은 보이지만 소리를 질러도 닿지 못할 만큼 떨어져 있는 거리다.
우리는 아무런 구조 요청도 못하고 무작정 밀물이 들어와 저절로 배가 떠오르기 만을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수직의 절벽에서 자유를 찾았던 베트남 하롱베이 등반은 ‘애수의 바다’를 넘지 못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쉬움을 바다는 알고 있는지 그렇게 우리를 잡고 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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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 저물녘의 폴리쉬 필라 등반은 매우 쌀쌀하다. 두툼한 옷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 |
INFORMATION
베트남 하롱베이 깟바 섬 등반 길잡이
하롱베이에서 등반 루트가 가장 많은 곳은 5번 지역에 위치한 라우징 도그 월(Lauging Dog Wall) 섬으로 5.10c에서 5.13a 난이도의 총 22개 루트가 있다. 근처의 혼묵묵(Hon Muc Muc) 섬에도 15개의 등반 루트가 있는데 하롱베이에서 가장 어려운 곳인 드래곤 쎄 루비페(Dragon se Rubiffe·5.13c)가 이곳에 있다. 이곳은 바이짜이 섬 보다는 혼게이 섬에서 출발하는 편이 훨씬 가깝다.
관광지인 다오 콩 타이(Dao Cong Tay)섬 근처 세로토레 섬에는 13개 루트가 있는데 지구력에 자신 있는 클라이머에게는 2마디로 구성된 48m의 인피니토 서드(Infinito Sud·5.13c)와 라 플루르 드 드래곤(La Fureur du Dragon·5.12c)이 준비되어 있다. 하롱베이 등반에서 주의할 점은 반드시 GPS가 장착된 기동력 좋은 모터보트를 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등반지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경비를 감수해야함은 물론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보트서비스
일반적인 유람선 관광이 아닌 등반을 하려면 배를 빌려야 한다.
사전에 가격을 흥정하고 배의 시설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롱베이는 2000여 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지형이기 때문에 가고자 하는 곳의 위치를 잘 알고 있는 선장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다면 GPS가 장착된 배를 찾아보아야 한다. 호텔에서도 보트서비스를 안내 받을 수 있다.
현지 보트서비스 업체로는 하이 아우 정크(Hai Au Junk·033-847716)과 후옹 하이 정크(Huong Hai Junk·033-845042/090-3422441) 등의 회사가 있다.
기타 정보
깟바 섬에는 은행이 아직 없어 하롱베이에서 미리 환전을 해두는 것이 좋다.
호텔 로비에서도 환전이 가능하지만 환율이 좋지 않다. 인터넷을 이용할 경우 한글이 지원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메일 등을 제대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지만 퍼시픽호텔(Pacific Hotel) 로비에 있는 인터넷 카페에서는 한글이 지원된다.
숙 소
듀옹 누이 응곡(Duong Nui Ngoc) 거리에서 많은 미니 호텔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선착장을 중심으로 왼편에 있는 호텔들이 인기가 많은 편이다.
이곳의 숙소들은 바닷가 앞에 위치하고 있어 아침 저녁으로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숙박비는 7~10달러 정도이며 비수기인 10월부터 4월까지는 할인해준다.
국립공원
깟바 섬 전체 면적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깟바국립공원은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109종의 동물과 745종의 식물)을 간직한 원시림을 자랑한다. 공원을 둘러보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있으며 섬 안의 호텔에서 트레킹 여행 상품을 판매 소개하기도 한다.
국립공원 내에서는 캠핑도 가능하며, 장거리 트레킹의 경우 개구리 호수라는 뜻의 아오엣(Ao Ech)에서 시작해 소수 민족 마을인 비엣 하이(Viet Hai)까지 18㎞를 걷는 코스가 있다.
영어 가이드를 동반한 투어의 경우 반나절은 1인당 4달러이고, 하루 일정은 7~10달러다.
1일 투어는 트레킹이 끝나는 비엣 하이에서 보트를 타고 란 하 베이(Lan Ha Bay)를 통해 깟바 타운으로 돌아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