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직원들의 대표직 사퇴 요구 호소문 공개(12월 2일)에서부터 사퇴(12월 29일)까지의 한 달여 동안 그녀는 본의 아니게 뉴스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사퇴 요구와 자진 사퇴. 이 논란은 ‘사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되는 단순한 결과를 가져왔지만 사퇴 요구와 한시적 거부 그리고 자진 사퇴로 공방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남긴 상흔은 작지 않다.
박 대표 외에 이 사태의 당사자 격인 정명훈(鄭明勳) 서울시향 예술감독은 박 대표가 사태 와중에 제기한 문제들이 서울시 감사에서 사실로 확인되고 이후 모 방송에서 항공료 허위 청구 등이 발견됨으로써 예술가로서의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으며 박 대표는 ‘막말’이나 하고 ‘성희롱’이나 하는 ‘이상한 여자’로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그리고 3개월여가 흐른 지금. ‘박현정’이라는 이름 앞에서 서울시향 대표라는 직함은 법적으로도 떨어져 나갔지만 서울시민들의 기억속에서도 사라진 상태다. 대신 그 자리에 ‘막말과 성희롱이나 하는 이상한 여자’가 들어섰다. 그녀가 두려워하고 그래서 분노하는 것은 사회 일반의 자신에 대한 그런 기억들이다.
사실 기자에게 남아 있는 그녀에 대한 기억도 그랬다. 주변을 통해 그녀가 지난해 말에 벌어진 사태에 대해 무척 억울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도대체 무엇이 억울하단 말인가’ 하는 생각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이상한 여자’와 기자는 그렇게 해서 만나기로 했다.
“제가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막말이나 하고 성희롱이나 하는 여자로 보여요?”
박 전 대표는 자신의 첫인상이 주는 느낌을 물었다. 기자는 어색한 웃음으로 즉답을 피했다. 그녀는 강해 보였고 목소리의 톤이 약간은 높은 편이었다. 기자가 즉답을 피한 이유는 그런 느낌 때문이었다.
서울대를 졸업했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학력과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해당 업계 여성 최초 임원을 지냈다는 그녀의 경력이 이미 ‘그녀는 강한 여자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기자에게 심어 주었는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언론이 보도했던 그녀의 막말 파문도 기자에게 선입견을 심어 주기에 충분한 내용들이었다.
박원순 시장과의 만남에서 사퇴 거부하지 않았다
서울시향 박현정 전 대표의 명예훼손 사건과 관련해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들이 2015년 3월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서울시향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물품을 들고 밖으로 나오고 있다. |
서울시 측에 따르면 두 사람의 만남이 있기 한 달 보름여 전인 10월 14일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은 박현정 대표에 대한 탄원서를 박 시장에게 전달했다. 다음 날인 15일 탄원서를 작성했다는 서울시향 직원들은 서울시에 박 대표의 해임을 요청했다. 탄원을 제기한 직원들은 제보자 신분 보호와 함께 서울시향의 이미지 등을 고려해 서울시 차원에서 박 대표와 대화를 통해 조용히 해결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10월 28일에는 서울시 행정1부시장이 박 대표를 만나 탄원서 내용을 설명했고 박 대표는 그 자리에서 사임 의사를 전달했다. 다음 날에는 박 대표가 박 시장과의 면담을 요청했고 박 시장은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박 시장 입장에서는 12월 1일의 만남이 박 대표의 사의를 최종 확인하는 자리였지만 박 대표는 이 자리에서 서울시향 대표직 사퇴를 거부(서울시 측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도 서울시 측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해 보도했다.
박 대표는 이번 인터뷰에서 “그 자리에서 사퇴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서울시의회 회기가 끝나고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며 “왜 그때 박 시장은 서울시 의회 회기가 끝나는 2~3주를 기다려 주지 못하고 ‘당장 나가 달라’고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서울시가 박 대표가 사퇴를 거부했다고 밝힌 이날 오후부터 서울시향 직원들의 박 대표에 대한 탄원서가 호소문의 형식으로 외부에 알려지며 언론사가 취재를 시작한 것이다. 호소문의 골자는 박 대표가 직원들에게 인권유린은 물론이고 막말과 성희롱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박 대표는 이에 대해 이번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녹취록이 공개된 ‘새끼’ 등의 단어가 들어간 문제의 발언 내용은 직원들에게 한 것이 아니라 제3자인 정 감독의 소속사 등에 대한 분노를 팀장들 앞에서 격하게 표현한 것”이라면서 “당시에도 그런 상황을 수차례 설명했지만 서울시든 언론이든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남자 직원 성추행 문제에 대해서도 “회식 자리의 성격과 좌석 배치상 문제를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는 환경이었다”며 “그래서 명예훼손 혐의로 호소문 작성자들을 조사해 달라는 진정서를 경찰에 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12월 2일 오전 박 대표는 서울시향 이사, 시의원, 기자 몇 명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상한 메일도 받았다. 발신자는 추적이 안 되는 해외 이메일 계정이다. 박 대표는 “호소문이 발신자 추적이 안 되는 이메일 계정으로 서울시향 이사진, 서울시의회 관계자, 언론사 등에 배포됐다”며 누군가에 의한 ‘공작’ 의혹을 제기했다.
호소문 내용이 밖으로 알려진 후 박 대표는 정명훈 감독의 서울시향 운영에 있어서 전횡 문제 등을 폭로했지만 막말과 성희롱 파문의 위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호소문이 알려진 초기 박 대표를 박 시장 라인으로 보고 있었던 일부 언론이 박 시장을 공격하기 위해 사태를 더 확장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박 전 대표는 12월 29일 서울시향 대표직 사퇴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사태 진행 과정에서 박 전 대표는 호소문을 작성했다는 직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조사해 달라는 진정서를 경찰에 냈고 직원들은 박 전 대표를 성희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호소문은 익명의 직원 17명이 작성한 것으로 돼 있으나 고소장은 실명의 직원 10명이 제출한 것으로 돼 있다.
경찰 압수수색이 진실 밝혀지는 계기 됐으면
2014년 12월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습실에서 사퇴의사를 밝힌 박현정 대표가 긴급 기자회견을 마친 후 퇴장하고 있다. |
—오늘 서울시향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이 있었는데요.
“제가 지난해 12월 19일에 경찰청 사이버 수사대에 호소문 작성자들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를 조사해 달라는 진정을 넣었죠. 진정을 넣은 지 3개월여 만에 압수수색이 이루어져 때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진실이 밝혀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서울시향 직원들도 박 대표를 성희롱 등 혐의로 고소했죠?
“12월 23일인가에 직원 10명이 검찰에 저를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죠. 이 사건은 종로경찰서로 이첩돼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고 저도 한 번 종로경찰서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 사태를 박 전 대표와 서울시향 정명훈 예술감독 간 갈등의 산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서울시향 대표 취임 직후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정명훈 감독에 대한 첫인상을 ‘순수하고 열정적’이라고 표현했던데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까.
“대중 앞에 서는 분들, 무대에 서는 분들은 일반인과는 다르게 여러 얼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다양한 역할과 캐릭터(character)를 소화해 낼수록 더 훌륭한 퍼포머(performer)가 아닌가요? 아무리 고급 식당도 주방을 보면 안 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백조는 호수 위의 우아한 모습만 봐야지, 수면 아래서 갈퀴질하는 모습을 보면 환상이 깨지는 거 같아요.”
—작년 12월 사태에 대해 많이 억울해한다고 들었습니다. 명예회복을 위해 언론보도에 대한 언론중재위 제소나 서울시 등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은 생각 안 해 봤는지요.
“생각은 해 봤죠. 그런데 아직도 그때 당한 후유증에서 완전히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사태 발생 석 달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신문이나 방송을 제대로 못 보고 있습니다. 인터넷도 주변 지인들이 저를 위해 안전(?)하다고 알려주는 기사만 봅니다. 갑질, 성추행, 폭언, 막말 같은 단어만 나와도 힘들어요.”
—아직도요?
“작년 12월 한 달은 중세 시대에 억울하게 마녀로 몰려 죽어 간 사람들처럼 장작더미 위에 올라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서울시와 언론은 장작더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고, 구경꾼들은 정말 마녀인지 아닌지 구분하려 하지도 않고 손가락질만 하며 화형식을 구경하는 형국이었지요. 억울하게 죽어간 마녀들 기분이 이랬을 수 있겠구나… 딱 그 심정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울컥하는데 급선무는 제 스스로 제 마음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명예회복이라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명예는 접시 같은 것인데 한번 깨진 접시는 아무리 잘 붙여도 금이 남지 않습니까. 그래도 제가 살아온 53년 동안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인생이 한순간에 무너져서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12월 30일 시향 정기이사회에서 전날 발표한 박 대표의 사퇴 의사는 수용되고 정 감독과는 계약 연장이 결정됐는데 억울했다면 보장된 임기도 있는데 더 버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많은 분들이 왜 해임될 때까지 버티지 않았냐고 말씀하시는데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어요. 한 달 동안 서울시의 압박이 너무 심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직이 한 달 넘게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데 대한 책임감도 견딜 수 없었고요. 공공기관장으로 오면서 임기를 꼭 채운다고 생각할 만큼 제가 뭘 모르는 사람은 아니에요. 임명권자가 나가라고 하면 언제라도 당연히 나가는 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시의회 회기 중간에 나가는 것은 모양새가 좀 이상하잖아요. 12월 중순 회기 마치고 나가겠다고 했는데 당장 나가라고 하는 거예요. 만약 회기 마치고 나가게 해 주었다면, 버티고 이런 거 전혀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서울시는 해임 근거를 찾지 못했다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문제가 많았다면 서울시는 징계위를 열어 사표 수리가 아닌 해임이나 파면 처리를 했으면 됐을 텐데요.
“제 연봉이 세 전 1억원이었습니다, 그런데 1년에 50억원에 가까운 협찬·후원을 모금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좋은 말로 나가라고 했을 때 못 나가겠다고 할 만큼 솔직히 제게 그렇게 매력적인 자리는 아니었던 것이죠. 원래 저는 협찬이나 후원은 자발적이어야지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 협찬이나 후원금을 모으러 다니는 것이 그다지 편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 본래의 체질에는 맞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자리를 고집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거죠. 맨 처음에 대표직 제의를 받았을 때 저랑 맞지 않는다고 거절했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맡아 달라고 해서 맡았습니다. 그런 제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했으면 적정한 시기에 적절한 모양새를 갖춰 그만두었을 것입니다. 왜 저를 이런 모습을 만들어 내보냈어야 했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저를 망신 주겠다는 것이 목표였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아요.”
박 전 대표는 호흡을 한 번 가다듬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서울시가 한 달 동안 벌인 언론 플레이로 제 이미지를 완전히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았지만 결국 해임시킬 만한 근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양한 방법으로 사표를 종용했던 거죠. 만약 언론에 나온 직원들에 대한 막말, 성희롱, 인사비리 이런 것들 중 하나라도 사실이었다면 왜 해임을 못 시켰겠습니까. 준 공무원은 사직 처리해서 면죄부 주면 안됩니다. 반드시 징계해서 내보내야 합니다. 감사원 감사 결과도 발표되지 않았는데 사표 수리를 한 것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고요. 서울시가 무슨 이유에서 저를 빨리 대표 자리에서 내몰아야만 했는지 그 의도가 정말 궁금합니다.”
—예술 행위를 너무 경영의 잣대로만 봤던 데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요.
“예술 행위에 대해 경영의 잣대를 들이댄 것은 결코 아니에요. 예술가는 살인을 해도 되나요? 예술가는 빨간불에 차를 몰아도 되나요? 모든 비용을 법인카드로 결제한다거나, 계약서를 제대로 쓰고 계약 내용을 지키고, 항공료를 허위 청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예술 행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예술가를 대접하는 어떤 나라에서도 항공료 허위 청구를 허용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소속된 단체의 공식 공연을 변경하면서까지 개인적인 공연을 해도 좋다고 허용하는 나라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경영이라는 것은 늘 합리적인 최적점을 찾는 노력이에요. ‘경영의 잣대’라는 표현은 경영이 무조건 엄격한 기준만 적용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데, 경영은 가치 대비 효율을 보는 것입니다. 예술의 이름으로 너무 많은 것을 덮으려는 것은 오히려 예술의 발전을 막는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에 가 보니까 클래식 산업이 융성한 나라일수록 우리나라 어떤 기업보다 더 냉정하게 가치와 비용을 계산하더군요. 공연 원가 절감을 위해 비용분석을 하고 저작권에 엄격한 것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고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음악가들 간의 경쟁도 치열하고 스태프 인건비 절감 노력도 치열했으며, 배울 것이 많았습니다.”
서울시향의 시스템을 개혁하려 했지만
2014년 12월 5일 열린 박 대표의 기자회견에 몰려든 기자들. 막말과 성추행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당시 언론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웠나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
“정 감독 연봉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요, 저도 높은 편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계약할 때 쌍방이 합의해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라고 보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절대금액 자체보다 규정을 위반하거나 편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지휘자는 처신도 세계적이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해외에서는 하지 않을 행동을 국내에서 하는 것은 세계적인 지휘자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서울시향 대표로서 어떤 점이 가장 비정상적인 운영으로 보였는지요.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조직이 너무 한 사람에 의존해서 10년이 되도록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첫째입니다. 저는 ‘내가 떠나도 있을 때와 비슷하게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나의 업적’이라고 생각하고 ‘악법도 법’이라고 지키는 사람인데, ‘내가 떠나면 안 되는 조직’을 원하고 ‘법과 규정 위에 군림’하려는 분과는 목표와 가치관에 큰 차이가 있었죠. 아무리 비영리 예술단체라 해도 단체라면 조직답게 규정을 준수하고 세금과 협찬 등 남의 돈을 쓰려면 투명해야 합니다.”
—지난해 12월 직원들이 호소문을 공개한 후 반박 차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그때 밝힌 것처럼 서울시향이 정말 정명훈 감독의 사조직처럼 운영됐다고 보는지요. 그렇게 봤다면 개선을 위한 노력은 했는지요.
“사조직화의 핵심은 스태프 조직과 공연기획 자문역인 마이클 파인이라는 사람이에요. 스태프 조직의 일부는 ‘감독님 말씀’이라면 규정과 절차, 회계를 무시하고라도 무조건 실행해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그런 직원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행정직원 중에 음악을 전공했던 여직원들이 많은데 이들은 감독님 말씀이라면 무조건이었으며 시향이라는 단체의 조직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의식과 태도, 자신의 업무 역량을 키우는 것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명훈과 함께 일하는 영광’에 만족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제 눈에는 그랬어요.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 |
업무 프로세스도 투명하게 바꾸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정 감독 자신의 개인 공연이나 정 감독 아들의 공연에 마음대로 사용하던 악기도 대여 제도를 만들어 대여를 통해 쓸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시향에는 10억원어치의 공용 악기가 있는데, 다른 단체들은 구비하기 어려운 악기들이에요. 어느 단체라도 빌려다 쓸 수 있도록 공공 도서관의 도서 대출과 비슷한 프로세스를 만들었던 거죠. 안 하던 악기대장 관리를 해야 하는 직원들도 편하게 사용하던 악기를 절차를 밟아서 써야 하는 감독님 쪽도 모두 제가 귀찮았을 겁니다.”
—정 감독이 서울시향 구성과 예산 등에 독단적 권력을 휘둘렀다는 주장도 했는데 대표로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까.
“직원들에게 정 감독과는 별개로 시향이라는 공조직의 구성원임을 인식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정 감독은 9년 동안이나 계속 있는 반면, 대표는 3년마다 한 번씩 바뀝니다. 조직 특히 공공조직은 직원들이 한번 들어가면 이변이 없는 한 정년까지 오랜 기간 모두 같이 근무하는 반면 대표 혹은 공공기관장은 3년이면 바뀝니다. 일반 공공조직에서도 임기가 있는 기관장이 정년이 보장된 직원들 관리가 쉽지 않은데 절대 문화권력이 한 축으로 존재하는 조직에서 대표가 특히 종신, 영구 집권할 것 같은 절대자를 제어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막말, 성추행? 하지 않았다
2014년 8월 27일 런던 로열앨버트홀에서 열린 BBC 프롬스 무대에 선 서울시향. 이 공연 후 정 감독과 박 대표의 갈등이 본격화했다. |
“평생 단 한 번도 직원은 물론 그 어느 누구에게도 앞에 있는 상대방에게 욕설한 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또한 언론에 빈번하게 거론되는 미니스커트 입고 다리로 음반 팔아라, 장기를 팔아라. 술집 마담 해라 등과 같은 말을 한 적도 없고요. 제가 목소리가 크고 직설적이고 단호한 어투인 것은 스스로도 잘 압니다. 그런 어투가 부하 직원 입장에서는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언론에 나온 것처럼 이상한 말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말투나 언어습관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저는 누구 앞에서도 똑같이 행동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을 했다는 것인지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막연하게 이런 말을 했다는 식으로 언론에서 반복해서 보도하니까 마치 정말로 그런 말을 한 것이 돼 버렸습니다. 방송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더군요. 지인이 보았는데 어떤 방송에서는 더빙까지 해서 보도했다고 하더군요. 언론은 그 영향력에 걸맞은 자정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고 봐요. 제보자가 익명으로 던져준 것을 사실 확인도 없이 보도하여 어떤 한 사람을 인격살인하고 사회적으로 매장시켰습니다.”
—호소문에서 주장하는 욕설 등 그런 뉘앙스의 말도 전혀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이런 거는 있어요. 제가 화가 나면 제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닌 제3자를 향해 거친 말이 나올 때는 간혹 있습니다. 이번에 녹음된 파일은 작년 유럽 투어 마지막 날 파티에서 서울시향의 해외 투어 에이전시이자 정 감독의 소속사인 아스코나스 홀트의 오만함과 무례함에 분개했는데 그것 때문에 귀국 후 출근 첫날 팀장회의에서 화를 냈던 일이 있었어요. 그때 녹음을 한 것으로 뒤늦게 알았습니다. 제가 수년 내에 그렇게 화가 났던 적은 없었어요. 서울시향으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아웃소싱 업체가 정 감독의 소속사라는 이유로 시향의 해외 투어를 마음대로 정하여 통보하는 식이었습니다. 또 해외 투어에 드는 비용 14억원에 대해 시향은 돈만 대라는 식으로 일방적인 업무를 추진했습니다. 또 그 과정에서 정 감독이 미국 투어와 관련해 1년 동안이나 제게 했던 말이 본심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돼 배신감도 느끼는 등 정말 화가 많이 난 상태였습니다. 11억원이나 되는 비용을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협찬 받고, 10만원짜리 후원회원을 400여 명이나 모을 만큼 주변 지인들을 괴롭혀서 간 유럽 투어였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물론, 아무리 화가 났어도 팀장들 앞에서 아스코나스 홀트를 비난하면서 거친 말을 하지는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 부분은 반성하고 있고요. 그런데 나쁜 말만 편집한 녹음 파일 때문에 마치 제가 직원들에게 그런 말을 한 것처럼 들리게 만들었어요. 저는 분명히 우리 직원이 아닌 아스코나스 홀트사 등을 비난한 것이었는데도 말이죠. 그건 녹음 전체를 편집하지 않고 들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장난 때문에 제 인생과 커리어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습니다. 저는 제 잘못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책임집니다. 제가 지금 인정 못하는 것은 제가 하지 않은 말, 제가 하지 않은 행동을 마치 제가 한 것인 양 비난을 받기 때문입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죠. 저는 제가 한 일, 제가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은 어떤 것도 절대 피하지 않습니다. 상대방도 그래야 할 것입니다.”
—성추행은요?
“정말 어이없는 주장인데요. 처음에는 내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성추행을 했다는 것인지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서울시 인권센터의 결정문에 의하면 2013년 9월 거래처 접대 회식에서 성추행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더군요. 테이블이 4개 놓인 제주식 횟집의 좁은 방에 거래처 사장님을 포함한 관계자 7명, 저를 포함한 시향 직원 7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바로 눈앞에 거래처 사장님이 앉아 계시고 그 양옆에 부장들, 내 양옆에는 시향의 여자 팀장 2명이 앉아 있었고요. 시향 남자 직원은 딱 1명이었는데, 간부 테이블 쪽이 아닌 실무자 테이블 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 있을 수 있나요? 게다가 문화계는 정말 말이 많은 곳인데, 만약 무슨 일이 있었다면 이미 2년 전부터 소문이 파다했을 것입니다. 그 직원이 왜 그런 주장을 하게 됐는지 추측은 할 수 있고 그 추측의 근거는 있지만 더 이상 말을 않겠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박 대표는 성추행 관련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이력을 붙여 설명했다.
“저는 20년 가까이 남자들이 아주 많은, 임직원이 수천 명 되는 큰 조직에서 생활했습니다. 주변이 모두 남자이고 간부인 여자는 늘 저 하나인 경우가 많았죠. 대기업에서 여자가 관리자 생활을 하는 게 어떤 것인지 아시나요? 어항 속의 금붕어 같아요. 수백 명 모인 강당에서도 여자는 저 하나인 경우가 많아 졸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하품만 해도 다음 날 코를 골았다고 소문 나곤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타율에 의해서라도 막 살아 온 사람이 정말 아닙니다.”
—호소문에 따르면 박 대표께서 취임 후 직원 27명 중 48%인 13명이 퇴사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13명의 사표를 수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중에 저와 업무적으로 접할 기회가 있었던 직원은 3명뿐이었습니다. 제가 대표에 취임하자마자 전직 대표 시절부터 근무했던 본부장 포함 2명이 사표를 냈고, 2명은 2013년 말 정년제도 도입으로 6개월치 연봉을 명퇴금으로 받고 퇴직했습니다. 4명은 저와 업무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거의 없는 계약직, 아르바이트생들이었고요. 나머지 2명은 주니어 직원들이어서 저와 대면할 기회도 별로 없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일도 잘하고 똘똘한 직원들이어서 질책할 일도 없었습니다.”
박원순 시장과의 인연은?
2011년 12월 16일 오후 박원순 서울시장이 재계약을 앞둔 정명훈 당시 서울시향 상임 지휘자와 만나 서울 청계천 근처의 한 음식점에 들어서고 있다. |
“2014년 9월 저는 유럽 투어 파티 사건, 미주 투어, 피아노 리사이틀, 빈오페라 지휘로 인한 시향 공연 일정 변경 등 일련의 사건 때문에 정 감독에게 크게 실망한 상황이었습니다. 시향 근무에도 크게 회의가 일어 협찬 구하러 다니기도 싫었죠. 또한 박 시장 1기 때는 17명의 출연 기관장 중 저처럼 박 시장과 인연이 없는 사람도 몇 명 있었는데, 재선 이후 도중 하차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 어쩌면 저에게도 그만두라는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사직을 이야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뭐라고 누구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나 등도 고민하고 있었죠. 그러던 중 10월 28일 행정1부시장과 정무수석이 면담하자고 해 만났더니 ‘정 감독이 재계약 안한다, 박 대표랑 일 못한다, 나도 직원들도 대표를 싫어한다. 그 증거로 10명이 서명한 연판장이 들어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마침 잘됐다 싶어서 빠른 시간 내에 정리하겠다고 한 건 맞아요. 서울시가 12월 4일 발표한 ‘시향 사태 관련 입장’에 따르면 마치 제가 시향의 문제점에 대해 자진해서 보고서를 만들어 보낸 것으로 돼 있는데 사실과 달라요.”
—서울시 측의 요구였습니까.
“당시 정무수석이 제게 정 감독과 시향의 문제점을 정리해 달라고 해서 보고서를 작성해서 다음달 10일 비서관을 통해 이메일로 전달한 일이 있습니다.”
박현정 대표는 언론과 정치권에 의해 이른바 ‘박원순 라인’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
“그건 아니죠.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서울시 행정사무 감사가 있어서 시의회 참석 여부를 고민하다가 시의회에는 참석하는 게 맞는 것 같고 그래서 의회 회기는 마치고 사퇴하는 것이 여러모로 적절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12월 1일 저를 만난 박 시장은 당장 나가라는 뜻을 저에게 전한 것이고, 저는 서울시 의회 회기가 끝나는 12월 중순에 나가겠다고 했던 거지 사퇴 의사를 바꾼 것은 아니었어요. 만약 박 시장이 회기 마치고 나가라고 했다면 위로의 자리가 될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그날 오후부터 호소문이 언론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나가라고 할 때 당장 나가지 않는다고 언론에 호소문을 유포시키는 것이 적절한 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음해성 투서가 들어오면 일단 본인에게 보여주고 소명 기회도 주고 사실 확인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왜 언론에 유포시키기 전에 제게 보여주지 않았는지 그 후에 왜 저에 대한 징계 절차를 밟지 않고 굳이 사표를 받아 수리를 했는지, 그러나 그 무엇보다 2~3주조차 기다려 줄 수 없었던 이유가 가장 궁금합니다.”
—그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있습니까.
“짐작은 하지만 말은 할 수 없는 이유라고 하면 될까요.”
—박 시장이 12월 1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 대표에 대해 “시향 경영자로서 부적격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는데 시향 대표 제의를 할 때는 뭐라고 했나요.
“2012년 초가을쯤 첫 번째 제안을 받았을 때 고사한 후 제가 약속을 피했는데 약속 날짜를 자꾸 잡아 와서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됐어요. 2012년 12월 마지막 주였던 거 같은데 시장실로 갔죠. 그런데 처음 만난 날 시장실에 녹음기가 있더라고요. 처음 만나면 보통 ‘우리가 초면이죠?’ 이런 말은 안 하잖아요. 그런데 박 시장께서는 저한테 ‘우리가 일면식도 없는 초면이죠’라는 말부터 하더군요. 그래서 ‘네’라고 했죠. 그걸 녹음으로 남기시더군요.”
—소위 ‘박 시장 라인’으로 알려졌는데 그때가 정말 처음 만나는 거였습니까.
“제가 지인으로부터 사태가 발생했던 초기에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던 이유가 박원순 시장 라인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새누리당 어떤 국회의원께서 박원순 낙하산 인사 명단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 제 이름이 있었다고 듣기도 했습니다. 모 언론에서는 ‘하버드 라인’이다, ‘삼성임원 시절 아름다운 재단 협찬 때문에 알게 되었다’는 등의 소설도 사실처럼 보도되었다고 들었어요. 모두 사실 무근입니다. 2012년 12월 말, 시향 대표 건으로 만난 것이 처음입니다. 박 시장과는 지금까지 딱 두 번 독대를 했습니다. 2012년 12월 말, 시향 대표직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봐 달라고 할 때와, 2014년 12월 초에 당장 나가라고 할 때 두 번뿐입니다.”
끝내 호소문을 안 보여준 이유는?
—결국 박 시장은 갈등 관계에 있던 두 사람 중 정 감독의 손을 들어 준 셈인데 그 이유를 뭐라고 보는지요.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박 시장이 꿈을 갖고 있다면 그 꿈을 실현하는 데 제가 도움되겠습니까, 정 감독이 도움되겠습니까.”
—박 대표의 주장을 듣다 보면 이 사태와 정 감독이 깊이 연관돼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2014년 12월 2일 새벽에 서울시향 이사회, 서울시 의회, 서울시 출입기자 100여 명, 서울시향 출입기자 50여 명에게 발신자 추적이 안 되는 호주의 유료 사이트에서 체계적으로 유포된 17명의 익명 호소문 내용을 보면 언론에는 주로 나의 폭언, 성추행, 성희롱, 인사 비리 등만 보도됐습니다. 그런데 호소문을 다시 보면 호소문 내용의 절반은 정 감독이 갖고 있던 저에 대한 불만이 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 피아노 리사이틀 결재 안한 것, 빈오페라 지휘를 위한 시향 공연 변경, 미주 투어 협찬, 공연기획에 대한 월권, 감독 재계약에 대한 언급, 시의회에서 감독을 옹호하지 않았다는 비난 등이 담겨 있는데 이 내용이 직원들의 인권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또 이런 직원들의 불만을 적은 연판장을 10월 중순 정 감독이 저에게는 보여주지도, 언급하지도 않은 채 박 시장에게 직접 건넸어요.”
—정 감독이 박 대표에게 이 사태와 관련해 면담을 요청한 사실은 있나요.
“투서 사건과 관련해 면담을 요청한 사실은 전혀 없습니다.”
—박원순 시장과 정 감독이 이 사건과 관련해 박 대표에게 이해를 구하거나 설득한 일이 있는지요.
“전혀요. 처음부터 저와 이야기를 통해 조용히 해결할 생각은 두 분 모두에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10월 중순에 정 감독은 저에게 아무런 언급도 없이 바로 박 시장에게 호소문을 전달했고 서울시는 10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호소문을 보여 달라는 제 요구에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12월 1일 박 시장 면담 시에도 보여주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끝내 보여주지도 않고 아무런 사실 확인도 없이 언론에 유포해 버렸습니다.”
—왜 안 보여줬을까요.
“제가 사퇴를 한 결과를 보면 안 보여주었던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보여주었다면 지금과 같은 파괴력은 전혀 없었을 겁니다. 제게 보여주었다면 저는 당연히 소명을 했을 것이고 그래서 내용이 수정되었다면 별 내용 없는 문건이 되었을 터이니 징계나 해임은 물론 지금과 같은 언론플레이와 여론몰이로 저를 망신 주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이 사태를 대립 구도로 놓고 본다면 처음부터 공정한 게임이 아니었고 공정하고자 노력을 한 적도 없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지난해 12월 30일 시향 이사회는 정 감독에 대한 계약 연장과 함께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힌 박 대표의 ‘의사 표명’을 수용하기로 하는 의결을 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표는 이런 요지의 신상발언을 했다.
“당장 해임할 만큼 중한 범법자는 반드시 징계해서 내보내야지 사표 수리해 주면 안 된다. 징계해 달라는데 왜 사표를 종용해 왔는가. 내 사퇴는 의혹 인정 아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조직을 한 달 이상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게 할 수 없어서 일단 사퇴를 하는 것이다.”
인터뷰 시작 후 3시간 넘는 시간이 흘렀을 때 박 대표가 혼잣말 하듯 이런 말을 했다.
“제가 12월에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너무 슬프고 힘들고, 성격이 팔자인 것도 맞고….”
약간은 울먹하는 듯한 목소리에서 그녀가 ‘이상한 여자’가 아니라 ‘보통 여자’로 느껴졌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번 사태 겪으면서 혼자서 운 적 있나요.
“아뇨. 울고 싶은데 울면 안 될 것도 같고 울기에는 너무 억울했어요. 저를 향한 세상의 시선이 주는 잣대가 객관적이고 균형 있게 적정한 것이었다면 울었을지도 몰라요. 저, 사실은 맘 약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