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온이란 다섯 가지의 온을 뜻하고, 온이라는 것은 쌓인다는 뜻이다.
즉 오온이란 다섯 가지의 무엇이 쌓이는 것을 뜻한다.
이 오온에 대한 해석은 약간씩 다른데,
세상의 모든 물질 혹은 내 몸과 정신을 구성하는 모든 것 (색수상행식)으로 볼 수 있다.
조견= 꿰뜷어본다.
오온을 꿰뜷어보면 공의 이치를 깨닫는다.
[색온]
감각의 대상 (물질, 신체 등 모양이 있는 모든 것)
감각을 바라보는 모든 물질 (안이비설신)
감각의 대상이 되는 외부 세계이 모든 것들 (차, 고양이, 건물...)
[수온]
신체 감각으로 인해 받아들이는 모든 작용 = 감수 작용
느낌이 쌓이고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모든 작용
[상온]
상이 쌓인다. = 표상 작용
ex)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면 왜구를 무찌른 위대한 장군이 떠오른다.
수로 느껴지는 것들이 머리 혹은 마음 속에 저장되는데, 이런 저장된 것들이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머리나 마음 속에 저장된 것을 떠올리는 것
[행온]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의지 작용을 일으킨다.
ex) 비오는 날 자전거 라이딩을 하는 것은 운동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때문이다.
많은 고통의 원인이 행고 (행동)으로 인한 것이고, 행고는 우리의 욕구와 탐욕에서 온다.
행온이 업을 만들고, 행동이 쌓이면 업이 쌓인다.
[식온]
의식 작용
자신의 의식이 이미 만들어져버린 것
모든 판단, 결정짓는 마음, 인간의 이성적인 모든 활동들
식온도 쌓이니 업식이 되고, 이것이 모여 업력이 되고, 업력이 쌓여 업장이 된다.
자전거를 예로 들자면..
좋은 자전거가 주는 느낌을 느끼며 자신만의 좋은 자전거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이것을 색온이라 할 수 있다.
10만원 짜리 자전거를 타다가 100만원짜리를 타면 편안함을 느끼고 감수작용을 느껴 수온!
비싼게 가벼우니까 더 빨리 나가네. 좋은 자전거는 비싸야 한다는 상을 짓는 것이 표상 작용이다.
그리고 나서 비싼 자전거 구매를 위해 돈을 모으게 되면 행온이다. 즉 자전거에 대한 업을 만듬
자전거에 대한 의식 작용이 일어남
그러나 정견으로 바라보면 비싼 자전거를 타보니 별 것 아니고, 본인이 싸이클 선수가 될 것도 아닌데
비싼 자전거나 저렴한 자전거나 나에겐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격에 신경쓰지 않고, 오롯이 운동을 하기 위한 의지 작용이 쌓이는데, 이것이 행온이다.
자전거는 가격에 상관없이 나에겐 운동하기 위한 레저 활동 수단일뿐이다.
어떤 방향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식온이 바뀌고 업식이 바뀐다.
공은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1.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 (제법무아)
2.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제행무상)
3. 모든 것에 대한 규정은 본질이 아니다.
공이 이치 = 연기 (인연생기), 인연으로 인해 생겨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발현시켜주는 원인이 있다.
ex) 볍씨 하나를 뿌리고 (인), 이것이 자라려면 해, 물, 공기 등 (연) 이 있어야 한다. 곡식이라는 결과 (생기)
볍씨가 바로 벼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나라고 말하는 그 실체는 어디 있는가?
그 순간이 지나가버리고, 세포가 생멸하고, 곧 지난 날의 내가 되버리는데 지금의 나를 찾을 수가 없다.
계속해서 실체 없이 생각과 몸이 바뀌고 있다. = 공
공과 연기설은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보면 된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영원불멸한 어떠한 것도 실체가 없다.
실상이란 것은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것인데 이것은 실체가 없다.
인간이 생각하고 규정하는 것은 더할 나위없이 실체가 없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우리는 상대적인 세계에 살고 있고, 누구나 저마다의 상대적인 규칙으로 살아가고 있다.
좋다, 나쁘다, 넓다, 좁다 등등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으로 규정짓는다.
'맞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사견'이고 '아상'이다.
ex) 강릉에서 서울로 가려면 서쪽, 평양에서 서울로 가려면 남쪽으로 가야한다.
연필 한자루를 손대지 않고 짧게 만들고 싶다면, 더 긴 것을 가져오면 된다.
(모두가 보는 사람의 기준이 만들어낸다.)
'무엇이 공이다' 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 공이 아니다.
설명을 위한 것일뿐 사실 공은 정의 내릴 수 없다.
색수상행식 즉 오온을 조견 (똑바로 꿰뜷어보면)하면 모든 것이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도일체고액 - 고통과 괴로움을 넘어선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괴로움이 무상하고 반드시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안에 이미 '업'이 있기때문에 잘 되지 않는다.
이 '업'을 정화하는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우리의 번뇌는 무명 (어리석음) 에서 온다. 지혜가 생기면 수천년동안 어두웠던 동굴도 밝아진다.
두려움과 괴로움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데, 내 업으로 인해 그것을 그렇게 볼 뿐이다.
ex) 소 똥은 인간이 더럽게 느끼지만, 쇠똥구리에게는 그것이 집이다.
또 인간의 배설물이 몸안에 있을 때는 더럽다고 느끼지 않지만, 몸 밖으로 나오면 인간은 그것을
더럽다고 느낀다. 그러므로 배설물 자체는 실체가 없다.
그리하여 번뇌랄 것이 없다.
번뇌라는 것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고통이 될 수도 삶의 지혜가 될 수도 있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이 공함을 비추어보라. 괴로움이랄 것이 없다.
첫댓글 해박한 불교철학으로, 반야심경의 정수를 알기 쉽게 해설하여
쉽게 읽도록 정리해 준 공덕은 사해에 넘칠 것이오.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늘 함께하길 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