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개요
1930년대 대표여성작가인 강경애의 「소금」을 정독한 후 만주국 성립 직후의
혼돈상과 간도이주민의 수난사가 여성적 체험을 통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파악한다. 검열에 의한 붓질복자의 남북한 복원본을 비교하여 검토하고 하층민
여성의 계급적 각성과정의 의미, 그 개연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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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성과 생명력, 제목 ‘소금’의 의미도 함께 검토한다.
여성작가가 쓴 소설. 여성정체성이 두드러지는 여성적 글쓰기로서의 소설.
복자(伏字)
출판 시 필요한 활자가 없거나 공표할 수 없는 경우 숨김표로 표시하는 것.
식민치하에서 일제의 검열에 의해 문제가 된 부분에 붓질을 하거나 '○', '×'
따위의 표를 찍어 숨겨짐을 표시했다.
간도(間島)
만주 길림성(吉林省) 동남부지역으로 중국 현지에서 연길도(延吉道)라고
부르는 지역
Q1
강 경애의 「소금」에서 검열로 삭제된 부분에 대한 남북의 복원내용을 찾아서
읽고 비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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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강 경애의 「소금」은 1934년 『신가정』에 연재되던 중 6회 만에 중단
되었다. 마지막 부분은 그나마 검열로 인해 붓질이 되어 있어 그 내용을 알기
어렵다. 북한에서 1986년에 출판된 「소금」은 누군가의 기억과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채워 넣은 것으로 강력한 사상성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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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봉염 어머니가 공산주의에 눈을 뜨고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끝난다.
남에서는 한 만수 교수의 주도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붓질된 부분을 과학
적으로 복원하였다. 이 부분을 보면 갑작스럽기는 하나 봉염 어머니가 ‘돈
많은 놈들’이 자신의 적대자임을 깨닫고 불길같이 솟아오르는 불평에 의해
벌떡 일어나는 것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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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1919년 3·1운동은 결국 일제와 조선 민중 사이의 민족적·사회적 모순의
극대화 때문에 일어난 것이지만, 그 전 해부터 노동자 농민들의 생존권
투쟁과 청년 학생들의 국내외 연대 속에서 무르익고 있었다. 이보다
앞서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면서 1920년대 접어들어 조선공산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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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조직 결성이 3차례에 걸쳐 시도되었다. 초기부터 상해와 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하여 모스크바의 코민테른과 연결되었던 조선공산당
운동은 지도부가 검거되는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노동자, 농민 그리고 청년
학생들 사이에 급속히 전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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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 경애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가슴이 저렸던 것은, 해방과 분단
이전에 죽어서 식민지 사회주의자의 흔적만 보이는 그녀의 작품들이 아직도
좌우 대립의 관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보면 강 경애
는 이른바 카프라든가 중앙문단과는 거리를 두면서 민중적 삶의 현장에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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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섰던 작가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작가’로는 거의 유일하게
그녀의 장편소설 <인간 문제>는 식민지시대 최고의 리얼리즘 문학으로 평가
되곤 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월북 작가들의 작품이 해금되고 카프를 비롯한
프로문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진 1980년대 말에 와서야 재평가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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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특히 북한에서는 강 경애를 이 기영에 버금가는 선구적인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작가로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강 경애는 1906년 황해도 송화에서
머슴 출신의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네 살 적에 아버지가 사망
하고 병약한 어머니는 장연으로 후살이를 들어가게 된다. 계부는 부자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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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이 지난 나이에 몸도 불구여서 강 경애의 어머니는 후처가 아니라 몸종과
다름없었다. 전 처 소생의 아들과 딸이 있어 데리고 들어간 자식인 그녀는
주위의 따돌림을 받았다. 어릴 적에 방안에 굴러다니는 ‘춘향전’을 보고
스스로 한글을 깨우쳤고, 동네 사람들이 그녀를 데려다 과자를 사주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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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게 했다고 한다. 열 살이 지나서 어머니의 애원과 간청으로 장연소학교
에 들어갔고 이어서 평양 숭의 여학교에 입학했으나, 3학년 때에 독서회와
동맹휴학 주동으로 퇴학을 당한다. 강 경애는 1924년 무렵에 장연 태생의
동경유학생이던 양 주동을 만나 서울로 올라와서 동거하며 동덕여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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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입하여 일 년 여를 수학했다. ‘금성’지에 강가마라는 필명으로 ‘책 한권’
이라는 시를 발표하고 양주동과 헤어져 언니가 경영하는 장연의 서선여관에서
기거한다. 이듬해 ‘조선 문단’에 ‘가을’이란 시를 발표했고 20년대 후반까지
그녀는 주로 장연에 거주하면서 습작과 독서를 하는 한편 ‘흥풍 야학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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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하여 가난한 집 아이들을 가르쳤다. 1929년 강 경애는 신간회와 더불어
창립된 여성운동조직 ‘근우회’의 장연지회 회원임을 밝히면서, 조선일보에
“염상섭씨의 논설 ‘명일의 길’을 읽고”라는 글을 투고했는데 이 글에서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을 드러내 보였다. 이때 강경애가 처음 중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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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2년간 방랑생활을 했다는 견해가 있다.(북한 측 김 헌순 ‘강경애론’)
그녀는 강사 노릇도 하고 무직으로 굶주리며 고생도 했다는데 이 때의 체험
으로 나온 것이 단편 ‘그 여자’라고도 한다(북한 측 채 미화). 또한 나중에
장편소설 <인간 문제>의 무대가 되었던 인천의 노동현장에 있었을 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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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측도 있다. 이 시기 공산주의 운동 조직과도 관련을 가지고 1930년 1월24
일에 있었던 김 좌진 장군 암살 사건에 관련되었다는 견해도 있다.(남한 측
광복회장 이 강훈 증언) 그러나 그녀가 간도에 간 것은 1931년 이후라는
설(연변 측 장 춘식), 동명이인 설(중국 측 이 광인) 등 구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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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후일담이 논쟁거리가 된 것은 2005년 문화부가 강 경애를 ‘3월의 문화
인물’로 선정한 데 이어 ‘월간조선’이 ‘강경애가 김 좌진 장군의 암살을 사주한
김 봉환의 동거녀였고, 김 봉환과 함께 암살을 공모하기까지 했다’는 이 강훈
전 광복회장의 생전 증언을 인용 보도한 것이 발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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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요약하면 ‘강 경애와 김 봉환 두 사람이 하얼빈 영사관 경찰 부 소속
마쓰시마 형사의 회유로 변절, 공산 계 급진주의자를 사주하여 김 좌진 장군을
암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 용하 서울 대 명예교수는 김 좌진 장군의 암살
이 일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의 알력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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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지방에 지부를 둔 적기 단이 감행한 것으로 본다. 또 여러 자료를 종합
할 때 김 봉환의 동지였던 여성은 강경애가 아니라 황해도 출신으로 고려공산
당 여자선전부원으로 활동했던 김 경애로 보인다. 강 경애는 1931년 조선일보
에 단편소설 ‘파금(破琴)’을 발표하며 등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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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에 장연 군청서기 출신인 장하일과 결혼하여 간도 용정으로 이주하고
처음 두만강을 건넌다는 수필을 남기고 있다. 남편은 구여성과 결혼했던
전력이 있었고 간도 동흥 중학의 교사로 취직했다.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을
‘혜성’ 잡지에 연재한다. 1934년 <소금>을 ‘신가정’에 발표하고, 같은 해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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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터 12월까지 그의 대표작이자 식민지시대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의 하나로
꼽히는 <인간 문제>를 연재한다. (해방 이후 이 작품은 남과 북에서 비록 시간
차이는 있으나 번갈아 출판되었고 1955년에는 러시아어로 출판되었다.) 1936
년 간도 용정에서 안수길·박 영준 등과 함께 ‘북향(北鄕)’의 동인으로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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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으나 건강 사정으로 적극적인 활동은 하지 못했다. 이후 해마다 단편소설을
꾸준히 발표하고 조선일보 간도 지국장을 역임하다 1939년 지병으로 고향
장연으로 돌아온다. 1944년 병이 악화되어 한 달 전에 작고한 모친을 부르면
서 숨진다. 강 경애의 ‘지하 촌’을 읽은 것은 아마도 1980년대 말쯤이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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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확실치 않은 이유는 내가 강 경애의 이 작품을 읽고는 대뜸 최서해
(학송)의 ‘기아와 살육’이라든가 ‘홍염’과 같은 것으로 여기고는 오랫동안 최
서해의 ‘지하 촌’이라고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지나서
1990년대 중반 공주교도소 시절에 누군가 넣어준 창비 판 <인간 문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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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강 경애를 똑바로 주목하게 되었다. 문단에서는 변방이나 식민지 해방
투쟁의 최 일선 현장이었던 간도에서 획득한 강 경애의 현실주의는 ‘소금’과
<인간 문제>에서 정점을 이룬다. <인간 문제>의 주인공 선비는 고향 마을에서
지주의 횡포로 아버지를 잃고 그에게 농락당하고는 인천의 방직공장 노동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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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선비를 좋아하던 소작농 첫째 역시 추수 마당에서 지주와 충돌하여 주재
소에 잡혀갔다가 인천 부두노동자로 나오며, 지식인 신철에 의하여 의식화된
다. 신철은 동요하는 지식인으로 소시민성을 극복하지 못한 채 전향하고 선비
는 병으로 쓰러지는데, 첫째는 눈을 부릅뜨며 선비의 삶과 죽음이 개인의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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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닌 역사의 흐름이라고 파악한다. 이후 3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만주에서
의 투쟁은 침체기에 들어가고, 강 경애의 현실인식도 ‘지하 촌’ ‘마약’ 같은
작품으로 암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에 비하면 ‘소금’은 식민지 지배와 중국
인 지주에 예속되어 이중적 억압에 짓눌린 봉식 엄마의 생존과 자각에 관한
힘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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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남편은 중국인 지주 팡둥과 함께 있다가 공산당 유격대가 쏜 유탄에
맞아 죽었는데 공산당·자경단·중국 보위 대, 모두가 민중들에게는 생존을 위협
하는 세력일 뿐이었다. 그녀는 먹고 살기 위해서 국경을 오가며 소금밀수 길
에서 만나게 된 항일유격대와 소금을 빼앗고 잡아가는 순사를 비교하면서
자신의 적이 정말 누구인가를 ‘벌떡 일어나며’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