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의 남쪽 성주산 부근 주택가엘 가면 펄벅 기념관이 있다.
펄벅 그러면 소설 '대지'와 함께 메뚜기 떼 그리고 중국을 생각한다. 그리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여류작가로 기억을 한다.
미국인인 펄벅은 부천과 무슨 관련이 있어 여기에 기념관이 왜 있을까?
펄벅은 미국인이지만 어릴적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와 살았고 공부했으며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당시 펄벅은 우리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컸고 우리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1960년대 우리나라에 머무르며 작품을 쓰고 사회사업활동을 시작한다.
사회복지 재단인 펄벅재단 한국지부를 1965년 만들었으며 해방전 부터 알고 있던 독립운동가 유한양행 대표 류일한 박사에게 1967년 부천 심곡리의 공장부지를 매입 '소사 희망원'을 설립한다.
그리고 전쟁고아와 혼혈아동을 돌보았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도 재단을 만들어 고아들을 돌보았다.
1975년 희망원이 폐쇄 되고 이곳엔 주택이 들어선다.
시간이 흘러 2006년 펄벅의 뜻을 기리기 위해 희망원이 있던 곳에 '펄벅기념관'이 만들어 진다.
여기엔 희망원에서 돌보았던 이들이 펄벅에게 준 선물부터 각종 기증품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펄벅이 왜 한국문제에 관심을 갖고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 복지재단을 만들었는지 설명해 놓았다.
특히 작품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의 집필 그리고 이 작품의 의미 그리고 출판된 책들 그리고 이런 것을 기증한 인사들(장영희 교수,김희태 박사) 도 소개되어 있다.
펄벅기념관엔 그녀의 발자취와 동시에 어려운 이들과 전쟁고아, 혼혈아동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