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晨碑(사신비)대하여
건립연대
동한건녕(東漢建寧) 2년 3월
서기 169년
위 치
지금의 산동성 곡부의 공자묘안에 있음
내 용
노국(魯國)의 재상(宰相) 사신(史晨)이
공묘(孔廟)의 제례(祭禮)를 복원(復元)기 위하여
중앙정부의 상서(尙書)에게 아뢰어
묘제(廟祭)를 성대히 행하였다는 사연을 밝혔고
공자묘의 수치수호(修治守護) 등에
관한 것을 부기(附記)하였다.
전비(前碑)는 17행 36자
후비(後碑)는 14행 36자로 새겼다.
후비의 끝부분에 천원(天綬) 2년 (691)이란
당인(唐人)의 제기(題記)가 새겨 있으며
제액(題額)이 없는 것이 별격(別格)이다.
復元 ; 원래대로 회복함
尙書 ; 진시황 이래의 중국의 상서성 및 당,송 때의 중앙
육부의 우두머리 (상서성 ; 중앙관청)
廟祭 ; 사당(祠堂;죽은 이의 위패(位牌)를 모신 곳)에서의 제사
修治守護 ; 수리하고 지키어 보호함
祭禮 ; 제사의 의식
附記 ; 본문에서 뜻이 다하니 아니한 때 거기에 붙이어 적음
題額 ; 편액(扁額)에 글씨를 씀
( 扁額;그림 또는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또는 문위에 걸어 놓는 널조각.)
前 碑
後 碑
후서
대학장구 팔조목 부분을 예서로 작품하기 위해
사신비 전비 후비를 모두 임서하여 보았다.
오래전에 써 보았던 글씨인데
보통 사신비는 사람으로 치면 살이라 하고
예기비를 뼈라 한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뼈를 세우고 살을 붙여야 하는지
살을 찌게하여 뼈를 세워야 하는지...
집을 지을 때에는
기둥을 먼저 세우는데 ...
난 사신비를 먼저 배우고 난 후에 예기비를
배웠다.
예기비를 배우면서 예서의 획을 터득하였다고
생각한다.
사신비의 부드럽고 우아한 품격과
예기비의 강인함
그리고 장천비의 호방함이 어우러지면
예서가 더욱 웅혼하여 지려나
난 예서에 깃든 뭔가 알지는 못하겠으나
그 획을 눈과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
2012 5 9
출처: 하전서예tel8370628 원문보기 글쓴이: 하전
첫댓글 저도 예서 공부할때 제일 먼저 사신비를 공부했음.사신비-예기비-을영비-화산비-조전비-장천비 공부했음.^^
첫댓글 저도 예서 공부할때 제일 먼저 사신비를 공부했음.
사신비-예기비-을영비-화산비-조전비-장천비 공부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