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가 보낸 선지자의 제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들은 예후는 신속하게 반역을 도모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왕인 요람(여호람)은 길르앗 라못(Ramoth Gilead)에서 길르앗 라못을 지키기 위해 아람 군대와 전쟁을 치르다가 부상을 입어 이스르엘(Jezreel)로 피신하여 치료 중이었습니다(14절, 15절). 길르앗 라못에 있던 이스라엘의 군대장관 예후는 철저히 보안을 지키게 하고, 군대를 이끌고 이스르엘로 향합니다(15절, 16절). 그때 남왕국 유다의 왕인 아하시아도 이스라엘 군대와 연합하여 아람 군대를 치기 위해 참전(參戰)하였다가 외삼촌인 요람(여호람) 왕을 문안하여 함께 있었습니다(16절).
길르앗 라못에서 이스르엘까지는 약 100km 정도의 거리이니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는데, 예후는 병거를 타고 군대를 이끌고 이스르엘로 진격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르엘을 지키는 파수꾼이 예후의 무리를 발견하고 요람 왕에게 보고하였고, 요람 왕은 무슨 일인지 알아보도록 사자(使者)를 보냅니다(17절). 이스라엘 군대가 길르앗 라못에서 아람 군대로 전쟁 중이었으니 아군(我軍)이 몰려온다는 보고를 받고 전쟁터의 상황이 어떠한지, 왜 군대가 돌아오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사자도 예후에게 합류(合流)하고, 두 번째 보낸 사자도 예후에게 합류한 후에 이를 이상하게 여길만한데 이 무리가 예후의 무리인 것으로 보고 받은 요람 왕은 친히 병거를 말에 연결하게 하여 병거에 탄 후 예후에게 나아갑니다(21절). 20절을 보면 파수꾼이 예후의 무리를 보고 예후가 모는 것처럼 격렬하게 병거를 몰고 오고 있다고 보고하며, 이스르엘 성을 향해 오는 자가 예후라는 사실을 보고합니다. “예후가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라는 표현은 아마 평상시 예후가 말을 모는 모습이 격렬하게(미친 것처럼) 몰았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보고 예후인 줄 알아보았다는 말입니다. 예후가 이렇게 군대와 함께 이스르엘로 오는데 요람 왕이 예후에게 나아갔다는 것은 아마도 요람이 예후는 매우 신뢰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후에게 나아가 안부를 묻는 요람 왕에게 예후는 “네 어머니 이세벨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악을 행하였는데 어찌 평안할 수 있겠느냐”고 답하였고, 이 소리를 들은 요람은 그때에야 반역임을 깨닫고 도망가기 시작했으나 예후가 쏜 화살에 맞아 죽게 됩니다(22절~24절). 그리고 요람의 시종무관(侍從武官)인 빗갈(Bidkar)에게 요람의 시체를 이스르엘 사람 나봇(Naboth)의 밭에 던지라고 말합니다(25절). 요람 왕의 시종무관인 빗갈도 예후의 말에 따랐던 것을 보면 예후의 반역에 강력하게 항거(抗拒)하는 무리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람의 시체를 나봇의 밭에 던지라고 한 것은 열왕기상 21:1~16을 배경으로 한 것인데, 아합과 왕과 그의 아내 이세벨이 나봇의 토지를 빼앗기 위해 벌인 악행을 되갚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25절, 26절).
요람 왕이 예후에 의해 죽임당하는 것을 본 남왕국 유다의 왕 아하시야는 도망가지만 결국 예후에게 쫓기어 이블르암(Ibleam)에서 가까운 구르(Gur) 비탈에서 부상을 입고, 므깃도(Megiddo)까지 도망갔지만 결국 므깃도에서 죽게 되었고, 아하시야는 예루살렘으로 운반되어 유다의 왕들의 묘실에 장사되었습니다(27절, 28절). 27절의 “정원(庭園)의 정자(亭子) 길”은 정확하게 어디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정원의 정자라는 단어의 히브리어 원어에서는 베트 학간(בֵּית הִגָּן, Beth-Haggan)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영어로 “the Garden-house”라는 의미입니다. 아하시야는 결국 왕위에 오른지 1년만에 이렇게 죽음을 맞이했는데,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고 악을 행하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과 도모(圖謀)하다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예후는 곧바로 이스르엘 성으로 와서 요람의 어머니인 이세벨을 제거합니다(30절~37절). 아마 이세벨은 예후가 반역을 일으켜 요람 왕을 죽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후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세벨은 왕후(王后)로서의 품격을 갖추기 위해 화장을 하고 기다립니다(30절). 그리고 예후가 들어오는 모습을 창으로 내다보고는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31절)고 소리지릅니다. 예후를 시므리(Zimri)라고 부른 것은 예후를 비아냥거리는 말이었습니다. 시므리는 열왕기상 16:8~20에 나오는데 바아사 왕조를 멸절시키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된 시므리는 칠일 정도만 왕위에 있었을 뿐이었고, 오므리에 의해 시므리는 죽게 됩니다. 이세벨은 예후도 시므리와 같은 운명이 될 것이라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세벨은 자기의 내시에 의해 창 밖으로 던져져서 처참하게 죽게 되었고(32절, 33절), 이세벨의 시체는 두골과 발과 손 외에는 찾을 수 없었다고 기록합니다(35절). 들짐승들에 의해 다 먹히고 두골과 손과 발만 남았다는 말입니다(36절). 그리고 이세벨은 무덤조차 없는 처참한 꼴이 되ㅏ었다는 것을 기록합니다(37절). 이렇게 하여 오므리 왕조와 아합과 이세벨의 악독함은 종지부(終止符)를 찍게 되었고, 예후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악행을 저지르고 돌이키지 않는 자에게는 참혹한 결말을 맞이하게 하십니다. 예후가 요람 왕을 죽이고, 이세벨을 죽게 하는 과정은 매우 냉혹하고 참혹하지만, 하나님은 예후를 통해서 오므리 왕조를 심판하시고 처벌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맞서는 자들의 최후는 비참할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늘 겸손하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돌보심과 복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