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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일곡령에서 바라본 석화성 가야산
깎아지른 바위산 오르기 쉽지 않아 山石巉巖未易躋
나귀 대신 지팡이 짚고 뜻 가는 대로 放驢隨意杖枯黎
한자의 정성에 감동되어 구름 걷히고 雲開韓子精誠感1)
유랑은 꽃 지는 풍경에 길을 잃었다오 花落劉郞物色迷2)
길고 짧은 등나무 가지 옛길을 가로막고 長短藤枝橫古道
높고 낮은 나뭇잎은 맑은 시내 덮었어라 高低樹葉覆淸溪
가도 가도 종일토록 사람 소리는 없고 行行盡日無人語
자유스럽게 지저귀는 산새들의 소리만 唯有幽禽自在啼
―― 도은 이숭인, 「가야산에서 노닐다(游琊山)」
주1) 옛날 한유(韓愈)가 형악(衡嶽)에 올라가 기도를 한 덕분에 운무가 걷혔듯이, 지금도 하
늘이 도은의 심정을 알아주었는지 날이 말끔히 개게 해 주었다는 말이다.
주2) 꽃이 지는 가야산의 풍경이 흡사 선경인 도화원(桃花源)을 연상케 했다는 말이다.
진(晉)나라 유자기(劉子驥)라는 사람이 복사꽃이 흘러내려 오는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서 도화원을 찾아가려고 하다가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고 한다.
▶ 산행일시 : 2018년 5월 5일(토), 바람 세게 불고 구름 많음
▶ 산행인원 : 23명(영희언니, 모닥불, 열정, 악수, 화은, 대간거사, 소백, 챔프, 산정무한,
인치성, 수담, 사계, 진성호, 두루, 향상, 신가이버, 해마, 해피, 오모육모, 불문,
가은, 대포, 메아리)
▶ 산행거리 : GPS 도상 22.6km(GPS마다 약간씩 차이가 난다)
▶ 산행시간 : 11시간 45분
▶ 교 통 편 : 28인승 리무진 대형버스 대절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01 - 동서울터미널 출발
02 : 23 -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휴게소
03 : 27 ~ 04 : 18 - 백운동 탐방지원센터, 차내 계속 취침, 산행시작
05 : 10 - 백운동계곡, 첫 휴식
05 : 29 - 서성재
06 : 05 - 칠불봉 아래, 아침요기
06 : 20 - 칠불봉(七佛峰, △1,432.6m)
06 : 30 - 상왕봉(象王峯, 우두봉 牛頭峰, 1,430.0m)
07 : 28 - 1,071.0m봉
07 : 50 - 안부, 코박이재(부박령 負薄嶺)
08 : 03 - 두리봉 동봉(△1,134.2m), 헬기장
08 : 28 - 안부, 불기령
08 : 45 - 1,153.8m봉
09 : 21 - 1,127m봉
10 : 00 - ╋자 갈림길 안부, 목통령(木通嶺)
10 : 19 - 용두봉(△1,125.6m)
11 : 15 ~ 11 : 42 - 점심
12 : 10 - 좌일곡령(座壹谷嶺, 1,257.8m)
12 : 55 - 단지봉(丹芝峰, △1,327.4m)
13 : 45 - ┫자 갈림길 안부, 송곡령
14 : 21 - ╋자 갈림길 안부, 구곡령, 수도산 정상 1.3km
15 : 00 - 수도산(修道山, △1,317.4m)
16 : 03 - 수도암(修道庵), 산행종료
17 : 11 ~ 19 : 12 - 김천, 목욕, 저녁
22 : 08 - 동서울터미널, 해산
1-1.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1)
1-2.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2)
▶ 칠불봉(七佛峰, △1,432.6m), 상왕봉(象王峯, 우두봉 牛頭峰, 1,430.0m)
동서울을 출발하기 전에 두루 님이 일기를 검색하고는 내일 가야산 일대에 비가 상당히 내린
다고 한다. 20mm에서 많게는 50mm까지. 두루 님이 가야산 산행공지에 ‘날씨 맑음’이라는
일기예보 상황을 캡쳐하여 올렸던 터라 비가 올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아울러 비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 대간거사 님과 몇몇은 비옷 등은 상시 준비물이라며 즐거워한다.
이게 꿈의 소재가 되었다. 꿈속에 비를 맞는 칙칙한 오지산행으로 어지간히 고역을 치렀다.
꿈에서 벗어나고자 무진 애를 썼으나 가위눌린 듯 움쭉달싹하기조차 못해 답답했다. 사지에
힘이 쭉 빠진다. 눈을 뜨니 비는 오지 않고 백운동 스무날 반달이 휘영청 밝다. 별들은 달빛
에 가렸다. 자고로 흉몽은 곧 길몽이라고 했다. 꿈땜했다는 말은 기실 그만 하기 천만다행인
길몽인 까닭이다.
백운동 너른 주차장이 휑하다. 승용차 한 대와 우리 버스뿐이다. 서둘러 산행준비를 마치고
대로 따라 오른다. 도로 옆 가야산 야생식물원이 유리창 큰 건물이다. 우리로는 좀처럼 들르
기 쉽지 않은 곳이다. 이렇듯 밤으로 가야산을 오르고, 이리로 내려온다고 해도 늦은 오후일
것이라서 그렇다. 백운동계곡 계류를 거슬러 오른다.
밤중 청아한 계류 물소리는 계곡을 울린다. 이래서였을까? 세인이 가야산을 들먹일 때는 으
레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 ?)의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칠언절구를
떠올린다. 그는 가야산에 들어와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다른 말로 실종이다. 그의 불우했던
처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그 시대와 변함이 없는 세태에 우울해진다.
첩첩한 돌 사이에 미친 듯이 내뿜어 겹겹 봉우리에 울리니 狂噴疊石吼重巒
사람 말소리 지척에서 분간하기 어렵네 人語難分咫尺閒
항상 시비하는 소리 귀에 들림을 두려워하기에 常恐是非聲到耳
짐짓 흐르는 물을 시켜 온 산을 둘러싸네 故敎流水盡籠山
몇 번인가 무지개다리로 계류를 건너고 울퉁불퉁한 돌길을 간다. 예전에 비해 잘 다듬은 등
로다. 계류 물소리는 바위틈에 숨어들다 다시 가늘게 들리기를 반복한다. 그나마 잦아들어
첫 휴식한다. 일행 점호하니 지리산 태극(할) 전사 해피 님을 비롯한 9명은 앞서갔다. 아무
쪼록 내 걸음으로 갈 일이다. 꿈속의 일도 있고 해서 욕심내지 않는다.
완만한 사면의 산죽 숲 사이 데크로드를 간다. 아마 300m는 될까? 퍽 길다. 그 다음은 박석
깐 길 200m다. 그 끝인 ┳자 갈림길 안부가 서성대다. 왼쪽은 상아덤(서장대)을 넘어 만물
상으로 가고, 오른쪽이 칠불봉으로 간다. 서성이지 않고 바로 간다. 데크로드와 돌길이 다시
이어진다. 왼쪽 산허리 길게 돌아 오르고 암릉과 만난다.
암릉은 층층 데크계단을 깔았다. 데크계단에 올라서는 순간 새 세상을 본다. 미세먼지가 옅
게 끼었으나 발아래 수륜면의 올망졸망한 뭇 산들을 다 감추지는 못하였다. 이제부터 걸음걸
음이 경점이다. 가까이는 서장대와 만물상이 가경이고, 그 건너로 남산제일봉, 멀리는 두무
산, 오두산, 숙성산, 미녀봉, 그 앞으로 비계산, 장군봉, 의상봉이 의구하다.
2. 칠불봉 오르는 도중에 뒤돌아본 풍경
3. 칠불봉 오르는 도중에 뒤돌아본 풍경, 만물상 가산 연릉
4. 칠불봉 오르는 도중에 뒤돌아본 풍경, 가산 연릉
5. 칠불봉 오르는 도중에 뒤돌아본 풍경, 앞은 서장대
그런데 아무리 봄바람이라지만 보통이 아니다. 바위에 올라서면 봄바람에 맞서 몸 가누기가
힘들다. 또 차갑기는 왜 그리 차가운지. 손이 다 시리다. 아까 벗었던 웃옷을 다시 껴입는다.
워낙 떨다보니 정신이 없고 뒤로 펼쳐지는 경치가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칠불봉을 백
여 미터 남겨두고 바위벽에 기대 아침 요기한다. 입산주 탁주 들이켜 목축이고 한속을 녹인다.
자세 한껏 낮추고 가파른 데크계단을 오르고 마저 칠불봉을 기어오른다. 가야산의 최고봉이
다. 삼각점은 2등 삼각점이다. 가야 26, 2003 재설. 사방 둘러 천지를 구분한 다음 첩첩 산을
굽어보고 내린다. 암릉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내리고 너른 공터 지나 바위 사이 데크계단을
오르면 가야산 주봉인 상왕봉이다. 정상 표지석에 우두봉(牛頭峰)이라고 병기하였다.
오래 휴식한다. 일행이 모두 모였다. 가야산 이후로는 우리의 태극(할) 전사 3명과 진성호
님, 열정 님은 수도산이 짧다 하고 계속 북진하여 추령을 넘어 갈 것이라 이때가 귀한 시간이
다. 단체 기념사진 찍고, 절벽 위 암반에 다가가 먼 데 경치 구경하고, 암반 한가운데 탁수 가
득한 우비정(牛鼻井)을 들여다본다.
가야산 주봉인 상왕봉도 오대산의 주봉인 상왕봉처럼 ‘上王峰’이 아닌 ‘象王峰’이라고 하였
다. 왜 그럴까? 혹자는 상왕봉의 ‘상왕(象王)’은 열반경에서 모든 부처를 말하는 것으로 불교
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과연 그러한지 향상 님에게 물어본다는 것을 잊었다.
한편, 가야산(伽倻山)이란 이름은 이 산 인근에 있었던 가야국(伽倻國)에서 따온 것이 아니
라, 인도의 부다가야 근처에 있는 가야산에서 따온 명칭이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범어
가야는 소(牛)라는 뜻으로 산 정상의 바위가 소의 머리형상이어서 우두산(牛頭山), 상두산
(象頭山) 등으로도 불리는 점을 들어 불가에서 온 이름임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한다.
(월간 산, 2001년 3월호)
그렇지만 나는 달리 생각한다. ‘象王’이란 작명에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제4장 끝 부분
에 나오는 ‘象帝之先’이 작용하였다고 본다. ‘象帝峰’라 하고 싶었겠지만 중국이 대국이라 감
히 ‘帝’는 붙이지 못하고 그 아랫단계인 ‘王’자를 붙여 ‘象王峰’이라 한 것이 아닐까? 임금의
상징인 용과 관련하여 용상이나 용포에 용의 발톱도 중국은 5개를 다 그리는데 우리나라는
4개만 그리는 처지가 아니었던가.
노자의 『도덕경』 제4장 끝 부분에 “湛兮 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이 나온다. 이 분
야 학자들의 대체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다. 결국 ‘상왕봉(象王峰)’은 가장 높은 봉우리라는
말이라고 본다.
“(도는) 맑고 맑아서 어찌 보면 있는 듯도 하건마는
그 비롯됨을 알 수 없구나.
다만 가장 높은 신(또는 조물주, 하나님)보다도 먼저 있었음만 알겠구나.”
봄바람을 하도 많이 맞아 귀가 먹먹하다. 언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녹이며 상왕봉을 내린다.
이중환(李重煥, 1690∼1756, 조선 후기의 실학자)의 『택리지(擇里志)』에 나오는 ‘山水’
중의 가야산 부분이다. 초동과 목동, 절 스님이 들은 상왕봉에서 나는 소리는 풍악이나 말 발
자국 소리가 아니라 이런 바람소리였음에 틀림없다.
“해인사 서북쪽이 가야산 상봉인데, 돌 형세가 사면으로 깎아지른 듯하여 사람이 오를 수 없
다. 그 위에 평탄한 곳이 있는 듯하나 알 수가 없다. 그 꼭대기에는 항상 구름기가 자욱하게
덮여 있는데, 나무꾼과 목동들이 봉우리 위에서 들려오는 풍악소리를 가끔 듣는다 한다. 절
스님의 말로는 큰 안개가 끼면 산 위에서 말 발자국 소리가 날 때가 있다고 한다.”
(寺西北爲伽倻上峰石勢戌削四面人不可升上似有平坦處人不得以知之也其上恒有雲氣罩羃樵
童牧時聞樂聲出於峰上寺僧或傳大霧中山上時有馬跡聲云)
6. 칠불봉, 바람이 워낙 세서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7. 가야산 주봉인 상왕봉
8. 상왕봉 정상에서
9. 상왕봉 내리는 바위틈에서 바라본 서장대, 만물상 능선
10. 두리봉 동봉 오르면서 뒤돌아본 가야산
11. 용두봉 오르면서 뒤돌아본 가야산
12. 철쭉
▶ 두리봉(1,135.1m), 용두봉(△1,125.6m), 좌일곡령(座壹谷嶺, 1,257.8m),
단지봉(丹芝峰, △1,327.4m)
두리봉 가는 길. 상왕봉에서 내린 공터에서 서쪽 산릉을 타야 하는데 목책으로 막아놓았다.
인적은 뚜렷하다. 그 인적에 우리들의 발걸음을 슬쩍 보탠다. 서쪽 산릉 마루금은 험하여 함
부로 갈 수 없는 암릉이다. 펑퍼짐한 사면의 산죽 숲을 간다. 산죽 숲 낙엽에 묻힌 돌길이다.
더러 고사목이 쓰러져 있어 지나기가 여간 사납지 않다. 발로 더듬어 길 찾는다. 이때가 오지
산행다운 산행이었다.
초원을 한동안 기분 좋게 지나고 키 큰 산죽 숲을 뚫는다. 내 키를 훌쩍 넘는 산죽이다. 가다
보면 엉뚱한 방향이니 이따금 발돋움하여 산죽 숲 밖으로 머리 내밀고 전도를 살핀다. 그렇
게 1,071.0m봉은 넘는다. 안부는 부박령(負薄嶺) 코박이재다. 봉봉 오르고 내리는 굴곡이
매우 심하다. 올라왔듯 그렇게 길고 가파르게 내리기를 반복한다.
두리봉 동봉을 오르면서 뒤돌아 바라보는 가야산 연봉이 아닌 게 아니라 석화성이다. 이중환
은 『택지리』에서 가야산의 기암괴봉을 불꽃에 비유하여 석화성(石火星)이라 하였다. “경
상도에는 석화성이 없다. 오직 합천 가야산만 뾰족한 돌이 불꽃처럼 잇달아 있고, 공중에 따
로 솟아 극히 높고 빼어나다.(慶尙一道無石火星而惟陜川山石尖連行如火炎離立空中極高且秀)”
이제부터는 석화성을 발걸음으로 줌아웃하여 점점 광각으로 볼 것이다.
두리봉 동봉(△1,134.2m) 삼각점은 ‘가야 454’이다. 그 아래 헬기장이 따스한 봄볕이 가득
하여 휴식하기 좋다. 이제는 한기가 가시고 탁주가 한층 맛이 난다. 두리봉 정상은 나무숲속
아무 조망이 없어 그냥 지나친다. 뚝 떨어진 안부는 ┫자 갈림길인 불기령이다. 가야산 국립
공원 금줄을 넘어 비로소 허리를 편다.
느긋해졌다. 더러 해찰하듯 길옆 사면을 누비며 향긋한 손맛을 본다. 오랜만에 오지산행에
나온 소백 님이 불기령에서 상개금 마을로 탈출하였다는 전언이다. 고관절을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행하다가는 더 큰 탈이 날 수도 있어서다. 미리 얘기했다가는 여러 사람을 불편
하게 할까봐 일단 혼자 탈출하고 나서 알렸다. 수도암까지 가려면 교통비가 적지 않게 들 거
라고 걱정해준다. 그런데 대중교통인 노선버스를 타고 갔다고 한다.
준봉 두 좌를 넘고 ╋자 갈림길 안부인 목통령이다. 단지봉과 두리봉의 중간쯤 되는 지점이
다. 23명 일행이 뿔뿔이 흩어졌다. 혼자 가거나 혹은 두세 명이 함께 가는 산행이다. 선두로
가는 메아리 대장님이 요처에서 기다리곤 한다. 긴 오르막 끝에 암릉 암봉과 만난다.
1,125.6m봉이다. 암봉 반대편이 블라인드 코너인 줄도 몰라 등로 따라 오른쪽 사면을 돌아
넘는다. 내 뒤따라오던 향상 님은 너 잘 만났다 하고 대뜸 오른다. 용두봉이라는 표지판이 있
더란다. 사방 거칠 것 없는 여태까지 최고의 경점이더라고 하여 내 속을 쓰리게 한다.
용두봉 지나고도 경점인 바위가 종종 나온다. 꼬박 들른다. 단지봉에 이르는 화려무비한 산
색을 바라보고는 어질해진 눈이라 비칠대며 간다. 등로 주변 또한 철쭉이 온몸으로 꽃을 피
웠다. 숲속인 등로에 들어서는 꽃길을 간다. 좌일곡령 한참 못미처 허기지고, 휴식하느니 점
심밥을 먹는다. 앉은 자리가 꽃그늘 아래 명당이다. 봄날 산행은 주변 경치도 한 반찬하니 술
맛 밥맛이 더 난다.
완만한 오르막이다. 암릉 같은 너덜 기어올라 암봉인 좌일곡령이다. 일대 경점이다. 국토지
리정보원 지형도에는 ‘座壹谷嶺’이라 표시하였고 이에 따라 대부분의 서책과 자료에 ‘좌일곡
령’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영진지도 등에 표시된 좌대곡령(座臺谷嶺)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토지리정보원이 이를 오독하지 않았을까? 대체 좌일곡령이 무슨 뜻인가? 암
만 궁리해도 요령부득이다. ‘좌대’는 ‘기물을 받쳐서 얹어 놓는 대, 받침대’이니 사람이 앉아
서도 일망무제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좌일곡령에서 바라보는, 가야산에서 온 길이 뿌듯하고, 단지봉에 이르는 길이 어서 걷고 싶
어 발싸심하게 한다. 좌일곡령 정상을 내리면 하늘 가린 숲속 길이다. 완만한 오르막 흙길이
지루하도록 길다. 바람이 자니 한여름이다. 숨이 턱턱 막힌다. 고지가 저기다 하고 내쳐간다.
단지봉 정상. 데크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렇지만 예전보다 전망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주변에 미역줄나무가 너무 우거졌고 높이 자랐다. 정상을 벗어나 사면으로 약간 내리면 전망
하기 좋다. 미세먼지로 여느 때만큼은 못하지만 지리산 주릉이 희미하게 보인다. 몇몇 일행
은 데크 전망대에서 양말까지 벗어 봄바람에 족욕하며 시원함을 즐긴다. 나는 그 시원함을
모았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즐기려고 참는다. 단지봉에서 바라보는 수도산이 눈으로는 한달
음인 거리인데 발걸음으로는 꽤 멀다. 등로는 여전히 좋다.
13. 단지봉
14. 맨 왼쪽은 두무산, 그 오른쪽 뒤는 오두산, 가운데에서 오른쪽으로 비계산, 장군봉, 의상봉
15. 단지봉
16. 좌일곡령 가는 길에 뒤돌아본 가야산
17. 오른쪽은 월매산, 그 왼쪽 뒤는 독용산
18. 좌일곡령에서 바라본 단지봉
19. 멀리 가운데는 오두산, 그 앞 왼쪽은 두무산, 그 앞 가운데는 비계산
20. 가운데는 가산(690.7m)일까?
21. 멀리 가운데는 지리산 천왕봉, 그 앞 왼쪽은 황매산, 앞의 겹쳐 보이는 산은 보해산과 금귀산
22. 단지봉 정상에 사는 노랑제비꽃
23. 단지봉 정상에서
▶ 수도산(修道山, △1,317.4m)
이 다음 휴식은 수도산일 것. 줄달음한다. 앞장서서 저축했던 발걸음을 엘레지 무리에게 다
바친다. 온 북사면이 봄나들이 나온 엘레지로 분주하다. 바닥 쳤을까 뚝 떨어진 안부는 ┫자
갈림길인 송곡령이다. 이정표에 수도산까지 2.9km다. 한두 번 자맥질하다 말겠지 한 산등성
이와 안부는 지겹도록 반복된다. 오르고 내리기를 여섯 번이다. 그러고서 ╋자 갈림길 안부
인 구곡령이다. 수도산 정상은 1.3km 남았다.
이제 줄곧 오르막이다. 스퍼트 낸다. 전망 좋은 바위에는 들른다. 다시 보는 양각산, 흰대미
산, 보해산, 금귀산, 박유산 장릉이 반갑다. 오르막은 점점 가팔라지고 땀으로 멱을 감다시피
하여 암릉 길 수도산 동봉을 오른다. 수도산 정상까지 70m. 이미 수도산을 다녀온 메아리 대
장님이 삼거리에서 응원한다. 저기 가면 신가이버 님의 얼음물이 아직 남아있을 거라고.
수도산. 우선 돌탑 그늘에 쉬고 있는 신가이버 님으로부터 얼음물을 달라고 하여 목부터 추
기고 나서 발아래 조망을 훑기 시작한다. 이 근방 최고의 경점이다. 이렇듯 사방이 장관이고
대관이니 무아지경이기 십상이겠는데 수도(修道)가 잘 될까 의문이다. 무아지경이 수도의
경지라면 최고의 수도 산이려니. 삼각점은 1등 삼각점이다. 무풍 11, 2016 재설.
수도산에서 수도암 가는 길은 대로로 잘 났다. 한 차례 뚝 떨어졌다가 암릉을 오른쪽 사면으
로 돌아내리고, 철쭉숲 꽃길을 길게 내렸다가 잠깐 오른1,092.9m봉에서 오른쪽 능선을 내리
면 금방 수도암이다. 수도암 절집 마당에 서면 동쪽으로 가야산 연봉이 보인다. 해나 달이 뜨
면 그게 후광이고 원광일 것. 가야산 앞 능선은 좌대이고, 가야산이 열반경에서 말하는 부처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향상 님의 얘기, 도선국사가 여기서 가야산을 보고는 이 절터
가 명당이다는 기꺼움에 춤을 췄다고 한다.
수도암 절집 아래 그리 넓지 않은 주차장에 우리 버스가 와 있다. 불기령에서 탈출한 소백 님
도 왔다. 오늘도 무사한 산행을 자축하는 하이파이브 나누고, 김천으로 간다.
24. 단지봉 내리는 길에 만난 얼레지
25. 얼레지
26. 얼레지
27. 양각산
28. 등로에 드리운 철쭉꽃
29. 가운데는 흰대미산
30. 봄빛의 절정
31. 수도산 동봉에서 바라본, 보해산, 금귀산, 박유산, 황매산
32. 수도산
33. 왼쪽 멀리는 오두산, 맨 오른쪽은 보해산, 금귀산, 가운데는 박유산
34. 수도산 정상에서 바라본 가야산
35. 수도산 정상에서 바라본 가야산
36. 수도암에서 바라본 가야산, 이처럼 가야산을 도선국사가 수도암 터가 명당이라고 기꺼워
하며 7일간이나 춤을 추었다고 한다.
37. 노랑산괴불주머니, 수도암에서
첫댓글 가야수도산행! 이름값을 느낀 날입니다.
수도산을 축으로 이리저리 둘러보고픈 맘이 생깁니다.
비온뒤 어느 가을날에요 !!!
수도산!
도 닦고 오는곳이네요
저는 즐기는게. 더 좋은데
ㅋㅋ
좋은글 감사합니다
걷기에 아주 좋았던 날이었습니다...물론 힘이 무척 들었지만요....먼길 수고 많으셨습니다
가야수도 많이 가기도 갔지만 아직도 갈 능선이 남았다는 게 더 행복하네요. 기대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