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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믿음으로 열매맺는 달☜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으니라*
호5:1-15절) 치료받지 못한 병(病)
헤밍웨이가 쓴 <킬리만자로의 눈>이라는 작품은 처음에 킬로만자로의 정상 가까운 곳에 표범의 시체가 있는데, 사람들은 왜 표범이 먹이도 없고, 그 높은 곳에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해리라는 작가는 아프리카 케냐에 가서 동물 사진을 찍다가 가시에 찔렸는데, 소독도 하지 않고, 활동을 하다가 상처가 덧나서 무릎이 썩어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들이 있는 곳에는 비행기가 오지 않아서 이 사람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해리는 자기가 이 병으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매일 술을 마시고, 화를 내면서 인생을 회고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거의 살 가망이 없게 되었을 때, 기적적으로 비행기가 왔고, 이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병원이 있는 곳으로 가서 치료를 받게 됩니다.
만일 우리 몸에 무슨 병이 있는데, 그 병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이라면, 우리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는 고통이 따르겠지만, 그것을 꾹 참아내고 나면, 건강을 되찾아서 얼마든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병이 암이고, 그것도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병이 온몸에 퍼져 버렸다면, 우리의 마음은 매우 답답할 것입니다.
호세아서는 북쪽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때, 호세아가 북쪽 이스라엘 백성에게 외친 말씀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에는 한때 엘리야나 엘리사 같은 위대한 능력의 선지자가 활동했지만, 이렇게 기록된 예언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호세아서는 아주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호세아서는 하나님께서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탈선(脫線)을 꾹 참으시면서 지켜보고 계시다가 여로보암 2세 때에 더 이상 참으실 수 없어서 이제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끝장이라고 선포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냥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포하시면, 이스라엘 백성이 잘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호세아로 하여금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게 하셨습니다. 고멜은 호세아와 결혼 한 후에도 계속 바람을 피우다가 다른 남자들의 아이를 세 명이나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피워서 남의 아이를 세 명이나 낳았다면, 이것은 더 이상 결혼 생활이라고 볼 수도 없고, 고멜은 호세아의 아내라고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도 바람난 고멜과 같아서 도저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중에서도 왜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을까?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즉 어떤 죄인이든지, 하나님께 나오기만 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데, 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할까?
그러면서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함께 병들어 가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회 전체가 부패하면 자기는 아무리 부패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 사회속에 있는 한 부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회가 아주 심하게 음란하면, 그 사회에 속해 있으면서 음란하게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이 매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 자체가 죄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호세아 때, 이스라엘과 유다는 겉으로는 잘살고 있었고, 경제적으로 부흥되고 있었지만, 사회 전체가 썩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곳에 전쟁의 나팔소리가 들리게 되며, 이스라엘과 유다는 사자의 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사자는 곧 앗수르였던 것입니다.
Ⅰ.이스라엘의 문제
우리는 퇴근시간에 지하철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고 있는 길을 거슬러 반대 방향으로 가려고 하면, 사람들에게 떠밀려서 앞으로 가지 못하고, 오히려 뒤로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출세와 욕망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을 때, 그 흐름을 거슬러서 자기만 깨끗한 길로 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올바른 신앙으로 돌아오는 것이 쉽지 않은지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곧 이스라엘 사회 전체가 올바른 말씀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5:1절)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부르십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을 부르시고, 그 다음으로 이스라엘 족속들을 부르시고,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족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은 대단히 종교적인 사회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을 시작한 여로보암은 모세의 율법이 명한 것처럼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즉 여로보암은 처음부터 모세의 율법을 따를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회에는 많은 제사장이 있었고, 예배나 제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왕족들을 호출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왕족들이 결탁(結託)을 해서 올바른 신앙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때,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결탁(結託)하는 정경유착(政經癒着)이 사회 부패의 원인이라고 해서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많은 법을 제정했고, 또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사람들이나 혹은 정치자금을 낸 기업인들을 처벌했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정경유착보다 더 무서운 것이 정종유착(政宗癒着)이었습니다. 즉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이 한통속이 되어서 올바른 신앙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문제였습니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갈 것을 두려워해서 예루살렘 성전 대신에 금송아지 상(像)을 만들었고, 그 앞에 제사하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제사 제도는 비정성적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족과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율법을 알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율법을 알지 못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미스바와 다볼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1절)...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우리는 미스바와 다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과 유다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다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미스바와 다볼에서 어떤 심각한 일이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우선 미스바와 다볼은 모두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미스바와 다볼은 모두 그들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사활(死活)이 달린 장소였습니다.
우선 미스바는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영적 부흥을 일으키기 위해서 회개운동을 벌인 곳인데, 블레셋이 침략을 해 왔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군대를 우박으로 치셔서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볼은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을 지켜낸 곳입니다. 즉 북쪽 하솔 왕 야빈이 군대장관 시스라에게 철 병거 구백 승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했는데, 이때 드보라가 시스라를 물리치고, 대승(大勝)을 거둔 곳이 다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1절)...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왕족들이 미스바와 다볼에서 미끼를 던져서 올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몽땅 잡아들여서 우상숭배를 강요 했듣지, 아니면 죽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 두 사건이 있을 때까지는 이스라엘 백성 안에 이스라엘의 진정한 부흥을 원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과 왕족과 이스라엘 족속들이 계략을 세워서 이번에 미스바에서 큰 회개운동을 한다. 혹은 다볼에서 큰 부흥을 일으킨다고 백성들에게 선전을 한 후에 거기에 온 자들을 몽땅 잡아들였든지, 아니면 엉터리 부흥을 일으켰든지, 둘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패역자가 살육 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스라엘 안에는 제사장들과 왕족들이 올바른 신앙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백성들을 반역자라고 하여 많이 죽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려면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 영국이나 유럽에서 성경을 번역하거나 혹은 복음을 가르치는 자들을 파문시키거나 화형(火刑)에 처한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이때 후스나 위클리프 같은 지도자들이 처형되었습니다.
옛날에 정치와 종교가 일치되었을 때는 이단들은 모두 처형을 했습니다. 그래서 정치와 경제가 유착되는 것보다 정치와 종교가 유착되는 것이 더욱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에서는 제사장들과 왕족들이 하나가 되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올바른 신앙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것입니다.
즉 이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읽거나 영적인 부흥을 원하는 자들이 있으면, 미스바나 다볼로 모이라고 한 후에 잡아서 가두든지, 죽였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들은 올바른 신앙은 자기들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 나라가 지향하는 목표가 너무 모세의 율법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모세의 율법대로는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하나님 종교의 장점과 세상 종교의 장점을 다 받아들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가 오직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들은 나라의 체제를 흔들고, 나라를 망치려고 하는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로 몰려서 붙들려서 죽임까지 당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합 왕 때, 엘리야가 오죽했으면‘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죽이고 나만 남았습니다.’라고 기도 했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방 종교를 믿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들의 목표가 이방 종교의 장점을 다 받아들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나 왕족들은 오직 하나님만 믿어야 한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적개심을 가졌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평소에 주장하는 것이 하나님 종교의 장점과 세상 종교의 장점을 다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하나님만 죽어라고 믿자는 사람도 인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이 엉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 믿어야 한다는 사람을 만나면, 열등감을 느꼈고, 그들의 주장을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 유대교에 그렇게 많은 학자들이 있었지만, 사도 바울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 믿는 신앙은 매우 강력하여 성령의 능력이 임하고, 부흥의 불길이 솟아오르기 때문에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세상으로 간 이유를 살펴보면, 그들의 주장 자체가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편리한 내용으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신앙을 가진 자들을 골라내어서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부흥이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5:3절)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여기서“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한다.”는 것은 이스엘과 에브라임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내가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하나님도 나를 잊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단 한순간이라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은혜를 받은 적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은 나의 모든 사생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감추어질 수 없고, 하나님께 숨길 수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가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하나님께 숨길 수 없다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시기 때문에 죄를 마음대로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전혀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은밀한 사생활이 있어야 정신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의 사생활이 사람들 앞에 모두 공개된다면, 우리는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하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새 마음을 주십니다. 그런데 사람이 뻔뻔스러워지면, 하나님도 모르는 것처럼 위선적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3절)...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에브라임과 이스라엘은 같은 뜻입니다.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지파였습니다. 즉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지파가 죄를 짓는데 가장 앞장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브라임이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다고 하셨는데, 과연 어떤 것이 행음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서로 감정적으로 좋아하는 것이나 한 번 만난 것을 가지고 행음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이 부정의 발단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도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한 것 가지고는 행음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행음했다.’라는 것은 넘어서는 안 되는 선(線)을 넘어선 것을 말합니다. 즉 이들이 행음했다는 것은 이들이 단체로, 또는 개인적으로 이방신(神)에게 절을 하고, 거기서 이방 여인과 관계를 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신(神)에게 한 번 절을 하고 나면, 그 뒤에는 일사천리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술을 마실 때, 처음에 술을 마시는 것이 힘들어서 그렇지 한번 마시고 난 후에는 2차,3차 가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참 이상한 것이어서, 죄를 짓기 전에는 죄를 지으면, 죽을 것 같고, 망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한번 죄를 짓고 나면, 죄가 그렇게 나쁜 것 같지도 않고, 덤덤해집니다.
옛날에 순진한 학생들은 디스코장이나 술집 같은데 들어가면, 천벌(天罰)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들에게 이끌려서 한번 가보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그 뒤에는 점점 자신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속에 있는 영성 자체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영성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의 영성이 건강할 때에는 하나님 전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고, 세상의 술 분위기나 음란한 분위기는 독약을 마시는 것처럼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씩 세상을 따라가면, 그때부터는 세상의 분위기가 좋아지고, 그 대신 신앙에 예배의 분위기가 역겨워지고, 신앙 좋은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도 싫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나 왕족들이 이미 선(線)을 넘어선 것을 보셨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에 싯딤에서 모압 여자들이 그들을 유혹했을 때, 그들이 우상에게 절하고, 그 음식을 먹고 여인들과 관계를 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때 염병이 퍼지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2만 4천 명이나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는 이스라엘 초기이고,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가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염병으로 치셔서 2만 4천 명이나 죽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조 때는 이미 신앙적으로 침체된 때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죄를 지어도 염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이미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징계가 나타나는 것도 부흥의 때에 나타나는 것이지, 신앙이 침체되었을 때는 징계도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침체된 자들을 때리면, 즉사(卽死)해 버리기 때문에 때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짓는데도 불구하고, 곧바로 징계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나를 더 사랑하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5:4-5장)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예를 들어서 어떤 아이가 있는데 정말 죄가 나쁜 것인 줄 알지만, 친구들이 자꾸만 꾀어서 어쩔 수 없이 죄에 빠지게 되었다면, 이미 그 얼굴에 미안한 마음이 나타나고, 기가 죽어서 처분만 바라는 자세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아이가 자기가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했다면, 오히려 고개를 들 것이고, 누군가가 야단치면, 오히려 반박하려고 할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종이라 하더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죄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제사지내는 것을 숨어서 엿 볼 수도 있고, 혹은 그들이 행음하는 장면을 몰래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의 백성이나 종의 마음에는 수치심이 생겨서 고개를 들지 못할 것입니다.
요즘식으로 표현한다면, 아무리 믿음의 형제자매나 목회자라 하더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호기심으로 좋지 못한 영화를 볼 수도 있고, 그런 분위기에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믿음의 형제자매의 마음속에는 수치심이 생기고, 너무나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세리처럼 가슴을 치면서‘이 죄인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偶像)에 바람이 난 것은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깊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너무나 케케묵으셨고, 너무나 가난하고, 꽉 막힌 분이기 때문에 자기들은 당연히 우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여자가 집이 너무나 가난해서 그 반발로 술집에 나가게 되었다면, 술집에 나가는 것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부모에게 잘못했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당당하게 자기는 이렇게 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어서 남보란 듯이 잘살 것이라고 큰소리를 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얼굴을 보니까 이들은 호기심이나 실수로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경멸하고 있었고, 하나님만 믿는 것을 업신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에 음란한 마음이 있고, 얼굴에 교만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유다도 그런 죄에 물들고 있다고 보셨습니다. 그 이유는 유다가 이스라엘의 외적인 성공만 보고, 부러워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이미 결론을 이렇게 내리셨습니다.
5:6절)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리 양이나 소를 떼로 몰고 가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즉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더 이상 제사나 예배는 치유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예배가 자기만족이요, 자기도취였기 때문입니다.
5:7절)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로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에 대한 정조(貞操)를 버렸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께 제사한다고 해도 그 중심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사생아의 축복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성공한 것이지, 하나님이 주신 복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7절)...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새 달’은 새로운 한 달이 시작되는 예배입니다. 즉 이스라엘에게는 새로운 미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더 이상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로운 미래는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야 있는 것이지, 세상을 따라갈 때는 없는 것입니다.
Ⅱ.전쟁의 나팔 소리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가장 두려운 것이 전쟁의 소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축복을 인정하지 않으셨을 때, 그들이 듣게 되는 것은 곧 전쟁의 나팔 소리입니다.
5:8절)너희가 기브아에서 뿔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나팔을 불며 벧아웬에서 외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지어다.”
여기의‘뿔 나팔’은 전쟁의 나팔이요,‘나팔’은 전쟁이 터진 것을 알리는 나팔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전쟁이 터졌다고 알리는 곳은 기브아와 라마였습니다. 기브아나 라마는 이스라엘에서는 가장 안전한 곳으로써 모두 이스라엘과 유다의 중간 지점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들은 유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공격당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만일 적(敵)이 쳐들어오면, 북쪽에서 내려올 것입니다. 혹시 남쪽으로 우회해서 올라오더라도 유다가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이스라엘로서는 가장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호세아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전쟁의 뿔 나팔 소리가 들리고, 전쟁의 나팔 소리가 들린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때는 이 세상어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곳도 전혀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면 아무리 안전한 곳이라 하더라도 일단 전쟁이 터지면, 포위되어서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는 호세아가 환상 중에 보니까 이미 사마리아나 다른 도시들은 폐허가 되어 버렸고, 기브아와 라마에서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이미 사마리아나 이스라엘의 다른 성들은 함락이 된 것을 전제로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5:8절)...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때 베냐민은 이미 유다에 속했습니다. 그러니까 앗수르 군대가 이스라엘을 다 멸망시키고, 이제 유다를 공격할 차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유다 사람들 중에서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생활의 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정된 직장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왔고, 안정된 자기 집을 가지는 것을 인생의 성공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면 직장이나 안정된 집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안에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산성(山城)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을 나의 적(敵)으로 삼으면, 진노를 피할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에서 사는 원리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원리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자기의 성(城)을 쌓고, 안전 대책을 세우는 것은 옳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철저하게 재테크를 합니다. 즉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철저하게 자기가 먹고 살 길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날에는 그런 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안전하다는 펀드나 주식이나 돈도 휴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방법으로 부(富)를 쌓고, 자만(自慢)에 빠져 있으면, 거기에 하나님의 뿔 나팔 소리와 나팔 소리가 들릴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누구 차례’라고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다 똑같은 방식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있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안전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귀중한 보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말씀을 존중하기를 원하십니다.
5:11절)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뒤따르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받는 도다.”
에브라임이 망하게 된 주 원인은 그들이 사람의 칭찬을 듣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명령을 따랐기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즉 그들은 인간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서 행동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역사서를 읽어 보면, 이스라엘 왕들에 대하여 왕상16:19절)...그가 악한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의 길을 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눅17:33절)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만 붙들고 가면, 꼭 죽을 것 같고, 망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는 길이요, 복 받는 길인 것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브아나 라마 같은 곳이 가장 안전할 것 같다고 해서 땅을 사고 투자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곳에 전쟁의 뿔 나팔 소리와 나팔 소리가 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떠난 백성들에게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인간들이 만든 수만 가지 방법은 그들을 돕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로 도망을 치든지,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꼼짝 못하게 잡아서 다시 말씀이 있는 곳으로 끌고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이제는 다른 생각을 버리고, 위대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위대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좋은 집에서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사는 그것입니다. 이것의 가치를 모르고, 그저 눈에 보이는 것에서 행복과 만족을 찾으려는 정신나간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5:9절)벌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폐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반드시 있을 일을 보였노라”
아마도 호세아는 지금 그렇게 잘사는 이스라엘이 황폐하게 될 것을 환상 중에 분명히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중에 반드시 있을 일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환상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순종해서 사는 삶 그 자체입니다.
Ⅲ.유다와 이스라엘의 정책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이스라엘이 이렇게 똑같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서 멀어지면서 망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곧 성공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5:10절)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그들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
여기서‘경계표’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땅의 경계를 구분하는 경계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경계표를 옮긴다는 것은 자기 땅을 그만큼 넓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땅을 주시면서 자기 땅을 넓히지 못하도록 경계표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은 똑같이 하나님 앞에서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심리가 이상한 것이, 이미 자기에게 주어진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무한히 더 가지기를 원하고, 무한히 더 잘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주신 범위 안에서 자족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주위의 약(弱)한 사람들의 땅을 빼앗아 가서 자기 경계를 넓히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흉년이 들었을 때, 가난한 사람들에게 비싼 이자를 붙여서 곡식을 빌려 준 후에 제대로 갚지 못하는 사람의 땅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경계표가 더 넓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예 돌아오지 못하도록 외국에 노예로 팔아 버렸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세상으로 눈을 돌렸을 때는 자기에게 있는 것이 너무나 작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의 가치관을 본받아서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해서 자기 땅을 넓혀 나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을 잘 지키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땅,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가정,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라고 하신 일,이 모든 것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가 복을 받았다고 해서 당장 지경을 넓히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것은 매우 아름다운 것들이며, 우리는 그것을 잘 자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시키지 않습니다. 또 자신의 능력을 무한히 개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나의 능력이나 행복을 극대화시킬 때, 그 중에 무엇인가 분명히 잃어버리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그렇게 할 때, 반드시 다른 사람의 행복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기드온은 큰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식 문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70명이나 되는 자식을 두었으나 그들 중 아비멜렉이라는 아들이 세겜 사람들과 뜻이 맞아서 자기 형제 70명을 모두 다 죽이고, 세겜에서 왕 노릇을 했습니다.
이때 막내아들 요담이 간신히 살아서 도망치면서 이런 비유를 이야기했습니다. 즉 나무들이 자기들의 왕을 뽑기로 하고, 먼저 감람나무에게 가서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감람나무는 자기 기름을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버리고, 나무들 위에 요동하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나무들이 다시 무화과나무를 찾아가서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무화과나무는 자기의 단 것, 아름다운 실과를 두고, 어떻게 나무위에 요동하겠느냐고 하면서 거절했습니다. 또 포도나무에게 부탁해도 대답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시나무에게 가서 부탁했더니, 좋아하면서 자기 그늘에 피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가시나무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을 사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야망을 따라갈 때, 처음에는 좋은 것 같지만, 결국 서로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것으로 남을 기쁘게 하고, 남을 복 주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그들은 감히 다른 나무들 위에서 요동하면서 인기를 끌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귀중한 것들을 잘 지키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돕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복은 집을 늘려 가는 것이나, 재산을 증식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시나무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버리고 자기 욕심을 추구하는 유다의 지도자들에게 진노를 물같이 붓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진노를 참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어떠했습니까?
5:13절)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여기서‘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닫고,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다.’는 말은 자기들이 병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과 유다에 쉽게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했던 앗수르 제국이 등장한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야렙 왕’은 앗수르 왕에 대한 별명으로써‘싸움 왕’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앗수르 제국의 침략과 야욕을 앗수르에 돈을 주고 해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나라가 북한에 돈을 주어서 평화를 사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병을 깨달았으면, 치료하시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즉 완전히 망했다 생각하고 신앙 하나 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앗수르는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인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믿음으로 살지 않고, 돈으로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했을 때 그들의 복을 조금씩 빼앗아 가셨습니다.
5:12절)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
'좀’이나‘썩이는 것’은 느끼지 못하게 조금씩 파고들어 가거나 썩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하루 이틀은 별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몇 주일 지나고 나면, 전체가 좀이 슬거나 썩어서 쓸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부패합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할지 몰라도 내면적으로는 곪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점점 능력이 없어집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지고, 죄를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영혼이 좀먹었고, 곰팡이가 생겼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는 옛날처럼 모든 것들을 힘 있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쓸모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불순종하는 자에게 어떻게 하십니까?
5:14절)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여기서‘사자’나‘젊은 사자’는 앗수르의 공격을 말합니다. 아프리카 초원 지대에서 사자들은 얼룩말이나 들소를 공격합니다. 그런데 얼룩말이나 들소가 목을 물리면, 결국 죽고, 엉덩이를 물리면, 깊은 상처를 입기는 하지만, 도망을 쳐서 살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결국 앗수르에 목이 물려서 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유다는 중상을 입지만, 도망을 쳐서 다시 살게 됩니다. 이스라엘이나 유다가 망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가? 하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실 때는 우리에 대한 아름다운 계획이 있고,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꾸만 세상 사람들이 성공한 것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붙잡아야 하는데, 이것은 우리 힘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강한 손으로 붙들어 주셔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큰 죄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공을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즉 무화과나무는 무화과 열매가 있고, 포도나무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열매가 있습니다. 단지 이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만 의지하여 그 말씀대로 살면, 우리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국제정세가 불안정하고, 이 세상이 험난하다고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전쟁 왕 야렙 왕보다 더욱 강하신 분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안전한 길은 오직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없이 형통한 것을 절대로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주님의 뜻대로 사용되어 믿음의 열매를 맺도록 간구합시다.아-멘
찬송가 634장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오늘의 묵상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29:14)
*매일 새벽 4-5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교갱원은 1단계 묵상, 생명의 양식과 필수과목(26과). 2단계 생명의 양식과 전도학교(13과).3단계 생명의 양식과 청지기 대학(17과)으로 정예부대가 됩니다. 누구든지 전화신청받습니다(유료 : 각 교재 1과당=1만원, 방법 : 교갱원 설립 때까지 임시 카톡영상으로)
▽교갱원 설립할 온라인 특별 헌금▽
농협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 종류)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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