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 일가가 대관령 성황사로 찾아가 보니 처녀는 이미 혼이 빠져나간 채 위패 옆에 서서 죽어 있었다. 장정을 동원해 시신을 옮기려 했으나 마치 땅에 붙은 듯 떨어지지 않다가, 화공을 불러 처녀의 화상(초상화)을 그려 위패 옆에 세워 두자 비로소 시신이 떨어져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남성 수호신인 대관령 국사성황(범일국사)과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강릉 및 영동 지역의 공동체 여성 수호신이다. 실존했던 인간(강릉 정씨 처녀)이 비정상적 죽음(호환)을 거쳐 신과 결합(이종혼배)함으로서 국사성황의 배우자(신부)이자 지역을 지키는 신으로 승화된 존재이다.
대관령을 지키는 국사성황과 함께 강릉 및 영동 지역 주민들의 안녕, 평화, 풍요(풍농·풍어)를 지켜주는 핵심적인 수호 역할을 맡는다. 남신(국사성황)과 여신(국사여성황)의 결합을 통해 천지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액운을 막으며 공동체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상징적 역할을 수행한다.
첫댓글 국사여성황은 강릉 지역 실존 가문인 강릉 정씨(江陵 鄭氏) 집안의 처녀로 전해진다.
어느 날 대관령 국사성황신이 정씨 처녀의 아버지 꿈에 나타나 사위가 되게 해달라고 구혼했으나, 아버지는 "인간과 신이 어찌 혼배를 맺을 수 있느냐"며 거절했다.
며칠 후 노란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차려입고 툇마루에 앉아 있던 정씨 처녀를 국사성황이 보낸 사자인 호랑이가 냅다 업고 대관령 성황사로 달아났다.
정씨 일가가 대관령 성황사로 찾아가 보니 처녀는 이미 혼이 빠져나간 채 위패 옆에 서서 죽어 있었다. 장정을 동원해 시신을 옮기려 했으나 마치 땅에 붙은 듯 떨어지지 않다가, 화공을 불러 처녀의 화상(초상화)을 그려 위패 옆에 세워 두자 비로소 시신이 떨어져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민중들은 이를 비정상적 죽음(호환)을 당한 원혼을 달래고, 신과 인간의 결합(이종혼배)을 통해 수호신으로 추봉한 구비서사로 해석한다. 신위는 조선 시대 최고 호칭인 ‘정경부인(貞敬夫人)’으로 추봉되어 ‘정경부인 강릉정씨 대관령국사여성황’으로 모셔진다.
강릉단오제 전체 일정 중 음력 4월 15일부터 5월 7일까지 국사성황과 여성황을 한자리에 합사(合祀)하고 모시는 과정이 중심 축을 이룬다.
음력 4월 15일 대관령에 올라가 국사성황 신위와 신목(神木, 단풍나무)을 모시고 내려온 뒤, 강릉 시내에 위치한 국사여성황사에 안치하고 두 신을 하나로 모시는 합사굿을 거행한다. 이때부터 단오제 본제가 열리기 전까지 두 신은 여성황사에서 함께 지낸다.
음력 5월 3일 본격적인 단오제가 시작되는 날 저녁, 여성황사에서 영신제(迎神祭)를 지낸 후 두 신위와 신목을 모시고 남대천 가설 굿당(단오장)으로 이동한다.
영신행차 중간에 여성황의 생가 터로 전해지는 친정집(경방/경방댁)을 들러 인사를 올리고 굿을 올리는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원래 경포호 인근(포남동/홍제동 경계)에 위치하여 과거에는 ‘경포 국사여성황사’로 불리기도 했으나, 공간 정비 및 단오제 전승 시설 마련을 위해 현재는 홍제동(단오장길 1) 단오제 전수교육관 인근으로 이전·복원되어 있다.
여성황사 내부에는 국사성황과 여성황, 그리고 처녀를 데려간 호랑이가 함께 그려진 탱화(신도) 및 위패가 모셔져 있다.
남성 수호신인 대관령 국사성황(범일국사)과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강릉 및 영동 지역의 공동체 여성 수호신이다.
실존했던 인간(강릉 정씨 처녀)이 비정상적 죽음(호환)을 거쳐 신과 결합(이종혼배)함으로서 국사성황의 배우자(신부)이자 지역을 지키는 신으로 승화된 존재이다.
무속적 관점에서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원혼을 해원(解冤)하여 수호신으로 좌정시킨 민중 신앙의 결정체이다.
대관령을 지키는 국사성황과 함께 강릉 및 영동 지역 주민들의 안녕, 평화, 풍요(풍농·풍어)를 지켜주는 핵심적인 수호 역할을 맡는다.
남신(국사성황)과 여신(국사여성황)의 결합을 통해 천지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액운을 막으며 공동체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상징적 역할을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