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철학’이라고 한다면 아직은 너무 어렵다. 초등학교 5학년 수학 익힘책을 풀며 다른 친구들과 달리 진도가 더뎌 학교에 남았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때 어려워했던 단원이 최대공약수 단원이었다는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3년이 지나 15살에 본 수학을 ‘내가 그때 이걸 왜 어려워했지?“ 했던 의문처럼 철학도 3년 정도의 세월이 흐르면 3년 전보다 더 성숙해진 내가 철학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난 아직 철학을 이해하지 못했다. 제본 떠 받은 책을 펼치면 빼곡이 들어찬 한자에 한 음절 음절을 검색해가며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이었다. 어려워서 거리감이 느껴진다. 거리감이라고 함은 책을 덮게 만들었다. 나에게 위대한 지성인들은 먼 우주의 외계인일 뿐이다. 나와는 다른 존재.
그럼에도 내가 다산을 정해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먼 우주의 외계인 중에서도 그나마 사람냄새가 나는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어줍잖은 학부생 짧은 지식으로 정약용의 사상에 대해 학문적 고찰을 하기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 이 과제의 의의인 것 같다.
정약용이라는 이름을 들은 횟수로 따져보자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가 우리 엄마 이름 석자 또박또박 불러본 횟수보다야 많을 것이다. 초등학교 역사 책부터 정약용의 목민심서, 정약용의 목민심서, 정약용의 목민심서… 많이 들었다. 고등학교 모의고사 문학 지문에 가끔 실리기도 한다. 사실 문학 지문에 실린 정약용이 쓴 편지가 문득 생각났다.
다산이 황상에게 공부를 권했을 때, 황상이 자신에게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고 고백한다. 둔한데다가 생각이 꽉 막혔고, 생각이 짜임새가 없다고. 그러자 다산은 ‘끝이 둔한데 뚫어내면 그 구멍이 넓고, 막혔다가 터지면 그 흐름이 성대하며, 잘 들어맞지 않아 어근버근한 것을 갈아 내면 그 빛이 윤택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되려면 ‘부지런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편지를 좋아한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아 좋은 것 같기도 하다. 다산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일희일비 하지말라는 편지도 썼고, 폐족이라고 삶을 포기하지 말고 책을 읽으며 성인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한다. 다산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세상이 아무리 뭔가를 이뤄야 한다고, 가져야 한다고 다그쳐도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것’이고, 어떤 상황에서든 삶을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주지 않나 생각한다.
빠르게 변화하며 끊임없는 요구를 쏟아내는 세상에서 우리는 부담과 혼란을 느끼며 살아간다.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에게 알맞은 속도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나의 속도를 지키기는커녕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기에만 급급한 우리에게 정약용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을 보여준다.
사실 ‘철학’이라는 것이 나에겐 아직도 부담스럽다. 괜히 정치적인 사상과 결합시켜 고찰해야 철학 고증이라고 불러줄 것만 같다. 사실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가 곧 철학인 것인데 말이다. 그걸 이제야 깨달은 나도 늦었지만 철학과 가까워져 보려고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다짐을 한다. 포기하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부지런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책을 읽겠다.
첫댓글 최근 풀어보니 최대공약수는 그럭저럭 해결이 되던데, 최소공배수는 좀 어렵더군요. "늦되다"는 우리말은 때때로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꼭 시기에 맞추어서 무언가를 하여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좀 늦게라도 그걸 이해할 수 있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과거에 살았던 지식인, 지성인이 멀게만 느껴질 수도 있을 듯해요. 그래서 외계인으로 느껴진다는 표현도 이해가 되네요. 엄마 이름 보다도 좀 더 많이 불러보았겠지만 말이지요. 실은 이 표현에서 "엄마의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좀 더 끌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네요. 황상은 다산의 제자입니다. 공부할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제자에게 다산은 부지런히 하면 된다고 희망을 보여줍니다. 이것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해한 것은 인상적이네요. 아들에게 쓴 편지들을 인용한 것도 인상적이고요. 철학이 "정치적인 사상과 결합시켜 고찰"해야 할 필요는 없답니다. 부지런히 옛사람의 생각을 더듬어 찾아보면서 그것을 오늘날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고민하기를 그만 두지 않으면 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