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8-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0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21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련하게 산 세상
어떤 본당에서 성경공부를 할 때 사람들의 질문이 아주 무성하였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문제로 마침 루카 복음서를 공부하였는데 세례자 요한의 설교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루카 3, 10-14) 세상 속에서 약게 살아야 하느냐? 미련하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이 우리들의 생활나누기 논점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은 정말 다양하고 재미있지만 약삭빠르게 잘도 살고 있습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 싸우고, 돈을 버는 사람들은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 하고 머물 집이 없어서 떠도는 사람들도 많고 견디기 힘든 빈곤으로 허덕이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요한은 옷을 두벌 가진 사람은 한 벌을 나누어주고, 먹을 것도 나누며, 세리들에게 정한 대로 받고 더 받지 말라고 하며, 군인들에게 강탈이나 갈취를 하지 말고, 봉급대로 만족하라고 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아주 미련한 방법이며, 세상이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짓들입니다. 가끔 나는 나 스스로 주제파악을 제대로 하라고 자신을 나무라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너무 세상을 살피지 못하고 분수를 모르고 무조건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고 하기에 다른 사람이 나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는데 언제나 이용당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면 나도 적극적으로 잘 나서는 편입니다. 너무 이론을 앞세우고 살아서 버릇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성경의 말씀대로 희생과 헌신적인 사랑을 강조하면서 살다보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미련하게 산다고 할 것이고, 내 아이들이 그렇게 산다면 분명 열 받아서 못 견딜 것인데 나는 정말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서공부를 하면서 그 문제에 대하여 아주 열띤 토론을 벌이면서, 하느님께서 진정 그렇게 미련하게 살라고 말씀하신 것인지에 대하여도 많은 얘기를 나눈 결과 작은 결론을 얻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 말씀이 결론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보고 미련하게 산다고 하면 먼저 우리의 주님께서 미련하게 산다고 손가락질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주님을 미련하게 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분의 삶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우며 얼마나 고귀한지 그 어떤 말로도 가히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당신의 삶을 인간 예수의 중심으로 살지 않으시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중심으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어렵고 힘든 속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외롭고 힘들게 살고 있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전혀 다른 모습임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은 전혀 다른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지 않고 하느님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 논의의 종점이었고 내 중심의 삶보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련하게 살지 말고 아주 약게 살라고 가르치고 계시고, 그렇게 성령을 보내시어 지혜로써 약게 살도록 이끌어 주시니 그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 품 안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었다면 세상의 약삭빠른 방법에 의해서 사랑하고, 비비적거리고, 그 속에 젖어서 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삶을 살 때는 세상의 법에 의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 세상의 모든 자연법과 질서 또한 하느님께서 만들어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법에 맞추어서 이 세상을 사랑하고 이웃들을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하느님 품안의 사람들로 새롭게 이끌어야 하는 귀중한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는 소명(召命)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씀을 따라 살지 아니하면 우리는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이고 결국 세상의 지배에 빠지게 될 것이고, 결국 악마가 원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품안으로 품어 안기 위해서 제비를 뽑듯 우리를 뽑아 품에 안으시는 것입니다. 아주 비천한 우리를 뽑아서 당신의 왕자와 공주로 만드시고, 성덕으로 치장하도록 성령을 내려주시니 악마의 시기와 질투를 받아서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의인으로 정평이 나 있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과 사제들은 엄격한 신분제도를 완전히 묵살하고 비천한 종을 주인의 반열로 끌어올려 주시는 주님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박해하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따르는 새로운 아브라함의 자손들임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확신한다면 매일이 행복하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비록 지금의 삶이 곤궁하고 세상의 눈에 초라하고, 바보처럼 사는 인생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6,1-10
그 무렵 1 바오로는 데르베를 거쳐 리스트라에 당도하였다. 그곳에 티모테오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신자가 된 유다 여자와 그리스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2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다.
3 바오로는 티모테오와 동행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에 사는 유다인들을 생각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베풀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을 그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 바오로 일행은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이 정한 규정들을
신자들에게 전해 주며 지키게 하였다.
5 그리하여 그곳 교회들은 믿음이 굳건해지고 신자들의 수도 나날이 늘어 갔다.
6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은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가로질러 갔다.
7 그리고 미시아에 이르러 비티니아로 가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8 그리하여 미시아를 지나 트로아스로 내려갔다.
9 그런데 어느 날 밤 바오로가 환시를 보았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오로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것이었다.
10 바오로가 그 환시를 보고 난 뒤,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떠날 방도를 찾았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축일5월 4일 성 아우구스티노 웹스터 (Augustine Webster)
신분 : 수도원장, 순교자
활동 지역 : 영국(UK)
활동 연도 : +1535년
같은 이름 : 아오스딩, 아우구스띠노, 아우구스띠누스, 아우구스티누스, 어거스틴
성 아우구스티누스 웹스터(Augustinus Webster, 또는 아우구스티노 웹스터)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한 뒤 런던(London)의 신(Sheen) 수도원에서 카르투지오회 수도승이 되었다. 1531년에 그는 잉글랜드 링컨셔(Lincolnshire)의 악솔름(Axholme) 섬에 있는 멜우드의 성모 마리아(Our Lady of Melwood)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영국에서 종교 개혁과 관련해 대혼란이 벌어질 때 영국 내에는 10개의 카르투지오회 은수 수도원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카르투지오회 수도원을 보통 ‘차터하우스’(charterhouse)라고 불렀다. 이는 카르투지오회를 설립한 성 브루노(Bruno, 10월 6일)가 첫 은수 수도원을 세운 프랑스의 샤르트뢰즈(Chartreuse)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카르투지오회 수도승들은 가난과 엄격한 삶을 통해 대중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다. 이는 헨리 8세(Henry VIII) 왕이 수도원을 해산하기로 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다.
1535년 2월 카르투지오회는 1534년에 헨리 8세 왕이 공포한 ‘수장령’(Act of Supremacy)에 따라 영국 교회의 최고 수위권이 국왕에게 있음을 서약하도록 요구받았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티누스 웹스터는 이 사태에 대해 런던 수도원의 성 요한 후톤(Joannes Houghton)과 상의하기 위해 보베이 수도원의 원장인 성 로베르투스 로렌스(Robertus Lawrence)와 함께 런던으로 갔다. 이들 세 수도승은 신앙과 양심에 어긋나는 서약에 대한 면제를 탄원하고자 당시 국왕의 신임 속에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토머스 크롬웰(Thomas Cromwell)을 만나러 갔다가 체포되어 런던탑에 갇혔다.
1535년 4월 그들은 특별 위원회에 불려 나가 수장령을 거부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때 템스 강변의 아이슬워스(Isleworth) 본당 내에 있는 시온(Zion) 수도원의 원장인 브리지타 수도회(Bridgettines) 소속 성 리카르두스 레이놀즈(Richardus Reynolds) 신부도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5월 4일, 성 아우구스티누스 웹스터는 같은 카르투지오회의 성 요한 후톤과 성 로베르투스 로렌스, 그리고 성 리카르두스 레이놀즈 신부와 아이슬워스 본당신부인 복자 요한 하일레(Joannes Haile)와 함께 런던의 타이번(Tyburn)으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웹스터와 동료 회원들은 영국에서 순교한 첫 카르투지오회 수도승들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웹스터는 1886년 12월 29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 중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개인적으로는 순교일인 5월 4일에 기념하고, 시성 후에는 40위 순교자의 일원으로서 시성일인 10월 25일에 기념해 왔었다.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이후 40위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4일로 옮겨져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아우구스티노 웹스터 (Augustine Webster)를 비롯한 영국의 순교자들 특별히 카르투지오회의 성 요한 후톤과 성 로베르투스 로렌스, 그리고 성 리카르두스 레이놀즈 신부와 아이슬워스 본당신부인 복자 요한 하일레(Joannes Haile)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